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범죄 온상 ‘비대면 앱’ 뭐길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6.12 15:24:23
  • 호수 14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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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불을 켜고…나쁜 놈들 드글드글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비대면 앱은 한정적인 인간관계를 넘어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장점이 단점으로 변했다. 살인·성폭력 범죄자가 피해자를 물색하게 위한 방법으로 비대면 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오후 5시40분 부산 금정구에 있는 피해자 집에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했다. 지난 6일 부산경찰청과 금정경찰서에 따르면 가해자 정유정은 지난달 27일 새벽 긴급 체포된 이후 계속 범행을 부인했다. 

정유정
사건은?

이후 5일간 거짓 진술을 하다가 경찰의 증거 제시와 가족의 설득 등으로 5일 만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정유정이 범행 대상을 찾으려고 사용한 것은 과외 앱이다. 과외 앱은 학생이나 학부모 거주지 근처에 살고 있는 과외 선생님을 찾아 연계해준다. 학생들은 특정 부분 학습 보충을 원할 때 과외 앱을 활용한다.

과외 앱은 과외 선생님의 전공과 자격증, 이전 경력 등을 고려해 학생에게 선생님을 제공한다. 학생은 출신 학교와 성별, 과외 가격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과외 선생님을 선택할 수 있으며, 원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또 학생은 과외 선생님의 수시 합격 사례, 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검색과 열람이 자유롭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과외 앱을 사용하는 과외 선생님은 모두 본인 인증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는 신원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선생님은 개인 정보가 노출돼 범죄에 노출된다. 


여기서 정유정은 피해자로 명문대생을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20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간 별다른 직업이 없었으며, 평소 사회적 유대관계가 없었던 것을 지목해, 그가 피해자의 신분과 정체성을 훔치려 했다고 분석했다. 

피해자는 혼자 사는 여자였고, 정유정은 피해자 물건인 휴대전화, 주민등록증을 챙겼다. 이런 점을 볼 때 정유정이 검거되지 않았으면 피해자 행세를 하며 살았을 것이란 추측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과외 앱을 삭제했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누리꾼들은 “과외는 집에서 하는 게 대부분인데, 신원도 알 수 없고, 거짓 신원으로 등록할 수 있지 않냐” “원래는 과외 앱을 편하게 사용했는데, 이제는 해당 앱으로 과외 못 시키겠다” “원한이 있어서 살인한 것도 아니고,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

살인·성폭행·사기…먹잇감 물색
‘무서워서’ 서둘러 지우는 사용자

비단 과외 앱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비대면 만남 앱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피해자는 나이·신분을 망라하고, 이는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데이팅 앱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의 온상지다. 20대 남성은 2020년 7월 채팅 앱을 통해 10대 여성에게 접근했다. 20대 남성은 당시 자신의 나이를 19세라고 속였다.


이후 10대 여성에게 같이 게임 방송을 보자며 자신의 집으로 불러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 이 남성은 다른 10대 피해자를 상대로도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아동·청소년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를 알게 된 것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서다.

가해자들은 랜덤채팅 앱과 같은 ▲채팅 앱 44.7% ▲메신저 21.0% ▲SNS 18.9% ▲온라인 게임 8.2% 등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이는 2021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이 확정돼 신상정보 등록 처분을 받은 범죄자 2671명(피해자 3503명)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의 75.6%는 성인이었다. 범죄 유형별로는 강제추행(35.5%)이 가장 많았고, 강간(21.1%), 성착취물 범죄(제작·유포·판매·소지·시청 등 15.9%) 순이었다.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중학생을 자신의 차량으로 유인해 성폭행하려 한 남성이 전과 5범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적도 있다. 경기 평택경찰서는 최근 강간미수 혐의로 40대 남성 A씨를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지난 1월3일 오후 9시쯤 평택시 동삭동 한 노상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서 중학생 B양을 성폭행하려 했다. B양이 채팅 앱에 “담배를 사달라”는 글을 올리자, A씨가 “담배를 대신 사주겠다”며 B양에게 접근한 것이다.

이후 A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B양을 유인해 목을 조르는 등 위협을 가해 성폭행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B양은 A씨에게 도망친 뒤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인근 CCTV를 분석해 A씨 차량번호를 특정했고, 다음 날 오전 1시40분 서울 강동구 A씨의 집 인근서 그를 긴급 체포했다.

위험천만
랜덤채팅

체포 당시 A씨는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미성년자 의제강간 등 전과 5범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육군 장교가 채팅 앱을 통해 청소년 100여명을 성착취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1일 강원경찰청 군인범죄전담수사대에 따르면 강원지역 육군 모 사단 중위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미성년자의제강간 등 혐의로 구속됐다.

중위는 2019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채팅 앱을 통해 접근한 청소년 100여명을 상대로 신체 노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전송받는 방식으로 성 착취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수법은 계획적이었다. 채팅 앱을 통해 만난 피해자들과 심리적 유대관계를 형성했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또 피해자들이 사진을 보내주면 그 대가로 돈을 주고, 점점 노출 수위가 높은 사진과 영상을 요구해 협박했다. 심지어 일부 피해자와는 실제로 만남을 가졌고, 성폭행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건은 피해자의 신고로 알려졌다. 이후 군사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군인범죄전담수사대는 수사 결과, 피해자가 100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점점 좁혀오는 수사망에 중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개인용 클라우드 계정을 삭제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압수된 중위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외장하드 등에서 2시간 분량의 성 착취 동영상 1000여개를 발견했다.

