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조현천 전 기무사 사령관이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주도한 정황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사드 배치 찬성’ ‘탄핵 반대’ 여론 형성을 위해 기무사 인력과 예비역 장성 등을 동원했다. 조 전 사령관의 계엄령 문건에 관한 내란예비음모 혐의도 여전히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조 전 사령관의 사법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5년간의 해외 도피가 무색할 정도다.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사령관의 공소장 내용이 지난달 25일 공개됐다. 서울서부지검 형사 5부가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조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정치 관여 ▲업무상횡령 혐의로 지난달 14일 기소됐다.
도피 마감
공소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 전 사령관의 여론조작 시도는 크게 2가지다. 조 전 사령관은 탄핵 정국서 반대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또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지지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기무사 인력과 예산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벌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인 2016년 10월 당시 기무사령관 참모장에게 “현 시국 타개를 위한 예비역·보수단체 활용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참모장은 기무사 예비역지원과장에게 이 같은 지시를 하달했다. 지원과장은 ‘현 시국 관련 안보·보수세 대응 방안 보고서’를 작성해 참모장에게 보고했고, 참모장은 이를 승인하고 시행하도록 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SNS 활동 기반을 갖춘 보수세 활용 우호 여론 조성’ ‘안보 문제 강조 요지 신문 광고 게재 유도’ 등의 대응 방안이 기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기무사는 여론조작 활동에 조직적으로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지원과장은 휘하 부대원들에게 구체적인 여론조작 요령을 설명했다. 보고서에 기술한 대로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정책을 지지하거나 하야 요구 집회에 맞대응하는 집회·시위 개최 ▲보수 성향 언론에 관련 내용의 기사·칼럼·신문 광고를 게재, 언론 인터뷰 진행 등을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부대원들은 예비역·보수단체, SNS‧언론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예비역 장성, 보수 성향 언론인 등에게 요청 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행 전 사령관 공소장 내용 보니…
사드·탄핵 흔들기 예비역 장성 동원
실제로 당시 일부 예비역 장성들은 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거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2016년 11월10일~11일 여러 신문사에 비슷한 내용을 담은 칼럼이 여럿 게재됐다. 이 같은 옹호 칼럼‧광고는 지금까지 검찰이 파악한 것만 해도 대여섯개다.
검찰은 이 같은 게재 글이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국군 통수권자나 고위 권력층의 정치적 법적 책임은 도외시한 채 아무런 논리 없이 선동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더 나아가 11월8일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 반대 성명서 발표’나 11월12일 열린 ‘애국시민 국가수호 궐기대회’ 등 일명 ‘맞불 집회’를 주도한 이도 있었다.
검찰은 공소장에 “피고인(조 전 사령관) 등은 직권을 남용해 예비역 장성이나 보수 성향 언론인에게 대통령 지지 여론 조성을 위한 활동을 요청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며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찬양, 비방 내용의 의견을 유포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해 정치에 관여했다”고 적었다.
또 검찰은 “조 전 사령관이 2016년 3월께 경북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발표 이후 주민 반발이 거세자, 예비역 장성을 동원해 지지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대외정책첩보 소재 개발 사업비’ 명목의 예산을 장성들에게 활동비로 지급했다고도 봤다.
검찰은 공소장에 조 전 사령관이 예비역 장성 8명에게 각각 200만원씩, 총1600만원을 활동비로 지급했다고 적시했다. 지지 여론 조성을 위한 플래카드 제작 비용 등 활동비 1400만원이 추가 투입된 정황도 파악했다. 검찰 의견에 따르면 조 전 사령관은 사드 배치 여론 환기를 위해 최소 3000만원이 넘는 기무사 예산을 사용한 셈이다.
조 전 사령관이 직접 여론조작 요청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남긴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조 전 사령관은 한 간담회서 “국가 안보 관련 사드 배치라는 현안에 대해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아는 지인을 동원해 지지 여론이 조성되도록 긍정적인 활동을 해달라”고 발언했다.
이 간담회에는 예비역 장성 다수가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조 전 사령관이 2016년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혐의도 공소장에 함께 담겼다. 조 전 사령관이 부대원들에게 후보를 물색하거나, 관계자와 만나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 미국 출국 수사 스톱
입국 즉시 체포…보름 만에 재판
검찰은 이 같은 혐의를 묶어 조 전 사령관을 구속 기소했다. 조 전 사령관의 1차 공판준비기일은 다음 달 8일 열릴 예정이다.
조 전 사령관의 혐의가 더해질 여지도 남아 있다. 검찰이 계엄령 문건과 관련한 조 전 사령관의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여전히 수사선상에 올려뒀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엄령 문건이란 2017년 2월 기무사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계엄령 및 위수령 발동 및 조치 사항을 점검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사건을 가리킨다.
2018년 7월6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관련 문건 전문이 공개됐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군은 탄핵 기각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이에 불복하는 시위가 벌어지면 계엄령을 공포해 군 병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후 군인권센터는 당시 군 핵심 인사들을 내란예비음모 및 군사반란예비음모 혐의로 고발했다. 군과 검찰은 합동수사단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고발 대상이자 사건 실체 규명의 핵심으로 꼽혔던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12월경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였다. 조 전 사령관이 도피생활을 이어가자 합수단은 끝내 기소중지 처분으로 수사를 잠정 중단했다.
계엄령 문건도?
수년간 답보상태였던 수사는 조 전 사령관의 귀국을 계기로 재개됐다. 조 전 사령관은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조 전 사령관을 입국 즉시 체포했다. 검찰이 사건 수사와 기소를 일사천리로 진행하면서, 조 전 사령관은 입국 보름 만에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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