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어서 성긴 듯하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격언이다. 최근 검찰총장이 검찰 간부 앞에서 이 격언을 인용했다. 검찰 수사에 맞서 ‘방탄’에 나선 야당 대표를 겨냥한 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회의원, 당 대표 등 겹겹이 입은 방탄조끼의 위력이 확인됐다. 검찰의 창은 방탄조끼를 뚫고 급소 바로 앞까지 밀려들어갔다. 내부 반란이 검찰의 창에 힘을 더했다. 대선 패배 이후 주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탄조끼를 챙겨 입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예상치 못한
반란표 당혹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초 ‘압도적 부결’을 예상했던 민주당 지도부는 ‘가결 같은 부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69석을 갖고도 당 대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지층에서 터져 나왔다.
민주당에서만 3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기권과 무효표를 더하면 반란표 수는 더욱 늘어난다. 민주당 비명계(비 이재명)는 이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 표결에서 실력 행사를 한 만큼 다음 표결을 무기로 삼고 있다. 반면 이 대표와 친명계(친 이재명)는 ‘대표 사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대표는 ‘진퇴양난’ 상태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본인 의지로 내릴 수도 없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대표직을 사퇴한다는 것은 공천권을 내려놓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대표로선 공천권이 가장 큰 무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검찰이 또 한 번의 구속영장 청구를 예고한 상황에서 이 대표의 입지는 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3대 사법 리스크’인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앞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이 대표의 발목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기 때문. 검찰은 지난해 이 대표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재판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지난해 9월8일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22일 방송 인터뷰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 개발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2020년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
변호사비 대납·사법거래 의혹으로
김 전 처장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21년 12월21일 성남도개공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후 선거법 소송이 시작된 뒤에야 김 전 처장을 소개받아 알게 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의 진술, 유가족이 공개한 사진 등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이 대표가 변호사 시절부터 김 전 처장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검찰은 ▲2009년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에 이 대표를 ‘이재명 변호사’로 저장한 점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 호주·뉴질랜드 출장에 동행하면서 골프를 친 점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제1공단 공원화 사업 관련 대면보고를 여러 차례 받은 점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한 발언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에 따라 저희가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용도변경을 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취득하는 것은 성남시에서 수용할 수 없으므로 성남시가 일정 수익을 확보하고 업무시설을 유치하겠다고 했는데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도 말했다.
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성남시가 국토부로부터 4단계 종상향 용도변경 요청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했다. 성남시의 자체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모른다더니…
증거 나왔다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두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일괄 기소했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의 소명을 듣기 위해 출석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재판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당이 연계돼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대선후보로 낸 민주당으로도 불똥이 튀게 되는 것.
당장 재판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을 잃게 된다.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되기 때문에 차기 대선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민주당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선거비용 434억원(선거비용 431억원+기탁금 3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65조(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제265조2(당선무효된 자 등의 비용 반환)에 따라 대선후보가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으면 중앙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선거비용을 후보 추천 정당이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 대표는 과거 대선후보로 가는 길목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라는 산을 만난 바 있다. 항소심까지 벌금 300만원으로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돼 링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와 지금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 이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받았다.
대선후보
발판 됐다
쟁점이 된 건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1‧2심 모두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선거법 위반 혐의는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특히 2심은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면서 대선을 준비하던 이 대표에겐 치명타인 결과였다.
당시 이 대표는 TV 토론회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며 모친 등 다른 가족이 진단을 의뢰한 것이고 자신이 “최종적으로 못 하게 했다”고 답변했다.
실제 이 대표의 가족이 2012년 이재선씨에 대한 조울증 치료를 의뢰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다만 이 대표가 이재선씨의 강제입원 절차 개시를 지시한 것도 재판 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TV 토론회 발언이 허위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5로 무죄 취지에 손을 들었다.
이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당시 이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바짝 뒤쫓고 있던 때였다. 대법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한 이후 이 대표는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린 끝에 민주당 최종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대법원의 판단이 이 대표를 정치적 거물로 만들어준 셈이다.
당선무효면 민주당도 폭망
선거비용 434억원 물어내야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나비효과’가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당 재판을 둘러싸고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은 ‘사법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가 재판 전후로 권 전 대법관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 대법원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하는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하면서 매월 1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거액을 받았다는 ‘50억 클럽’의 멤버로도 지목된 상태다.
쌍방울그룹이 연루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맡은 변호사 수임료를 쌍방울이 전환사채 20억원, 현금 3억원 등으로 대신 지불했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변호사비로 3억원가량 지급했다’고 밝혔는데, 이 발언이 허위라며 시민단체 ‘깨어있는 시민연대당’이 2021년 10월 이 대표를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금고지기 김모씨가 구속 기소되면서 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여기에 대북송금 의혹까지 함께 불거졌다. 김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해 북한에 3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한 것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비롯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새다.
첩첩산중
벼랑 끝
이 대표는 지난 3일에 이어 격주로 금요일마다 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정식 공판에는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해야 한다. 재판부는 오는 17일과 31일도 공판기일로 지정했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공소제기 후 6개월 안에 1심 선고를 권고하고 있다. 재판과 검찰 수사, 구속영장 청구 등 이 대표 앞에 놓인 산은 매우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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