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집착…신종 스토킹 범죄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0.19 20:32:57
  • 댓글 0개

“이렇게 하면 널 가질 거라 생각했어”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싫다는 사람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범죄 스토킹. 한 때 사랑했다 헤어진 연인관계에서 혹은 팬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에게 빈번히 발생하던 스토킹이 최근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특정인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사이버 스토킹에서부터 조직으로 이뤄지는 집단스토킹까지 등장했다. 일방적이기에 더욱 두렵고 잔인한 그것. 소름끼치는 신종 스토킹 범죄 실태를 들여다봤다. 

스토킹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인기의 부산물로 치부하기엔 그 정도가 심각하다. 지속적으로 전화를 거는 것부터 시작해 무작정 집을 찾아오거나 일상을 훔쳐보는 일, 상대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가 하면 심지어 만나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다양하다. 최근엔 단지 이성간의 문제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인터넷상에서도 널리 퍼져 모든 사람의 관심사와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공간을 훔쳐보는
집요한 시선

올해 초 뷰티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던 A(27·여)씨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A씨는 한 네티즌의 블로그 이웃신청을 자연스러운 사이버 친구 맺기라고 생각하며 수락했다 예상치 못한 수난을 겪어야 했다.

사이버 친구신청은 블로거 활동을 하다보면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 네티즌은 A씨에게 지속적으로 쪽지를 보내고 프로필에 게재된 휴대폰 번호로 연락을 취하는 등 친구 이상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A씨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취했고, ‘블로그 포스트 업데이트는 언제 하는 거냐’ ‘이번엔 소녀시대 윤아 콘셉트의 화장을 해봐라’ ‘가슴이 더 노출되도록 사진을 찍어 올려라’ 등의 음란 발언을 보냈다. 당황한 A씨는 개인정보를 모두 비공개로 바꾸고 친구관계를 끊었지만 그는 또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익명 뒤에 숨은 얼굴…사이버스토킹 늘어
개인정보 사적으로 악용 후 잘못된 구애

A씨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정보를 모두 파헤쳐 찾은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며 “결국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닫고 휴대폰 번호도 바꿨다. 취미로 즐겨하던 블로그 포스팅도 이제는 너무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직장인 B(30·남)씨도 지난해 사이버 스토킹을 당하면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한 네티즌이 B씨의 미니홈피에 드나들며 1년 가까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는 B씨에게 “사랑한다” “너 없으면 나는 죽는다”라는 협박성 말을 지속적으로 내뱉었다.

B씨는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로부터 스토킹이 계속되어 미니홈피를 폐쇄하고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바꿨다”며 “그로인한 정신적 피해로 SNS 활동은 물론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사람들까지 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있다”고 털어놨다. 

택배 물건 한 번
받았을 뿐인데…

이 뿐만이 아니다. 개인정보를 사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학생 C(22·여)씨는 얼마전 대리판매점에서 휴대폰을 개통한 후 판매점 직원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C씨는 연락처를 알려준 적이 없었지만, 해당 직원으로부터 ‘남자친구가 있느냐’, ‘시간나면 커피나 같이 마시자’ ‘주로 어디서 노냐’ 등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받았던 것.


해당 직원은 C씨가 휴대폰을 개통할 당시 작성한 가입서류의 고객정보를 외워뒀다가 스토킹을 했으며, 이 사실을 안 C씨의 부모가 해당 판매점에 항의를 하고 나서야 C씨는 스토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택배 물건을 받았다가 스토킹에 시달린 경우도 있었다. 대학원생 D(28·여)씨는 학교 근처로 이사 후 택배기사로부터 몇 개의 물품을 받으며 원룸 카드키 관련한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았고 이후 끔찍한 스토킹을 1년간 겪어야 했다. 택배기사는 D씨의 동선을 파악해 택배차량을 이용 미행, 몰카를 촬영하거나 심지어 학교 내 도서관까지 침입해 지켜보는 일들을 일삼았다.

