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합’ 민주당-박지원 동상이몽 내막

성골이 돌아왔다, 하필 이때?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치 9단’ ‘능구렁이’ ‘마당발’ ‘킹메이커’ 오래된 정치 커리어만큼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채롭기만 하다. 약 6년 만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온 박 전 원장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 그에게 ‘배신자’로 낙인찍던 세력과 대립해야 하고, 새로운 동지가된 세력과 힘을 합쳐야 한다.

지난 한 달간 더불어민주당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거취를 두고 많은 내부 토론이 오갔다. 과거 민주당을 ‘배신’하며 문을 박차고 나간 그를 버려야 한다는 반대 의견과 ‘원팀’ 정신을 강조하며 복당시켜야 한다는 찬성 의견이 갈리며 물밑 다툼을 펼친 것이다.

민주당
산증인

팽팽한 의견 대립을 이어가던 중 이재명 대표가 찬성 측에 힘을 실어주며 박 전 원장의 복당은 결국 승인으로 일단락됐다. 박 전 원장은 민주당의 흥망성쇄를 함께한 잔뼈 굵은 정치인이다.

사실 그는 정치와는 인연이 크게 없는 사업가 출신이다. 본래 큰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 청년 사업가였다. ‘미주 이민 1세대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던 박 전 원장을 본격적으로 정계에 끌어들인 인물은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박 전 원장은 1970년대 ‘아메리카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이른바 ‘뷰티서플라이’라 불리는 가발 가게를 오픈해 큰 성공을 거두며 상당한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흑인을 상대로 하는 뷰티서플라이 사업은 당시 대한민국의 가발 수출을 선도하는 효자 산업이었고, 박 전 원장과 같은 소매점주들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유통 마진 등을 챙기며 돈을 벌었다.

국위선양이라는 이름하에 애국심을 느끼며 일하던 박 전 원장에게 김 전 대통령은 갑자기 찾아온 귀인이었다. 1980년 뉴욕경제인협회장을 지내던 박 전 원장은 <독립신문>이라는 주간지를 발행하던 김경재 전 총재에게 김 전 대통령을 소개받아 인연을 쌓았다.

김 전 대통령은 전두환정권 당시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후 미국으로 2차 망명을 떠나온 상태였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에 도착해 한인 교포들과 인권운동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미국 정치인들과 꾸준히 인연을 쌓아나갔다.

이때 인연이 된 미국 정치인 중엔 현재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 중인 조 바이든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생활 전반과 정치인과의 교류를 바로 옆에서 도왔던 인물이 바로 박 전 원장이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부터 정치적 동질감을 느꼈고, 관계를 한국에서까지 이어나갔다.

1987년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바람을 타고 사면을 받자, 박 전 원장은 모든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 전 원장이 비로소 중앙정치 무대를 밟게 된 건 국민의정부 출범 당시였다. 그는 당시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민주당 대선후보로 뛰었던 김 전 대통령 캠프에 들어가 대변인 역할을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박 전 원장은 곧바로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거치며 중앙정치 경험을 쌓았다. 명실상부 김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평가받은 박 전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정치 커리어를 이어나가려 노력했지만, 대북 송금 특검에 휘말리며 한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영원한 비서실장’ DJ 발탁 후 승승장구
2016년 분당에 가장 난도질한 주범으로

모두가 그의 커리어가 끝났다고 평가할 때였던 2008년 무렵,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전남 목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계복귀에 성공했다. 

이때 그에게 붙은 별명이 ‘정치 9단’이다.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 박 전 원장은 재선이지만 과감한 결단력과 정보력, 정치감각 등을 뽐내며 민주당을 휘어잡았고, 곧바로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당의 주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 기세를 몰아 2012년 3선에 성공했고, 같은 해 민주당 비대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시련은 곧 찾아왔다.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 안철수 전 대표가 동시 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돌아갔다. 박 전 원장은 공석이 된 당 대표 자리를 차지하려 전당대회에 뛰어들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2위로 밀렸다. 

어수선했던 민주당 분위기 속에 박 전 원장은 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 2016년 안철수 전 대표가 새로 창당한 국민의당에 전격 합류한 것이다. 당시 국민의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출범한 정당이었기에 목포에서 꾸준히 당선된 박 전 원장의 합류는 큰 호재였다. 

반면, 민주당에는 박 전 원장의 합류가 호남의 핵심기반을 잃는 뼈아픈 손실이 됐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국민의당이 호남 등에서 38석이라는 의석을 차지하며 ‘캐스팅보트’ 역할을 가져갔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 주인공 자리를 국민의당에 빼앗긴 셈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국민의당의 약진에 박 전 원장이 크게 기여했다고 믿고 있다. 문 전 대통령과의 불화로 민주당을 나온 안 전 대표가 만든 정당이지만 ‘호남 정신’의 산증인인 박 전 원장이 합류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고 평가한 것이다.

모든 정치인생을 민주당에서 보냈던 박 전 원장이기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고, 곧이어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이때 배신감을 느낀 이들 중에는 현재 민주당의 현역으로 있는 의원들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이다.

한 번 배신
두 번 배신? 


정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본인의 SNS에 “지난 1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나의 발인이 왜곡·편집돼 보도되고 박지원 전 원장이 ‘민주당 복당 보류 뒤 정청래에 사과라는 기사가 나왔다”며 “박 전 원장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이라고 쏘아붙였다. 

