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해도 서로 다른 언어권과 교류가 없다면 번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또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어떤 사실의 본질을 보는 관점과 의견이 서로 같다면 해석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 세계는 현재 수천 개의 언어가 존재하면서 각국이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고, 언어 자체가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하면서 발전해왔고, 사람이나 단체의 관점과 의견 역시 제각각이기에 번역과 해석 없이는 올바른 사회를 세울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번역과 해석만 잘해도 올바른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이나 정치색을 띠고 있는 단체의 면면을 보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사건마다 비슷하게 번역하고 해석하기는커녕 정반대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세상이 올바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유사 언론이 쏟아내는 말, 즉 번역과 해석은 당연히 사실에 대한 번역과 해석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태의 의미(본질)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속한 진영의 관점서만 번역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자신의 번역과 해석만을 객관적 사실로 주장하고 있으니 우리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권 창출이 목적인 정당일지라도 정당의 주장이 사실에 대한 번역과 해석의 기본원칙서 벗어나선 안 된다.
윤석열정부 출범 초기인 작년 9월 감사원은 2년 전 2020년 9월에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관해 문재인정부가 짜맞추기식으로 월북을 단정했으며 여러 증거를 왜곡하고 은폐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당시 검찰은 전 국방부 장관과 전 해양경찰청장에 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윤정부가 2년 전 문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조치를 재해석했던 것이고, 재해석이 정반대였다는 의미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감사 결과 발표 등을 정치 보복성 조치로 규정하고, 감사원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는 등 감사원 사무총장과 감사원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조치에 대한 재해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200년 전 사건도 아니고 20년 전 사건도 아닌 불과 2년 전 사건인데도 한 사건을 보는 현 정부와 전 정부의 해석이 이렇게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올바른 사회 정의가 뭔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도 전 정부의 원전 폐쇄, 사드 환경영향평가 등 여러 사건의 재해석 문제가 계속되고 있고, 현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정책도 다음 정부서 어떻게 재해석될지 몰라,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현 시국서 정부와 정치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자기 진영의 시각서만 번역하고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다(Nida, E. A.)가 제시한 번역 이론 ‘역동적 등가(dynamic equivalence)’의 의미를 되새겨보라고 전하고 싶다.
역동적 등가는 번역할 때 원문의 고유한 형식을 존중하기보다 번역문의 독자가 원문의 독자와 동일한 것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는 이론이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2년 전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조치에 대한 재해석을 하되, 현재 시점과 현 정부의 관점이 아닌, 2년 전 시점과 전 정부의 관점서 해야 좋은 재해석이 된다는 게 나이다의 역동적 등가 원리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기 전 개인정보 유출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된 지금의 잣대로 처벌할 수 없듯이, 전 정부의 잣대로 취한 조치를 현 정부의 잣대로 처벌하면 안 된다. 전 정부도 전전 정부의 잣대로 취한 조치를 전 정부의 잣대로 처벌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전 정부의 잣대로 취한 조치를 현 정부의 잣대로 처벌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가 발전해야 선진국이다. 현 정부가 전 정부를 재해석할 때 최소한 역동적 등가 원리에 따라 전 정부의 시점과 관점서 봐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관점서 봐도 전 정부의 조치가 잘못이라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처벌해선 안 된다. 시점과 관점이 다른 현 정부와 전 정부의 싸움만 계속돼선 안 된다.
동일 식품을 놓고 2년 전 식품 검사 때 당시 현미경 성능의 한계 때문에 세균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최근 최첨단의 고성능 현미경을 사용해 세균을 발견했다고 2년 전 식품검사 담당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현 정부가 새겨듣기 바란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해 5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되자, 법무부가 곧장 검찰 수사권을 일부 복구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 개정안을 내 9월10일 검수완박 법과 동시에 시행됐다.
만약 민주당 당론으로 지난해 11월 발의돼 현재 법안심사 제1소위에 계류 중인 감사완박(감사원 권한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되면, 법무부는 또 곧장 감사원 권한을 일부 복구한 감사원복(감사원 권한 원상복구) 시행령 개정안을 낼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현 정부와 전 정부,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부와 야당이 서로 반대 해석과 반대 의견만 내놓는 나라에 살고 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