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따라잡기’ 행안부 큰 그림

경찰국 모자라 수사지휘권 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행정안전부가 변화에 나섰다. 장관의 실질적인 경찰 지휘권이 약해 지휘·감독 체계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과 닮은 꼴이라는 평가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권 범위가 넓어지면서 경찰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해당 안건이 추진될 경우, 경찰의 독립성이 증발할 수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8월 ‘경찰 장악’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정부조직법 등에 근거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경찰 안팎에서는 수사 독립성 침해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행안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술 더 떠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준하는 틀을 맞추는 분위기다.

정치적
중립 의무

경찰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1차 회의를 열고 안건별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위원회는 오는 23일 최종 권고안 발표를 앞두고 ▲현장경찰 역량 강화 방안 ▲자치경찰 이원화 방안 ▲국가경찰위원회 개편 방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 지휘·감독 체계 보완 방안 ▲경찰대학 개혁방안에 대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특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 지휘·감독 체계가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위원은 장관이 실질적으로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단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 등에서는 매우 높은 지휘·감독 책임 수준을 요구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경찰 심의·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의 성격과 위원들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국가경찰위 위원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훼손했을 때 책임 규정이 없다는 점과 현행법상 행안부 소속 자문위원회인데도 법적 성격에 관한 불필요한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지난해 12월 국가경찰위가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국가경찰위는 지난해 8월2일 제정된 ‘행안부 장관의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이 국가경찰위의 권한을 침해했으므로 무효라는 취지로 권한쟁의를 청구한 바 있다.

장관은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권이 없으므로 지휘규칙 제정행위는 위헌·위법하고, 지휘규칙 제정 시 국가경찰위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취지다. 헌재는 국가경찰위의 청구를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위원회는 이달 말 열릴 예정인 최종 회의서 제도발전 권고안을 확정한 후 발표할 예정이다. 박인환 위원장은 “오늘 회의서도 경찰대 개혁방안에 관한 의견 대립이 팽팽했으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표결해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휘·감독 체계 보완 방안 정해지면 추진
“법무부와 비교 후 논의…확정된 것 없어”

경찰제도발전위원회 관계자는 “최종 회의가 남았고 논의된 것들은 아직 추진 계획이나 검토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까지 논의된 건 법무부와 비교해 어떻게 장관의 권한과 경찰청 지휘체계를 보완할 것인지 여러 개선안이 나왔다”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도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안팎에선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국에 이어 사실상 법무부와 다를 게 뭐냐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한 간부는 “지난해 경찰국 신설로 독립성을 잃어버렸다는 인식이 늘었다”며 “행안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추진되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독립성 증발을 넘어 경찰이 곧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며 “검찰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을 때마다 마찰이 심했다. 우리라고 그러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이 장관은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게 근거였다.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인 건 이태원 참사 이후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질의서 “경찰에 대한 일반적인 지휘·감독권이 없다. 특히 개별적 치안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지휘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책임 회피를 위한 말 바꾸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경찰에 대한)지휘 권한은 있으나 그 지휘 권한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며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행안부는 국가 재난·안전의 주무 부처다. 정부조직법에는 행안부 장관이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 수립·총괄·조정 등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있다. 재난안전법도 행안부 장관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법무부와
뭐가 달라?

이태원 참사아 관련해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 내부서조차 나왔던 이유다.

비판이 거셌음에도 이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1일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전용기 탑승에 앞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귀국할 때는 이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경찰국의 업무 중에는 경찰의 중요정책 수립과 관련해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는 사항이 포함돼있다. 특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에는 경찰청장이 ‘중요 정책 및 계획의 추진 실적’을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그 밖의 법령에 규정된 권한 행사 및 책무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해 행안부 장관이 요청하는 사항’도 보고 대상이다. 이 같은 막강 권력을 쥐고 경찰국의 보고를 받는 이 장관은 인사제청권이라는 칼날까지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이 장관은 “행안부와 경찰을 연결하는 끈은 전혀 없다”며 “유일한 끈이라는 것은 경찰 고위직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인사제청권이 유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행안부 장관의 인사제청권이 칼날이 된 시기는 경찰국 신설과 겹친다.

