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상민 탄핵 시나리오

정치·정무 아닌 법률적 책임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시작됐다. 10·29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이 지속된 지 7개월여 만이다. 헌재가 시간을 그리 오래 끌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안이 중대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법조계서 이 장관이 정치·정무를 제외한 법률적 책임을 지는 게 무리라는 분석도 해당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통과를 주도했다. 국회 의석수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서조차 무리수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다. 헌재가 이 장관 탄핵을 기각할 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과거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도 헌재가 국회 측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례 없는
반대 위원

이 장관의 ‘탄핵 재판’ 키맨 역할은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맡았다. 헌재 심판 규칙 57조에 “소추위원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탄핵 심판을 수행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소추위원단 및 대리인단 구성은 김 위원장의 재량에 달린 것이다.

탄핵 반대파가 소추위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세 차례 탄핵 심판은 모두 법사위원장이 탄핵 찬성파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소속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소추위원이었고,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때도 이를 추진한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법사위원장은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소속 권성동 의원이었지만, 탄핵 찬성파였다. 권 위원장은 표결 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이 장관 탄핵의 정당성 자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야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헌재 심판 과정서 이전의 소추위원과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거셌다.

특히 장관 탄핵 심판은 전례가 없다. 헌재가 탄핵 심판을 인용한 경우는 단 세 차례다. 이 중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는 총 9명 의원으로 구성된 소추위원단이 꾸려졌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3명, 민주당 3명, 국민의당 2명, 정의당 1명으로 구성됐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소추위원단 구성 대신 67명의 변호사로 이뤄진 대규모 대리인단이 심판에 대응했다. 당시 김용균·박희태·강재섭 한나라당 의원과 박상천·함승희 새천년민주당 의원 등 율사 출신 현역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임 전 부장판사 탄핵 당시엔 사실상 법사위원장이 홀로 소추위원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소추위원으로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란 야권의 우려에 대해 “헌재는 민주당이 제출한 증거자료·참고자료와 함께 이 장관이 대응하는 자료를 보고 나서 판단할 것”이라며 “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드라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정사상 첫 장관 심판…의석수 과반 민주당 주도
‘특수본 무혐의’가 방증? 정치적 책임 고려 가능성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첫 변론기일은 지난 9일 열렸다. 이 장관 측 대리인단에는 김능환(72·사법연수원 7기), 안대희(68·7기) 전 대법관을 비롯해 윤용섭(68·10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이진만(59·18기) 변호사 등이 출석했다.

국회 소추위원 측에는 장주영(60·17기), 최창호(59·21기), 김종민(57·21기), 노희범(57·27기) 변호사가 대리인단과 김 위원장이 출석했다. 이날 변론기일은 새로 임기를 시작한 김형두·정정미 재판관 등 헌법재판관 9명이 모두 참석한 상태서 진행됐다.


앞선 두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에선 수명재판관으로 지정된 이종석·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사전에 제출한 서면을 토대로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채부 등을 결정했다.

이날 양측 대리인은 여러 쟁점 가운데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전 재난 예방 조치와 사후 재난 대응 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참사 발생 이후 부적절한 언행 등 국가공무원법상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섰다.

국회 측은 “헌법 제34조에서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며 “이 헌법 규정에 따라 재난안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과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재난 발생 시 초동조치와 지휘 등의 업무 수행을 위해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운영할 의무가 규정돼있다”며 “용산구청과 경찰서와 같은 지자체뿐 아니라 중앙정부도 공동으로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할 의무가 있는데, 이 장관은 이 같은 사전 재난 예방조치 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장관 측은 “헌법 제65조 탄핵제도는 고위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책임 추궁이 아니라 헌법이나 법률 위배를 이유로 고위공직자를 파면시켜 공직서 배제하는 규범적 심판 절차기 때문에 이 장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엄격한 헌법 규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이런 관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법률 평가는 재난안전법이 어떻게 규정하는지 초점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중대한 법
위반 핵심

재판부는 청구인 측 탄핵소추 사실 요지 진술과 피청구인 측 의견 진술이 끝난 뒤 소추사유 쟁점을 정리했다.

이 장관이 ▲다중밀집 인파사고 예방 계획 및 대책 마련 의무가 있는지, 있다면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는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운영 및 고도화 연계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맞는지, 맞다면 법률상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적시에 가동하지 않은 것이 맞는지, 맞다면 법률상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참사 발생 이후 대응 과정에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것이 맞는지, 맞다면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등이다.

