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스토킹 피해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26 09:14:29
  • 호수 13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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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보호 중 2명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연인은 헤어지면 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헤어지는 과정이다. 당연히 헤어지는 과정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한때 연인이었던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한다. 이 과정 중이 끔찍한 범죄로 바뀌는 사람도 있다. 연인은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다. 가장 끔찍한 것은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다.

스토킹(Stalking)이란 상대방이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며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을 말한다. 이때 상대방은 불안감, 공포심을 느낀다.

행동을
정당화

스토커는 피해자를 몰래 따라다닌다. 지속적으로 미행하다가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면 조금씩 접근하기도 한다. 당연히 사생활 침해가 동반되고, 심할 경우는 피해자를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스토커는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망상,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대부분은 상대방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싶어한다.

보통은 집착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거절하면 마음을 접는 게 정상인데, 스토커는 이 과정에서 끝없이 집착한다. 상대방 의사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감정 표출을 하기도 하며 공격성·강제성·맹목적성 양상을 띤다.

또 이들은 연애 감정을 앞세운다. 피해자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상대방의 감정 또는 상대방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이를 사실로 여긴다. 피해자가 침묵하거나 거절 의사를 표해도 긍정적인 메시지로 착각한다.


이런 스토킹 범죄가 한때는 연예인의 전유물로 부각된 시대도 있었다. 아이돌 가수의 팬은 스토킹 범죄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보통 아이돌 가수 팬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다니거나 포스터나 음반을 산다. 이 팬들 중에는 가수의 숙소에 직접 찾아가 얼굴을 보고 가기도 한다.

문제는 ‘사생팬’이다. 이들은 가수가 가는 곳마다 택시를 타고 쫓아다니거나, 대포폰을 만들어서 전화를 도청,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해서 정보 유출, 숙소를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거나 성추행 등을 저질렀다.

가수 김창완은 자신을 10년 넘게 스토킹한 남자 스토커를 경찰에 신고한 적 있다. 이 스토커는 김창완과 본인이 친구 사이라는 망상이 심했다. 이 때문에 김창완의 집을 몰래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가수 성시경은 과거에 부모님이 스토커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성시경은 “사생팬은 팬이 아니라 정신병자 스토커”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배우 고 이다빈도 무명 시절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 이다빈은 ‘486’ 문자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빨간 드레스가 예쁘다” “지금(집에) 들어오네, 근데 옆에 남자는 누구?”라는 등의 문자를 받았다. 

스토커가 미스코리아 김성희와 혼인신고를 해버린 일도 있었다. 1970년대라서 가능한 일이지만, 김성희는 이 일로 터져나오는 온갖 언론 기사로 상처 받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당시 스토커는 문서 위조죄로 징역형을 살았는데, 마지막까지 김성희와 결혼한 게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유명인의 스토커 피해는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점점 해결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반대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범죄는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상반기 경찰에 잡힌 사람만 2924명
처벌은 솜방망이…보복도 증가 추세

지난 16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의 연도별 스토킹 범죄 검거 인원과 여성가족부의 자료 등을 보면, 올해 상반기 스토킹 범죄로 경찰에 붙잡힌 이는 2924명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7년 358명, 2018년 434명, 2019년 580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0년에는 471명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는 2924명으로 폭증했다. 5년 전인 2017년과 견주면 8배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는 10월21일부터 12월31일까지 집계된 인원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원만 545명으로 전년 전체 검거 인원을 뛰어넘었다.

신고 건수는 2020년 4515건이던 스토킹 관련 112신고 건수가 지난해에는 1만4509건으로 3.2배가량 늘었다. 연도별로 보면 지난 1~7월 집계 신고 건수는 지난해 신고 건수를 넘어선 총 1만6571건이다. 2018년 2921건, 2019년 5468건, 2020년 4515건이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고, 이후에 가해자가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상황도 계속 증가 추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스토킹처벌법에서 스토킹 범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스토킹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은 즉시 현장에 나가 ▲스토킹 행위를 제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 시 처벌 경고 ▲스토킹 행위자와 피해자 분리 ▲범죄 수사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 응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잠정조치 요청의 절차 등 안내 ▲보호시설로 피해자 인도 등을 한다. 

스토킹처벌법 제정 전에는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40·41에 따라 ‘(장난전화 등)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화·문자메시지·편지·전자우편·전자문서 등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 괴롭힌 사람’과 ‘(지속적 괴롭힘)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지속해서 접근을 시도해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처벌했다.

유명인도
일반인도

문제는 처벌 수위였다. 경범죄 처벌법은 해당 사항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했다. 스토킹처벌법 제정 이후 ‘처벌 수위’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킹 피해자가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나아진 것이 없다.

