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10·16 재보궐 후폭풍

여야 막론 꿈보다 해몽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0·16 재보궐선거가 여야 2대2 무승부로 마침표를 찍었다. 선거는 이변 없이 마무리됐지만 한 장의 성적표를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놨다. 계파 간 아전인수식 평가가 여의도를 뒤덮으면서 선거의 열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전남 곡성군수 ▲전남 영광군수 ▲서울시교육감 등을 뽑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각자 강세 지역에 당선자를 배출하면서 두 당 대표 모두 리더십 타격은 피했다.

반전 없는
2:2 무승부

먼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서는 국민의힘 윤일현 후보가 61.03%를 득표하면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야권 단일화에 성공한 민주당 김경지 후보(38.96%)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인천 강화군수 선거서도 국민의힘 박용철 후보가 50.97%를 득표해 당선됐다. 이어 ▲민주당 한연희 후보 42.1% ▲무소속 안상수 후보 6.25% ▲무소속 김병연 후보 0.64%로 집계됐다.

야당의 격전지였던 전남 영광군수 선거서는 민주당 장세일 후보가 41.08%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막판에 활약을 보인 진보당 이석하 후보가 30.72%로 2위를, 혁신당 장현 후보는 26.56%로 3위에 올랐다. 무소속 오기원 후보의 득표율은 1.62%로 집계됐다.


전남 곡성군수 선거 역시 민주당 조상래 후보가 득표율 55.26%로 혁신당 박웅두 후보(35.85%)를 제치고 당선됐다. 이어 ▲무소속 이성로 후보 5.39% ▲국민의힘 최봉의 후보 3.48%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진보진영 정근식 후보가 50.24%를 득표해 45.93%를 얻은 보수진영 조전혁 후보를 뒤로하고 1위에 올랐다. ‘조희연 교육 계승’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이어진 정책이 유지될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소규모 선거였으나 총선 이후 처음으로 드러난 민심의 잣대인 만큼 여야 대표 모두가 화력을 쏟아부었다. 선거 기간 동안 야당은 ‘2차 정권 심판’을, 여당은 ‘지역 일꾼’을 내세웠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선거 하루 전날인 지난 15일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채 민심을 거역하는 정권에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일깨울 절호의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이번 선거는 단지 전남 영광·곡성군수,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한 명을 선택하는 선거가 아니다”라며 “단호한 주권의지가 담긴 투표야말로 주권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석열 김건희 공동 정권’을 겨냥했다.

특히 부산 금정구를 찾은 날에는 “지난 8번의 선거 중 7번을 국민의힘에 기회를 줬는데 그사이 침례병원이 문을 닫았고, 부산대 상권도 쇠락하고 있고, 노년층 인구가 가장 많고 생기와 활력이 사라진 곳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이러고도 다시 구청장 자리를 달라는 것인가”라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양심 좀 있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보수 텃밭 부산·인천 승기 꽂은 한
“그래도 야” 영광·곡성 사수한 이

야당은 지난 4·10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고 192석을 얻었다. 이번에도 같은 전략으로 정부여당을 밀어붙이자 국민의힘에서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와 심판이 무슨 상관이냐”며 지역을 발전시키고 삶을 바꿀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호소했다.

야당이 보수 텃밭인 부산 금정구서 심판론을 거듭 강조한 만큼 이곳에서 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양쪽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권 심판론은 보수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야당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인 강화와 금정에서는 상당한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냈으나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도 “윤석열정부에 분노한 민심이 민주당 지지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8회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지난번보다 상승한 반면 보수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투표함이 열리고 야당의 희비가 엇갈렸다. 호남을 놓고 민주당과 혁신당, 진보당이 마지막까지 전면전에 나섰지만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양 손을 들어줬다.

혁신당은 곡성과 영광서 한 달간 월세살이할 정도로 호남에 공을 들였지만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영광서는 진보당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지난 총선서 ‘조국 돌풍’을 일으켰던 혁신당 조 대표의 입장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아들인 셈이다.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7일 혁신당은 논평을 내고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창당해 7개월 만에 지역 선거를 뛰게 된 만큼 “첫술에 배부르겠냐”며 모두 전국정당과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혁신당에 있어 이번 재보궐선거는 호남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비록 12석 비교섭단체지만 호남을 기반으로 탄탄한 뿌리를 내린다면 민주당의 대항마로 우뚝 설 가능성도 점쳐졌다.

호남 사수에 실패한 혁신당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울다가
웃다가

한 혁신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준비된 경험’이 부족한 점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관우처럼 호남으로 떠난 조 대표는 차가 다 식어서 돌아왔다”며 “국정감사 기간에 의원과 의원실 인력까지 총동원했지만 조직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초 혁신당은 정권 심판을 위해 만들어진 정당인데 ‘심판론’은 호남에서는 크게 효과가 없는 전술”이라며 “오히려 조 대표가 자신의 고향인 부산을 집중적으로 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짚었다.

