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의문 남기고 떠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그렇게 씩씩해 보였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MBC 소속 기상캐스터 오요안나가 하늘의 별이 됐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오요안나의 비보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사내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비윤리적 사건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향년 28세, 젊은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인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0일 오요안나의 부고 소식이 언론에 공개됐다. 고인은 그해 9월15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뒤늦게 부고 소식을 전했다.

집단 왕따?
가해자 4명

유족은 언론을 통해 고인이 직장 내에서 선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휴대전화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해당 유서는 원고지 17장, 총 2750자 분량이었다.

유서에는 고인보다 먼저 MBC에 입사한 기상캐스터 한 명이 오보를 내고, 그 책임을 고인에게 뒤집어씌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 퇴근 후 ‘가르쳐야 한다’는 명목으로 고인을 회사로 호출했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이 같은 괴롭힘으로 인해 고인은 유서에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하다. 나를 설득시켜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도 싫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사랑만 할 수 없는 게 싫다, 벌어질 듯 아픈 것도, 명치가 찢어질 것 같은 것도 지긋지긋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살리려고 불편하게 하는 것도 싫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유족은 생전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MBC 관계자 4명에게 알렸으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족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고인은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 출연한 이후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해 의혹을 받고있는 한 기상캐스터는 고인이 <유퀴즈>에 섭외된 사실을 알자 “너 뭐하는 거야? 네가 <유퀴즈> 나가서 무슨 말 할 수 있어?”라며 조롱했다. 이후 그의 동기 금채림과 고인을 따돌리기 위해 2명을 제외한 단톡방을 새로 만들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유족은 문제의 단톡방에 있었던 기상캐스터 4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가해자로 지목했다. “진짜 악마는 이현승, 김가영”이라며 “박하명과 최아리는 대놓고 괴롭혔지만 이현승·김가영은 뒤에서 몰래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하명과 최아리는 장례식에 왔다. 정작 장례식에 안 온 2명은 이현승, 김가영”이라며 단체 채팅방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대화 내용엔 고인에 대한 욕설과 비방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파악됐다.

고인은 자신을 제외한 단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휴대전화에 자신을 언급한 단톡방 대화 내용을 저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단톡방서 4명이 본인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출근을 해야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그래서 수많은 구조 요청들을 주변에 해왔는데, 해결되지 않았다. 오요안나는 죽음을 결심하고 데이터 (카톡, 녹음기록 등)를 (핸드폰에)저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있으면 이걸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죽어서라도 알리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 고통을 멈추게 막아주고 싶었다. 직장 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폭력이나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지난해 12월, 유족은 고인이 언급한 직장동료 4명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고인이 공개적인 폭언과 모욕을 당했으며 언어적 괴롭힘도 있었다고 적었다.

향년 28세, 안타까운 죽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유는?

유족의 폭로로 인한 논란이 가중되자 지난달 28일, MBC에선 입장문을 내놨다. “프리랜서였던 고인이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며 해명했다.

이어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을 신고했거나, 책임 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치를 했을 것”이라며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또 “일부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고인이 사망 전 MBC 관계자 4명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라고 한다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저희에게 알려주시기 바란다”며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MBC는 최근 확인됐다는 고인의 유서를 현재 갖고 있지 않으며, 유족들께서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최단 시간 안에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다.

입장문에 고인을 프리랜서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인을 프리랜서라고 강조하며 선긋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던 탓이다. 고인이 보도국 소속이라 감사국이 아닌 보도국에 고충을 알렸을 가능성이 크다며 말장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졌다.

강명일 MBC 노동조합(제3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고인의 1차 극단적 선택 시도 당시 MBC 내부에 보고가 됐을 것”이라며 “이로 인한 얼굴 부상으로 방송을 하지 못했고 결국 2차 시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고인은 사망 전이었던 9월6일 가양대교서 투신을 시도했으며, 이후 두 차례 더 극단적 선택 시도 끝에 사망했다. 지난해 고인은 얼굴 부상으로 인해 날씨 방송을 하지 못하거나 손목에 테이핑한 상태로 일기예보를 하는 등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이 정도면 괴롭힘 사실에 대해 모를 수 없었을 것”이라며 MBC의 거짓 입장을 의심했다.

