
얼핏 들어서는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세계 곳곳서 발생한 범죄 현상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전 초등생 피습 사건, 엽기적인 연쇄살인, 참혹한 연쇄 성폭행을 정신건강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하면 삶의 질은 얼마나 나빠질까.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개인과 사회의 건강함을 잃는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임에도 아픔을 모른 채 행위의 결과만으로 몽둥이질, 즉 형벌만 강조한다면 문제는 해결보다는 더 악화되지 않을까?
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병에 걸리기 전에 건강관리를 하는 예방의학이 중시되듯이, 범죄도 한번 일어나면 피해는 회복할 수 없거나 고통과 비용을 수반하기에 사후에 대응보다는 사전에 예방돼야 한다.
사후 대응적인 형사사법적 접근으로는 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따라서 형사사법보다는 건강한 개인과 사회의 삶을 보호할 수 있는 사전 예방적인 공중보건 접근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거나, 적어도 형사사법과 공중보건의 통합적 접근으로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교정정책의 하나로 ‘범죄자는 처벌보다 치료의 대상’이라고 하는 의료모형을 시험했던 적이 없지는 않다. 여전히 대다수 사람은 공중보건과 범죄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할 것이며, 당연히 조깅과 자전거 타기가 범죄 감소 전략이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총기사건이 가장 빈번한 곳으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 ’동 팔로 알토(East Palo Alto)‘에서는 범죄와 싸우기 위해 주민들이 자전거 타기나 조깅과 같은 야외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건강 증진이 지역사회 안전을 향상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는 경찰관으로 가득 찬 지역사회가 아니라 활력이 넘치는 마을 분위기라고 맞장구친다. 즉, 건강한 지역사회가 실제로 안전한 지역사회라는 것이다. 범죄와 폭력을 전염성이 있는 질병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질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공중보건 접근은 45년 전, 미국 의무감(Surgeon General) 보고서에서 최초로 언급됐고, 이 과정서 폭력행위가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인 것으로 확인됐다. 4년 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실천을 위한 방안으로 ‘폭력 역학부(Violence Epidemiology Branch)’를 설치했으며, 이후 ‘폭력 예방국(Division of Violence Prevention)’으로 확대시켰다.
이를 계기로 법 집행과 공중보건은 빈곤·폭력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해를 점점 더 공유하게 됐다. 법 집행과 공중보건 둘 다 기존의 문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질병이나 폭력이 시작되기 전 중단시키는 예방적 접근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폭력 예방이 공중보건에 적합할까? 폭력은 유행병의 특수한 특성을 다수 공유한다. 폭력은 ‘전염’되지만 박테리아 같은 매개체가 아니라 자녀가 부모를 모방하는 것과 같은 ‘모형화(modeling)’나 사회적 압력 등으로 전이된다.
범죄 지도 역시 원래 질병 유형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됐던 기법의 다수를 이용하고, 범죄 지도상 범죄의 지리적 집락이 질병의 지리적 집락과 유사함을 알게 됐다.
결국 공중보건 모형은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미국 질병통제와 예방센터(CDC)의 제안을 기초로 건강, 안전, 웰빙에 기초한 과학적 분야에 근거를 둔 표적화된 폭력 예방을 위한 종합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