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산’ 이재명 선거법 재판 막전막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어서 성긴 듯하지만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격언이다. 최근 검찰총장이 검찰 간부 앞에서 이 격언을 인용했다. 검찰 수사에 맞서 ‘방탄’에 나선 야당 대표를 겨냥한 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회의원, 당 대표 등 겹겹이 입은 방탄조끼의 위력이 확인됐다. 검찰의 창은 방탄조끼를 뚫고 급소 바로 앞까지 밀려들어갔다. 내부 반란이 검찰의 창에 힘을 더했다. 대선 패배 이후 주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탄조끼를 챙겨 입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예상치 못한
반란표 당혹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초 ‘압도적 부결’을 예상했던 민주당 지도부는 ‘가결 같은 부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69석을 갖고도 당 대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지지층에서 터져 나왔다. 

민주당에서만 3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기권과 무효표를 더하면 반란표 수는 더욱 늘어난다. 민주당 비명계(비 이재명)는 이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 표결에서 실력 행사를 한 만큼 다음 표결을 무기로 삼고 있다. 반면 이 대표와 친명계(친 이재명)는 ‘대표 사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 대표는 ‘진퇴양난’ 상태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본인 의지로 내릴 수도 없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대표직을 사퇴한다는 것은 공천권을 내려놓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대표로선 공천권이 가장 큰 무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검찰이 또 한 번의 구속영장 청구를 예고한 상황에서 이 대표의 입지는 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3대 사법 리스크’인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앞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이 대표의 발목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기 때문. 검찰은 지난해 이 대표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재판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지난해 9월8일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22일 방송 인터뷰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 개발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2020년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
변호사비 대납·사법거래 의혹으로

김 전 처장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21년 12월21일 성남도개공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후 선거법 소송이 시작된 뒤에야 김 전 처장을 소개받아 알게 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의 진술, 유가족이 공개한 사진 등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이 대표가 변호사 시절부터 김 전 처장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검찰은 ▲2009년 김 전 처장의 휴대전화에 이 대표를 ‘이재명 변호사’로 저장한 점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인 2015년 호주·뉴질랜드 출장에 동행하면서 골프를 친 점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게 대장동 개발사업, 제1공단 공원화 사업 관련 대면보고를 여러 차례 받은 점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한 발언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에 따라 저희가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용도변경을 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취득하는 것은 성남시에서 수용할 수 없으므로 성남시가 일정 수익을 확보하고 업무시설을 유치하겠다고 했는데 국토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도 말했다.

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성남시가 국토부로부터 4단계 종상향 용도변경 요청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했다. 성남시의 자체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모른다더니…
증거 나왔다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두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일괄 기소했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의 소명을 듣기 위해 출석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재판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당이 연계돼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대선후보로 낸 민주당으로도 불똥이 튀게 되는 것.

당장 재판에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을 잃게 된다.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되기 때문에 차기 대선은 물 건너가는 셈이다. 민주당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선거비용 434억원(선거비용 431억원+기탁금 3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65조(선거사무장 등의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제265조2(당선무효된 자 등의 비용 반환)에 따라 대선후보가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으면 중앙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선거비용을 후보 추천 정당이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 대표는 과거 대선후보로 가는 길목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라는 산을 만난 바 있다. 항소심까지 벌금 300만원으로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기사회생했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돼 링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와 지금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 이재선씨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받았다.

대선후보
발판 됐다

쟁점이 된 건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1‧2심 모두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선거법 위반 혐의는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특히 2심은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면서 대선을 준비하던 이 대표에겐 치명타인 결과였다. 


당시 이 대표는 TV 토론회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는 상대방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며 모친 등 다른 가족이 진단을 의뢰한 것이고 자신이 “최종적으로 못 하게 했다”고 답변했다.

실제 이 대표의 가족이 2012년 이재선씨에 대한 조울증 치료를 의뢰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다만 이 대표가 이재선씨의 강제입원 절차 개시를 지시한 것도 재판 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TV 토론회 발언이 허위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5로 무죄 취지에 손을 들었다.

이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며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당시 이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바짝 뒤쫓고 있던 때였다. 대법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한 이후 이 대표는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린 끝에 민주당 최종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대법원의 판단이 이 대표를 정치적 거물로 만들어준 셈이다. 

당선무효면 민주당도 폭망
선거비용 434억원 물어내야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나비효과’가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당 재판을 둘러싸고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은 ‘사법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가 재판 전후로 권 전 대법관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 대법원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하는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하면서 매월 1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거액을 받았다는 ‘50억 클럽’의 멤버로도 지목된 상태다. 

쌍방울그룹이 연루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맡은 변호사 수임료를 쌍방울이 전환사채 20억원, 현금 3억원 등으로 대신 지불했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변호사비로 3억원가량 지급했다’고 밝혔는데, 이 발언이 허위라며 시민단체 ‘깨어있는 시민연대당’이 2021년 10월 이 대표를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금고지기 김모씨가 구속 기소되면서 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여기에 대북송금 의혹까지 함께 불거졌다. 김 전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해 북한에 3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한 것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비롯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양새다. 

첩첩산중
벼랑 끝

이 대표는 지난 3일에 이어 격주로 금요일마다 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정식 공판에는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해야 한다. 재판부는 오는 17일과 31일도 공판기일로 지정했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공소제기 후 6개월 안에 1심 선고를 권고하고 있다. 재판과 검찰 수사, 구속영장 청구 등 이 대표 앞에 놓인 산은 매우 험난해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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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