이틀 뒤, 유족들은 MBC 입장문에 대해 “MBC 관계자 4명에게 얘기한 녹취가 있으며, MBC에 사실관계 요청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조사하고 진정 어린 사과 방송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MBC가 입장문에서 유족들이 요청한다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익명의 노무사는 “유족의 요청이 없더라도 의혹이 생겼다면 조사나 조치를 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지적했다.


괴롭힘 후폭풍
비판의 목소리

논란이 불거지자 MBC는 이틀 만에 입장을 번복하며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선 여론을 의식해 위원회 조사를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후, 고인의 자필 일기 일부 내용이 공개됐다. 사망 2개월 전인 지난해 7월16일에 작성된 내용에 따르면 “억까 미쳤다. A는 말투가 너무 폭력적” “새벽 4시부터 일어나...(생략) 10시45분 특보까지 마침. 그 와중에 억까 진짜 열받음” 등 가해자를 직접 언급하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유족은 “A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며 “가해자는 4명이다. 최소한의 방법으로 한 명에게 책임을 묻고 사실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라고 전했다.

집단 괴롭힘의 주도자로 언급된 김가영은 이전에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홍보 영상에 출연한 적이 있어 더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홍보 영상에 어떻게 괴롭힘을 주도한 사람이 나올 수 있냐는 반응이다.

김가영은 평소에 밝고 좋은 성격의 이미지로 방송에 자주 출연했기에 누리꾼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도 출연하고 있어 팬들은 “그럴 줄 몰랐다”라며 <골때녀>서 김가영의 하차를 요구했다.


김가영이 후폭풍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자 <골때녀>에서는 이후 방영될 방송서 김가영 분량을 통편집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하차 결정은 보류 상태다. 그는 파주시 홍보대사에서 해촉됐고,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서도 자진 하차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다.

집단 괴롭힘의 주도자로 김가영이 거론되자 <꼴대녀>에 고정 출연 중인 유튜버 일주어터는 지난달 27일 김가영의 SNS에 댓글을 남겼다.

그는 “가영 언니는 오요안나님을 못 지켜줬다는 사실에 당시에도 엄청 힘들어했다. 나는 오요안나님과 같이 운동을 한번 해봤던 인연이 있는데 한번 뵀을 때도 오요안나님이 나에게 가영 언니 너무 좋아하고 의지하는 선배라면서 진심으로 얘기해줬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여기서 이런 댓글 다는 건 오요안나님이 절대 절대 원하지 않을 거다. 오지랖일 순 있으나 가영 언니가 걱정되고 짧은 인연이지만 오요안나님의 명복을 빌며 댓글 남긴다”고 김가영을 두둔하는 듯한 댓글을 달았다.

팬에게 위로
마지막 통화

이후 유가족이 김가영을 가해자로 언급하자 일주어터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는 아나운서 출신 장성규가 직장 내 괴롭힘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녹취록에서 “장성규는 김가영과 아침 방송을 하고, 오요안나와도 운동을 같이 해 친한 사이”라고 언급됐다. 그러면서 “김가영이 장성규에게 ‘오빠 걔(오요안나) 거짓말하는 애야’라는 식으로 얘기했고, 장성규는 오요안나에게 ‘너 거짓말하고 다닌다던데’라고 전달했다”며 “오요안나가 깜짝 놀라 ‘누가 그랬냐’ 묻자 장성규는 ‘김가영이 그랬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 여파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장성규는 자신의 SNS에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처음 내 이름이 언급됐을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서 속상했지만 고인과 유족 아픔에 비하면 먼지만도 못한 고통이라 판단해 바로잡지 않고 침묵했다”며 “그 침묵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인 누리꾼들이 SNS에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이어 “급기야 가족에 관한 악플이 달렸고 댓글을 달 수 있는 권한을 한정하자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으로 판단한 누리꾼들은 수위를 더 높였다”면서 “고인의 억울함이 풀리기 전 나의 작은 억울함을 풀려는 것은 잘못된 순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풀릴 때까지 가족에 관한 악플은 자제해주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 “지난해 12월 뒤늦게 알게 된 고인 소식에 그동안 마음으로밖에 추모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늦었지만 고인의 억울함이 풀려 그곳에선 평안하기를, 유족에겐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꼭 밝혀 달라” 유족 눈물
진실 규명 목소리 높아져

