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교촌에프앤비를 이끌어온 전문경영인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음 수순은 모두의 예상대로였다. 오랜 기간 경영 일선에서 자취를 감췄던 창업주가 복귀한 것이다. 이사회에만 집중할 거란 언급은 경영 복귀와 함께 8개월짜리 공염불로 일단락됐다.
지난 3월 교촌에프앤비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윤진호 사장을 단독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했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MBA 졸업 후, 보스턴컨설팅그룹, 애경, SPC그룹 등을 거쳤다. 회사 측은 컨설팅, 전략,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인 윤 대표가 회사의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지속 성장을 이끌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아니라더니…
윤 대표 체제에 힘을 싣기 위한 조직 개편 계획도 나왔다. 각 사업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자, 사업부별 대표 직책의 전문경영인을 두는 ‘5개 부문 대표, 1연구원’ 체계로의 개편작업이 표면화됐다.
윤 대표를 공식 선임하기 약 2주 전 사전작업이 이뤄졌다. 이 무렵 교촌에프앤비는 이사회를 거쳐 기존 조은기 대표를 해임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조 대표는 SK에너지 경영기획실 실장, SK에너지 CR전략 실장 등을 거쳐 지난해 3월 교촌에프앤비 대표이사에 선임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교촌에프앤비는 회사를 이끌던 조 대표를 불과 1년 만에 내친 모양새였다. 조 대표는 대표이사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한 건 물론이고, 정기주주총회를 거치며 사내이사에서도 해임됐다.
정기주주총회의 최대 화두가 대표이사 선임 안건이었음에도, 업계의 시선은 사내이사 선임 건에 쏠렸다. 정기주주총회가 열리기 보름 전 있었던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통해 창업주인 권원강 전 회장이 이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권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멀어졌던 건 2019년 3월 불거졌던 오너 일가 폭행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교촌에프앤비는 권 창업주의 6촌인 권순철 상무(당시 사업부장)가 직원을 폭행한 영상이 공개된 이후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권 사업부장이 폭행 사건 이후 퇴직했다가 1년 뒤 다시 임원으로 복귀했던 일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부정적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상장을 저울질 중이었던 교촌에프앤비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수습이 필요했다. 결국 권 창업주는 책임 통감 차원에서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고, 교촌에프앤비는 곧바로 소진세 회장을 축으로 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이사회 거쳐 일사천리
전임자로부터 전권 이양
이런 이유로 권 창업주의 공식적인 회사 복귀를 의미하는 사내이사 선임안은 관심도가 남달랐고, 당초 예상대로 권 전 회장은 신임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또 교촌에프앤비 지분 69.20%를 보유 중인 권 전 회장은 이사회 의장도 맡기로 했다.
조 대표의 해임 및 윤 대표의 선임, 그리고 권 창업주의 이사회 재진입이 일사천리로 매듭지어지자, 관련 업계의 시선은 소진세 회장에게 쏠렸다. 권 창업주가 경영 일선에서 자취를 감춘 직후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소 회장이 입지 하락을 겪게 될 거란 예상이 잇따랐다.
소 회장은 롯데그룹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인물이다.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장과 마케팅본부장, 롯데미도파 대표이사, 롯데슈퍼 대표,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등을 지냈고, 2019년 4월 교촌에프앤비 회장에 취임했다.
권 창업주의 이사회 재진입이 경영 복귀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월 말 만료된 소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되지 않았다는 게 이 같은 추측에 힘이 실리게 했고, 최근에서야 예상은 현실이 됐다.
최근 소 회장은 공식적으로 본인의 직책을 내려놓았다. 지난 3월 등기이사 임기가 종료된 이래 회장직만 유지해온 소 회장은 지난달 2일 사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소 회장의 빈자리는 결국 권 창업주가 메우기로 결정됐다. 지난 1일 교촌에프앤비는 권 창업주가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소 회장 퇴임이 권 전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로 연결된 셈이다. 사내이사에 선임되면서 경영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한 지 약 8개월 만이다.
권 창업주는 취임사를 통해 “현재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묘수는 결국 상생경영, 정도경영, 책임경영에 있다”며 “이 가치들 위에 세워질 새로운 비전과 성장동력으로 교촌을 인재들이 오고 싶어하는 100년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역시나…
이렇게 되자 관련 업계에서는 권 창업주의 경영 복귀를 이전부터 예고됐던 수순이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앞서 권 창업주가 국내외 경제 위기 상황에서 책임경영에 대한 의지를 밝혔던 것도 경영 복귀를 염두에 둔 수순이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