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의료 붕괴, 데드라인 10년”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수는 ‘본질을 봐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7개월간의 의정 갈등은 이른바 ‘트리거’였을 뿐 의료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암울한 진단과 함께였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은 벽돌 하나만큼의 공백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고 있다. 10년,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남은 시간은 그 정도뿐이다.

지난 2월6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3028명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린다는 내용의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했다.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린다는 취지로 의대 증원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정책 자체에 반발해 사직 등의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의정 갈등’의 시작이다. 

7개월째
평행선

그로부터 7개월이 흘렀다. 정부는 법원 판결을 동력 삼아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내년도 전국 40대 대학의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서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됐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제주대 의대가 신설된 이후 27년 만이고, 2000년 의약분업 때 줄어든 뒤로는 19년 만이다.

윤석열정부는 초기 발표 때의 2000명에는 못 미쳤지만 이전 정부서 번번이 무산됐던 의대 증원을 이뤄냈다고 자찬했다. 문제는 의료계와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선봉에 섰던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 역시 정부와 학교의 회유책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의료 현장의 주축과 미래 자산이 정부 정책에 반발하면서 대형병원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쓴 글은 누리꾼 사이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응급실에 와도 처치할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니 지금 아프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의료 현장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병원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와 교수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일요시사>는 7개월째에 접어든 의정 갈등에 대해 묻기 위해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조 교수는 의대 증원이나 전공의 복귀 등 의정 갈등 관련 이슈보다는 ‘의료 붕괴’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의료 붕괴는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이번 의정 갈등은 그 속도를 높이는 이른바 ‘촉매’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의료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방식의 의료체계와 유럽·영국식인 사회주의 방식, 그리고 정부와 의사, 환자의 3각 관계를 설명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방식은 비싸다. 돈이 많은 환자는 질 좋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의료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유럽·영국식 사회주의 방식은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대신 환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의 장점이 혼합된 형태다. 다시 말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싼 가격에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어 조 교수는 의사 개인과 의사 집단 전체, 그리고 특정 환자와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고 선을 그은 뒤 환자와 국민·의사와 병원·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서비스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크게 셋으로 분류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3자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올 초부터 의료계 이슈 펑펑
이재명 피습·의대 정원 증원

조 교수가 제시한 대전제를 두고 현재 상황을 바라보면 7개월의 의정 갈등은 오랜 시간 곪아 있던 의료계의 모순점을 수면 위로 올린 ‘트리거(방아쇠)’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조 교수는 이를 ‘레고 블록 쌓기’ ‘성냥 쌓기’ 등으로 표현했다.


한순간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블록과 성냥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이 그 ‘삐끗한 순간’이었다는 주장이다.

“환자가 질 높고 신속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전공의다. 수십년간 전공의가 희생을 감내하는 과정서 쌓여온 모순점이 의대 증원 정책과 동시에 터져 나온 게 현재 상황이다. 전공의는 자신들의 미래에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조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식 의료체계서 의료서비스의 생산자는 의사와 병원, 구매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즉 정부가 된다. 환자와 국민은 국가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배급’받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환자와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부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동시에 짊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과정서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악마화’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주의식으로 하려면 국민 전체가 사회주의 의료체계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식이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을 막 섞어 놓으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가지 방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섞다 보니 엉망이 된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 교수는 현재 의료계 상황을 ‘불난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활활 타고 있는 불은 언젠가는 꺼질 것이다. 불이 꺼진 후에는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불이 난 이유를 파악하고 불이 다시 나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지은 집은 금방 다시 불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희생 위
쌓인 성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의료 붕괴’를 언급했다.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전공의 이탈 등의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문을 닫는 대학병원이 1~2년 내로 생겨날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의료개혁이 없다면 2030년대 중반에 건강보험체계 자체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다.

“병원이 (정부로부터)돈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나. ‘보험 환자 못 받겠다’하고 나가떨어지는 거지. 그때가 되면 정말 돈 있는 사람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다.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식 의료체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포함돼있던 공공성이 망가진다고 보면 된다.”

