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의료 붕괴, 데드라인 10년”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교수는 ‘본질을 봐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7개월간의 의정 갈등은 이른바 ‘트리거’였을 뿐 의료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암울한 진단과 함께였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은 벽돌 하나만큼의 공백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고 있다. 10년,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남은 시간은 그 정도뿐이다.

지난 2월6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3028명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린다는 내용의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했다.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린다는 취지로 의대 증원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정책 자체에 반발해 사직 등의 방식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의정 갈등’의 시작이다. 

7개월째
평행선

그로부터 7개월이 흘렀다. 정부는 법원 판결을 동력 삼아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내년도 전국 40대 대학의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서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됐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제주대 의대가 신설된 이후 27년 만이고, 2000년 의약분업 때 줄어든 뒤로는 19년 만이다.

윤석열정부는 초기 발표 때의 2000명에는 못 미쳤지만 이전 정부서 번번이 무산됐던 의대 증원을 이뤄냈다고 자찬했다. 문제는 의료계와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선봉에 섰던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 역시 정부와 학교의 회유책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의료 현장의 주축과 미래 자산이 정부 정책에 반발하면서 대형병원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쓴 글은 누리꾼 사이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응급실에 와도 처치할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니 지금 아프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의료 현장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병원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와 교수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일요시사>는 7개월째에 접어든 의정 갈등에 대해 묻기 위해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조 교수는 의대 증원이나 전공의 복귀 등 의정 갈등 관련 이슈보다는 ‘의료 붕괴’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의료 붕괴는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이번 의정 갈등은 그 속도를 높이는 이른바 ‘촉매’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의료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식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방식의 의료체계와 유럽·영국식인 사회주의 방식, 그리고 정부와 의사, 환자의 3각 관계를 설명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방식은 비싸다. 돈이 많은 환자는 질 좋고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의료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유럽·영국식 사회주의 방식은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대신 환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의 장점이 혼합된 형태다. 다시 말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싼 가격에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어 조 교수는 의사 개인과 의사 집단 전체, 그리고 특정 환자와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고 선을 그은 뒤 환자와 국민·의사와 병원·정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서비스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크게 셋으로 분류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3자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올 초부터 의료계 이슈 펑펑
이재명 피습·의대 정원 증원

조 교수가 제시한 대전제를 두고 현재 상황을 바라보면 7개월의 의정 갈등은 오랜 시간 곪아 있던 의료계의 모순점을 수면 위로 올린 ‘트리거(방아쇠)’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조 교수는 이를 ‘레고 블록 쌓기’ ‘성냥 쌓기’ 등으로 표현했다.


한순간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블록과 성냥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이 그 ‘삐끗한 순간’이었다는 주장이다.

“환자가 질 높고 신속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전공의다. 수십년간 전공의가 희생을 감내하는 과정서 쌓여온 모순점이 의대 증원 정책과 동시에 터져 나온 게 현재 상황이다. 전공의는 자신들의 미래에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조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식 의료체계서 의료서비스의 생산자는 의사와 병원, 구매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즉 정부가 된다. 환자와 국민은 국가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배급’받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환자와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정부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동시에 짊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과정서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악마화’하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주의식으로 하려면 국민 전체가 사회주의 의료체계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식이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을 막 섞어 놓으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가지 방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섞다 보니 엉망이 된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 교수는 현재 의료계 상황을 ‘불난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활활 타고 있는 불은 언젠가는 꺼질 것이다. 불이 꺼진 후에는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불이 난 이유를 파악하고 불이 다시 나지 않을 집을 지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지은 집은 금방 다시 불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희생 위
쌓인 성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의료 붕괴’를 언급했다.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전공의 이탈 등의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문을 닫는 대학병원이 1~2년 내로 생겨날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의료개혁이 없다면 2030년대 중반에 건강보험체계 자체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다.

“병원이 (정부로부터)돈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나. ‘보험 환자 못 받겠다’하고 나가떨어지는 거지. 그때가 되면 정말 돈 있는 사람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다.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식 의료체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포함돼있던 공공성이 망가진다고 보면 된다.”

