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안철수 오른팔 박선숙 역할론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26 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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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도 원순처럼… "정공법으로 대통령 만든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저는 안철수 원장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하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의 진심을 믿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선거전략통'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캠프의 선거총괄 역으로 자리를 옮겨 '안철수의 오른팔'을 자청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 가운데 안 전 원장 캠프에 합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선숙 전 의원이 어떤 인생사를 거쳐왔는지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다음 날인 지난 20일 민주통합당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전 원장의 대선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박 전 의원의 공식 명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안 전 원장의 선거를 총괄하는 선거대책위원장 격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측 인사가 안 전 원장 쪽으로 자리를 옮긴 최초의 인물이 됐다.

DJ정부 때 인연
"진정성 믿는다"

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며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해 시대의 무거운 숙제를 감당하기로 결심한 이상 안 원장의 새로운 변화에 함께하겠다"며 "당의 지도부와 문재인 후보,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해온 동료들과 저를 아껴주셨던 당원 동지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결정이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라는 큰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길 바라고 또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 당시 정보화시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안 전 원장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고, 그때 안 전 원장을 만나 우리 사회와 이웃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의 진심을 믿는다"며 안 전 원장과의 오랜 인연을 설명했다. 

이날 박 전 의원은 안 전 원장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 동행해 바로 곁에서 수행하며 대선정국이 끝날 때까지 안 전 원장 옆자리를 지킬 것을 예고했다.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실 공보기획비서관에 이어 최초의 여성 대변인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선 2년간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위본부장을 맡았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전략홍보부장, 2008년 18대 총선, 2012년 19대 총선의 선거대책본부장 등을 연달아 맡으며 선거분야의 '기획·전략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 지난 4·11 총선에 앞서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민주당 선거전략통서 안캠프 선대위원장
최초의 청와대 여성대변인 "일 잘한다"

지난 20일 민주통합당은 박 전 의원이 안 전 원장 측 대선캠프에 합류한 데 대해 '개인의 선택'이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음 날 우상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이 분이 사심을 갖고 친정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고, 좀 더 큰 판을 만들어보겠다는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어서 (민주당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의원이 안 전 원장에게 조력을 했다는 사실은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1995년 이후 오랫동안 민주당에서 활동해 온 박 전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당의 후보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안 전 원장 측으로 간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용광로 선대위'를 약속했지만, 이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선 과정에서 불만이 쌓인 비문세력이 안 전 원장 쪽으로 연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박 전 의원이 소속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평련은 고 김근태 상임고문계 인사들의 모임으로 민주통합당 내 최대 계파인 만큼 앞으로 안 전 원장의 우군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박 전 의원의 이탈에 따라 전·현직 의원들의 추가 이탈이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박 전 의원이 향후 예상되는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민주화에 청춘 바친
'386세대' 선두주자

안 전 원장 측 캠프의 선거를 총괄하게 된 박 전 의원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386세대'다.
그는 1960년 경기도 포천의 한 기지촌에서 태어나 미군이 철수하면서 동네 전체가 쇠락하는 걸 목격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치원이 없는 동네라서 다섯 살 반에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서울 이주를 결행한 덕분에 중·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닐 수 있었다.


박 전 의원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역사학과에 진학해 친구 따라 야학에 갔다가 학생운동을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70년대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유신 체제하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살아생전에 민주주의 된 나라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절망 속에서 숨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1983년 박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 참여하게 되고 이때 김근태 고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 박 전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민청련을 비공개 의사결정구조에서 민주적으로 토론해서 결정하되 정치적 탄압은 공개된 지도부가 감당하도록 만든 조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 고문이 민청련을 조직·활동하다 온갖 고문을 받고 고초를 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민청련 소속이었던 박 전 의원도 학생운동을 하다 군인에게 잡혀 많이 맞았다고 회상했다. 박 전 의원은 그 당시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했지만 김 고문을 비롯해 선배들 여럿이 고문당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 일들을 버텨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81년에 유인물 만들어 뿌렸다가 대공분실에 잡혀가 온몸을 구타당했고 85년 구로 동맹파업 지지시위 당시엔 닭장차 안에서 불을 꺼놓고 군인들의 군홧발에 사정없이 짓밟혔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밥값' 위해
의정활동 힘껏 해야 해

