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한화그룹 사업 재편 로드맵

‘3세 시대’ 길목에 들어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5년 넘게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던 한화그룹 왕회장이 광폭 행보를 밟고 있다. 일주일 간격으로 곳곳에 출몰하면서 존재감을 십분 발휘하는 양상이다. 아들이 동행하면서 그럴듯한 구도를 만들자,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룹이 사업구조 재편 작업에 한창이라는 점이 이 같은 목소리에 무게를 더한다.

현장 경영에 나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1952년생인 김 회장은 한동안 건강을 이유로 공식 석상에 나서는 것을 자제했지만, 최근 들어 주요 사업장을 찾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R&D 캠퍼스를 방문해 차세대 발사체 사업 단독 협상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했다. 김 회장이 그룹 계열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8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베트남 엔진 부품공장 방문 이후 5년여 만이다.

계속되는 
광폭 행보

이날 김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관하게 될 누리호 4차 발사에 대한 당부를 빼먹지 않았다. 2025년으로 예정된 4차 발사의 완벽한 성공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손꼽히는 우주 전문기업으로 도약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한화그룹은 우주 사업에 지금껏 9000억원대 투자를 집행했고, 자체 기술 확보와 밸류 체인 구축에 힘을 쏟아왔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를 통한 우주 수송, 쎄트렉아이·한화시스템은 인공위성 제작 및 위성 서비스를 담당하는 등 우주 사업 밸류 체인 확보에 성공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순천 율촌 산단 내에 스페이스 허브 발사체 제작센터 착공식을 하고 현재 한창 건설이 진행 중이다. 센터가 완공되면 민간 체계종합 기업으로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회장의 현장 방문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전 R&D 캠퍼스 둘러본 지 일주일 만인 지난 5일에는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를 방문했다. 한화그룹의 로봇 부문 계열사인 한화로보틱스는 미래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로봇 분야 선점을 위해 지난해 10월 공식 출범한 법인이다.

2017년 주력 제품인 협동로봇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 한화로보틱스는 협동로봇 기반의 다양한 첨단기술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글로벌 로봇시장이 2030년 최대 35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회장은 신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연구 현장에서 실무진과 기술 현황, 미래 로봇산업 전망 등과 관련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로봇이 당장 구체적 성과를 내는 푸드테크를 시작으로 방산, 조선, 유통 등 그룹 내 여러 사업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연이어 계열사 현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고려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김 회장의 첫 현장 방문지였던 대전 R&D 캠퍼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핵심 연구소이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총괄하는 곳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현재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등에서 전략 부문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김 회장이 대전 R&D 캠퍼스 방문했을 때 부친 옆을 지켰던 것도 김동관 부회장이었다.


김 회장이 두 번째로 찾은 한화로보틱스는 삼남인 김동선 부사장이 이끌 것으로 관측되는 곳이다. 재계에서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완료되면 김동선 부사장이 ▲유통 부문 ▲호텔 부문 ▲로봇 부문 등을 떼어내 독자 경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회장이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김동선 부사장은 근거리에서 부친을 보좌했다. 

현장 챙기느라 바쁜 회장
경영권 승계 움직임 시동

장남과 삼남이 이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로보틱스를 연달아 방문한 것처럼, 김 회장이 차남 김동원 사장에게 힘을 싣는 행보를 밟느냐도 관심사다. 김동원 사장이 경영에 관여하는 금융 계열사는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한화투자증권 등이 있다.

금융 계열사의 경우 한화생명이 나머지 법인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지분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상태다.

눈여겨볼 부분은 김 회장의 현장 방문 시기가 그룹의 사업구조 개편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사업구조 개편을 경영권 승계와 연결 짓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한화 등을 앞세워 방산 및 에너지 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모습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2년 11월 한화디펜스, 지난해 4월 ㈜한화 방산 부문을 흡수 합병하며 방산 계열사를 통합했다.

최근 비주력 사업인 한화정밀기계와 한화비전은 인적 분할을 결정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12월 첨단소재 부문을 물적분할해 한화첨단소재로 분리하고, 지난 2월에는 백화점 사업부인 갤러리아 부문을 인적 분할했다. ㈜한화는 지난 3일 건설 부문 해상풍력 사업과 글로벌 부문 플랜트 사업을 한화오션에 넘기고, 모멘텀 부문 태양광 장비사업을 한화솔루션에 양도하기로 했다.

한화그룹의 사업구조 재편 작업에 대해 증권가는 우호적이다. 특히 신한투자증권은 지배구조 재편 및 다각적인 사업 확장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3일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인적 분할에 대한 시장의 기대에 대해 “순수 방산업체로의 면모를 확고히 한다는 측면, 실적이 레벨업된 한화 비전의 가치 재부각, 실전이 부진해 소외된 정밀기계 사업의 투자 확대 및 재평가, 적극적인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따른 추가적 성장 전략에 대한 기대 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계획대로 올해 하반기 경 완료되면 김동관 부회장은 신재생에너지·방산·항공우주 등 그룹 핵심 사업을 직접 통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계기로 형제 간 영역 구분이 더 확실해질 수 있다.


다만 삼형제가 확실한 승계 수순을 밟으려면 지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 최대주주는 지분 22.65%를 보유한 김 회장이다. 반면 김동관 부회장의 지분율은 4.91%에 불과하며,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 역시 지분율이 2.14%씩에 그친다.

부친이 보유한 주식을 물려받으려면 천문학적인 세금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한화에너지가 지분 승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여수와 군산에서 열·전기를 공급하는 집단에너지 사업을 전개하는 오너 가족회사다. 김동관 부회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김동원 사장과 김 부사장이 25%씩 지분을 보유 중이다. 

한화에너지의 중요성은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회사는 ㈜한화 지분 9.70%를 보유한 2대 주주다. 만약 ㈜한화가 한화에너지와 합병 수순을 밟게 되면 삼형제의 ㈜한화 지분율이 상승할 여력이 생긴다.

일석삼조
효과

한화에너지가 삼형제의 승계 자금을 마련에 도움을 줄 가능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화에너지가 현금배당을 실시한 건 2021년(현금배당 501억원)뿐이지만, 추가 현금배당에 나설만한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 


지난해 말 현금성자산과 금융상품 합계액은 6조2805억원에 달했으며, 같은 기간 순자산가치는 4조8914억원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4조7110억원, 영업이익 215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0.0%, 306.8% 상승한 수치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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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