조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식 의료체계는 경제 수준이 중간 정도인 중산층에 타격을 입힌다. 빈곤층은 정부의 우산 아래 있고 상류층은 돈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값비싼 의료서비스에 좌절하듯 우리나라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의료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에 일어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과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을 뿐 이미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는 주장이다. 촉매의 역할이 반응속도의 변화듯, 의대 증원이 의료 붕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환자, 그리고 의사가 모두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환자는 의정 갈등서 피해자 포지션으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 상황에 환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진료권을 벗어나 경증이어도 빅5 병원으로 향하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없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이 대표의 피습사건 때 의료계는 분노했지만 국민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점을 언급했다. 당시 이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을 시찰하던 중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한 후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뒤 수술을 받았다.

전원 과정, 닥터 헬기 이용 등을 두고 의사회는 성명을 내는 등 비판을 제기했다.

지방 의료를 살리자던 야당의 대표가 닥터 헬기까지 이용해 부산서 서울로 이동한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교수는 “이 대표 사건은 문제를 표면화시켰을 뿐 이미 지방의 환자는 모두 KTX를 타고 서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약이
무효하다

필수 의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오랜 시간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해 온 환자는 현 상황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고 정부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료 수가를 조정하지 못하면서 ‘기피과’가 생겼다. 또 비급여 등의 항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의사들이 비필수 의료 쪽으로 빠졌다. 

조 교수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건을 거론했다. 지난달 22일 김 전 위원장은 오른쪽 이마에 큰 반창고를 붙인 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새벽에 잘못하다 넘어져 이마가 깨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에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응급실서 이마 약 8㎝를 꿰맸다. 

조 교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남에 널리고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찢어진 이마 상처를 꿰매줄 성형외과는 없다. 비필수 의료를 하는 성형외과는 많지만 필수 의료를 해줄 성형외과는 없는 상황이다. 의사를 늘린다고 필수 의료가 살아날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본질은 모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돈을 쫓는 것을 굉장히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덜 힘들고 돈을 더 버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의사에게만 더 힘들고 덜 버는 삶을 살라고 강요할 순 없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어떤 형태든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빈약한 철학·마구잡이식 체계
정부·환자·의사 서로 포기해야

조 교수는 의대 정원 역시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배치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작정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지방 의료와 필수 의료를 할 수 있게 정부와 환자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가 왕’ ‘환자가 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고 환자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후자 쪽으로 가는 편이 낫다. 지금처럼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이다. 그 대신 정부는 일정 수준 이하의 환자에 한해 진료권역을 지키도록 제한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상황을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조 교수는 환자와 정부, 의사의 변화에 회의적이었다. 당초 의료체계를 만들 때 부족했던 철학이 지금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외국서 의료체계를 베껴 올 때 그 철학을 외면하고 가져오는 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 섞이고 빠지고 하면서 엉망진창이 됐다”고 한탄했다.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여론에 휩쓸려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손님은 왕이에요’라는 말만 했지 ‘갑질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돈을 더 내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상황에 대한 암울한 진단도 덧붙였다. 그는 “전공의 복귀 문제는 이미 망가져 버렸다. 내년 3월에 인턴 자체가 안 들어올 것이고 레지던트는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불투명하다. 설사 들어온다 해도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은 인력 문제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갑갑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응급의학과뿐만 아니라 각 과 교수들이 나가 떨어지고 있다. 특히 응급실은 병원서 보던 환자가 아니면 안 본다든지, 온갖 사유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악화되면 대학병원의 진료 능력 자체가 악화될 것이다. 그나마 내년 3월이 레지던트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데 그때 수급이 안 되면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이날 인터뷰서 ‘철학’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철학과 기본 개념이 부족한 상황서 생각나는 대로 지은 집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도 했다. 그나마도 현재 불타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3월
고비될까

“각 나라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고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먼저 정한 뒤 각자가 포기해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환자와 의사, 그리고 정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도 너무 늦었지만 그렇게 짜 맞춰가야 한다. 하지만 3자 모두 그걸 이해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타깝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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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