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 거리로 나온 의료계 현실

정부가 누르고 국민 등돌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료계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압박하고 국민은 외면하는 모양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힘겨운 한 해를 보내야 할 상황이다. <일요시사>가 의료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봤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응급실서’ 환자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고 길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사건으로 일부 병원이 보건복지부의 철퇴를 맞았다. 지난 13일에는 응급실서 대기 중이던 노인이 아무 조치도 받지 못한 채 7시간 만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환자 거부

일반 국민은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119에 신고하면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응급의료체계의 구멍이 확인되면서 대책 마련 요구가 확산됐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해결책 마련을 위해 의료정책에 손대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고정된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 의료·지방 의료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의대생과 의사단체는 의사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필수 의료 기피, 지방 의료 붕괴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맞서는 중이다. 의사단체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으로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소속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날 의협은 서울 광화문 일대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제1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의협은 “일방적인 의대 증원이 의료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론이 완벽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대정부 투쟁을 위해서는 여론이 동력이 돼야 하는데 그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여론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의사단체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서 열린 ‘22차 의료현안협의체’서 보건복지부는 해당 여론조사를 언급하면서 의료비를 부담하는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협은)의사 인력 증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할 때 ‘전문가인 의사의 의견에 따라서 결정해야 된다’ ‘의사 단체와 합의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 확대 이어
비대면 진료 ‘폭탄’

반면 의협 측은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늘어난 인력이 필수 의료 분야로 유입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국민 의료비가 급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회장은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아도 국민 의료비는 급증하고 있다. 노인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인 진료비가 44조원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늘어난 인력이 전문의로 배출돼 나오는 시기인 2040년에는 생산연령 2.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서 국민 의료비가 급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정부는 ‘비대면 진료’라는 또 하나의 폭탄을 의료계에 던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 방안을 시행했다.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기준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대상자가 만 18세 미만으로 한정됐는데 이날부터 연령 제한이 폐지됐다. 약 처방도 가능해졌다.


평상시에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됐다. 종전에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1년 이내, 그 외 질환자는 30일 이내 동일 의료기관서 동일 질환에 대해서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다. 사업 시행 이후부터는 최근 6개월 이내 의료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으면 해당 의료기관서 질환 구분 없이 의료진 판단에 따라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확대로 5년간 최대 152만명의 고용 증가가 예상된다면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반면 의사단체는 비대면 진료 확대에 강하게 반발 중이다. 정부의 비대면 진료 확대 발표 이후 일부 의사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검찰에 고소하는 등 강대강으로 맞부딪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차관,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을 형법상 형법죄, 강요죄, 업무방해죄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의사단체와 전혀 상의 없이 대상을 대폭 늘리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사업자 단체서 회원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불참을 요구하고 있다며 엄중 조처하겠다고 밝혀 의료 현장 전문가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져버렸다”고 배경을 밝혔다.

응급실 찾아 헤매다
길에서 사망 잇달아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에 이어 비대면 진료 확대로 의사단체와의 전선을 넓혀 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코너에 몰리고 있는 의사단체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 여론이 의사단체의 반대편으로 기울어 있는 것은 물론 정부가 고용 창출을 근거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관련 법안도 속속 법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52개 안건을 상정, 심사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서 복지위는 ‘지역의사양성을위한법률안(지역의사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설립운영에관한법안(공공의대법)’을 두고 표결까지 간 끝에 두 법안을 모두 의결시켰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되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에는 특정 지역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공공의대법은 의대 교육비 전액을 국민이 부담하는 대신 의사면허 취득 후에는 의료 취약지 등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위 내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의결됐다. 해당 법안이 복지위서 통과되자 의료계는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의협은 2020년 9월4일 민주당과의 ‘의당합의’를 내세웠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에 대해서는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9·4합의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법안이 통과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의대 정원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비효과?