MBC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박은지는 지난 1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고인의 사망 기사를 올린 뒤 “MBC 기상캐스터 출신으로 너무 마음이 무겁다”며 “본 적 없는 후배지만 지금은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그는 “나도 7년이라는 그 모진 세월 참고 또 참고 버텨봐서 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지…도움이 못 돼줘서 너무 미안하다”며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끝까지 밝혀져야 한다”고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MBC를 정면 비판했다. 지난 4일 배 의원은 “회사에 SOS(구조요청)를 했는데 묵살된 게 제일 큰 문제”라며 “MBC의 사내 문화는 굉장히 대학 동아리처럼 인적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중에 누가 맘에 안 들면 굉장히 유치하고 폭력적인 이지메(집단괴롭힘)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 의원은 “사내 전반에 그런 문화가 있다. 누가 괴롭히는 걸 묵인하고 용인하고 쉬쉬하는 문화다. MBC의 나쁜 사내 문화”라며 “MBC서 퇴사하면서 한 얘기가 있다. 겉으로 보면 번지르르한 가정집인데 심각한 가정폭력을 자행하는 곳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고인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니 청문회 개최를 (야당에)요구해서 진실규명에 앞장서달라”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위원들에게 당부했다.

한 누리꾼은 과거 오요안나가 자신의 삶의 고충을 위로해줬다며 미담을 전했다. 작성자는 지난 3일 엑스(옛 트위터)에 “(오요안나가 진행한)라이브 방송서 내가 힘들다는 뉘앙스를 표현했더니 위로해 주셨다. 감사해서 메시지를 남겼더니 장문의 답변을 주셨다”며 고인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고인은 작성자에게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한테 손을 뻗으면서 살려달라고 말한다.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 물론 밀치고 잡아주는 척하면서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긴 하다”며 “어찌 됐든 저는 끝내 일어나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내 쓰러져만 있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과를 다닌다는 건 일어나기 위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라며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최선이자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면서 “사회가 씌운 프레임 덕에 진입 장벽도 높은데 결심하고 해낸 작성자가 멋지다.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다”라고 작성자를 위로·격려했다.

고인은 사망 전 어렵게 살고 있던 지인에게 지난해 9월15일 마지막 전화를 걸었던 사실도 알려졌다. 당시 그는 “열심히 살아라. 힘내라”라며 어려움을 겪던 지인을 격려하며 20만원을 보내기도 했다.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받은 당시 월급은 150만원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은 배가 됐다. 고인이 도와준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한 젊은 청년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타인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사 착수해
진실 밝힌다

