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핏줄 경영’ 재벌가 방계기업 대해부

재벌이 만든 또 다른 재벌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기업이 대한민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눈에 보이는 영역은 물론이고, 대중이 인지하지 못한 곳에서도 재벌기업의 손이 닿아 있다. 재벌기업은 또 다른 재벌기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계열분리를 거치며 홀로 선 ‘방계기업’이 산업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방계기업은 재벌기업 창업주의 직계 후손이 아닌 동생이나 조카 등 방계혈족이 독자 경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곤 한다. 창업주와 친인척 관계로 묶인 오너 일가 구성원이 많을수록 다수의 방계기업이 분포하는 게 일반적이다.

밀고 당기고 
긴밀한 관계

또 모기업의 업력이 오래됐거나 덩치가 클수록 방계기업의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나타나곤 한다. 한 예로 ‘범삼성가’로 묶이는 방계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재벌기업 반열에 올라 있다. CJ그룹, 신세계그룹의 경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상태며, 한솔그룹, BGF그룹 등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범현대가’ 역시 비슷한 흐름이었다. 정주영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현대그룹은 지속적인 분리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창업주의 친인척들이 독자 경영에 나서면서 현대라는 울타리만 공유하는 수많은 방계기업이 탄생했다.

범현대가에 속한 상당수는 지금껏 대기업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를 필두로 HD현대, 현대백화점그룹, HDC그룹, KCC그룹 등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된 상태며, HL그룹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됐다.


범현대가에 속한 모든 방계기업이 대중에게 각인될만한 인지도를 갖춘 건 아니다. B2B(기업 대 기업) 솔루션에 주력하거나 덩치가 대기업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몇몇 방계기업은 대중의 시선에서 한 발 비껴나 있다. ‘후성그룹’이 대표적이다.

후성그룹은 한국내화에 뿌리를 둔 중견기업 집단으로, 현재는 후성, 퍼스텍 등을 거느린 그룹사의 면모를 갖춘 상태다. 창업주인 김근수 회장(1948년생)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관계로 인해 현대그룹 방계로 분류된다.

김근수 회장은 정주영 창업주의 여동생인 고 정희영 여사와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김 회장은 1983년 현대그룹으로부터 울산화학을 사들이며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나타냈다. 현재 오너 일가는 후성HDS에 관한 확고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나머지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뿌리는
같지만…

LG그룹 역시 수많은 방계기업을 탄생시키며 ‘범LG가’를 형성했다. 방계기업 중 LS그룹, LX그룹 등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LF그룹, 아워홈 등 인지도 높은 중견기업도 범LG가로 묶인다.

범LG가는 철저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형성됐다. 장자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전 세대는 그룹 후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룹에서 떨어져나왔다. 최근까지도 범LG가에 속하는 중견기업 집단은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구본준 회장이 LX그룹으로 홀로서기를 선택한 게 가장 최근 일이고, LT그룹 역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LT그룹은 2019년 1월 출범한 기업집단이다. 오너인 구본식 회장은 둘째 형인 구본능 회장과 함께 희성그룹 경영을 이끌다가, LT삼보(옛 삼보이엔씨)를 비롯한 4개 계열사를 떼어내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구본식 회장 일가는 2017년 LT삼보 지분 93.47%를 보유한 희성전자로부터 LT삼보 지분을 매입하면서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이후 구본식 회장은 LT삼보를 주축 삼아 LT그룹을 출범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출범 5년 차를 맞이한 그룹은 최근 지배구조 변경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LT삼보는 투자 부문 ㈜LT(신설)와 건설 부문 LT삼보(존속)로 기업을 분할했다. 분할 결정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는 ‘㈜LT→LT삼보·LT메탈·LT정밀→LT소재’로 이어지는 그림으로 재편됐다. 

LB인베스트먼트 역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한 범LG가 구성원이다. LB인베스트먼트는 유망 기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워낸 역량이 부각되는 곳으로,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넷째 아들인 구자두 회장 일가가 운영하고 있다. 1996년 LG전자와 LG전선 등 LG그룹 계열사들의 출자로 설립됐으며, 2008년 LG그룹에서 분리됐다.

LB인베스트먼트 지분은 비상장사인 ㈜LB가 100% 보유하고 있으며, 구자두 회장의 장남인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부회장과 차남 구본완 LB휴넷 대표는 ㈜LB 지분을 각각 28.27%, 26.65%씩 보유하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사촌
적당히 끈끈한 유대관계

GS그룹은 2005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면서 LG그룹에서 떨어져나왔고, 현재는 GS그룹을 축으로 하는 ‘범GS가’가 형성돼있다. 가장 눈에 띄는 GS그룹 방계기업은 코스모그룹이다. 

코스모그룹은 허만정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인 허신구 회장 계열 오너 3세인 허경수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허경수 회장과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사촌지간이다. 코스모그룹은 2015년 GS그룹과 계열분리를 끝내고 지주사 코스모앤컴퍼니를 설립하는 등 독립 경영을 시작했다.

모기업과의 순탄치 못한 관계로 방계기업이 설립된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범롯데가’는 롯데그룹을 필두로 농심, 푸르밀, 롯데관광개발 등으로 구성돼있다. 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과 나머지 형제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컸고, 이를 계기로 방계기업이 생기는 일이 반복됐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5남5녀 집안의 장남이고,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둘째 남동생이었다. 신춘호 회장은 일본 롯데 이사를 지내며 신격호 명예회장을 돕다가 1965년 롯데공업을 차렸는데, 라면 사업을 하고자 하는 동생의 구상에 신격호 명예회장은 반대했다.

결국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신준호 푸르밀 전 회장도 신격호 명예회장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 신준호 전 회장은 과거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를 지내는 등 그룹 내 영향력이 컸지만, 2007년 계열분리를 선택했다.


신준호 전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브랜드 사용을 막으면서 ‘롯데’라는 상호를 쓰지 못했고, 롯데햄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100%를 인수한 신준호 전 회장은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롯데그룹은 2010년 롯데삼강이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하며 우유 사업에 재진출했다. 

롯데관광개발도 엇비슷한 흐름이었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대표의 남편이다. 롯데관광개발이라는 사명에는 ‘롯데’ 두 글자가 들어가지만 롯데그룹의 지분은 없다. 과거 신격호 명예회장은 김기병 회장이 롯데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적당히
홀로서기

재벌기업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기업을 보는 시각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일부 방계기업은 모기업에 기대면서 덩치를 키우거나, 지명도를 이용한 인수합병(M&A)에 치중한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한익스프레스는 한화그룹의 방계기업으로 분류된다. 한익스프레스는 2020년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으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72억8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1979년 한화그룹 계열사로 설립된 한익스프레스는 2009년 김영혜씨와 그의 차남인 이석환 한익스프레스 대표가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며 한화그룹의 특수관계기업에 포함됐다. 김영혜씨는 김승연 회장 누나다. 한익스프레스는 현재 ‘이석환 체제’로 접어든 상태다. 2021년 이석환 대표의 부친인 이재헌 전 한익스프레스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났고, 지난해에는 김영혜씨가 본인 지분 전량을 증여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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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