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의 여권으로 입국해 서울 활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10 11:48:08
  • 호수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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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외국인’ 뻥 뚫린 출입국 실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타인의 여권으로 입국한 일부 외국인은 처벌할 수 없다. ‘난민 신청자’이기에 가능하다. 경찰은 사문서위조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법무부 측은 “난민 신청자라면 강제퇴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난민 신청에는 횟수 제한이 없다. 종교,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를 들면 몇 번이고 가능하다. 불법체류자와의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생존의 욕구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여권을 도용해 국내로 입국하는 사례는 흔한 수법이라고 한다. 공항 화장실서 도용 후 버려진 여권들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엄연히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 사문서위조 혐의를 받아도 강제퇴거할 수 없다. 난민 신청자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법무부는 경종을 울리고자 “남용적 난민 신청은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1만1539명으로 전년(2341명) 대비 5배가량 폭증했다. 코로나 펜데믹이 잠잠해지자 ‘눈치 게임’이 시작된 분위기다.

위조여권 입국했는데…

2016년 2월28일 남의 여권으로 입국한 왕모씨는 난민 비자로 체류 중이다. 전능신교 신도인 왕씨는 종교적 난민으로 신청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가 타인 여권으로 난민 비자를 취득한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안휘(安徽)성에 있는 가족들의 제보로 발각됐다.

여권 주인 경모씨는 중국 강소(江苏)성 출신으로 본국에 있으며 여권상 그는 한국에 난민 비자로 체류 중이다. 왕씨가 경씨의 여권을 도용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왕씨의 신분증 번호로는 입국기록조차 없으며 가족들의 실종신고로 들통났다. 법무부도 왕씨의 신분을 파악할 도리가 없다. 타인 여권이라도 정식 발급된 여권이기 때문이다. 엄연히 출입국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다. 출입국관리법 제7조를 위반한 것이다. 이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같은 법 제46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외국인은 강제 퇴거할 수 있다. 다만, 난민 신청자나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처벌이 어렵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왕씨는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발당했다. 고발장에는 왕씨의 생년월일, 주소, 신분증 번호 등이 기재됐다. 경씨의 신상정보도 모두 포함됐다. 고발인은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왕씨에게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수사 결과 불송치에 그쳤다.

지난 5월 서울영등포경찰서는 왕씨가 경씨의 여권을 도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불송치한 이유는 공소시효(7년)가 지났기 때문이다. 또 국외범으로 적용돼 국내 재판권이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문서위조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도 처벌이 가능하지만, 왕씨는 난민이기에 처벌 대상서 제외됐다. 남용적 난민 신청의 전형적인 폐해로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한국에 들어왔던 전능신교 신도들은 “중국으로부터 탄압을 피한 종교적 난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곱게 보일 수는 없다. 이들의 등장은 난민법 시행, 제주 무비자 입국 시기와 겹친다. 전능신교가 성행한 곳은 중국 허난성이다. 신도들은 이곳의 관문인 쩡조우 공항을 통해 제주로 왔다.

“7년만 버티면 된다” 구멍 난 시스템
불법체류자와 난민 간 ‘모호한 경계’

2013년 당시 제주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다. 제주로 들어와 난민 신청 후 비자를 발급받아 제주 밖의 지역으로 진출했다. 제주 출입국 외국인청은 박해 사유를 심사했다.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현재까지 종교적 난민을 인정받은 전능신교 신도는 많지 않다. 중국의 박해 수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전능신교 신도 샤오루이는 중국 공안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한국행을 택한 그는 <한겨레21>와 가진 인터뷰서 경험담을 털어놨다. 2009년 공안에 붙잡힌 그는 허공에 매달린 채 온몸을 구타당했다고 한다. 2012년 10월, 형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다고 전했다. 신도별로 주장은 다르게 나왔다.

2018년 <노컷뉴스>와 만난 한 전능신교 탈퇴자는 “중국서 박해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서 “(공안이)처벌은 하지 않았고 전능신교의 위해성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해 수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법무부 측은 종교 난민이 가장 많지만,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2014년 1월부터 올해(5월 말 기준)까지 전체 난민 신청자는 9만1748명이다. 종교 난민 신청자는 1만9459명으로 가장 많다. 이 중 난민 지위는 987명만 인정됐다. 종교적 난민 인정 수는 개인정보라 파악할 수 없는 만큼 일부 불법체류자에게는 남용의 소지가 있다. 종교 난민을 빙자해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난민으로 인정받은 판례도 존재한다.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로 본국서 박해받을 근거가 다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손 놓은
법무부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송각엽 부장판사는 이란인 A씨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송 부장판사는 “종교활동을 공개적으로 못 하는 자체가 박해”라고 설명했다. 앞서 A씨는 2021년 5월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A씨는 김세진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종교는 물론, 형제들이 유산을 빼앗으려 신고해 체포·구금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기독교인 태국인 여성과 한국서 결혼도 했다.

