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송환과 테라·루나 재판 상관관계

50조 말아먹은 그놈이 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피해액이 약 50조로 추산되는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다. ‘여의도 저승사자’인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 1호 수사인 테라·루나 사건의 재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가 타 가상자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몰락했던 ‘한국판 일론 머스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다. 테라·루나 코인 개발자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이야기다. 그의 한국 송환으로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7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기존 권씨의 미국 인도 결정을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미국 인도 
결정 뒤집어

재판부는 당시 미국 정부 공문이 한국보다 하루 더 일찍 도착했다고 본 원심과 달리 “한국 법무부가 지난해 3월24일 영문 이메일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미국보다 사흘 빨랐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 공문에는 권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있어 이를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몬테네그로 법원은 권씨에 대해 미국과 한국 중 어디로 범죄인 인도될 것인지를 두고 1년여간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권씨의 한국 송환은 몬테네그로 법무부가 권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하면 한국 법무부에 이를 통보 후 구체적인 신병 인도 절차 협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우리 경찰은 권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협조 요청한 상태다.


이용상 경찰청 국제공조담당관은 “몬테네그로 같은 유럽계 국가는 인터폴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의 공조 지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지속적으로 인터폴사무총국에 송환 관련 얘기를 해 왔는데, 이번에 몬테네그로 법원이 기존 미국 인도 판결을 뒤집은 것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부도 권씨가 국내서 재판받고 형이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권씨의 항소 기한이 연기돼 한국 송환 날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권씨 측이 영문 판결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권씨 측은 고등법원 법원장에게 권씨가 이해하는 언어인 영어로 된 결정문을 보내는 긴급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권씨 측이 중형이 예상되는 미국 송환을 뒤집고 한국 송환 결정을 받은 만큼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권씨는 2018년 가상화폐 업체 테라폼랩스를 설립하고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와 자매코인 루나를 발행했다. 루나 공급량을 조절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로 맞추는 방식이다.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의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2022년 5월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을 거듭하면서 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 발행해 가격을 방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50조원에 이르던 시가총액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이로 인해 가상화폐 업계 전반이 휘청였고 국내서만 피해자가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몬테네그로 법원 한국 송환 결정
공동대표·최측근 재판 진행 중

권씨는 가상화폐인 테라·루나의 폭락 위험성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계속 발행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미국과 한국, 싱가포르 등 3개국서 사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수배 명단에 올랐다. 중동과 동유럽 등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3월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서 위조 여권을 사용해 덜미를 잡혔다.


권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된 이후 한국서 재판 중인 테라·루나 사건에 관심이 모인다. 지금 한국서 재판 중인 건은 2건으로 테라폼랩스의 공동창립자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 한창준이 각각 기소된 재판이다.

신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신 전 대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테라 프로젝트의 허구성을 숨긴 채 지속적인 거래 조작, 허위 홍보 등으로 전 세계 투자자를 속여 4629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득하고 약 3769억원을 상습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전자상거래 업체 대표에 대한 금품 로비, 결제 정보 무단유출, 테라폼랩스 법인자금 횡령 등의 혐의도 적용됐다. 신 전 대표는 이 과정서 허구에 가까운 ‘테라 블록체인 지급결제 사업’을 내세운 ‘차이 프로젝트’로 국내외 벤처투자사 등으로부터 투자금 1221억원을 유치한 혐의도 받는다.

차이코퍼레이션이 갖고 있던 고객정보를 테라폼랩스 등 다른 회사에 유출한 혐의,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전 대표 유모씨에게 “테라를 간편결제 수단으로 도입한다고 홍보해 달라”고 청탁하고 그 대가로 루나를 제공한 혐의도 적용됐다.

신 전 대표는 혐의를 전면 부인 중이다. 신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첫 공판서부터 “2020년 권도형과 사업적으로 결별했고, 폭락의 원인도 결별 이후 권도형이 진행한 앵커 프로토콜의 무리한 운영과 외부 공격 때문”이라며 “피고인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테라 프로젝트 구상 당시 가상자산 활용 결제 방식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었던 점, 자진 귀국해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약정된 루나 코인 7000만개 중 32%밖에 수령하지 못한 점, 신 전 대표가 루나 코인 대부분을 매도한 시점이 루나 코인 가격 폭등 이전인 점 등을 들어 신 전 대표의 혐의를 부인했다.

현재 신 전 대표의 재판은 증인신문을 진행 중이다.

권씨와 함께 도피했던 한씨는 지난달 2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3개국서
수사 중

검찰에 따르면 한씨는 테라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속여 루나 코인을 판매·거래해 최소 536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또 증권신고서 제출 없이 루나 코인을 판매하는 등 증권의 모집·매출행위를 한 혐의와 차이페이 고객의 전자금융 결제 정보 약 1억건을 동의 없이 테라 블록체인에 기록해 무단 유출한 혐의도 있다.

