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설날 사건·사고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16 13:15:05
  • 호수 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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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주변을 살핍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망, 폭력, 이혼. 명절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누군가는 명절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단어다. 학교나 회사 등에 가지 않고 집에만 머무르니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명절에는 더욱 이웃을 살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사건은 면밀히 지켜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민족 대명절인 설날이 도래했다. 가족과의 재회가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설날이 추석과 함께 가장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는 날로 꼽힌다. 기본적으로 설날은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만 해도 너무 많아서 주부의 스트레스 요인이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해 운전하는 것도 힘들다. 고향이 가깝거나, 거주지가 고향이어도 예외는 아니다.

명절증후군
남녀차별

주부가 아니더라도 명절 스트레스가 심한 건 마찬가지다. 미혼이나 취준생들 사이에선 ‘명절날 이런 말 듣기 싫어 BEST 3’가 정해져 있을 정도다. 듣기 싫은 말에는 “앞으로 계획이 뭐니?” “어느 학교, 어느 직장에 갈 거니?” “전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등이 있다.

명절에는 자신의 연봉이나 자녀의 학업 능력으로 비교를 당하기도 한다. 급기야는 과거에 묻어뒀던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까지 생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다가올 때쯤이면 포털 연관 검색어에 ‘명절증후군’이 등장한다. 결국 명절이 주는 즐거움만큼이나 스트레스도 크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스트레스 수치는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국내 연구진은 평상시 휴일이나 공휴일보다 명절 연휴 때 유독 심장마비 환자가 많고, 사망률도 높다는 빅데이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심장내과 연구팀(전기현·권준명·오병희)은 2012~2016년 전국 응급실을 찾아 ‘병원 밖 심정지’ 13만9741건 중 극단적 선택을 제외하고, 내과적인 질환으로 심장마비가 발생한 9만5066명을 분석한 결과를 이런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대한심장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Korean Circulation Journal)에 발표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중 총 43일의 설·추석 연휴에 2587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 명절 연휴에 하루당 60.2명이 심정지로 쓰러진 셈이다. 이는 같은 조사 기간 중 평일, 주말, 공휴일에 발생한 심정지 환자가 하루당 각각 51.2명, 53.3명, 52.1명인 것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치다.

명절 때 발생한 심정지 환자는 병원 도착 전 사망률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다른 그룹보다 사망률이 높았다. 특히 음력이어서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설과 추석을 다른 해의 동일한 양력 날짜와 비교했을 때도 명절 연휴의 높은 심정지 발생 양상은 뚜렷했다.

명절에 발생하는 심정지는 낮과 저녁에 더 빈번했다. 시간대로는 오전 7~10시에 가장 큰 1차 피크가, 오후 5~7시 사이에 2차 피크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스트레스로 심정지 환자 발생률↑
상승하는 사망·폭력·이혼 지수


이주미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 논문에 대한 별도의 평론에서 명절 연휴의 높은 심정지 발생률을 명절 연휴가 끝난 후의 높은 이혼율, 설날과 추석 연휴 기간의 높은 자살률, 긴 연휴에 급증하는 가정폭력 건수 등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연휴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스트레스는 급성 심정지를 유발하는 큰 위험요소가 된다. 이는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에 심정지 사망률이 높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진단했다.

연구 결과는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리고 조금 더 처절하다. 지난해 추석에는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사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의 독거노인 수가 매년 증가하면서 65세 이상의 고독사 비율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두고 광주광역시에서 홀로 사는 6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광주 남구 양림동의 한 주택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A씨는 숨진 지 1~2주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A씨는 20여년 전 아내와 헤어진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총 3378명으로 최근 5년간 증가하는 추세다. 매년 남성 고독사가 여성 고독사에 비해 4배 이상 많으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은 50~60대로 확인됐다.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주택, 아파트, 원룸 순이다. 주택에서 발생한 고독사가 매년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최초 발견자는 형제‧자매, 임대인, 이웃 주민 순으로 많았으며, 기타 직계 혈족, 택배기사, 친인척, 경비원, 직장동료 등에 의해 발견되거나 신고됐다.

명절에 신변을 비관한 극단적 선택도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80대 독거노인이 자해를 시도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광주 북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 사는 82세 독거노인이 다쳐 쓰러진 것을 이웃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외로운 
노인들

신고 직후 소방당국이 출동해 노인은 광주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인은 목과 복부 등을 흉기로 찌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설 연휴에는 ‘혼자 술을 마시는 노인’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가족이 찾아오지 않아 아쉽고 헛헛한 마음을 술로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20년 5월 전남 여수서 술에 취해 자택 마당에 넘어져 있던 70대 노인을 마을 주민이 발견해 응급 이송했다. 같은 해 6월, 인천에서 70대 노인이 만취해 도로 위에 쓰러져 누워 있다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는 부산의 한 빌라에서 이웃 모녀가 살해당한 경우도 있다.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50대 여성 B씨는 자신의 정신과 약을 탄 도라지차를 범행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해 9월12일 부산 부산진구 한 빌라에서 이웃 주민이었던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B씨는 일정한 수익이 없어 병원비나 카드 대금 등을 내지 못하는 생활고를 겪었고, 가족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는 상태였다.

