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답답한 연금 해법을 묻다 -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폴리페서에 책임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현재 한국의 연금 기금 적립액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다가올 미래에 기금 고갈로 인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함이 퍼져 있다. 이에 대해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갈된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갈은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문제다.” 사회복지학과 숭실대 허준수 교수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연금개혁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요시사>가 허 교수를 만나 현 국민연금 제도의 문제점, 개선책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허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공적연금 종류는?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는 전 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으로 구분돼있다. 국민연금(89.2%)은 1998년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수직역연금(11.7%)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이 있으며 소수의 관련 직군 종사자들이 가입한다.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반면, 특수직역연금은 많이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2030년 연금제도가 시한폭탄이 된다는 우려가 많다

▲사실 ‘시한폭탄’이라기보다는 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라고 써야 한다. 공적연금 종류에 따라 기금의 고갈시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현행제도 유지 시(국민연금 재정 추계 위원회 추계 결과) 적립 기금은 2040년까지 증가해 최대 1755조원에 이르고 2055년까지 유지된다. 현재 1000조원 정도 적립 기금이 있는데 이게 고갈되는 것이다. 


-한국은 연금 규모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기금 고갈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수급자가 증가해서다. 한국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서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화율은 2045년 30%에 달할 예정이다. 기대수명 역시 1970년 61.7세서 지난해 83.8세로 증가했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 고령인구도 빠르게 급증한다. 현재 2020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가 532만명인데, 앞으로 2055년이 되면 2119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핵심은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닥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리 대비하면 된다. 언론에 언제 받을지도 모르고 맨날 기금은 고갈된다고 짚는데, 이건 잘못된 보도다. 기금의 적립 방식이나 부과 방식은 한국이 전 세계 1등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문제는 뭔가?

▲출생율이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연금 수급자는 증가하고, 연금 납부자들은 감소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제 성장률도 둔화 중인데 연금 조성 재원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연금개혁이 필요하다. 

-결국 저출생 문제가 연금 문제까지로 이어지는 건가?


▲복지 선진 국가라고 하는 나라는 대부분 부과식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꺼내서 쓴다는 느낌인데 이 방식이 한국 정서에는 딱 맞다. 해외는 이미 기금이 고갈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낸 세금과 정부의 기여금을 통해서 현재 연금 수급자에게 지원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노인 인구 고령화 속도를 늦춘다. 연금은 결국 비율 싸움으로 젊은 사람이 많으면 된다. 미국의 고령화 수준은 한국보다 높은데 전체로 따지면 젊은 층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1년에 100만명씩 이민자들을 외국서 수혈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생산 가능 인구가 확 늘었다. 

-한국은 적립식을 택하고 있다

▲적립식 방법을 택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다. 이들 국가는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부과식도 일부 혼합하고 있다. 부과식만 하는 나라는 독일, 스웨덴, 일본이다. 독일, 스웨덴은 흔히 복지 국가로 불린다.

저출생으로 조성 재원 줄어들 것
과감하게 소득대체율 부과 높여야

독일은 보험료율이 18% 정도로, 연금 역사가 가장 길다. 부과식과 함께 재정 분배 기능을 통해 운용한다. 한국은적립식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부과식으로 하면 된다. 사실 기금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계성을 확보하지 않아 문제다. 

-연금 고갈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지금부터 23년 후까지는 탄탄하다. 5년마다 재정을 재계산해서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까 사회적으로 논의하면 된다. 완전히 소진되면 부과식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1인 1연금 제도로 가령, 가구에 4명이 있고, 노동시장서 일을 하면 4개의 연금이 있는 셈이다.

한국은 연금의 역사가 짧아 고령층은 연금이 아예 없거나 받을 수 있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다. 그분들에게는 연금의 이동을 보장하지 않았다. 

A라는 산업서 B로 이동하면 중간에 정산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이후로 납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년기에 접어드니 받는 돈이 없다. 한국은 연금 수급자 30%를 제외하고, 소득 하위 70%에 대해 정부가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초연금으로 20조원을, 국민연금은 30조원을 지출했다. 합치면 50조원 규모로 2021년 50만원서 60만원까지 증가했다. 가입자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기초연금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수직역연금의 기금 대부분은 이미 고갈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2001년 이미 고갈됐다. 2001년 처음 투입한 보전금은 현재 5조원 규모다. 군인연금은 1973년에 고갈이 된 상황이고, 올해 국고 약 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학연금은 2049년 고갈 예정이다. 변수는 기금 투자의 수익률이다. 투자 수익률이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을 2년 늦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금 보험료율 2%p 인상과 동일한 효과다. 최근 20년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4.5% 정도다.