테라 코인 발행으로 주조차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여 테라폼랩스 회사 자금 141억원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대가 없이 지급해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는다. 2022년 4월 권씨와 한국을 떠나 도피한 한씨는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현지 경찰에 권씨와 함께 체포됐다.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고 몬테네그로 당국과 협의해 한씨의 신병을 인도받아 지난달 6일 송환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한씨의 재판은 지난 6일 첫 공판기일이 진행됐지만 공전했다. 한씨 측 변호인은 이날 “아직 증거기록을 입수하지 못했다”며 “기록 검토 후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검찰 측에선 기존에 진행 중이던 신 전 대표 사건에 한씨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결국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 보인다”면서도 양측에 “증인의 진술조서 등을 최대한 빨리 준비해 달라. 증인신문 진행 후 사건을 언제 병합할 수 있을지 날짜를 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신 전 대표의 재판에서 증인신문이 마무리돼도 한씨 재판서 증인신문이 이뤄진 후 병합이 될 예정이라 재판 자체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권씨도 송환된 후 기소되면 해당 재판들과 병합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법조계와 피해자 커뮤니티에 권씨가 유력 법무법인과 미리 초호화 변호인단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첨예한 법적 공방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권씨 송환 이후 재판서 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다.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는 이들의 처벌 수위에도 영향을 끼친다. 증권성 여부가 인정되면 자본시장법 혐의가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건의 재판
현재 상황은?

자본시장법 제443조에서는 시장 교란 행위를 통해 불법 이익을 취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의 규모가 50억원을 넘어설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증권성이 인정되면 권씨 등 테라·루나 관계자들은 피해액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은 신 전 대표 등이 만든 루나 코인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 증권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루나 투자자와 테라폼랩스 간 공동사업인 테라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이 존재하고, 루나 투자자는 이 사업에 법정화폐 혹은 가상자산을 투자했으며, 공동사업은 테라폼랩스가 독점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신 전 대표 측은 재판서 “발행 법인과 루나 보유자 사이, 루나 보유자들 사이의 공동사업성 모두를 인정하기 어렵고, 다수 참여자의 활동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타인성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루나 보유자가 발행법인에 어떠한 계약상 권리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계약상 권리를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며 증권성을 부인하고 있다. 권씨도 “루나는 증권이 아닌 화폐”라며 계속해서 증권성을 부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이미 테라·루나가 증권이라고 결론내렸다. 지난해 12월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테라폼랩스와 권도형이 ‘미등록 증권’을 판매해 법을 위반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에서는 증권성 판단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법정에서 인정될 만한 논리적 근거가 없어 법원에 판단을 맡기고 있는 형국이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진행한 ‘가상자산의 증권성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 방향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자산이 경제적 실체에 따라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구분되며 증권형에 해당할 경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게 되고 비증권형에 해당할 경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2024년 7월 시행 예정)’ 적용을 받게 된다.

문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과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주체가 사안별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증권성 여부 다시금 수면 위로
‘가중주의’보다 낮은 처벌 예상

테라·루나에 관해서는 “테라 트랜잭션이 발생할 때마다 수수료를 배분하는데 이를 전매차익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분배수익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스테이킹을 하는 루나 보유자에게 하는 스테이킹 보상을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역시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대검찰청이 의뢰한 연구서도 명확히 판단이 어렵다고 인정한 셈이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이런 연구 결과와 정부 대처를 변호인단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며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권씨나 그 조력자들 모두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로 다른 가상자산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디센트법률사무소의 진현수 변호사는 “특경법상 사기죄는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라면서 “처벌 여부를 떠나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코인 전문 변호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 리플 등 논란이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 신속히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지만 우리나라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증권성 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며 “현재 선례가 없어 판단이 미뤄지고 재판서 미국 판례를 이용하고 있는데 테라·루나 재판이 완료되면 다른 가상자산 사건에 해당 판례가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코인을 증권이라 규정할 경우 후폭풍이 부담스러워 법원도 판단을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테라·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되면 상장 폐지 전까지 이 코인의 거래를 중개했던 두나무 등 국내 거래소들이 모두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루나 등과 같은 기준으로 많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들도 증권성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가상자산 시장 전체가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와 상관없이 권씨는 미국의 처벌 수위와 비교하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미법계’인 미국은 개별 혐의 형기를 합쳐 형량을 정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다. 징역 10년 선고가 가능한 범죄를 10개 저질렀다면 10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대륙법계’인 한국은 ‘가중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보다
솜방망이?

국내 형법은 한 사람이 2개 이상 범죄를 저지른 ‘실체적 경합범’의 경우 여러 혐의 중 최고 형량의 최대 2분의 1을 가중토록 한다.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인 2개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상 선고 가능한 최고 형량은 15년이다. 이 밖에 형법에선 유기징역 상한을 30년, 가중할 경우 최대 50년으로 정하고 있다.

권씨에게 적용될 혐의는 특경법상 사기로 한국 경제사범 중 역대 최고형은 대법원이 2022년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 대해 확정한 징역 40년이다. 미국으로 송환됐다면 115년 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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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