경찰의 신변보호(안전조치)를 받던 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 올해만 4건으로 집계됐는데, 이들 중 두 명이 스토킹 범죄 피해자였다.

지난 5월 스토킹 범죄 가해자 A씨는 수사 중 잠정조치 1~3호(서면경고·100m 이내 접근금지·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조치를 받았으나, 피해자가 지난 6월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고 검찰 불송치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잠정조치가 무효화된 당일 피해자와 술을 마시다 피해자를 맥주병으로 살해했다.


지난 6월에는 경기 안산시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B씨는 같은 빌라에 살던 사이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로 잠정조치가 해제된 사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계단에서 칼로 찔러 살해한 것이다. 당시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미착용한 상태로, 이웃 주민이 신고했다.

이런 사실은 경찰과 피해자 모두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피해자가 스토킹처벌법으로 고소하자, 가해자가 보복범죄로 대응하는 것이다.

지난 21일 50대 남성 C씨는 약 40일간 동거했던 여성 D씨에게 전화·카카오톡 등을 통해 만나 달라고 수십회 연락했다. C씨는 “같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못 헤어진다. 집을 불살라버리겠다”고 D씨를 협박했다. C씨는 D씨와 헤어진 뒤 거처를 지인의 집으로 옮긴 상황이었다.

신변 보호
잇단 비보

C씨의 연락은 반복적으로 지속됐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D씨는 지난 7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D씨를 고소했다. 고소 이튿날 C씨는 D씨가 사는 집을 찾아갔고, 그의 차를 본 D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C씨의 차에서 흉기를 발견하고 체포했다.

C씨는 “원래 칼을 차에 두고 다닌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범죄 위험성이 있다고 보고 C씨에 대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했다.


더 큰 문제는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잠정조치 4호(유치장 유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검경과 사법부의 안일한 문제의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잠정조치 4호는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피해자 보호 조치 중 가장 강력한 조치다. 검찰이나 법원이 경찰의 잠정조치 4호를 인용하면 최대 한 달간 피의자를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다.

지난달 서울 은평경찰서는 올해 3~8월 전 연인을 스토킹한 30대 남성 E씨에 대해 검찰에 유치장 유치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E씨는 지난달 피해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흉기로 현관문을 훼손하고 문 틈에 흉기를 꽂아놓기도 했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경찰이 유치장 유치 신청을 할 당시엔 범행의 반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기각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해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유치장 유치를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살해 직전 피해자는 근처에 피의자가 왔다며, 잠정조치가 시행되지 않은 것이냐고 경찰에 문의까지 했다.

흉기로 현관문 훼손해도 초범이라고 기각
‘반의사불벌죄’ 폐지 골자로 하는 법 개정

당시 경찰은 “유치장 유치는 인신 구속 조치다 보니 어느 정도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우리가 가진 것은 진술뿐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은 “잠정조치 4호를 우선 고려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피의자를 유치장에 넣더라도 일찍 풀려나 실효성이 없었던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구로구에서 50대 중국인 남성이 스토킹 끝에 3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피의자는 범행 3일 전 유치장에 구금됐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반려하면서 9시간 만에 풀려났다. 경찰은 피의자의 스토킹 범죄를 심각 수준으로 판단했음에도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범죄다. 

즉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면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기소해 처벌할 수 있다. 이 법이 폐지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표명할 경우 처벌이 불가능하다. 단 해당 의사표시를 1심 판결 이전까지 해야만 성립된다. 

법무부는 스토킹처벌법에 규정된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이 규정이 사건 초기 수사기관이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장애가 되고,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 범죄나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입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폐지를 추진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또 스토킹 범죄 발생 초기 잠정조치에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을 신설해 2차 스토킹 범죄와 보복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피해자 보호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대검찰청에 “스토킹 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스토킹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요소를 철저히 수사할 방침이다.

보호에 
만전을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구금 장소 유치 등 신속한 잠정조치를 시행하는 한편 구속영장도 적극적으로 청구해 스토킹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스토킹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하라”며 법무부에 스토킹처벌법 보완을 지시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토킹 양형’ 대법원 입장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스토킹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설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또 가해자를 불구속 수사할 때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등 조건부 석방제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내놨다.

양형위는 지난 20일 119차 전체회의 결과에 대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된 사건의 양형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스토킹처벌법 개정 여부 등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스토킹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설정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라며 “범죄 발생의 빈도수, 해당 범죄의 양형에 대한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8기 양형위는 지난해 6월 이미 범죄군을 선정해 양형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스토킹범죄 양형 기준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내년 4월 9기 양형위 출범 뒤에야 이뤄질 전망이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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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