기존에는 경찰청장이 인사안을 추천하면 행안부 장관을 경유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했으나 총경 이상(경정부터 대상)의 인사제청권이 실질화됐다. 형식에 그쳤던 제청권을 행사하면서 경찰 수뇌부를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경찰의 변화로 장관의 수사 개입 여지가 열렸다고 보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특히 검찰보다 인사와 지휘에 취약한 경찰의 특성상 현실화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걱정도 많았다.

힘 실어주는
윤 대통령


서울 직협 관계자는 “범죄수사규칙상 관할서장은 수사를 지휘하고 보고받는다. 서장의 지휘자는 경찰청장인데, 과거의 개선안은 행안부 장관이 청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결국 13만 경찰이 한순간에 장관 지시에 따라 수사하게 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경찰국 신설만으로 불만이 상당한데 법무부와 비교해 행안부 장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건 경찰을 대놓고 통제하겠다는 비판이 대다수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법무부도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 중인데 행안부 장관의 권한 강화 핑계로 보완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우려했다.

경찰국 신설 직전 당시 경찰 대부분은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이른바 ‘경란’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던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대기 발령됐고, 회의 참석 총경들에 대한 감찰도 진행됐다. 그러나 경찰 내부의 반발은 줄지 않았었다.

서울 광진경찰서 김성종 경감(경찰대 14기)은 당시 경찰 내부망을 통해 경감과 경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현장팀장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망에도 “나도 대기발령 시켜달라” “윤희근(당시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 등의 실명 게시글이 쏟아졌다.

경찰국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던 일선 경찰들도 징계 조치에 대한 비판 움직임에는 동참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활발했던 경란도 현재는 사그라든 상황이다. ‘검찰 하수인’이라는 시선을 극복하고 싶었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검수원복(검찰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에 대한 반발이 작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 영향력 약화 독립성 사실상 증발
검, 검수원복·경찰 간접 비판 여론전


현재 검찰은 직접 수사권 일부를 회복하고 여론전에 나섰다. 특히 마약 수사 등 가시적인 성공을 적극적으로 치하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태원 참사 보완수사 성공사례나 경찰이 연루된 사건 수사 결과를 강조하며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무력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3월6일부터 이틀 동안 부산지역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부산지검 서부지청이었는데, 개청 이후 검찰총장이 방문한 것은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부지청을 찾은 이 총장은 취재진과의 약식 기자회견서 “직원 격려 차원”이라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또 마약 수사 등 최근 부산지역 검찰이 발표한 사건들을 직접 언급하며 ‘수사 성과’라고 강조했다.

당시 이 총장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을 만들자마자 부산지검서 해외로부터 밀수한 필로폰 50㎏을 압수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의 행보를 두고 검수원복에 속도를 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 뒤 각종 성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특히 부산지검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을 신설한 뒤 시가 1650억원에 달하는 필로폰을 압수한 사건을 공개했는데, 이례적으로 직접 언론 브리핑까지 나섰다.

지난해 부산지검은 보도자료를 통해 불구속 송치된 성폭력 피의자의 2차 가해 정황을 포착해 피의자를 구속한 사건 등 5건의 보완수사 성공 사례를 모아 공개하며 “검찰의 적극적인 보완수사 결과”라고 자평했다.

동부지청은 해외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를 기소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에 묻힐 뻔한 일을 검찰의 시정조치 요구를 통해 밝혀냈다”며 검찰의 사법통제권한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교육감 선거 과정서 일어난 금품 제공 관련 사건을 공개하며 검사에게 재수사 요청을 받은 담당 경찰이 수사 기밀을 피의자에게 알려줬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검찰의 재수사 요청에도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유지한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해 4명 전원을 기소했다는 사실도 함께 포함됐다.

위기감
무기력

최근에는 무인단속장비 납품 비리 관련 수사 결과를 공개하며 현직 경찰이 수사 정보를 흘리고 수사를 엉터리로 진행해 구속했다고 강조하는 등 경찰의 수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검찰 직접 수사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어필하고 모양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일선의 수사 부담을 덜어주는 검찰의 보완수사 여지 확대 등에는 동의하면서도, 검수원복·수사준칙 개정 등 일련의 흐름 안에서 ‘경찰이 패싱당하고 있다’는 위기감·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수원복이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며 “지난해 검경협의체가 구성됐을 때부터 결국 법무부 뜻대로 될 것이란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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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