한편 지난 3일, 마포경찰서는 오요안나 사망 사건과 관련해 MBC 내부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같은 날 MBC는 “1월31일 고인의 사망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휴일 사이 조사위원회의 인선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오요안나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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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시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공수처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나섰으나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 미수도 문제다.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 비상식적 지시와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는 전·현직 장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사건이 꼬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의 그릇된 판단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면 내란 동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지시를 듣기만 했다면 다르다. ‘미수’에 그치기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언 거부 모르쇠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 봉쇄 및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이 내용은 빼놓고 진술했다. 단전·단수 지시 의혹에 대한 국회 질의에도 증언을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서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자정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계엄 선포 이후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포고령이 발령된 직후인 3일 밤 11시34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다음 3분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줘라”라고 지시했다. 허 청장은 소방청 차장에게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소장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진술과 대조적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조 청장과 허 청장에게 연이어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따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려 조 청장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조 청장이)다른 누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며 “아무 응답이 없어 조금 기분이 나빠서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제가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이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사건 사고 들어온 것이 있느냐? 때가 때인 만큼 국민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사전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에 관한 준비나 필요한 조치를 지시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경찰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상민에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범죄 시도했는데 실패 미수범 처벌 불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만류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강행했다. 이후 조 장관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서를 건넸다. 윤 대통령 곁을 거의 내내 지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덕수 총리와 이 전 장관 등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위원 대다수는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와 연결된 직권남용 혐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애를 먹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소제기 요구’ 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한 후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수사 역시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이 없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는가 여부를 검토해도 수사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범죄를 시도해 성공한 기수범 외 범죄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수범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갈리는 의견들 실제 단전·단수 의혹의 경우 이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특정 몇 가지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 쪽에서 (단전·단수)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을 다시 경찰에 이첩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계엄 선포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을 포함해 경찰이 이 전 장관 사건을 넘겨받아 조사하기로 공수처와 협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지금까지 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을 포함해 총 53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중 당정 관계자는 28명, 군 20명, 경찰 5명 등이다. 지금까지 8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명을 공수처 및 군 검찰에 이첩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별동대 성격인 사조직 ‘수사2단’ 의혹을 받는 방정환 2기갑여단장과 구삼회 국방부 혁신기획관도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수처는 경찰에 한 총리와 이 전 장관의 사건을 이첩한 데 이어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이첩했다. 한 총리 사건을 재이첩하는 이유에 대해선 “중복 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한 총리 조사를 한 차례 진행하고 계속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넘긴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에 전념한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 전 장관 사건도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허석권 소방청장 등 소방청 간부들을 조사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 전 장관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지적에도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수사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사건을 건네받으면서 논란만 키웠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이후엔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후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냈다. 진행은 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자 경찰과 협의도 없이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청해서 받은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며 두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지체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의혹이 국회서 불거지자마자 관련자 진술을 받았고 자료도 검토했기 때문에 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수사기관에 각각 사건을 반환하는 이유에 대해선 “경찰은 사건을 이첩할 때 3가지 혐의를 적시한 반면,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혐의를 포함해 8가지 혐의를 이첩했다”며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많고 현재 군 검사들이 함께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반란 혐의를 수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경찰 간부 등 남은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한 피의자 총 15명 중 경찰 간부는 조 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치안정감),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총경) 등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인 만큼, 김 청장과 목 전 대장만 남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찰 간부는 저희가 직접 기소할 수도 있어서 최선을 다해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무위원들과 군·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내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 3단계로 구분해 처벌할 수 있다. 공수처, 사건 검경 재이첩 “시간만 날려” 중요임무종사·부화수행 혐의 적용 관건 나머지 수사는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인식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가담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우선 검찰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놨다. 검찰은 한 총리, 최 대행(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 장관 등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보고 있다. 국무회의 자체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계엄을 통보했을 뿐 실질적 논의도 없었던 데다 회의록도 없을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엄에 대한 후속 조치나 사전 준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화수행이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최근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을 비롯한 군 중간급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하자 군법무관 회의를 거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항변했다. 방첩사 병력을 출동시키긴 했지만 고무탄총·가스총만 가진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선관위 청사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 체포조’ 지원 의혹에 연루된 경찰 간부들도 피의자로 입건해 지난달 31일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방첩사의 요청을 받고 체포조 지원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고위직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중간직은 부화수행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국회 주변 계엄령 위반자 체포인 줄 알았지 특정 정치인 체포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머리 아픈 남은 수사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화수행 혐의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지가 고비가 될듯하다. 계엄 관련 위헌·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로 받을 수 있는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일부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란죄가 중대범죄인 만큼 부화수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공무원·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파면되고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