A씨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의혹은 있다. 법무부는 A씨가 실제 교회에 나간 게 8년간 4번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당시 판결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개종으로 인한 박해로 난민을 인정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난민 신청자가 사업 목적으로 들어온 것처럼 속인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국제협약에 따라 처벌하지 않았다. 이란인 B씨는 2016년 ‘한국 기업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며 단기 상용 사증(비자)을 신청했다. 이 초청장은 B씨가 브로커에게 4700달러를 주고 구했다.

브로커는 초청장 구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의 말대로 한국 기업에 “직접 만나고 싶다. 비자를 받을 수 있게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하자 손쉽게 구했다. B씨는 이렇게 받은 비자로 입국해 2016년 난민 신청을 했다. 법무부는 신청을 기각했다.

검찰은 2018년 B씨가 한국 대사관을 속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같은 해 9월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한 B씨는 난민 지위를 둘러싼 행정소송서 승소했다. 


난민 신청자
처벌 대상 제외

B씨는 2020년 말 ‘기독교 개종’을 이유로 난민 신분이 인정됐다. 대법원은 “난민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 형사재판서 형을 면제할 근거 조항이 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은 ‘난민이 불법으로 입국하거나 불법으로 체류한다는 이유로 형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해 이듬해 3월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사유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다. 예멘 정부군과 반군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내전을 벌이고 있다. 2018년, 제주로 들어왔던 예멘인 561명 중 549명이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당시 2명은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412명은 인도적 체류가 허가됐으며, 최근 412명 중 한 명이 난민으로 인정됐다.

법무부는 난민 인정 사유에 관해 구체적 답변이 없었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체류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한 예멘인 하산은 내전이 시작된 2015년 쯤 한국으로 피신했다. 민병대의 합류 강요를 거부한 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안전, 정의, 질서, 법 속에서 살 수 있는 대안적 조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그 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부인과 자녀들을 탈출시켰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가족의 장기 거주를 허용하지 않고 퇴거를 압박했다. 한국은 이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산은 “가족과 재결합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난민인권센터 등은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구성권을 요구했다.


현재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매년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저수준이다. 2019년 기준 러시아 출신 난민 신청자들의 인정률은 미국이 41.3%다. 같은 해 기준 중국 출신 난민 신청자들의 인정률도 미국은 32.2%로 높았다.

반면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러시아·중국 출신 모두 0%다. 남용적 난민 신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인권 보호단체의 입장이 크게 갈린 탓이다.

허위 비자로 들어왔는데 처벌 불가
단기체류자는 ‘검지’ 지문만 채취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그럼에도 난민에 인색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난민협약 가입은 1992년에 했다. 난민법이 통과되면 심사 과정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서 난민으로 인정되려면 많은 양의 입증 서류가 필요하다.

또 입증 서류를 제출했다 하더라도 심사를 받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법무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난민 심사 대기 건수는 1만3890건이다. 심사관당 140건 정도를 처리해야 하는 양이다. 물리적으로 쉽게 처리하기 어려운 숫자로 난민을 향한 혐오 인식 때문만은 아니라는 증거다. 

이들은 ‘불법체류자’와 엄연히 다르다. 법을 어긴 범죄자가 아니라 ‘미등록 외국인’에 불과하다. 90일 이내 단기체류 외국인으로 들어와 불법체류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단기체류 외국인은 범죄를 저질러도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양쪽 검지 지문만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90일 초과 장기체류 외국인은 열 손가락 지문과 얼굴 정보를 등록한다. 난민 신청자도 마찬가지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이지연 경위는 지난 5월 학술대회서 “불법체류자의 열 손가락 지문 등록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단기체류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검지 외에 지문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검지가 훼손된 채 사망하면 신원 확인도 어렵다.

지문 등록을 두고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참여연대 등의 단체들은 “개인의 고유한 생체정보 보호가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김정식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장은 이날 “법과학적 타당성, 법과학 전문가의 증언이 보다 중요하게 취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한국보다 지문 채취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부는 2021년 1월부터 14세 이상~70세 미만 외국인의 양손 지문을 모두 채취하고 있다. 중국 방문을 위해 필요한 비자를 발급하기 위함이다. 기재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절대적으로 많다. 연봉과 상사 이름·연락처 등 훨씬 상세한 정보를 넣어야 한다. 부모 등 가족 정보 역시 이름만 입력하면 되는 미국 등과 달리 중국은 부모의 직업과 주소까지 넘겨야 한다. 

종교적 난민
1만9000여명

다만 지나친 정보를 요구하는 데에 대한 반감도 존재한다.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도 불편한 정보 수집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에 거주 중이라는 한 교민은 “비자 발급 과정에 요구하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 가족들이 오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난민 신청은 까다롭지만, 입국 심사는 간단하다. 단기체류자에 대한 절차를 소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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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