검찰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B씨가 이웃의 시가 600만원 상당 귀금속을 노리고 범행에 나선 것으로 봤다. B씨는 수년 전부터 자신이 복용하던 정신과 약을 절구로 빻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탔다. 이 약에는 수면제 성분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지난해 9월11일 밤 이 물을 들고 모녀를 찾아가 “몸에 좋은 도라지차”라고 건네 먹인 뒤 정신을 잃게 했다. 다음날 새벽 2시쯤 쓰러진 모녀가 의식을 회복하자, B씨는 모녀를 흉기로 찌르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앞서 명절에 사망률이 올라갔듯, 올라가는 다른 수치가 있었는데 바로 폭력이다. 경찰은 설 연휴 가정·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범죄 신고 등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예방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술이 웬수
끝없는 폭력


경찰은 지난 11일부터 오는 24일까지 2주 동안 설 명절 종합 치안 활동을 추진한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연휴 기간 가정폭력 재발 우려 가정 및 수사 중인 아동학대 사건 전수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재발 원인과 보호‧지원 필요성 점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최근 신고 이력, 보호조치 내역 등을 종합해 가정폭력·아동학대 고위험군 대상을 분류해, 지역 경찰뿐 아니라 유관기관과 공유해 보복 등 위험성 모니터링에도 나선다. 스토킹 등 반복 신고 사건은 살인 등 중대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과·팀장, 서장, 시·도청 등 3중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실제 연휴 기간 가정폭력 신고 등이 증가 추세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설 연휴 기간 하루 평균 전체 신고는 4만877건으로, 평소 5만1377건보다 20.5% 줄었지만, 가정폭력 하루 평균 신고는 841건으로 평소 608건보다 38.3% 증가했다.

두 차례의 가정폭력 유죄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C씨는 아내에 대한 가정폭력을 이어갔다. 2020년 12월31일 오후 7시 C씨는 술에 취해 전북 전주시 자택으로 들어와 아내와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다 눈에 띈 65㎝ 길이의 목검을 들어 아내를 향해 휘둘렀다. 맞은 부위를 감싼 채 쓰러진 아내의 몸에는 멍이 새겨졌다.

C씨는 아내 일상을 사사건건 간섭했다. 아내가 일하던 주점에 찾아가 다짜고짜 업주에게 욕설하고 영업에 훼방을 놨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C씨는 결국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제3형사부(고상교 부장판사)는 ‘과거 두 차례의 유죄 판결’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을 이유로 들었다. C씨가 아내를 폭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6월에는 자택서 가로 50㎝, 세로 11㎝, 높이 14㎝의 나무상자로 아내의 얼굴, 가슴, 팔, 다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피부는 퍼렇게 멍들고 찢어져 전치 3주의 진단이 나왔다. 이때 C씨는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3월에도 같은 일을 반복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C씨는 매번 법정서 “반성한다”고 말했고, 아내는 그때마다 남편의 말을 믿고 합의서, 탄원서를 냈다. 이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살인, 고독사, 극단적 선택까지
술 마시는 노인 사고 위험성 높아

2020년 추석 연휴에 50대 남성 D씨는 대전 서구 한 건물 외벽에 사다리를 대고 2층에 위치한 배우자 주거지로 침입,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죽이겠다”고 겁을 줬다. 앞서 D씨는 과거 배우자에게 가정 내 폭력 행위를 저질러 접근금지 등 임시조처가 내려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명절이 지나면 자연스레 이혼율도 올라간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설 명절 직전 2월에는 이혼 건수가 약 1만5000여건이었으나, 명절 직후 3월엔 1만6800여건으로 1800건가량이 증가했다.

2021년 추석이 있던 9월은 이혼 건수가 1만3700여건이었고, 직후 10월은 1만5200건으로 전달에 대비해 1400건이나 늘었다.

회사원 남편과 10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오던 가정주부 E씨는 오랫동안 쌓여온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추석 명절이 지나고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다. 

E씨는 명절에 모든 가족이 있는 자리서 시댁 어른의 막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E씨의 시댁 어른은 E씨에게 “너무 뚱뚱하다” “남편이 여자로 보겠냐”는 등의 모욕을 줬다. 게다가 시댁 어른은 남편의 밥을 잘 챙겨야 한다고 항상 잔소리했다.

실제로 E씨는 항상 남편의 밥을 잘 차려줬기 때문에 더 억울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됐고 심리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E씨는 남편이 중재해주길 원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결국 남편에게 명절을 이유로 이혼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성균관 의례 정립 위원회(이하 성균관)는 지난해 9월5일 ‘반성문’격의 기자회견문을 공개한 바 있다. 성균관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회견문을 통해 “유교는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서도 “현대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옛 영화만을 생각하며 선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결과 유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명절만 되면 ‘명절 증후군’과 ‘남녀 차별’이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명절 끝에는 ‘이혼율 증가’로 나타나는 현상이 유교 때문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며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후손의 정성이 담긴 의식인데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 불화가 초래된다면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이라고 돌아봤다.

불행한 연휴
이혼 늘어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명절에 발생하는 갈등, 싸움, 스트레스는 직접적인 이혼 사유가 되기는 어렵지만 고부 갈등, 정서 갈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중간에 배우자가 처신한 행동, 이로 인해 발생한 폭언이나 폭력 등이 있다면 충분히 사유가 될 수 있는 만큼 법률적인 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이혼을 준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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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