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달고 돌아온 이재명 막전막후

고름에 칼질 숙청 피바람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구속 문턱까지 다다랐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돌아왔다. 그야말로 기사회생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만큼이나 비명계 역시 당황한 기색이다. 민주당의 기류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비명·친명 할 것 없이 공천을 따내기 위한 셈법이 복잡해졌다. 비명과의 ‘화합’과 ‘숙청’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이 대표의 속내 역시 복잡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18일,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 구속영장이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백현동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에게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대납하도록 한 혐의를 적용했다.

최소 31표
이탈 색출

구속영장이 국회로 날아들자 민주당은 분주해졌다. 지난 2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지만 무더기 이탈표가 나왔던 만큼 당 대표 리더십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시 표결 결과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으로 민주당 내에서만 최소 30명이 넘는 이탈표가 나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차례 내홍을 겪었던 만큼 두 번째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것이란 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표결 당일까지 친명(친 이재명)계는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부결 쪽으로 흐름을 몰아갔다. 반면 비명(비 이재명)계는 앞서 이 대표가 선언한 불체포특권을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어길 경우 또다시 방탄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물론 당내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이유에서다.


병상 단식을 이어가던 이 대표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모호한 ‘사실상 부결’을 호소하면서 여론이 갈렸다.

이날 이 대표는 자신의 SNS에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번 영장 청구는 황당무계하다”며 “검찰은 지금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검찰이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수사권을 사적으로 남용해 ‘비열한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의 호소문이 역풍으로 작용한 것일까? 다음 날인 21일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서 재석 295명 중 찬성 149명, 반대 137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결됐다. 국회 체포동의안은 재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부를 정한다. 이날 가결에는 찬성 148표가 필요했다. 1표가 더 많은 149표가 나오면서 과반을 넘긴 것이다.

민주당 의원 167명이 표결에 참석했지만 반대가 136표에 그친 것 역시 민주당 내홍의 서막이다. 당내에서만 최소 3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헌정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가결 후폭풍은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줄사퇴로 이어졌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그날 밤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이날 박 전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도부 결정과 다른 표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명계인 민주당 송갑석 의원 역시 이틀 뒤인 23일, 지명직 최고위원직을 내려놨다.


곧 휘몰아칠 가결표 후폭풍
친·비 모두 공천 셈법 복잡

직책 여부를 떠나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되는 민주당 의원들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강성 친명계 의원은 비명계가 가결을 주도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고름’이라 비판했다.

‘비명계를 숙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당내 갈등이 빚어졌다. 가결파 색출에 앞장서는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실상 비명계를 대상으로한 징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로 불리는 ‘개딸’(개혁의 딸) 사이에서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비명계 의원을 지칭하는 속어) 리스트와 전화번호를 공유해 이들에게 욕설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개딸에게 받은 문자를 일부 공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현수막에 이원욱 얼굴 사진 거니 더 역겹다. 나대지 말라’ ‘국민의힘 프락치’ 등 비난 표현이 난무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 대표가 이장으로 있는 ‘재명이네 마을’ 카페는 혐오 정치의 산실이 됐다”며 “이 대표가 ‘재명이네 마을’ 이장을 그만둬야 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 역시 한 시민으로부터 “이상민님 응원해요(하트)/ 개딸은 무시해요!/ 새로 창당해도/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야권의 희망이십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고 작성자는 “세로로 읽어 보세요”라며 수박이 썰려 있는 사진을 함께 보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따서 읽으면 ‘이 XXX야’라는 욕설이 된다. 해당 문자가 조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 의원은 “천벌받을 것이오” “아예 끊어버릴게요”라고 답했다.

연일 이어지는 강경 대응에 계파색이 옅은 민주당 의원까지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일각에선 “대체 누구를 위한 진흙탕 싸움인지 모르겠다”는 한숨 섞인 우려도 나온다.

당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는 친명계 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끈질긴 명줄
지도부 사퇴

지난달 26일, 범친명계로 꼽히는 홍익표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는 박주민 의원이 인선됐다. 박 의원은 이 대표 캠프의 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친명계 인사로 꼽힌다. 이 밖에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주도해 온 강경파이기도 하다.


