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토로>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A씨의 피눈물

“살았는데 슬프네요”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해 5월 서면 부근서 발생했다. 전과 19범인 이모씨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묻지마 폭행 및 성폭력을 행사했던 게 핵심이다. 이 사건은 최근 한 유튜버가 이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면서 재점화됐다. 특히 피해자 본인의 노력으로 이씨의 추가 성폭력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상황을 들어봤다.

피해자 A씨는 지난달 31일 부산고법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참지 못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재판을 지켜봤으나 검찰이 가해자 이모씨에게 구형한 징역 35년에 미치지 않는 20년형이 나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피해자 A씨는 “1심서 12년이 나왔다. 출소 후에 보복하겠다고 하는데 내 목숨이 8년 연장됐다고만 생각한다”고 억울해했다.

“어떻게 살지
막막한 지경”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해 5월22일이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서면(부전동)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서 30대 초반 남성 이씨가 20대 여성 A씨를 폭행한 묻지마 범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A씨는 16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성 두개내출혈, 두피의 열린 상처, 뇌 손상, 영구 마비가 우려되는 우측 발목 폐용 상태 등의 피해를 입었다. 또 해리성 기억상실 장애까지 얻어 사건 발생 후 입원까지의 2~3일간의 기억이 없다.

한 달의 병원 치료 끝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됐지만,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치약과 샴푸를 헷갈리는 등 디자이너 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 이씨는 도주 후 여자친구 집에 숨어있다가 결국 사건 발생 3일 만에 부산 사상구의 모텔서 붙잡혔다.


검거 당시 이씨의 핸드폰에는 ▲서면 살인 ▲서면 살인미수 ▲서면 강간 ▲서면 강간미수 등을 검색한 흔적도 있었다.

피해자가 CCTV 사각지대에 있던 시간은 8분간이다. 이 동안의 행적은 미궁 속에 빠져있었다. 사건 당시 최초 발견자인 입주민과 A씨 언니의 증언에 의하면 발견 당시 상의가 올라가 복부가 보였으며, 바지 버튼과 지퍼가 열려 있고 벨트가 풀려 있어 체모가 보였다. 속옷은 바지 안 오른쪽 종아리에 걸쳐져 있었다.

A씨 측 변호인은 “벨트가 열기 어려운 구조로 돼있어 가해자가 성폭력을 계획하지 않는 이상 벨트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1992년생인 이씨는 경호업체 직원이었고, 이미 형사 입건 18회에 달하는 범죄자였다.

법조계에 따르면 그는 2007년에 각종 폭행 및 강간 등으로 여섯 차례 소년원에 입소했고, 18세엔 한 달간 퍽치기 및 폭행 등 30회의 사건을 저질렀다. 또 20대 초반에는 10대 성매매 사기단 사건의 리더로, 피해자들에게 흉기를 사용한 폭력 및 물고문 등을 자행해 언론에 언급되기도 했다.

심지어 2014년 부산 강도상해죄로 6년, 2020년 대구 공동주거침입으로 2년을 복역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길거리서 우연히 만난 피해자가 시비를 거는 것 같아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었고,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또 살인미수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판사의 판결과 검사의 기소가 잘못됐다는 등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부실했던 경찰 초동수사…성폭행 정황들 놓쳐
‘인면수심’ 전과 19범 가해자 밥 먹듯 감옥살이

전 여자친구 B씨의 경우 이씨가 수감 중 편지로 ‘피해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를 알고 있다’며 출소 후 보복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교도소 동기도 “이씨가 출소 후 보복해야 할 여자들이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죽여버리고 싶다. 그때 때린 것의 배로 때려 주겠다”고 말했다.

A씨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검사와 피고인만 해당)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와 재판기록을 볼 수 없었다. 요청조차 거절당했다. 때문에 이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역으로 A씨가 본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통해 A씨의 개인정보를 파악했다.

현행 민사소송법 162조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인 경우 소송기록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게 돼있고, 그 과정서 당사자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 앞자리 등이 공개된다.

그가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만 봐도 ‘가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씨는 재판부에 “착각과 오해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묻지마 식으로 상해를 가한 것에 대해 깊이 잘못을 느끼고 있지만 상해서 중상해 살인미수까지 된 이유도 모르겠고, 어떤 일이든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저와 비슷한 묻지마 범죄의 죄명, 형량도 제각각인데 왜? 많은 징역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과가 많다는 이유라면 그에 맞는 형 집행을 다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분은 회복이 되고 있으며 말도, 글도 잘 쓰는 것도 보면 진단서, 소견서, 탄원서 하나로 ‘피해자’이기에 다 들어주는 것 아니겠나. 검찰도 ‘제가 성폭력을 저질렀을 것’으로 끼워 맞추고 결국 아무런 흔적, DNA가 나온 것처럼 안 되면 말고 식이다. 살인미수 형량으로 12년은 너무하다”고 강조했다.

