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토로>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A씨의 피눈물

“살았는데 슬프네요”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해 5월 서면 부근서 발생했다. 전과 19범인 이모씨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묻지마 폭행 및 성폭력을 행사했던 게 핵심이다. 이 사건은 최근 한 유튜버가 이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면서 재점화됐다. 특히 피해자 본인의 노력으로 이씨의 추가 성폭력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상황을 들어봤다.

피해자 A씨는 지난달 31일 부산고법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참지 못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재판을 지켜봤으나 검찰이 가해자 이모씨에게 구형한 징역 35년에 미치지 않는 20년형이 나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피해자 A씨는 “1심서 12년이 나왔다. 출소 후에 보복하겠다고 하는데 내 목숨이 8년 연장됐다고만 생각한다”고 억울해했다.

“어떻게 살지
막막한 지경”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해 5월22일이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서면(부전동)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서 30대 초반 남성 이씨가 20대 여성 A씨를 폭행한 묻지마 범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A씨는 16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성 두개내출혈, 두피의 열린 상처, 뇌 손상, 영구 마비가 우려되는 우측 발목 폐용 상태 등의 피해를 입었다. 또 해리성 기억상실 장애까지 얻어 사건 발생 후 입원까지의 2~3일간의 기억이 없다.

한 달의 병원 치료 끝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됐지만,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치약과 샴푸를 헷갈리는 등 디자이너 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 이씨는 도주 후 여자친구 집에 숨어있다가 결국 사건 발생 3일 만에 부산 사상구의 모텔서 붙잡혔다.


검거 당시 이씨의 핸드폰에는 ▲서면 살인 ▲서면 살인미수 ▲서면 강간 ▲서면 강간미수 등을 검색한 흔적도 있었다.

피해자가 CCTV 사각지대에 있던 시간은 8분간이다. 이 동안의 행적은 미궁 속에 빠져있었다. 사건 당시 최초 발견자인 입주민과 A씨 언니의 증언에 의하면 발견 당시 상의가 올라가 복부가 보였으며, 바지 버튼과 지퍼가 열려 있고 벨트가 풀려 있어 체모가 보였다. 속옷은 바지 안 오른쪽 종아리에 걸쳐져 있었다.

A씨 측 변호인은 “벨트가 열기 어려운 구조로 돼있어 가해자가 성폭력을 계획하지 않는 이상 벨트를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1992년생인 이씨는 경호업체 직원이었고, 이미 형사 입건 18회에 달하는 범죄자였다.

법조계에 따르면 그는 2007년에 각종 폭행 및 강간 등으로 여섯 차례 소년원에 입소했고, 18세엔 한 달간 퍽치기 및 폭행 등 30회의 사건을 저질렀다. 또 20대 초반에는 10대 성매매 사기단 사건의 리더로, 피해자들에게 흉기를 사용한 폭력 및 물고문 등을 자행해 언론에 언급되기도 했다.

심지어 2014년 부산 강도상해죄로 6년, 2020년 대구 공동주거침입으로 2년을 복역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길거리서 우연히 만난 피해자가 시비를 거는 것 같아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었고,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또 살인미수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판사의 판결과 검사의 기소가 잘못됐다는 등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부실했던 경찰 초동수사…성폭행 정황들 놓쳐
‘인면수심’ 전과 19범 가해자 밥 먹듯 감옥살이

전 여자친구 B씨의 경우 이씨가 수감 중 편지로 ‘피해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를 알고 있다’며 출소 후 보복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교도소 동기도 “이씨가 출소 후 보복해야 할 여자들이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죽여버리고 싶다. 그때 때린 것의 배로 때려 주겠다”고 말했다.

A씨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검사와 피고인만 해당)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와 재판기록을 볼 수 없었다. 요청조차 거절당했다. 때문에 이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역으로 A씨가 본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통해 A씨의 개인정보를 파악했다.

현행 민사소송법 162조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인 경우 소송기록을 열람 및 복사할 수 있게 돼있고, 그 과정서 당사자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 앞자리 등이 공개된다.

그가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만 봐도 ‘가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씨는 재판부에 “착각과 오해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묻지마 식으로 상해를 가한 것에 대해 깊이 잘못을 느끼고 있지만 상해서 중상해 살인미수까지 된 이유도 모르겠고, 어떤 일이든 마땅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저와 비슷한 묻지마 범죄의 죄명, 형량도 제각각인데 왜? 많은 징역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과가 많다는 이유라면 그에 맞는 형 집행을 다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분은 회복이 되고 있으며 말도, 글도 잘 쓰는 것도 보면 진단서, 소견서, 탄원서 하나로 ‘피해자’이기에 다 들어주는 것 아니겠나. 검찰도 ‘제가 성폭력을 저질렀을 것’으로 끼워 맞추고 결국 아무런 흔적, DNA가 나온 것처럼 안 되면 말고 식이다. 살인미수 형량으로 12년은 너무하다”고 강조했다.

