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㉔아주 삭막한 배고픈 세계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0.21 02:00:00
  • 호수 1502호
  • 댓글 0개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거지 세계가 모두 그렇게 화기애애한 건 아니었다. 청계천 식구들이야 텁석부리 왕초가 통솔을 잘 하니까 그렇지 물 건너 남대문 패들이나 명동 패들의 짓거리는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남의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씨부렁대며 이를 잡는 것은 예사였고, 빈집에 넘어 들어가 맘대로 뒤져 먹곤 정원에 드러누워 코를 고는 축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주인이 돌아와 악다구니를 쓰면 적반하장으로 트집을 부리기도 했다.

이판사판

“배가 워낙 고파 실례 좀 했기로서니 너무 그러지 마쇼. 같이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요.”


“아니, 뭐 이따위가 다 있어. 저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흐흐, 짐승이래도 먹은 밥을 이제 어쩌란 거요? 거지도 사람인데 너무 괄시하지 말란 말요.”

그러면 집주인은 세상이 무너진 것보다 더 팔팔 뛰었다.

“그래, 거기 그대로 있어. 경찰을 부를 테니.”

“우리 같은 신세야 여기 있으나 유치장에 있으나 마찬가지요. 흐흐…….”

그런 이판사판인 거지들인지라 깡패나 건달들과 패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누구도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거지들의 동류 의식은 무서운 것이어서 그땐 평소에 구역 다툼을 하던 이웃 거지들까지 달려와 합세를 했다.

그러고는 돌이며 몽둥이며 닥치는 대로 집어들고 달려들어 상대방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제 머리가 깨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버려진 몸,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도 억울할 게 없다는 투였다. 그런 거지패였지만 한편으로 나름의 풍류와 낭만도 없지 않았다.

가끔 동네에 길흉사라도 있는 날이면 깡통을 두드리며 한바탕 신명을 떨어댔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화 이놈이 이래봬도 정승판서의 자제로서
부귀영화 마다하고 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섰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네 선생이 누구신지 나보다도 잘 돈다

어차피 버려진 거지 신세
나름대로 구걸 방법 개발

일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일락서산 해가 지니 엄마 찾는 송아지 울음소리 애절쿠나 
이자 한 장 들고 보니 
이슬 맞은 수선화야 네 모습이 청초롭다 
삼자나 한 자 들고나 보니
삼월이라 삼짓날에 제비 한쌍이 날아든다

품파바 품파바 들어간다
품품파바 품품파바 들어간다
씨구씨구씨구 들어간다
고마운 분…… 한푼 줍쇼~ 예에~

어느덧 용운도 처음 구걸을 할 때 느꼈던 알량한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노인의 뒤를 몇 달 동안 따라다니는 동안 서울 지리를 손바닥 보듯 환하게 익히게 되었고 나름대로 독립심도 생겨 혼자 시내를 슬슬 다니게끔 되었다.

허름한 바지의 한쪽 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다리를 드러낸 채 다녔다. 사람들로 하여금 측은한 감정을 유발시키려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걷는 데 편리한 점도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자기 나름대로 구걸 방법도 개발했다. 그 방법은 끈기 하나면 되었다. 굶을 때까지 굶다가 정 참기 힘들 때 인정 있어 뵈는 가게집 앞에 끈질기게 죽치고 서 있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그 가게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거지 애가 부끄러워 달라는 소리를 못하는구나 싶어선지 빵 한 개쯤 집어주었다.

그 방법이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재수없다며 빗자루를 들고 뛰어나오는 주인도 있었다. 그렇게 허탕을 쳤을 때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쉬어빠진 보리밥이며 곰팡이 슨 떡조각 따위를 주워 먹고 물배를 채운 다음 이곳저곳 거닐었다. 

한번은 주택가에서 각설이 타령을 하자 꼬마아이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했다.

얼마 후 어떤 젊은 아주머니가 뛰어오더니 아이의 팔목을 잡아 끌며 소리쳤다.

“이 녀석아! 저게 뭔 볼거리라고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니, 응? 어서 가서 밥이나 먹고 공부해! 알았어?”

아이가 버티자 아줌마는 아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철썩철썩 갈기며 집으로 끌고 갔다. 저렇게 야단을 맞더라도 엄마의 손은 얼마나 따스할까?

용운은 너무나 부러워서 가슴속이 싸하게 쓰려 오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문득 눈물 한 방울이 돋아났다.


용산역 엄마

하루는 용산역 앞을 지나가는데 길 건너편에서 엄마의 모습과 흡사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그 뒷모습은 머리 모양으로 보나 걸음걸이로 보나 분명히 어머니였다.

소리내어 불러 보려 했으나, 행인들이 너무 많은데다 그 여인은 이미 골목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양쪽에서 빠르게 좁혀 오는 전차를 무시한 채 용운은 도로를 뛰어 달렸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뻗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뒤지던 끝에, 아차 하면 놓칠 뻔했던 그 뒷모습을 잡을 수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