비대면 앱으로 사기를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경우는 가짜 프로필을 내걸고 채팅 앱에서 사기를 친다.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C씨를 구속 송치했다. 채팅 앱에서 30대 여성을 속여 약 2억원을 뜯어낸 혐의다. C씨는 지난해 4월7일부터 18일까지 만남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30대 여성에게 53차례에 걸쳐 1억9900만원가량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남의 사진을
가짜 프로필

당시 C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남의 사진을 가져와 자신인 것처럼 ‘가짜 프로필’을 등록해 여성에게 접근했다. 환심을 산 C씨는 “운영 중인 업체 직원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해 돈을 탕진했다” “병원비가 필요한데 나중에 모두 갚겠다” 등의 핑계를 대며 돈을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던 여성은 자신의 사정에 공감해준 C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결국 12일간 대출을 받거나 주변에 돈을 빌려 C씨가 안내한 계좌로 돈을 보냈다. 


C씨의 범행은 여성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며 드러났다. 돈이 부족해진 여성이 가족에게 돈을 빌리려 하자 범죄임을 의심해 경찰서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C씨 신원을 지난해 특정했으나 소재 파악에 어려움을 겪던 중 올해 그의 병원 치료 내역을 확인하고 지난달 8일 인천 지역의 한 병원서 검거했다.

조사 결과 C씨는 앱 프로필과는 다르게 무직이었고 재산도 없었다. 또 과거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C씨는 여성에게 받은 돈 모두를 도박 자금으로 탕진했다고 진술했다. 

이런 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광주 모텔 청테이프 살인 사건’ 뒤엔 일면식 없는 불특정 다수와 만남을 알선하는 SNS 채팅 앱이 발단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2018년 12월4일 광주의 한 모텔서 50대 여성이 청테이프로 양손이 결박당한 채 숨진 것이 발견되면서 드러났다.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10분 광주 북구 유동의 한 모텔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50대 여성의 시신은 손과 얼굴 등이 청테이프로 감싸져 있었고, 옷가지가 벗겨진 상태였다. 50대 여성의 가족은 여성과 연락이 닿지 않자 실종 신고를 했고 경찰이 수색 끝에 발견했다.

심리적 유대관계 형성
착한 척 접근해 범행

50대 여성은 앞서 동생에게 일을 하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광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날 오전 6시50분에 해당 모텔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5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객실을 빌린 남성을 유력 용의자로 봤다.

해당 사건의 이면에는 SNS 채팅 앱이 있었다. 당시 50대 여성이 묵을 모텔 객실을 빌린 남성은 SNS 채팅으로 만난 사이였다. 가해자는 지난 3일 오전 6시 SNS 채팅을 통해 출장 마사지사인 피해자 50대 여성과 연락이 닿았다. 가해자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전남 장성에 있던 피해자에게 “15만원을 줄 테니 마사지를 해달라”며 광주로 올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가해자의 목적은 마사지가 아니었다. 자신의 성 욕구를 풀어줄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던 50대 여성은 가해자를 만나기 위해 그가 묵고 있었던 모텔을 찾아갔다.

가해자의 범행 진술은 귀를 의심할 만큼 황당했다. ‘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50대 여성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수법도 잔인했다. 가해자는 50대 여성의 목을 졸라 질식시킨 뒤 얼굴과 손을 청테이프로 감아 2차로 질식시켰다. 모습은 흡사 미라를 떠올리게 했다.

이들은 모텔서 만나기 전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채팅 앱 특성상 자신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생전 본적도 없는 사람끼리 만나서 살인이란 결과를 남긴 것이다.

비대면 앱의 익명성을 빌어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비대면 앱은 회원 혹은 익명의 사용자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을 공유하는 Q&A 중심의 SNS다. 이용자 절반 정도는 18세 미만 청소년으로, 학교폭력 등 다양한 청소년 문제가 사이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당 앱의 피해자인 중학교 학생 D는 “지난해 3월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틀 만에 왕따를 당했다. 온갖 폭언과 욕설, 그리고 어깨빵을 당했다. 학교서 말려도 계속됐다. 그리고 비대면 앱에 익명으로 욕을 했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화를 내면, 선생님이 그걸 읽고 화내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왕따도
앱으로

이어 “당시 선생님은 나한테도 잘못이 있다고 말을 했다. 결국 학폭위원회가 열렸고, 학폭은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비대면 앱으로 욕을 보낸다.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 학폭이면 죽을 수도 있다고, 살아 있는 게 대단하다고 했다. 심리검사 결과도 심각하게 나왔다. 비대면 앱으로는 익명으로 ‘죽어라’는 연락이 온다. 결국 내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것일까. 그게 답일까”라고 푸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 대 개인의 선의에 입각한 솔직한 정보교환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간서 중재하는 업체들이 양쪽의 정보가 옳은지 아닌지를 검증하고 확인해주는 단계가 있다면 보다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범죄 사범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해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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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