박 전 의원은 김 고문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다 정치에 떠밀리듯 들어오게 된 것이라 한다. 김 고문이 정치계에 입문하고 후배들이 선배를 돕기 위해 팀을 만들면서 박 전 의원의 정치인생도 시작된 것. 그렇게 넉 달간 함께 일하다가 1995년 6월 첫 지방선거 당시 김 고문은 박 전 의원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추천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대변인 및 공보수석으로 청와대를 지키며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박 전 의원은 이후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으로 활동하며 김 고문과 각별한 사이가 된다.

국회에는 지난 18대 때 비례대표로 입성해 경제금융 관련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1위 평가를 받는가 하면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박 전 의원은 18대 국회를 '최악의 몸싸움 국회, 난장판 국회'라고 정의하면서도 '보이스피싱 피해보전금 지급에 관한 특별법안'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입법화한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갈 때쯤 대개가 짐을 싸느라 분주할 때도 박 전 의원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저축은행 비리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박 전 의원은 2011년엔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선정한 2011년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수상했고 대규모 유통업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일 잘한다는 칭찬을 두고 박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최소한의 밥값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전 의원은 올해 4·11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민주당의 정권교체를 향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낼 수 없어 나라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됐다. 박 전 의원은 당시 서울 동대문갑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인이 고사한 뒤 어떤 당직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비례대표 초선인 그를 두고 '쉬운 지역구'를 받으려 한다는 뒷말도 무성했지만 불출마 선언으로 그러한 비판을 단칼에 쳐낸 것이다. 그 이후 박 전 의원은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야권 단일화를 주도했다.

고 김근태 고문과의 인연이 정치에 발들인 계기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MB와 한나라당의 복사판"

그러다 박 전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의 요청을 받고 공천 파문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임종석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4·11 총선을  총괄 지휘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불렸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기운 선거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에 박 전 의원은 가장 먼저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 자리를 사퇴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민주당의 여러 미흡한 점으로 인해,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충분히 받아 안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 결과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위원장의 새누리당이 지난 4년간 벌여왔던 문제를 국민이 용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지금까지 대외활동을 자제해 왔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박원순 범야권 단일화 후보 캠프에 민주당 몫으로 합류해 기획과 전략을 짰다. 이 같은 이력을 보면 향후 '문재인·안철수'단일화 논의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의원은 학생민주화운동, 환경부 차관, 국회의원 등 민주화 운동과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 모두를 두루 경험했다. 그런 그에게 각 영역에서 공통되는 핵심 가치를 물으니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대답했다. 그 연장선에는 휴머니티라고 하는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3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운동을 할 때와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각의 차이가 늘 존재했고 그것들을 좁혀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이 있는 동료의 의견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수인 국민의 생각과 바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냐"며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없애기 위해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을 두고는 "대선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과 MB의 한나라당은 정말 다른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 후보가 협력하지 않았으면, MB는 4대강도 부자감세도 재벌 편들기도 할 수 없었다. 박 후보의 새누리당은 전혀 새롭지 않은 MB와 한나라당의 복사판으로 본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해진다"고 말해 박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정권 이양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치의 과정은
차이를 좁히는 것

박 전 의원은 정치 판세를 읽는 눈이 탁월하고, 선거 전략을 내놓는 데 있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대변인을 맡아본 이력 때문인지 언론관계도 매끄럽게 처리한다는 호평을 듣는 편이다. 또 박 전 의원은 예의를 중시하면서도 재치가 넘쳐 생전의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보궐선거를 통해 인연을 맺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임도 남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 80여 일을 앞두고 박 전 의원은 안 전 원장의 든든한 오른팔로 활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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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