-어느 부분을 먼저 개선해야 하나?

▲보험료율이다. 한국은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에 9% 보험료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기여율이다. 사용자가 4.5%, 노동 4.5%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또 소득대체율이라는 게 있다. 연금 수급자가 돼 과거 근로 노동 기간에 있던 급여서 소득을 얼마나 대체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지다. 100만원을 벌었으면 40만원을 받는다. 

고갈 후 부과식 채택해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실패

현재 국민연금 1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연금 수준은 60만원 전후인데 이 정도로는 소득 보장을 하지 못한다. 결국 기여율,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수급 연령 인상, 연금액을 정하는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금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또, 공적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경우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복지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서 활용하는 부과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해외는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가?

▲독일의 경우 보험료가 19.5%, 덴마크는 18%, 스웨덴은 16.5% 정도로 굉장히 많이 낸다. 소득 대체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물론, 많이 내는 만큼 돌려받는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외국 연금의 차이는 총가입 기간이다. 한국은 남성,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 25세를 전후해 노동시장에 진출했다가 45~50세 전후로 빠진다.

전체적인 정년 연령은 60세지만 대부분 50대에 일자리서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월급이 적어져 기여금이 줄어들고, 실업이 생기기도 한다.

외국은 연금의 역사가 100년 이상 된다. 대부분 일자리도 정년이 보장돼있어 퇴직 시 국민연금으로 받는 소득이 굉장히 높다. 그에 반해 한국은 일하는 기간이 20년 내외인 데다, 주 일자리서 나왔을 겨우 3대 업종으로 빠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총 소득 및 가입 기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즉,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의 주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보고서에 의하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회원국 평균은 42.2%고, 한국은 31.2%로 11%p가 낮은 셈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40년 가입 시 기준으로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군복무 ▲실업 크레딧 등 사회적 경제적 연금 약자에게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저소득자에 대한 국가 보험료 지원도 늘려야 한다. 

-연금의 가입 기간과 가입 대상도 고려할 사안으로 보인다

▲가입 기간, 가입 대상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외국 연금 가입자의 정년 연령은 65세 전후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정년 연령은 60세 미만이 대부분으로 외국보다 가입 기간이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가입 대상 확대는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중요한 정책 방안인데 가입자는 고령화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가입 대상을 확대하면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형평성 측면서도 중요하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다. 가입 대상 확대를 통해 소득이 낮은 사람도 가입하도록 하면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 대상을 확대(현재 10인 미만 사업장에만 적용)하고, 앞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보험료를 중앙정부가 소득계층별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역대 정부서도 계속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연금개혁이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건 사실이다. 여야가 협력해야 가능한 부분으로 협치를 해야 한다. 서로 공방만 벌이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처음 연금개혁을 띄웠을 때, 소득 대체율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면서 손을 댔다. 다음 주자가 노무현정부때였는데, 소득 대체율이 하락해 50%까지로 올리려고 했다.

노인만을 위한 제도 아냐
50년, 100년 뒤 미래봐야

하지만, 여야의 대립이 강했고 이 때문에 기초연금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국민연금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결국 핵심적인 제도 개선이 아닌, 땜질 처방한 것인데 현재 그게 30조원이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정부서도 연금개혁을 하겠다며 소득 대체율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 등의 네 가지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순히 방안만 제시하는 데 그쳤다. 

-윤석열정부도 연금 개혁을 띄웠다

▲윤석열정부 들어 국회 차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합의문 도출도 하지 못했고 그동안 논의 경과만 정리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한쪽은 보험료와 소득 대체율을 높여 온전히 노후 보장을 하도록, 다른 한쪽은 소득 대체율도 40%로 줄이고 보험료율도 줄이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만 수급 개시 연령이 2023년 63세, 2033년 65세 등으로 상향 조정되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공유했었다. 국민적 저항과 경제 상황도 개혁을 좌우하는 부분으로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 연령 상향 등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이 많아 저항에 부딪히기 쉽다. 

-여야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탈피해서 50년, 100년 뒤 미래를 봐야 한다. 초저출생의 초고령화 사회서 아이들도 줄어들고 노동자도 사라진다. 노인이 많아지면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데 돌파구는 국민연금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치권이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고갈 이야기만 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 자문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이 연금을 기획했던 사람들인데, 이들 폴리페서(Politicsfessor,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책임이 있다. 연금 기금의 고갈, 노후 소득 보장, 노인 빈곤, 저출생 인구 고령화 등이 함축적으로 섞여 있는데, 이를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연금은 지금의 노인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다. 미래에 노인이 될 세대와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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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