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특정 정당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총칭)층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력을, 중도층은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양극화에 싫증을 느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당층·중도층도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어느 한쪽을 지지하면서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의 팽팽한 선거전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지난 20대 대선서도 무당층·중도층이 0.73%p 득표율 차를 만들어 승패를 갈랐던 바 있다.
한국의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표를 잡기 위해 온갖 전략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양대 정당은 무당층·중도층이 주는 메시지를 외면하기 일쑤다. 20대 대선서 0.73%p 득표율 차에 담긴 이들의 메시지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대선서 승리한 윤석열정부엔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삼가고, 대선서 패한 민주당엔 다수당의 횡포를 부리지 마라는 메시지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래서 무당층·중도층의 캐스팅보트는 양대 정당에 번갈아가면서 영향을 줬다.
무당층·중도층은 가시적인 세력이 아니어서 구심력이 없지만 선거전에 돌입하면 이들의 힘이 원심력으로 작용해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양대 정당이 알면서도 선거 후엔 이들의 메시지를 망각하고 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세력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지난 대선서 던진 무당층·중도층의 메시지를 살리는 정책을 내세우는 것이다.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다수당의 횡포에 맞선 정책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무당층·중도층은 선거가 가까워지면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인다는 생리를 잘 알아야 한다. 이들이 양대 정당으로 가지 않고 신당으로 모일 수 있는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제3지대 신당 창당은 성공할 수 없다. 그 구심력은 유력 대선후보여야 한다.
20대 총선서 신당 국민의당이 38석을 얻을 때 대선후보 안철수 의원이 대표였고, 15대 총선서 신당 자유민주연합이 50석을, 14대 총선서 신당 통일국민당이 31석을 얻을 때도 각각 대선후보 김종필 총재와 정주영 회장이 대표였다.
신당 대표가 총선을 대선 전초전 같은 분위기로 이끌어 무당층·중도층의 표를 모았기 때문에 제3지대 신당이 총선서 가시적인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20대·15대·14대 총선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치러진 선거여서 대선후보의 영향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신당은 대선후보나 대선후보급을 구심점으로 창당돼야 한다는 게 우리 정치사가 보여주고 있는 신당 성공의 원리다.
최근 모 원로 정치인은 제3지대 신당이 내년 총선서 무당층·중도층의 세를 모아 승리한 후 대선까진 3년 이라는 기간이 있어 “현재 대선후보가 아닌 제3지대 신당 대표라고 해서 대통령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년 총선서 승리를 먼저 거머줘야 한다.
현재까진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대표 중 대선후보급이 안 보이고,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도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한다거나 합류한다는 얘기가 없다. 이대로 간다면 무당층·중도층은 다시 어느 한쪽으로 움직일 것이고 결국 내년 총선서 제3지대 신당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거처럼 거대 정당으로부터 쫓겨나거나 내년 총선서 공천 받지 못할 것을 예상해 스스로 거대 정당을 나와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한 후 비례대표 1순위로 국회의원이 되려는 정치인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무당층·중도층이 제3지대 신당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제3지대 신당이 내년 총선서 원내교섭단체가 되기 위한 20석을 목표로 한다면 신당 대표는 비례대표 20번을 배정받아 배수진을 치거나 아예 총선 출마를 포기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무당층·중도층은 이런 신당에 응원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래도 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추려면 최소 2년 정도 걸려야 하는데 매번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신당을 우리 국민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제3지대 신당엔 악재다.
아무튼 현재 무당층·중도층 비율이 30%를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제3지대 신당을 창당한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무당층·중도층은 양대 정당을 싫어하는 세력이지만 양대 정당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세력이기도 하다. 무당층·중도층을 가볍게 보고 제3지대 신당을 창당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세력이 명심해야 한다.
설령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한다해도 수십년 동안 이분화돼있는 국민정서에 생긴 양대 정당 구도를 뛰어넘지 못 할 수 있다. 과거 국민의당, 자유민주연합, 통일국민당도 지역적인 이분법 갈등으로 생긴 양대 정당 구도의 벽을 넘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갑을, 노사, 여야 이렇게 이분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제3지대 신당 창당이 살아남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권도 국민도 무당층·중도층의 메시지를 새겨들을 때 우리 정치가 한층 더 발전하리라 믿는다. 무당층·중도층의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기 전 먼저 그들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혹시 내년 총선서 무당층·중도층이 양대 정당엔 0.73%p 득표율 차로 패배를 안기고, 그리고 제3지대 신당엔 7.3%p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 새로운 메시지를 던질지 모른다. 그 메시지는 제3지대 신당이 대선 이후 2년 동안 양대 정당이 저지른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다수당의 횡포를 막고, 양대 정당이 협치를 통해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길 수 있도록 정당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