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요시사>는 ‘일요신문고’ 지면을 통해 억울한 사람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번에는 전 남편의 성범죄를 고발한 사연입니다.
학교, 화장실, 헬스장 탈의실 등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불법 촬영당할 위험에 노출돼있다. 실제로 전국서 매년 6000여건의 불법 촬영 범죄가 발생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촬영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 대대적으로 단속 중이지만, 그 성과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원나잇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이 전국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신고된 불법 촬영 건수는 총 3만9957건이었다. 전국 경찰 행정구역 기준 6년 내 불법 촬영 범죄 발생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서울 1만1797건 ▲경기 8476건 ▲인천 2348건 순으로 많았다.
불법 촬영이 이뤄졌던 장소는 ▲숙박업소 43% ▲공중화장실 36% 순이었다. 이런 이유로 공중화장실 등에 구멍이 뚫려 있는지 확인하거나 외부 화장실은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면 불법 촬영한 가해자가 받는 처벌은 미비하다. <한겨레>가 나체 불법촬영 사건(226건)에 대해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59건)에서 집행유예 비율은 89.8%(53건)였고, 벌금형 비율은 10.2%(6건)였지만, 피해자가 1명인 사건(167건)서 벌금형 비율은 26.3%(44건)로 증가했다.
법원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심각한 가해 행위를 해도 초범일 경우, 가벼운 선고를 내렸다. 육안 관찰이 가능한 피해자 신체를 불법 촬영하고 피해자가 여럿이더라도 가해자가 초범이면 재판부는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불법 촬영 사건 57건 중 초범 가해자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비율은 고작 3.5%뿐이었으며, 집행유예 비율은 96.5%에 달했다. 동종 전과자가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엔 집행유예 비율이 50.0%으로 줄었으며, 징역형은 50.0%로 늘었다.
컴퓨터 남겨져 있는 더러운 흔적
여자들 나체 사진·동영상 쏟아져
불법 촬영은 우리 삶과 밀접해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비슷한 일을 겪은 A씨도 마찬가지였다. ‘불법 촬영’ 사건은 A씨가 이혼한 뒤에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A씨의 전 남편 B씨는 캠핑 관련 사업을 했고 관련 카페도 운영 중이었다. A씨는 2021년 9월, 집에서 컴퓨터를 하던 중,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캠핑회원 닉네임’이라는 폴더를 발견했다. B씨는 평소에도 사진촬영을 많이 했고, 잘 찍는다는 말도 들었던 만큼 ‘카페 회원 사진이겠지’라며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해당 폴더가 다시 눈에 띄었고 시간이 있던 차에 폴더를 열어본 후 받은 충격으로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그 안에는 B씨가 성관계한 여성들 이름으로 폴더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폴더 안에는 여성들의 불법 촬영된 나체 사진이 수십장 들어 있었다.
촬영 장소는 ▲모텔 ▲화장실 변기 ▲세면대 ▲욕조 ▲침대였고, 피해 여성의 집으로 유추되는 침실도 있었다. 사진은 대체로 전신 나체 사진을 찍은 뒤, 성기만 확대해 찍은 사진이 가장 많았다.
A씨는 B씨와 이혼하기 전엔 그가 캠핑 카페 회원들과 함께 공장서 일하는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내줬기에 캠핑 카페 회원과 함께 있으면 으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사이 B씨는 3~5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대담하게 불법 촬영을 해왔다.
A씨는 컴퓨터의 나체 사진들을 불법촬영물 증거로 제출하면서 경찰에 고발했고, 조사에 나가 진술도 했다. 이후로 A씨의 삶은 불법 촬영물 증거 수집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B씨는 당당했다. 사진의 여성들과는 원나잇 관계였고, 피해 여성들의 연락처는 제공할 수 없다고 맞섰다.
전국 매년 6000여건 몰카 범죄
초범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
또 불법 촬영 원본이 저장돼있던 컴퓨터 본체는 B씨가 훼손해버려 추가 증거 확보가 어려웠다. 결국 지난해 6월, 1건의 무혐의 외에 모든 사례가 유죄로 인정됐지만, 고작 벌금 500만원에 그치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이 모르는 피해 여성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고, B씨가 운영하는 캠핑 카페에 사건 전말의 게시글을 올렸다. 게시글은 이내 삭제됐고 A씨는 강퇴 처리됐다.
심각성을 인지한 캠핑 카페 회원이 다른 카페 두 곳에 글을 올렸지만, 해당 글도 모두 삭제됐다. 현재 B씨는 A씨를 형사고소했으며, A씨에게 찾아가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애초 B씨는 이혼 전에도 가정폭력을 행사했다. 이혼소송 중 법원에서는 B씨에게 분노조절장애로 검사와 치료를 권유하기도 했다. 자녀의 면접교섭도 6개월 금지시키기도 했다.
A씨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A씨 자녀도 B씨의 폭력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는 만큼 두려워하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A씨는 추가 피해자 물색을 포기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A씨는 다시 피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이 마무리되고 1년 가까운 시점이 지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내 사진이나 영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연애 기간까지 포함하면 총 17년을 함께 살았다”며 “컴퓨터 속에 내 사진이나 영상은 없었지만, 혹시나 내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공포감이 너무 컸고, 두려움을 극복하느라 힘들었다. 이제는 내가 발견한 몰카 폴더 외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기존 피해자의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촬영물 유포?
불법 촬영 관련 연구진은 “법원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 자체와는 본질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피해자 수, 가해자의 동종 전과 여부, 범행 장소 등과 같은 요인들을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촬영 대상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가 촬영되거나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 같은 요소들이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은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일반인의 관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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