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㉕지옥 같은 하루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0.28 02:00:00
  • 호수 1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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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진달래, 개나리, 철쭉 등 봄의 산야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꽃들이 지면서 산은 초록빛이 점점 더 무성해져 갔다. 어느덧 봄날이 저물면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노동 수용소

선감학원의 하루는 늘 철저한 점호로 시작해서 점호로 막을 내렸다. 철두철미한 인원점검이었다. 그곳은 말이 학원이지 사실은 노동 수용소와 마찬가지였다.

수용소 내에는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보도부도 있었는데 분야는 축산부, 목공부, 이용부, 양잠부, 체육부 등이었다.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끝에 용운은 목공부에 들었다. 뭔가 기술을 하나쯤 익혀두어야 될 것 같았다. 

제약된 틀 속에서 고된 작업도 작업이지만, 신입이기에 따라붙는 고충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논밭일 등 힘겨운 일과를 마치고 옥사로 돌아오면 이번엔 반장을 비롯한 여러 고참들이 부려먹기에 바빴다, 수건을 빨아 와라, 팔다리를 주물러라, 식수를 떠 와라, 한시도 봐 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서슴없는 주먹질이나 기합이 뒤따랐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거친 보리밥이나 밀밥 한 덩이에 짜디짠 곤쟁이젓과 멀건 시래깃국뿐인 식사, 그리고 작업 중간에 던져주는 밀빵 한 개. 일은 고된 데다 먹는 건 고아원에 있을 때보다도 부실하다 보니 가뜩이나 풀기 없는 뱃속엔 갈수록 허기만 축적됐다.

너나없이 둑에 앉기만 하면 습관처럼 풀줄기를 뽑아 질겅거렸고, 냉이나 달래뿌리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눈알들을 굴렸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찢어서 날로 씹어 삼키는 일쯤은 예사였다. 쥐나 뱀도 마찬가지였다. 독버섯을 잘못 뽑아 먹고 죽은 아이도 있었다.

한동안 지난 뒤부터는 용운도 불침번에 들게 되었다. 초짜로서의 기간이 끝난 것이다.

불침번 교대는 복도 중앙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에 의해서 이뤄지는데, 교대 시마다 앞 근무자는 항상 같은 소리를 읊조렸다.


화장실에 간 사람이 30분 이상 돌아오지 않을 때는 즉시 반장을 깨울 것, 수시로 복도를 내다볼 것 등이었다. 취침한 지가 얼마 안 되는 시간상의 이유 때문인지 복도에 대변을 보는 사람도 없었고 화장실에 가서 시간을 넘기는 사람도 없었다.

그보다 문제는 근무 시간마다 엄습하는 비애감이었다. 고요한 밤 가물거리는 호롱불 밑에 홀로 서 있노라면 괜스레 신세가 처량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선감원의 하루하루는 수용된 모든 원생들에게 어슷비슷한 시간과 공간으로서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시공간에서 원생 개개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기상나팔 소리를 듣고도 공포의 전주곡으로 느끼기도 하고 감미로운 미련으로 감촉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바다에서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파도를 보고도 당사자의 사고방식에 따라 절망과 희망의 극단적인 쌍곡선을 마음속에 그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인간형이 섞여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순응형은, 좀 괴이하게 변화된 환경이지만 그곳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회라고 여기며 가능한 대로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곳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나약한 존재라고 인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강하다고 자부하는 자도 설령 속으로는 이빨을 으득으득 갈지언정 겉으로는 잘 훈련된 개와 같은 순종을 그곳의 주인들에게 보여 주었다. 

견디기 어려운 배고픔
혁명 정부 고귀한 뜻?

사장(舍長)들이 그런 존재였다. 그들은 똑같은 원생 신분이면서도 원장이나 사감 선생에게 선택되어 그분들의 지시대로 다른 원생들 위에 군림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의 가슴속에 억눌린 분노가 힘없는 수하 원생들에게 쏟아졌다. 

그들에게는 ‘사장실’이라는 방이 따로 주어졌다. 작긴 해도 여러 명의 몸뚱이가 한 방에서 마치 지옥처럼 부대끼는 일반실에 비하면 그곳은 천국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원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을 대신해 그곳을 통치해 나간다는 사명감을 주입받고 있었다.

“너 이 개새끼, 어디서 감히 내 눈을 쳐다봐. 난 위대한 오일육 혁명정신을 지금 이곳에서 실행하고 있단 말야!”

그들은 선생이 짐짓 보지 않는 곳에서는 이런 소리를 지껄이며 원생들의 왕처럼 굴었다.

그들은 일명 ‘저승사자’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실제로 질서유지를 명분 삼아 조금이라도 제 눈에 그슬리면 마구 폭행을 휘둘러 반병신으로 짓이겨 놓거나 심지어 싸늘한 시체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 시체는 원래 살아 있을 때도 쓰레기로 취급되었으므로 죽어서도 쓰레기처럼 지저분한 가마니에 말려 뒷산 기슭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사실상 사회에서 강도, 강간, 도둑질, 금품 갈취, 소매치기 등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놈들 중에 오히려 순응형이 더 많았다.


그들의 순응은 참회나 반성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잘 지내고자 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반항형은 선감학원이 양두구육의 수작질을 벌인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감학원이 양대가리를 문 앞에 걸어놓고 개대가리처럼 물어뜯는 곳임을 알고는 세상 또는 적어도 선감도의 하늘 아래 까발리고 싶어했다. 

그들은 사회에서도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 왔으며, 한 순간 참지 못해 울분을 터뜨리고는 잡혀온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순응형처럼 요령을 잘 피울 줄도 몰랐고 또 편하게 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곳은 그들에게는 사람이 사는 데가 아니라 괴상야릇한 지옥과 같은 세계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사람처럼 살아보고픈 갈증에 시달리며 용을 쓰거나 몸부림을 쳐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감원 측은 애초부터 원생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반항할수록 더 혹심한 폭력으로 제압하려 했다. 

폭행은 고통을 두려워하도록 하기 위해 가해지는 것인데, 어떤 반항아들은 고통 자체를 운명으로라도 여기는 듯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수용소 측으로서는 골치였다.

예비역 대령인 조 원장은 위대한 5·16 혁명 정신을 받들어 자신의 무대인 선감학원에서 숭고하게 꽃피우기를 희망했다. 

건설의 역군

쓰레기들을 새사람으로 탈바꿈시켜 조국 건설의 역군으로 동참시키려는 혁명 정부의 고귀한 뜻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우선 목표를 달성하는 게 더 중요하므로 방해가 되는 잡초나 삐죽 튀어나온 돌멩이 같은 존재는 사정없이 뽑아내 버리라고 아래에다 지시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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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