곡성과 영광서 승리를 거둔 민주당은 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게 민심을 경청하겠단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이번 재보선은 유독 의미가 큰 느낌”이라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국민의 선택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막판에 진보당이 약진하면서 박빙 승부가 벌어졌다. (당에서도)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긴장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며 “오죽하면 호남 출신인 한준호 최고위원이 영광서 한 달 살기를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 진보당은 선거를 앞두고 영광서 민주당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제는 ‘민주당 텃밭론’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호남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며 “진보당은 지역 현안을 밀착해서 살펴보고 또 직접 논밭서 일손을 도왔다. ‘돈 대신 땀을 뿌리겠다’는 슬로건을 부각한 게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유권자분들께서 30%가 넘는 결과를 만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최근 치러지는 모든 선거가 ‘미니 대선’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질수록 지역 일꾼을 뽑겠다는 선거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관련해 김 상임대표는 “현 정부의 상황이 도무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다 보니, 유권자분들께서도 정권 심판론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답하신 결과”라고 해석했다.

비록 당선인을 배출하지 못했지만 혁신당과 진보당 모두 각각 거둔 득표율이 유의미하단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선거를 발판 삼아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서 다시 한번 ‘건강한 경쟁’을 치르겠다고 예고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호남서 승리를 견인했지만 마냥 기쁨에 젖을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호남서의 승리는 큰 감동이 없을뿐더러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대표가 적극 지지에 나선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는 평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한의 시간

문제는 생각보다 크게 벌어진 부산과의 격차다. 당내에서는 부산서 국민의힘과의 근소한 격차를 보이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했지만 22%p 차이로 벌어지면서 당내서도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된다.

부산서의 선거 결과를 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가 나서도 민주당이 부산 민심을 끌어오는 데 실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김영배 의원의 ‘혈세 낭비’ 발언이 원인이라고 지목했지만 이 대표에게 있어 두 자릿수 격차는 뼈아픈 실점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친한(친 한동훈)과 친윤(친 윤석열)계가 선거 결과를 다르게 해석하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만 점점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여야 당 대표 모두에게 부담이었지만 특히 한 대표에게 영향이 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각종 용산발 리스크가 터져 나오는 상황서 야당 대표들이 입 모아 정권 심판론을 외치던 탓에 국민의힘은 벼랑 끝에서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선거 전날까지 부산 금정구를 찾아 총력을 기울였다. 이날로 금정구만 6번 방문한 한 대표는 “여러분께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6번이고, 60번이고, 600번이고 얼마든지 오겠다”고 소리 높였다.

악조건서도 부산 금정에 이어 인천 강화까지 수성에 성공하자 친한계는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전당대회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 대표를 향한 당 내 견제가 끊이지 않던 만큼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당 대표로서의 입지를 넓힐 수 있지 않겠냐는 점에서다.

지난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패배하자 당시 대표였던 김기현 의원이 책임을 지고 자리서 내려왔다. 김 후보는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폭로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확정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형 확정 3개월 만에 그를 특별사면하는 등 전적으로 힘을 실어줬음에도 국민의힘이 패배하면서 여권 내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예시로 친한계는 이번 선거 결과는 용산의 도움 없이 한 대표 혼자 일궈낸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친윤계에서는 “국민의힘이 부산서 패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이겨야 본전” “체면은 살렸다” 등 반대 해석을 내놨다.

정권 심판론 한계? 민주당 또 다른 과제
영부인 저격 ‘한동훈표’ 선거 청구서

한 여권 관계자는 “금정구청장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깨질 듯이 싸웠지만 약속 대련이라는 해석이라도 나왔다”며 “그런데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도 용산과 충돌하는, 더 나아가 대립각을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개인적으로 무척 걱정했다”고 토로했다.

안정 궤도에 오른 ‘한동훈호’가 이대로 순풍을 타고 본격적으로 용산과 차별화에 나설지 주목된다. 한 대표는 지난 17일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과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곧바로 용산 압박에 나섰다.

이날 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야당의 무리한 정치 공세가 있다”면서도 “그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이 있었고 의혹의 단초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민심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여사와 관련해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는 어떤 잘못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좋은 정치와 민심을 위해 필요한 때 과감하게 하는 것이고 지금이 그럴 때”라고 설명했다.

이날 가장 주목 받은 대목은 한 대표가 김 여사를 향해 대외활동 중단을 요청한 것이다.

한 대표는 이같이 주장한 뒤 “나아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 솔직히 설명드리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며 “국민들께서 이번 선거를 통해서 저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식 석상서 김 여사의 활동 자제를 넘어 중단하라는 의견을 밝힌 만큼 앞으로 한 대표의 발언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선거는 한 대표의 리더십이 한층 견고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 한동안 잠잠했던 친한계 스피커도 다시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야당의 단일화로 인해 박빙이 예상된 부산 금정과 여권 분열로 힘든 인천 강화서 유권자는 국민의힘에 마지막 기회를 줬다”며 “김대남·명태균 파동으로 상징되는 김 여사 논란과 지금도 진행 중인 의정 갈등을 국민의힘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용산이 가장 꺼려하는 김대남·명태균 두 사람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용산의 쇄신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심은
나의 편?

한 대표가 광폭 행보에 시동을 걸자 부산 금정의 승리는 한 대표가 아닌 보수 지지층의 성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악의 상황서도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크게 따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부산서 한 대표가 패배하면 국민의힘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고, 보수의 붕괴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지지층이 빠르게 결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지 가려내기 위한 여야의 치열한 입담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금부터는 주도권을 당기기 위한 세력 간의 힘겨루기 싸움이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