정 최고위원이 문제삼는 부분은 박 전 원장의 탈당 이력이다. 정 최고위원은 박 전 원장이 국민의당에 합류하며 민주당을 탈당한 이력을 두고 “민주당 당헌 84조에 경선불복 탈당자는 10년간 복당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그의 복당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박 전 원장이 전당대회에서 문 전 대통령에게 지자 이에 불복하고 당을 나갔던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박 전 원장은 2017년 대선 당시 문 전 대통령을 과도하게 비판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박 전 원장은 문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자 ’너무 오만하다‘며 그를 맹렬 비판했던 바 있다. 그는 김대중정권 말기 때의 이회창 전 총재에 문 전 대통령을 빗대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그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박 전 원장이 대표로 있던 국민의당 측은 매일같이 문 전 대통령의 정책과 인사에 대해 비판했고, 사안에 따라서는 당시 제1야당이었던 새누리당보다 그 수위가 높았다.


이때 정계에 등장했던 말이 ’문모닝‘이다. 매일 아침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아침을 시작한다는 신조어다.

친명(친 이재명)계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아시다시피 ’문모닝‘이란 말을 만들어낸 게 박 전 원장 본인 아닌가”라며 “등에 칼 꼽고 나간 정당에 다시 돌아오는 속내가 뻔히 보인다. 본인 사법 리스크 떄문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대로 많은 이들이 박 전 원장이 민주당에 기어코 돌아오려는 이유로 ’검찰 수사‘가 한몫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현재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관련된 참고인 수십명을 불러 소환조사했고, 이 중 몇몇은 구속 수사 중이다. 

특히,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박 전 원장과 함께 사건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검찰은 2020년 있었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망사건 당시 국가안보실이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결론내고 보고서를 만들어 윗선에 전달하게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안보실장
국정원장

즉, 북한군에 의해 억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인지, 월북을 하다가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거절당하고 피살당한 월북자인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이 개입해 이씨를 단순 월북자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의심은 당시의ㅐ 정치적 상황과도 맞아 떨어진다. 북한과 관계를 공고히했던 문재인정부는 재임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개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현재 여권은 당시 북한과의 관계를 공고히 해온 문재인정부가 이씨의 사망이 ’북한과의 관계를 망칠까봐‘ 일부러 사건을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씨의 사망은 당시 청와대에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아직 검찰의 수사가 끝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그 당시 사건을 조작할 동기는 충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 전 실장처럼 박 전 원장도 구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조작하려면 국가안보실 혼자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정원 또한 여기에 협조해야 하고, 그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박지원 전 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법원은 서 전 실장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사건을 맡은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의 중대성, 피의자의 지위,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춰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서 전 실장이 구속되자 마음이 급해진 쪽은 박 전 원장이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경우처럼 박 전 원장이 이대준씨 사망과 관련된 ’문건 삭제 지시‘와 평범한 시민을 강제로 ’월북몰이‘를 했다고 보고 있다.

교도소보다 당으로 가는 게 낫다?
친명계로? 야당탄압 프레임 필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지난 14일 박 전 원장을 소환조사해 그가 이대진씨를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려 했는지, 또 월북몰이에 불리한 증거들을 강제로 삭제하게 했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는 서 전 실장처럼 박 전 원장도 구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고, 박 전 원장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박 전 원장이 최근 복당에 대한 의견을 지도부 쪽에 강력히 어필한 것으로 안다”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가 검찰이 박 전 원장을 거세게 몰아붙인 시기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전 원장이 당 차원에서 그를 보호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복당을 최종 허가한 이유도 박 전 원장의 이 같은 바람과 전혀 연관 없지 않다. 민주당은 박 전 원장을 당내로 끌어들여 ‘야권탄압’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넣으려 하고, 이 대표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검찰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 수사로 양팔이 진즉에 잘려나간 이 대표가 전격적으로 박 전 원장을 받아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박 전 원장이 정치적 재기를 꿈꾸고 있는 것도 알고, 사법 리스크로부터 민주당 도움을 받으려하는 것도 안다”며 “그런 이해관계가 현재 이 대표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아예 없지 않아 보인다”고 <일요시사>에 알렸다.

이 대표도 박 전 원장과 함께 검찰로부터 ‘탄압받는’ 모양새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명계는 박 전 원장이 전통 민주당 정치인인 만큼 친문계 세력들과의 통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그에게 기대하고 있다.

비록 지난 탈당 과정에서 친문계에 많은 적을 만들고 떠난 박 전 원장이지만 그는 구심점을 잃은 친문계 의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있는 데다, 특유의 화술과 리더십으로 각종 협상에서 친문계와 친명계, 양측을 잘 조율할 수 있는 인물이다.

즉, 박 전 원장의 복당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이뤄진 것이다. 박 전 원장은 정치적 재기와 사법 리스크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하고, 친명계 지도부는 ‘야당탄압’의 프레임과 민주당의 대통합이 필요하다. 정 최고위원을 비롯한 몇몇 인사의 거센 반대가 있었음에도 박 전 원장이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해관계
대통합? 

민주당은 두 번의 선거 패배, 계파 갈등 고조 등으로 좋지만은 않았던 한 해를 보냈다. 민주당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박 전 원장의 복귀로 민주당이 내년엔 재도약할 수 있을지 민주당 지지자들은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와 대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기대가 현실이 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전 정권 수사, 감사원 파고 마무리?

전임 정권을 수사하는 데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다.

검찰이 수사를하거나 특검이 임명돼 수사하는 것이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이 봐왔던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번 윤석열정권 들어서는 유독 감사원이 활약을 펼친다. 

서훈, 박지원, 서욱 등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자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 것도 감사원이었으며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감사도, 이번에 있었던 통계청의 ‘집값 통계 조작 의혹’도 모두 감사원에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여의도에선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 출신 대통령이라 수사에 부담이 된 것 같다. 검찰이 감사원에게 그 역할을 일임하고, 그 다음 사건을 마무리짓는 게 요즘 관례”라며 “속이 뻔히 보인다. 어차피 목표는 문재인 대통령 구속”이라고 말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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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