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성통상 후계자가 쏠쏠한 비상장사 활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은 주식을 기반으로 그룹 지배 구조의 꼭대기에 선 것도 모자라, 현금배당을 활용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챙긴 형국이다. 10년 넘게 소액주주에게 어떠한 떡고물도 건네지 않았던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의 행태와 극명히 대비된다.
1968년 니트 의류 전문 수출업체로 출발한 신성통상은 SPA ‘탑텐’, 남성복 ‘올젠’ ‘지오지아’ 등을 운영하는 패션 전문기업이다.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된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 안정적인 성장세를 거듭했지만, IMF 외환위기와 대우그룹 공중분해를 겪으며 법정관리 신세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돋보이는
지배 수단
대기업 계열사에서 법정관리 회사로 추락한 신성통상을 눈여겨본 이가 바로 염태순 현 신성통상 회장이다. 1983년 가방 제조업체 가나안상사(현 가나안)를 설립한 염 회장은 ‘아이찜’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2000년대에 접어들 무렵 가나안을 연 매출 1000억원대 회사로 성장시키는 등 걸출한 사업 수완으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염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2년 신성통상 인수를 결정했다. 당시 가나안컨소시엄은 3년 넘게 법정관리로 묶여 있던 신성통상을 품는 데 924억원을 쏟아부었고, 이 선택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신성통상은 새 주인의 품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올젠, 지오지아 등 기존 브랜드는 꾸준한 매출을 기록했고, 2012년 론칭한 탑텐은 SPA 시장에 안착했다.
그 결과 2002년 6월 말 기준 3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매출은 어느덧 1조5000억원을 바라보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가나안(가방 OEM), 에이션패션(캐주얼 브랜드 ‘폴햄’ 전개사) 등 그룹에 소속된 타 법인까지 합친 매출 규모는 2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번 사업연도에도 무난한 성적표가 예상된다. 매년 6월 말이 결산일인 신성통상은 1분기(2022년 7~9월)에 연결기준 매출 355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2873억원) 대비 23.59% 증가한 수치다.
수익성 역시 매우 안정적이다. 연결기준 1분기 영업이익은 264억원으로, 전년 동기(150억원) 대비 114억원가량 늘었다. 2021년 1분기에 5.2%였던 영업이익률은 1년 새 7.4%로 2.2%p 높아졌다.
어느새 신성통상은 모기업 격인 가나안을 외형적으로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다. 8월 결산법인인 가나안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4103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신성통상의 1/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총자산 규모에서도 신성통상(1조1050억원)과 가나안(4497억원) 사이에 큰 격차가 존재한다.
다만 가나안의 중요성은 단순 영업적 측면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오너 일가의 신성통상 지배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가나안의 위상은 여타 계열회사와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향후 승계 과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최근 들어 가나안의 신성통상에 대한 지배력은 강화되는 추세다. 2019년 6월 기준 28.62%였던 가나안의 신성통상 지분율은 이듬해 30%대를 넘긴 데 이어, 지난해 9월 기준 지분 41.65%(5985만8000주)로 올랐다.
가나안의 거듭된 신성통상 주식 사들이기는 ‘가나안→신성통상→해외 생산 계열사’로 이어지는 신성통상 지배 구조가 한층 공고해졌음을 의미했다. 이는 곧 지분 승계 절차가 사실상 완료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부친 낮추고…아들 높이고
이참에 터진 160억 잭팟
지난 8월 기준 가나안 최대주주는 지분 82.43%(47만8100주)를 보유한 염 회장의 외아들 염상원 가나안 이사다. 즉, 염 이사는 가나안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룹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위치로 올라선 셈이다. 가나안의 나머지 지분은 염 회장(10.00%, 5만8000주)과 에이션패션(7.57%, 4만3900주)의 몫이다.
현재의 가나안 지분구조는 염 회장이 염 이사에게 증여한 데 따른 결과였다. 염 이사가 가나안 주주구성에 이름을 올린 건 2009년부터다. 당시 가나안은 주식 수를 38만주서 58만주로 늘렸는데, 이 과정서 염 회장은 염 이사에게 지분 대부분을 증여했고, 70%를 웃돌던 염 회장의 지분율은 증여 이후 크게 낮아졌다.
가나안이 승계 구도에서 중심축 역할이라면, 에이션패션은 측면 지원을 맡은 양상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에이션패션의 최대주주는 지분 53.3%(32만9500)를 보유한 염 회장이다. 가나안(46.5%, 28만8000주)은 2대주주에 등재돼있다.
결과적으로 신성통상에 대한 에이션패션의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염 회장과 가나안의 실질 소유주인 염 이사의 지배력은 간접적으로 높아진다. 에이션패션은 장내 매수를 통해 2020년 2월20∼25일 사이에 240만주를 매입했고, 2월27일부터 3월23일까지 100만주를 더 사들이며 신성통상 지분율을 기존 15.3%서 17.6%로 끌어올렸다.
염 이사의 지배력이 높아지는 동안, 염 회장은 신성통상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으로 승계 절차에 힘을 보탰다. 2019년 6월 기준 21.60%였던 염 회장의 신성통상 보유 지분은 지난해 9월 기준 8.21%(1179만4272주)로 낮아졌고, 에이션패션(17.6%, 2537만6900주)이 염 회장을 대신해 2대 주주로 올라선 상황이다.
지분 승계의 중심에 선 염 이사는 그룹에서 착실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20년 신성통상 과장으로 입사한 염 이사는 현재 신성통상의 재무 담당 부장 겸 물류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가나안이 개최한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사내이사에 올랐다.
염 이사에게 가나안은 지배력의 밑바탕인 것은 물론이고, 현금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가나안은 2022회계연도(2021년 9월1일~2022년 8월31일)에 영업이익 668억원, 순이익 82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35%, 385% 증가한 수치다.
빼어난 수익성은 가나안이 대규모 현금배당을 실행에 옮긴 배경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2021년 60억원(배당성향 49.44%)을 현금배당했던 가나안은 지난해 배당 규모는 200억원(배당성향 24.24%)으로 대폭 키웠다.
최대주주인 염 이사는 보유 주식 수에 근거해 165억원을 지급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마찬가지로 가나안 지분 10.00%를 보유한 염 회장은 20억원, 7.57%를 쥐고 있는 에이션패션은 15억원을 수령했다.
사실상
정리 끝
직전년도에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던 에이션패션도 배당 행렬에 동참했다. 에이션패션은 결산배당으로 주주들에게 100억원을 지급했고, 해당 금액의 99.8%는 지분율에 따라 염 회장과 가나안을 향했다.
비상장사인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의 통 큰 배당 기조는 지난 10년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던 상장사 신성통상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신성통상은 2012년 2억4800만원을 현금배당한 이래 지금껏 현금배당에 나서지 않았다. 특히 2022회계연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신성통상은 무배당 원칙을 고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