“너무합니다”
황당 반성문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선고공판서 제대로 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와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강간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피해자를 성폭력 범죄의 수단으로 범행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이어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았고 머리만을 노려 차고 밟았다”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피해자를 끌고 갔고 다량의 출혈이 있던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로 나아가려 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며 “현재까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떠한 의지나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증거로 드러난 폭행 사실만 인정할 뿐 나머지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수감된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보복의 의지를 드러내는 등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0월 1심서 그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과정서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입었던 청바지서 이씨의 DNA가 검출되는 등 추가 증거가 드러나면서 기존 혐의가 강간살인미수로 공소장 내용이 변경됐다.


피해자 본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씨의 성폭력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피해자를 검진했던 박성준 항문외과 의사는 “일반적인 항문 파열의 경우 6시 방향이나 12시 방향으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성폭행의 경우는 그 방향이 다발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이 사례에 해당된다”며 성폭행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신상공개법
개정 나서야”

정황상으로는 충분히 성폭행이 의심되지만 일반적인 재판서의 성폭행 인정은 가해자의 자백, 피해자의 직접 진술, DNA가 필요하다. 이씨는 성폭행에 대해 결백을 완강히 주장하고 있고, 피해자는 당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특히 경찰의 미흡한 수사로 인해 DNA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초기 이씨에게 중상해죄를 적용했지만, 검찰은 1심서 살인미수로 기소했다.

A씨는 2심 선고 이후 억눌러오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13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지치기도 하지만 다른 피해자분들이 씩씩하게 싸우고 있는 제 모습을 많이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1심보다 중형이 선고됐지만 ‘찜찜한 판결’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을 허용했고 이번 살인미수와 관련해서 동기는 중대범죄인 강간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수사 초부터 성범죄를 의심하지 못하다 보니 직접 체내 DNA 채취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1심에서는 성범죄와 관련된 직접 증거가 없어 공소장을 변경하거나 성범죄를 추가할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나 또한 의심은 갔지만 어떤 정황증거도 열람할 수 없어 이의제기도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1심과 다르게 인정된 부분들이 많다. 미필적 고의는 물론이고 반성을 하지 않고 성범죄임을 이미 본인도 도주 후 검색하고 있었으며 심신미약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1심에서는 가해자가 반성한다는 취지로 20년 구형서 8년이 감형돼 12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선 가해자의 불우한 환경, 직접적인 강간 증거 이외에는 감형 사유가 없어 보인다. 법률적으론 높게 나왔다고 볼 수도 있고, 국민들이나 제가 보기엔 적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검찰의 35년 구형서 15년 구형이 줄었고 딱히 감형받을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보시기에도 살인미수가 아니라 ‘우연히 살인미수에 그쳤다’고 생각하는데 그 죄질이 미수의 형량으로 그쳤다고 생각하기에 아쉬워하는 것 같다. 살아난 것에 대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곤란한 대목”이라고 토로했다.

1심 12년→2심 20년
“내 수명 8년 늘은 셈”

A씨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검찰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3심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다. 사실관계(사실오인 등)는 다시 판단이 불가하고 법리적 오해 등 정해진 상소 이유에 대해서만 판단이 가능하다. 검찰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A씨는 “양형부당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없다. 2심서 공소장 변경이 돼도 양형부당에 대해 항소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과연 사법체계는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게 회복적 사법이란 걸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에 범죄는 많고 그만큼 여러분들과 같은 피해자분들이 계시다는 뜻이다. 절대 혼자 불쌍한 인생을 살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도 여러분들을 위해 끝까지 있는 힘껏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번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후 “현행법상 기소 이후엔 신상 공개가 제한돼있다”며 “피해자 보호와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신상 공개를 하더라도 오래전에 찍은 사진만 제공돼 범죄 혐의자의 최근 모습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2019년 법무부 유권해석에 따라 경찰에선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당사자를 촬영하거나 공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범이거나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경찰이 촬영한 ‘머그샷(mug shot·인상 착의 기록 사진)’을 내놓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붙어 있는 낡은 사진만 공개된다.

“죽을 때까지
포기 않겠다”

언론의 신상 공개도 제한되고 있다. 대법원은 1998년 강력 사건 피의자가 실명을 보도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서 ‘무죄 추정의 원칙 등에 따라 실명 보도는 허용될 수 없고 공공성도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피의자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이에 앞서 언론이 실명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후 언론사들은 피의자의 실명을 알게 되더라도 수사기관이 공표하기 전까지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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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