새 원내정책수석부대표에는 유동수 의원이 뽑혔다. 다른 인사에 비해 계파색이 옅다는 평을 받지만 이 대표의 지역인 인천 계양 지역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만큼 친분이 두터울 가능성이 제시된다.

원내대변인에는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민주당 윤영덕, 최혜영 의원이 각각 선임됐다. 특히 윤 의원은 이 대표가 단식했을 당시 동조 단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홍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까지 대부분 친명계 의원들로 채워지면서 단일된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주 중으로 민주당 당직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민주당이 친명 체제로 돌아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새 지도부를 선출한 다음날인 27일, 친명 체제 민주당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새벽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정치권의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대표에 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기각에 따라 양당의 희비도 엇갈렸다. 민주당은 윤정부를 ‘야당 대표를 대상으로 검찰권을 남용하고 탄압에 몰두한 무책임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반격 태세를 갖추었다. 국민의힘은 “결국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고 반발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

자료와 증거가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던 검찰이 우선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구속영장 기각에 관해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 무죄 입증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극적으로 구속을 피한 이 대표는 당내 리더십을 회복하는 동시에 검찰을 향한 반격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쌍날 검을 쥐고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한동훈 장관 탄핵’, 비명계에는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여의도 복귀가 임박한 가운데 비명계를 향한 친명계의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의 수장이 ‘정치적 부활’이라는 날개까지 달고 돌아오니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비명계는 공천은 물론 정치생명까지 위태로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비명계 축출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 라디오를 통해 “좌절한, 절망한 국민 앞에 당 대표가 ‘내가 단식이라도 해서 이것을 끊어내겠다’는 결연한 결기를 보인 앞에서 그렇게 (가결을)할 수가 있는 건지. 그분들(비명계) 스스로 용퇴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만일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징계 조치라도 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치에 정통한 이들 사이에서도 한두 사람 정도라면 비명계 축출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을 통해 제재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안에 관해 당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당의 시스템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도 죽는다
골 아픈 딜레마…최종 선택은?

민주당 계파 싸움이 갈수록 치열한 이유는 총선과 공천이라는 예민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도 비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4선)을 비롯한 설훈 의원(5선), 이상민 의원(5선) 등 비명계 중진 의원들의 행방이 주목된다.

친명계가 혁신안으로 제안했던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제한’을 실시할 경우 중진 의원이 다수 포진된 비명계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몸소 실천한 홍 원내대표가 취임하면서 해당 혁신안은 탄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 민주당의 험지로 꼽히는 서울 서초을 지역위원장 공모에 지원했다. 3선을 내리 달성한 성동구를 벗어나 직접 험지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개혁파’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다. 친명을 대상으로 한 긍정적 메시지가 커질수록 비명의 입지는 줄어드는 형국이다.

이 대표가 당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만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민주당의 갈등에 불을 붙이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비명계를 공식적으로 징계하거나 비판할 경우, 이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당의 균열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아가 분당 선언까지 나온다면 당이 타격을 입는 건 물론 ‘비명계 학살로 완성되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이 대표가 비명계와 화합의 메시지를 낸다면 내년 총선 승리를 목적으로 뭉쳐진 ‘원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이미 깊어진 계파 간 갈등이 쉽게 아물지는 미지수다.

일부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비명계가 내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서 이 대표가 포용의 정치를 보이더라도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놓쳐버린
타이밍

장시간 진통이 예상되지만 당장 민주당이 분당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앞으로 더 많은 당내 인사가 친명계로 채워질 것”이라면서도 “민주당이 둘로 갈라질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Zero)”라고 예상했다. 총선이 6개월 남은 시점서 분당 절차를 밟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당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당분간은 잠잠할 전망이다. 여의도로 돌아올 채비를 마친 이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표류하는 영수회담 묵묵부답도 ‘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향해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부정하며 민생 회복을 위한 협치의 기회를 날려서는 안 된다”며 하루빨리 회담에 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실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연목구어”라며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장소에서 해야 할 파트너와 하는 정상으로 복귀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꼬집었다.

이번 영수회담은 여의도 복귀를 앞둔 이 대표의 위상 높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양당의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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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