조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식 의료체계는 경제 수준이 중간 정도인 중산층에 타격을 입힌다. 빈곤층은 정부의 우산 아래 있고 상류층은 돈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값비싼 의료서비스에 좌절하듯 우리나라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의료 붕괴는 기정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에 일어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과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을 뿐 이미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는 주장이다. 촉매의 역할이 반응속도의 변화듯, 의대 증원이 의료 붕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환자, 그리고 의사가 모두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환자는 의정 갈등서 피해자 포지션으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 상황에 환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진료권을 벗어나 경증이어도 빅5 병원으로 향하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없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이 대표의 피습사건 때 의료계는 분노했지만 국민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점을 언급했다. 당시 이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을 시찰하던 중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한 후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뒤 수술을 받았다.

전원 과정, 닥터 헬기 이용 등을 두고 의사회는 성명을 내는 등 비판을 제기했다.

지방 의료를 살리자던 야당의 대표가 닥터 헬기까지 이용해 부산서 서울로 이동한 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조 교수는 “이 대표 사건은 문제를 표면화시켰을 뿐 이미 지방의 환자는 모두 KTX를 타고 서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약이
무효하다

필수 의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주장이다. 오랜 시간 값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해 온 환자는 현 상황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고 정부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의료 수가를 조정하지 못하면서 ‘기피과’가 생겼다. 또 비급여 등의 항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의사들이 비필수 의료 쪽으로 빠졌다. 

조 교수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건을 거론했다. 지난달 22일 김 전 위원장은 오른쪽 이마에 큰 반창고를 붙인 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새벽에 잘못하다 넘어져 이마가 깨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응급실에 가려고 22군데에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아줬다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응급실서 이마 약 8㎝를 꿰맸다. 

조 교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남에 널리고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찢어진 이마 상처를 꿰매줄 성형외과는 없다. 비필수 의료를 하는 성형외과는 많지만 필수 의료를 해줄 성형외과는 없는 상황이다. 의사를 늘린다고 필수 의료가 살아날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본질은 모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돈을 쫓는 것을 굉장히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덜 힘들고 돈을 더 버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의사에게만 더 힘들고 덜 버는 삶을 살라고 강요할 순 없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어떤 형태든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빈약한 철학·마구잡이식 체계
정부·환자·의사 서로 포기해야

조 교수는 의대 정원 역시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배치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작정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지방 의료와 필수 의료를 할 수 있게 정부와 환자의 ‘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가 왕’ ‘환자가 왕’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고 환자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본주의식과 사회주의식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후자 쪽으로 가는 편이 낫다. 지금처럼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이다. 그 대신 정부는 일정 수준 이하의 환자에 한해 진료권역을 지키도록 제한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상황을 막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조 교수는 환자와 정부, 의사의 변화에 회의적이었다. 당초 의료체계를 만들 때 부족했던 철학이 지금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외국서 의료체계를 베껴 올 때 그 철학을 외면하고 가져오는 데만 급급했다. 그렇게 수십년 동안 섞이고 빠지고 하면서 엉망진창이 됐다”고 한탄했다.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여론에 휩쓸려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손님은 왕이에요’라는 말만 했지 ‘갑질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돈을 더 내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병원 상황에 대한 암울한 진단도 덧붙였다. 그는 “전공의 복귀 문제는 이미 망가져 버렸다. 내년 3월에 인턴 자체가 안 들어올 것이고 레지던트는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불투명하다. 설사 들어온다 해도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은 인력 문제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갑갑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응급의학과뿐만 아니라 각 과 교수들이 나가 떨어지고 있다. 특히 응급실은 병원서 보던 환자가 아니면 안 본다든지, 온갖 사유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악화되면 대학병원의 진료 능력 자체가 악화될 것이다. 그나마 내년 3월이 레지던트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데 그때 수급이 안 되면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가 아주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이날 인터뷰서 ‘철학’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철학과 기본 개념이 부족한 상황서 생각나는 대로 지은 집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고도 했다. 그나마도 현재 불타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3월
고비될까

“각 나라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고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먼저 정한 뒤 각자가 포기해야 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환자와 의사, 그리고 정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도 너무 늦었지만 그렇게 짜 맞춰가야 한다. 하지만 3자 모두 그걸 이해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타깝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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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