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최대 위기 선관위 복마전

소쿠리, 해킹, 특채까지 ‘터질 게 터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여겨진다. 민의를 모아 대표자를 뽑는 행위는 민주시민의 기본 권리이면서 의무다. 투표로 당락이 갈리는 선거 특성상 심판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기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선관위 내부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거와 국민투표를 관리하고 정당과 정치자금에 관한 사무처리를 담당한다.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와 같은 지위를 갖는 독립된 합의제 헌법기관이기도 하다. 제3공화국 제5차 개정헌법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각급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근거를 두고 1963년 1월21일 선거관리위원회를 창설해 오늘에 이르렀다. 

무너진
공정성

선관위는 올해 목표와 중점 과제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정한 선거 관리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기반 공고화 ▲미래지향적 선거관리 역량 강화를 내세웠다. 또 헌법상 독립기관인 점과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과 법률로 임기와 신분을 보장해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배제하면서 직무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선관위가 ‘중립성과 공정성 보장’을 일종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관위 내부서 드러난 의혹을 감추기 위한 도구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

방어에 급급한 선관위의 태도에 국민 여론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가장 공정해야 할 기관서 도덕성에 금이 가는 사안이 전 방위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최근 선관위는 간부의 자녀 특혜채용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선관위 내부 전수조사 중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등 기존에 확인된 사례 외에 추가로 의심 사례가 나왔다. 5급 이상 직원 전수조사 중 4‧5급 직원 자녀의 경력 채용 사례가 추가로 5건 이상 확인된 것.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만 최소 11명이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조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

전수조사 끝나지도 않았는데
최소 11명 이상 의혹 불거져

특히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맞물려 선거 기간 중 휴직 인원이 크게 늘어난 점도 알려졌다. 

대통령선거와 전국지방선거가 겹쳤던 지난해 선관위 직원 가운데 200여명이 휴직했다. 과거 10년 상황으로 비교했을 때 2번째로 많은 수치다. 선관위 휴직자 수는 선거가 있는 해에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선관위 직원이 선거를 고의로 기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2013~2022년 연도별 휴직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선관위 휴직자 수는 190명이었다. 이 중 육아휴직자는 109명이었다. 가장 많은 휴직자가 발생했던 때는 2021년으로 총 193명이 쉬었다. 그해에는 전국 12개구서 재보궐선거가 열렸다. 지방선거가 치러졌던 2014년에는 138명(육아휴직 120명), 대선이 있던 2017년에는 137명(육아휴직 112명)이 휴직했다. 


그동안 선관위 내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지나치게 늘어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선거가 없는 해에는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낮기 때문에 휴직을 미루다가 선거를 앞두고 업무 강도가 높아지면 휴직을 신청한다는 것이다.

선관위 공무원 규칙에 따르면 육아휴직은 분할 사용이 가능하다. 이때 임용권자는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및 한시임기제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빈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웠다. 이른바 ‘아빠 찬스’ 의혹을 받고 있는 간부가 자신의 자녀를 경력 채용 형태로 해당 자리에 넣었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오랜 관행과 특혜 채용 의혹이 맞물려 있는 셈이다. 선관위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배짱을?

국민 여론은 최악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메트릭스가 <연합뉴스> <연합뉴스TV>의 공동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18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선관위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그 결과 노 위원장 거취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3.3%가 ‘이번 사안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4.1%에 그쳤다.

노 위원장에 대한 사퇴 여론은 정치 성향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 72%, 국민의힘 지지자 79.6%가 노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보수‧진보‧중도층 모두 70% 이상이 노 위원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응답했다(무선 전화면접 10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여기에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두고 ‘우왕좌왕’하면서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선관위는 지난 2일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최종 입장을 정했다. 선관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고 이에 따라 직무감찰에 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위원들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헌법 제97조서 감사원의 감사 범위에 선관위가 빠져 있고 국가공무원법 17조에 ‘인사 사무 감사를 선관위 사무총장이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감사원은 감사원법에 감사 제외 대상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를 정해뒀지만 선관위는 포함되지 않아 직무감찰이 가능하다고 맞섰다.  

선관위는 국회의 국정조사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감사원 감사에는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추가 의혹이 거듭 불거지자 감사원의 강경한 입장에 균열이 가고 있다. 

10명 중 7명
노태악 사퇴

국민의힘 측도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감사원 감사 수용과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두 번째 항의 방문도 진행했다. 지난 8일에는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과 중앙청년위원회도 항의 방문했다.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와 별개로 선관위원 전원 사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를 10개월 앞두고 선관위원이 동반 사퇴하는 것은 조직 혼란을 야기한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은 기자회견서 “총선을 10개월 앞둔 상황서 집권여당이 시도 때도 없이 선관위를 찾아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선관위 중립성을 훼손하는 정략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을 앞세운 정부여당의 선관위 장악 시도를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며 “선관위에 대한 조사는 권한이 없는 감사원서 할 것이 아니라 국회서 국정조사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조용히 넘어갔던 선관위 관련 논란이 이제야 불붙듯 터지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이 과정서 감사원과의 전쟁이 또 한 번 재현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관위는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서 불거진 ‘소쿠리 투표’ 논란 때도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한 바 있다. 

소쿠리 투표 사건은 지난 대선서 코로나19 확진자의 투표용지를 소쿠리 등에 보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당시 선관위원장인 노정희 전 위원장은 사건이 일어난 지 40여일 만인 지난해 4월에야 사퇴 의사를 밝혀 ‘뒷북 사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감사원과 또 다시 힘겨루기
최악의 국민 여론에 밀릴 듯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 대신 자체 특별감사를 실시해 책임자를 문책했다. 지난해 11월 선관위는 ‘제20대 대선 사전투표관리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사전투표 관리 부실의 원인으로 ▲폭증하는 코로나19 격리자 등 투표 수요 예측 부실 ▲종전 임시기표소 투표 방식에 안주한 정책 판단 오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비합리성 ▲관계기관 협업 미흡 ▲인사·감사 기능의 구조적 제약 등이 꼽혔다. 

선관위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 선거정책실장, 전 선거국장, 선거1과장의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징계위원회는 각 인사에게 정직 3개월, 정직 2개월, 불문경고 등을 의결했다. 현재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찬진 전 사무총장(대선 당시 사무차장)은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북한에 의한 해킹 의혹까지 불거졌다. 60년 선관위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고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국가정보원의 보안점검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한 해에만 약 4만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는 것. 

선관위는 국정원의 보안점검 권고에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가 자녀 특혜 채용과 맞물려 여론이 악화되자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해만 3만9896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올해 4월까지도 9759건으로 1만여건에 이른다. 

선관위는 사이버 공격 피해 현황에 대해 “해당 사항이 없어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면서 “사이버 공격 시도 발생 시 사이버 보안시스템을 운영해 즉시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 행안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선관위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시도 7건 중 6건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가 국정원 등의 보안 컨설팅을 받을 경우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달 23일 한발 물러서 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과 3자 합동으로 보안 컨설팅을 수행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총선 앞두고
대폭 물갈이?

선관위는 사면초가 상태다. 감사원은 물론 국회·수사기관 등이 전방위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면 선관위를 비호 중인 민주당 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다. 선관위가 내세우는 ‘중립 방패’의 위력이 약해지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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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