D씨는 “‘저러다 말겠지’ ‘제풀에 지쳐 그만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됐다”며 “이후 타 택배회사 물품도 그 사람이 대신 배달 해주고 내가 이동하는 동선마다 다양한 택배회사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있다간 무슨 일이라도 당하겠다 싶어 결국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취업준비생 E(25·여)씨는 영어학원에서 토익강의를 듣다 강사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E씨는 지난 7월 토익점수를 올리기 위해 강남의 유명 토익강의를 신청했다. 주로 뒷자리에서 강의를 듣다가 처음 앞자리에 앉아 강사와 마주한 날, 강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E씨는 “갑자기 그날따라 수강증 확인을 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때 이름을 외워 연락처를 알아낸 것 같았다”며 “그때부터 ‘남자친구가 있느냐’, ‘저녁에 시간 되느냐. 밥 한번 먹고싶다’ ‘영어 과외를 해주겠다’는 내용의 문자가 매일같이 왔다”고 말했다.

E씨는 답장을 하지 않으려다가 수강료를 낸 수업은 마저 들어야 하기에 정중히 거절하는 문자를 한 차례 보냈다. 그러나 강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럼 언제 만날 수 있느냐’ ‘오늘 예쁘게 하고 왔더라. 어디 약속 있냐’ 등의 문자를 보냈고 결국 E씨는 학원을 그만뒀다.     

행위의 연속성이
빚어내는 공포

스토킹이 우리나라에서 더욱 다양한 유형으로 번지는 이유는, 관련 처벌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은 오랫동안 대두되었던 유명인들의 스토킹 사건들 때문에 스토킹 관련법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전 국가가 반(反)스토킹법을 제정했고, 1998년부터 시행된 연방 반스토킹법은 사이버 스토킹까지 처벌대상에 포함시켰다.

일본 또한 2000년부터 스토커 규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스토킹 방지법의 경우 지난 1999년과 2003년 두 차례 발의된 적이 있지만 스토킹을 어디까지 범죄행위로 규정할지를 놓고 논란만 거듭하다 번번이 폐기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법안 역시 폐기될 위험에 처해있다.

경찰 관계자는 “스토킹의 개개행위를 개개범죄로 나누어 판단하지 말고, 스토킹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과연 어느 단계까지를 공포심 조장으로 보고 어떻게 행위 유형을 정해야 할지가 어려운 데에다가, 대중의 인식이 아직 일정 수준으로 오르지 않아 논의만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다만 스토킹 과정에서 법을 어겼을 경우 예를 들면 인터넷의 경우 지속적으로 메일을 보내거나 음란영상을 보낼 경우 정보통신 관련 법률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범죄? 스토킹 부추기는 사회
가해자가 ‘약자’ 정작 피해자 고통엔 냉담


그러나 스토킹 피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이 화를 키운다고 주장한다. 한 스토킹 피해자는 “직접적인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크고 작은 스토킹 사건들이 초기에 규제되지 못하고 끈질긴 연장전으로 돌입하게 마련이다. 스토킹을 한번 당해 본 사람은, 그것이 단순한 애정표현, 인연의 거듭됨이 아니라, 극악스러운 범죄의 하나임을 절실하게 알게 된다”며 “스토킹이 무서운 이유는 그 행위의 연속성이 빚어내는 공포다. 집 앞에서 기다리는 스토커가 음험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스치는 공포를 안 당해본 사람은 알 수 없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을 망상 장애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즉, 가해자들은 ‘상대도 나를 좋아한다’ ‘현재는 나를 모르지만 이렇게 따라다니면 언젠가는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일방적인 환상을 가지고 계속 멈추지 않고 집착하는 것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망상장애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망상을 갖고 있는 부분 외에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그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에서 이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환자라는 인식을 갖지 않는다”며 “이들은 장기간의 치료로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관련법과 치료가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문의는 “스토킹이라는 현상을 일반인들이 볼 때 스토킹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강자로, 스토킹을 하는 가해자들이 약자로 비쳐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작 스토킹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에 여론이 냉담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열정에 감동 말고
관점의 변화 필요

이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옛 속담처럼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쫓아다니는 것은 용기이거나 애정의 표현으로 관대하게 봐주었던 사회문화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스토킹으로 비화될 수 있는 남성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게 뭔 죄라고’ 혹은 ‘복에 겨워서’ 라는 말을 내 뱉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제 스토킹은 단지 이성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 간에도 인터넷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열 번 찍어 대는 나무꾼의 열정에 감동할 것이 아니라, 그 도끼질에 원하지도 않는데 꺾여 버리는 나무의 관점에서 바라 봐야 할 것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