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표현의 자유는 없다” 반영한 집시법 개정 절실

사실상 국회서도 방치…달라진 시위 성격 등 고려해야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회 및 시위가 관행화되면서 혐오 표현과 사실을 왜곡한 주장 등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명예훼손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별다른 제재없이 곳곳에 내걸려 있고 인신공격성 비방과 욕설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허위 사실도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다.

현수막 내용이나 구호 등이 시위 현장에만 머무르던 이전과 달리 시위 과정서 사용되는 혐오 표현이나 왜곡된 사실이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때문에 집회 및 시위 현장의 비방, 욕설 등 혐오 표현과 왜곡된 사실에 근거한 주장 등에 대해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다수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혐오 표현으로 도배된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
타인의 기본권 침해 심각


법조계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 공공의 질서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집회 또는 시위가 일상화되고 있다”며 “성숙한 집회 및 시위 문화 정착을 위해 달라진 시대 상황이 반영된 집시법 개정 등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광화문 A 기업 사옥 앞에는 ‘범죄 경영진 구속처벌’ 등의 명예훼손성 문구가 적힌 수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남역 B 기업 주변 현수막에는 정돈되지 않은 빨간색 글씨체로 ‘갑질하고 직무 유기하는 XX’ 등의 자극적 문구가 적혀 있다. 양재동 C 기업 인근에도 기업은 물론 관할 구청까지 비방하는 ‘대기업 X개 노릇 XX구청’ 등의 현수막이 설치돼있다.

이처럼 서울 도심에 위치한 국내 대기업 사옥 주변에서는 기업과 경영진 등을 비방하는 혐오스러운 표현의 현수막과 띠줄, 피켓, 배너, 천막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 거래처 외국인 관계자들의 방문이 잦은 글로벌 기업 사옥이라는 점을 노려 상대방을 비방하는 내용을 영문으로 작성한 현수막과 특정인의 이름 및 사진을 노출시킨 설치물 등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출퇴근 무렵에는 고성능 스피커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비방, 욕설 등 소음이 거리를 메우고, 혐오 표현 및 허위 사실 등이 담긴 시위 모습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거나 동영상 형태로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대기업을 겨냥한 시위에 유독 사실 관계를 왜곡한 주장이나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시위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시위자들의 믿음 때문이다.

여론과 이미지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대기업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협상 과정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 현장, 비방·욕설 등 혐오 표현과 사실 왜곡 등 만연
표현의 자유 영역 넘어 공공질서, 타인 기본권 위협하는 무분별 시위 확산

헌법이 보장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정당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닌,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상대를 적대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수년째 시위에 시달라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사옥 주변 시위는 이미 시시비비가 가려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허위 주장을 근거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법상 기업은 마땅한 대응책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감당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허위 사실, 모욕, 명예훼손 등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소요 시간이 길고, 승소하더라도 시위 자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패소하더라도 법원이 금지한 표현만 수정한 현수막을 새로 제작해 시위를 재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시위 현장의 비방과 욕설 등은 현실적으로 제재가 어렵고 법적 집회 소음 기준은 유명무실하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A씨는 혐오 표현 사용 등 무분별한 시위 방법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았지만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사적 이익 위해 혐오 표현, 모욕 등 타인의 기본권 침해하는 행위 근절 필요
민원성 시위, 인터넷 생중계 등 집회·시위의 성격과 방식, 과거와 근본적 차이
성숙한 시위 문화 정착 위해 시대상 반영한 집시법 개정 등 논의 본격화해야

법원은 A씨의 혐오 표현과 사실왜곡을 견디다 못한 기아가 자구책으로 진행한 소송서 ‘세계적 XX 기업, 고소고발 남발한 OO기업, Global company Kia Motors is a corrupt and inhumane company’ 등의 문구와 장송곡 등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A씨의 시위 행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 문구만 조금 수정된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명예훼손과 인격 모독성 비방 및 욕설 등도 여전하다. 출퇴근 시간에는 장송곡을 대신한 운동가요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며 기업은 물론 인근 시민들에게 소음 고통을 안기고 있다.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 기업 망신주기용 민폐 시위 탓에 해당 기업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기본권과 공공질서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집회와 시위는 과거 민주화,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주로 대규모 정치집회 형태로 발현돼왔으며, 이런 과정에서 대표적인 국민의 저항권 행사 방법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목적의 정당성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민주화가 성숙되고 다양한 이익집단이 출현하는 등의 시대적 변화는 집회시위의 목적과 성격을 공공의 가치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시켰다.


인터넷,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1인 시위, 릴레이 시위, 촛불 시위, 플래시 몹, 온라인 집회, 인터넷 생중계 등 집회 시위 방식 역시 다양해졌다.

이러한 달라진 환경 속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 모욕, 비방, 적대감 표출 등 혐오 문화를 조장하는 집회 시위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법적 공백, 느슨한 행정 규제 등 법률적·사회적 통제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공공질서를 위협하고,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민폐 시위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집회 및 시위의 목적과 성격, 방식 등이 달라진 만큼 그에 걸맞은 집시법 개정 등 적절한 규제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서도 헌법서 보호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집회 시위 방식을 제한하고 국민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집회 시위 현장의 혐오 표현 등을 규제하는 다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공질서 유지, 타인 기본권 보장 위해
집시법 개정 등 조치 나서야


개정안에는 ▲명예훼손, 모욕, 반복된 악의적 표현으로 인격권 침해 ▲사생활 평온을 해치는 행위 ▲소음·진동·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는 경우 ▲성별·종교·장애·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를 조장하는 폭력적 행위를 선동하는 행위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음향·화상·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돼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개인적인 사유 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다양한 성격의 집회 시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며 “과거 정치적 집회와 시위 등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집시법을 이제는 현실을 반영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aewo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