“너무합니다”
황당 반성문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선고공판서 제대로 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 공개와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강간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피해자를 성폭력 범죄의 수단으로 범행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이어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삼았고 머리만을 노려 차고 밟았다”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피해자를 끌고 갔고 다량의 출혈이 있던 피해자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로 나아가려 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며 “현재까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떠한 의지나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증거로 드러난 폭행 사실만 인정할 뿐 나머지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수감된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보복의 의지를 드러내는 등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0월 1심서 그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과정서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입었던 청바지서 이씨의 DNA가 검출되는 등 추가 증거가 드러나면서 기존 혐의가 강간살인미수로 공소장 내용이 변경됐다.


피해자 본인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씨의 성폭력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피해자를 검진했던 박성준 항문외과 의사는 “일반적인 항문 파열의 경우 6시 방향이나 12시 방향으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성폭행의 경우는 그 방향이 다발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이 사례에 해당된다”며 성폭행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신상공개법
개정 나서야”

정황상으로는 충분히 성폭행이 의심되지만 일반적인 재판서의 성폭행 인정은 가해자의 자백, 피해자의 직접 진술, DNA가 필요하다. 이씨는 성폭행에 대해 결백을 완강히 주장하고 있고, 피해자는 당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특히 경찰의 미흡한 수사로 인해 DNA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초기 이씨에게 중상해죄를 적용했지만, 검찰은 1심서 살인미수로 기소했다.

A씨는 2심 선고 이후 억눌러오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13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지치기도 하지만 다른 피해자분들이 씩씩하게 싸우고 있는 제 모습을 많이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1심보다 중형이 선고됐지만 ‘찜찜한 판결’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을 허용했고 이번 살인미수와 관련해서 동기는 중대범죄인 강간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수사 초부터 성범죄를 의심하지 못하다 보니 직접 체내 DNA 채취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1심에서는 성범죄와 관련된 직접 증거가 없어 공소장을 변경하거나 성범죄를 추가할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나 또한 의심은 갔지만 어떤 정황증거도 열람할 수 없어 이의제기도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1심과 다르게 인정된 부분들이 많다. 미필적 고의는 물론이고 반성을 하지 않고 성범죄임을 이미 본인도 도주 후 검색하고 있었으며 심신미약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1심에서는 가해자가 반성한다는 취지로 20년 구형서 8년이 감형돼 12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선 가해자의 불우한 환경, 직접적인 강간 증거 이외에는 감형 사유가 없어 보인다. 법률적으론 높게 나왔다고 볼 수도 있고, 국민들이나 제가 보기엔 적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검찰의 35년 구형서 15년 구형이 줄었고 딱히 감형받을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보시기에도 살인미수가 아니라 ‘우연히 살인미수에 그쳤다’고 생각하는데 그 죄질이 미수의 형량으로 그쳤다고 생각하기에 아쉬워하는 것 같다. 살아난 것에 대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곤란한 대목”이라고 토로했다.

1심 12년→2심 20년
“내 수명 8년 늘은 셈”

A씨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검찰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3심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다. 사실관계(사실오인 등)는 다시 판단이 불가하고 법리적 오해 등 정해진 상소 이유에 대해서만 판단이 가능하다. 검찰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A씨는 “양형부당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없다. 2심서 공소장 변경이 돼도 양형부당에 대해 항소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과연 사법체계는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게 회복적 사법이란 걸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에 범죄는 많고 그만큼 여러분들과 같은 피해자분들이 계시다는 뜻이다. 절대 혼자 불쌍한 인생을 살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도 여러분들을 위해 끝까지 있는 힘껏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번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후 “현행법상 기소 이후엔 신상 공개가 제한돼있다”며 “피해자 보호와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신상 공개를 하더라도 오래전에 찍은 사진만 제공돼 범죄 혐의자의 최근 모습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2019년 법무부 유권해석에 따라 경찰에선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당사자를 촬영하거나 공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범이거나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경찰이 촬영한 ‘머그샷(mug shot·인상 착의 기록 사진)’을 내놓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붙어 있는 낡은 사진만 공개된다.

“죽을 때까지
포기 않겠다”

언론의 신상 공개도 제한되고 있다. 대법원은 1998년 강력 사건 피의자가 실명을 보도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서 ‘무죄 추정의 원칙 등에 따라 실명 보도는 허용될 수 없고 공공성도 부족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피의자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이에 앞서 언론이 실명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후 언론사들은 피의자의 실명을 알게 되더라도 수사기관이 공표하기 전까지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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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