의료계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한 정책 드라이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법제화, 국민 여론이라는 ‘삼중고’를 떠안은 채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됐다. 여기에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하는 정책 중 일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갑론을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의 시계 상황은 현재 ‘제로(0)’ 상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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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무죄’ 이재명 “사필귀정⋯재판부에 감사”

‘항소심 무죄’ 이재명 “사필귀정⋯재판부에 감사”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법 리스크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표는 이날 2심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사필귀정”이라며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 제대로 된 판결을 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검찰을 향해선 “이 당연한 일들을 이끌어내는 데 이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국가 역량이 소진된 것에 대해 참으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검찰과 이 정권이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조작하느라 썼던 그 역량을 우리 산불 예방이나 국민 삶을 개선하는 데 썼더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됐겠냐”고 되물었다. 이어 “지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서울고법에) 모여 있는데 이 순간에도 산불은 번져가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경제는 망가지고 있지 않느냐”며 “이제 검찰도 자신들의 행위를 좀 되돌아보고 더 이상 이런 국력 낭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2심 무죄 선고로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의문을 가졌던 중도층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최은정·이예슬·정재오)는 이날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심에선 이 대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는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행이 좌절되는 만큼, 이 대표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인 판결이었다. 그러나 이날 2심서 법원이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제1처장에 대한 ‘골프 발언’ 및 백현동 관련 ‘국토교통부 협박 발언’이 모두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내리면서 향후 이 대표의 대권 가도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아직 대법원 상고심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통상 항소심 판결 이후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수 개월이 걸리는 만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인용 시 이 대표의 조기 대선 출마에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 대표에 대한 원심이 뒤집어지면서 민주당은 법원 판단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히며 “위대한 국민 승리의 날”이라고 자축했다.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장인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의 정적 제거에 부역한 내란공범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 억지 기소였음이 판명 났다”고 환영했다. 그는 “정의가 승리한 사필귀정 판결”이라며 “위법부당한 법 해석을 적용해 내란 수괴 윤석열의 구속 취소에 대해 사상 초유의 즉시항고 포기로 탈옥시킨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게도 공정하게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에 막말과 저주를 퍼부어 온 국민의힘은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하라”며 “검찰과 국민의힘은 국민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조국혁신당도 입장문을 통해 “원칙과 상식의 승리, 정치 검찰의 완패다.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선민 혁신당 대표 권한대행은 “우리 당은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정치 탄압을 이겨낸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원, 지지자들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이 대표 무죄 판결은 검찰 권력을 향한 파면 선고로 검찰은 저강도 쿠데타로 윤석열정권을 세운 뒤, 조국 전 (혁신당)대표와 이 대표를 비롯해 시민사회, 비판 언론을 끊임없이 수사하고 기소했다”며 “법원은 오늘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정치 보복, 사법 살인 시도였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여권에선 “유감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며 희비가 엇갈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대전서 열린 이공계 현장간담회 도중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 무죄 사유는 인지하지 못했다”면서도 “1심서 유죄가 나왔는데 항소심서 무죄가 나온 건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허위 사실 공표로 수많은 정치인이 정치 생명을 잃었는데 어떻게 이재명(대표)는 같은 사안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지 법조인으로서 봐도, 아무리 봐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검찰이 상고할 것이고, 대법원서 이 부분이 허위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려서 논란을 종식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항소심 선고 직후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재판 결과는 당으로선 유감스럽다”며 “앞으로 대법원서 신속하게 ‘6·3·3 원칙’(선거법 위반 사건의 1심 재판은 6개월 이내,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 마무리)에 따라 재판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법원이 정치인에게 ‘거짓말 면허증’을 내줬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SNS에 “이 대표에게 거짓말 면허증 내준 서울고법 판결을 대법원이 신속히 바로잡아야 한다”며 “오늘 서울고법 형사6부의 이 대표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은 법에도 반하고, 진실에도 반하며 국민 상식에도 반하는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힘 있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이 ‘의견’이 돼 유죄가 무죄로 뒤집힌다면 정의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판결대로면 대한민국의 모든 선거에서 어떤 거짓말도 죄가 되지 않는다. 이 판결은 정치인에게 주는 ‘거짓말 면허증’”이라며 “정의가 바로 서고 민주주의가 바로 서도록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신속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