이 외에도 ▲참사 당시 경찰력 등 대응 인력이 적시에 투입되지 않은 것이 맞는지 ▲재난 현장에서의 긴급구조 활동 지휘와 관련해 구체적인 권한 또는 의무가 있는지 ▲참사 대응이 헌법 제10조 및 제34조 제6항, 재난안전법상 의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에 위배되는지 ▲참사 발생 이후 장관의 발언이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하거나 위증에 해당해 국가공무원법상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이 있다면 그것이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 등이다.

재판부는 오는 23일과 다음 달 13일 두 차례에 걸쳐 행정안전부, 소방청, 경찰청 등의 책임자 4명을 증인으로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헌재가 신속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집중심리 가능성도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에도 두 달여간 심리가 진행됐고,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직접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헌정사의 위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집중적으로 심리한 바 있다.

이 장관 탄핵서 주된 쟁점은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 국면서 ‘중대한 법 위반’을 했느냐다. 탄핵소추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65조는 공무원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고, 헌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하면서 ‘탄핵 심판청구는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 누구도
장담 못 해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도 헌재는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 이유로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의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무능하게 대처했는가 ▲정치적으로 무능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대통령과 임명직인 장관은 헌법서 규정한 탄핵소추의 의사와 의결정족수부터 다르다. ‘중대한 법 위반’의 수준이 대통령 파면에 적용됐던 기준보다는 낮을 수 있고 경미한 헌법·법률을 위반해도 법리상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 인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헌재 헌법연구부장 출신 한 변호사는 “행안부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이라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를 보장할 권한과 책무를 위임받았다”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행사가 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실패했다면 안전사고에 대한 중대한 법적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탄핵 심판이 사법적 판단이지만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탄핵 심판 과정을 봤을 때는 정치적인 고려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김병록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헌재가 전직 두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행위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선 공통되게 인정하고도 인용·기각 등 각기 다른 판단을 한 것은 대통령의 임기 시점·미칠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 정치적 고려”라고 해석했다.


반면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언론 인터뷰서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있겠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탄핵 기각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조계 분석 갈라져 “재판관 성향도 중요”
집중심리 올 하반기 결과 따라 총선 영향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단순히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고 바로 탄핵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탄핵을 통한 파면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행안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조치해야 할 구체적 행위 의무가 인정돼야 하고, 이를 행하지 않았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최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도 행안부 장관의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한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을 이유로 탄핵을 인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순 해임이나 사임이 아닌 탄핵은 정치적으로 리스크가 크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결론에 따라 민주당, 국민의힘 중 한쪽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만 변론과 심리가 길어질 경우, 판결 결과가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서 파급이 달라질 수 있다.

정국 유동성이 증폭되는 22대 총선 시즌인 가을에 결과가 나온다면 타격을 입는 쪽의 내상이 더 클 수 있다.

탄핵 인용 결정 시 이 장관은 법적으로 완전히 면직되며, 장관 임기는 강제 종료된다. 이 장관은 헌정사상 탄핵된 최초의 장관이라는 불명예도 안게 되며, 이후 행보에도 심각한 차질이 생기게 된다. 특히 탄핵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치명적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향후 정계 입문 시도나 다른 임명직을 맡으려 할 때 골머리를 썩을 수 있다.

곤란해지는 건 그를 기용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정을 운영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는 식의 연대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서 윤정부 및 국민의힘 심판론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이 장관은 개각이 진행되지 않는 한 업무를 계속해서 수행하게 된다.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은 역풍에 직면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탄핵 자체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수반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이용한 발목잡기를 했다는 비판과 맞물려 총선서 민주당에 대한 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장관 탄핵 추진 전부터 역풍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려 했지만 당내 이견으로 불발됐을 정도다.

결과 따라
타격 불가피

지난 2월 초 민주당 지도부가 “국회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총괄 책임자인 이 장관을 직접 문책하는 데 나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탄핵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전환될 만큼 반발이 적지 않았다. 당시 한 의원은 “이 장관 탄핵안이 내년 총선 직전에 헌법재판소서 기각되면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선거를 망치려고 작정했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태원 참사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도 존재하고 있기에,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이 국민적 인식과 충돌해 이 장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정으로 비판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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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