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안철수 오른팔 박선숙 역할론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26 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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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도 원순처럼… "정공법으로 대통령 만든다"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저는 안철수 원장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하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의 진심을 믿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선거전략통'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캠프의 선거총괄 역으로 자리를 옮겨 '안철수의 오른팔'을 자청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 가운데 안 전 원장 캠프에 합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선숙 전 의원이 어떤 인생사를 거쳐왔는지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다음 날인 지난 20일 민주통합당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전 원장의 대선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박 전 의원의 공식 명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안 전 원장의 선거를 총괄하는 선거대책위원장 격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민주통합당 측 인사가 안 전 원장 쪽으로 자리를 옮긴 최초의 인물이 됐다.

DJ정부 때 인연
"진정성 믿는다"

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며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해 시대의 무거운 숙제를 감당하기로 결심한 이상 안 원장의 새로운 변화에 함께하겠다"며 "당의 지도부와 문재인 후보,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해온 동료들과 저를 아껴주셨던 당원 동지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결정이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라는 큰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길 바라고 또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 당시 정보화시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안 전 원장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고, 그때 안 전 원장을 만나 우리 사회와 이웃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의 진심을 믿는다"며 안 전 원장과의 오랜 인연을 설명했다. 

이날 박 전 의원은 안 전 원장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 동행해 바로 곁에서 수행하며 대선정국이 끝날 때까지 안 전 원장 옆자리를 지킬 것을 예고했다.


박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실 공보기획비서관에 이어 최초의 여성 대변인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선 2년간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위본부장을 맡았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전략홍보부장, 2008년 18대 총선, 2012년 19대 총선의 선거대책본부장 등을 연달아 맡으며 선거분야의 '기획·전략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 지난 4·11 총선에 앞서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민주당 선거전략통서 안캠프 선대위원장
최초의 청와대 여성대변인 "일 잘한다"

지난 20일 민주통합당은 박 전 의원이 안 전 원장 측 대선캠프에 합류한 데 대해 '개인의 선택'이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음 날 우상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이 분이 사심을 갖고 친정을 버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고, 좀 더 큰 판을 만들어보겠다는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어서 (민주당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의원이 안 전 원장에게 조력을 했다는 사실은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1995년 이후 오랫동안 민주당에서 활동해 온 박 전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당의 후보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안 전 원장 측으로 간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용광로 선대위'를 약속했지만, 이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선 과정에서 불만이 쌓인 비문세력이 안 전 원장 쪽으로 연합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박 전 의원이 소속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평련은 고 김근태 상임고문계 인사들의 모임으로 민주통합당 내 최대 계파인 만큼 앞으로 안 전 원장의 우군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박 전 의원의 이탈에 따라 전·현직 의원들의 추가 이탈이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박 전 의원이 향후 예상되는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민주화에 청춘 바친
'386세대' 선두주자

안 전 원장 측 캠프의 선거를 총괄하게 된 박 전 의원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불사른 '386세대'다.
그는 1960년 경기도 포천의 한 기지촌에서 태어나 미군이 철수하면서 동네 전체가 쇠락하는 걸 목격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치원이 없는 동네라서 다섯 살 반에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서울 이주를 결행한 덕분에 중·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닐 수 있었다.


박 전 의원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역사학과에 진학해 친구 따라 야학에 갔다가 학생운동을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70년대 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유신 체제하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살아생전에 민주주의 된 나라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절망 속에서 숨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1983년 박 전 의원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 참여하게 되고 이때 김근태 고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 박 전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민청련을 비공개 의사결정구조에서 민주적으로 토론해서 결정하되 정치적 탄압은 공개된 지도부가 감당하도록 만든 조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 고문이 민청련을 조직·활동하다 온갖 고문을 받고 고초를 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민청련 소속이었던 박 전 의원도 학생운동을 하다 군인에게 잡혀 많이 맞았다고 회상했다. 박 전 의원은 그 당시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했지만 김 고문을 비롯해 선배들 여럿이 고문당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 일들을 버텨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81년에 유인물 만들어 뿌렸다가 대공분실에 잡혀가 온몸을 구타당했고 85년 구로 동맹파업 지지시위 당시엔 닭장차 안에서 불을 꺼놓고 군인들의 군홧발에 사정없이 짓밟혔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밥값' 위해
의정활동 힘껏 해야 해

박 전 의원은 김 고문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다 정치에 떠밀리듯 들어오게 된 것이라 한다. 김 고문이 정치계에 입문하고 후배들이 선배를 돕기 위해 팀을 만들면서 박 전 의원의 정치인생도 시작된 것. 그렇게 넉 달간 함께 일하다가 1995년 6월 첫 지방선거 당시 김 고문은 박 전 의원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추천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대변인 및 공보수석으로 청와대를 지키며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박 전 의원은 이후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으로 활동하며 김 고문과 각별한 사이가 된다.

국회에는 지난 18대 때 비례대표로 입성해 경제금융 관련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1위 평가를 받는가 하면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박 전 의원은 18대 국회를 '최악의 몸싸움 국회, 난장판 국회'라고 정의하면서도 '보이스피싱 피해보전금 지급에 관한 특별법안'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입법화한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갈 때쯤 대개가 짐을 싸느라 분주할 때도 박 전 의원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저축은행 비리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박 전 의원은 2011년엔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선정한 2011년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수상했고 대규모 유통업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일 잘한다는 칭찬을 두고 박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최소한의 밥값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전 의원은 올해 4·11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민주당의 정권교체를 향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낼 수 없어 나라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됐다. 박 전 의원은 당시 서울 동대문갑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인이 고사한 뒤 어떤 당직도 맡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비례대표 초선인 그를 두고 '쉬운 지역구'를 받으려 한다는 뒷말도 무성했지만 불출마 선언으로 그러한 비판을 단칼에 쳐낸 것이다. 그 이후 박 전 의원은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야권 단일화를 주도했다.

고 김근태 고문과의 인연이 정치에 발들인 계기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MB와 한나라당의 복사판"

그러다 박 전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의 요청을 받고 공천 파문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임종석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4·11 총선을  총괄 지휘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불렸다. 그러나 새누리당에 기운 선거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에 박 전 의원은 가장 먼저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 자리를 사퇴했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민주당의 여러 미흡한 점으로 인해,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충분히 받아 안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 결과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위원장의 새누리당이 지난 4년간 벌여왔던 문제를 국민이 용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지금까지 대외활동을 자제해 왔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박원순 범야권 단일화 후보 캠프에 민주당 몫으로 합류해 기획과 전략을 짰다. 이 같은 이력을 보면 향후 '문재인·안철수'단일화 논의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의원은 학생민주화운동, 환경부 차관, 국회의원 등 민주화 운동과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 모두를 두루 경험했다. 그런 그에게 각 영역에서 공통되는 핵심 가치를 물으니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대답했다. 그 연장선에는 휴머니티라고 하는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전 의원은 지난 3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운동을 할 때와 정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각의 차이가 늘 존재했고 그것들을 좁혀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이 있는 동료의 의견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수인 국민의 생각과 바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냐"며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없애기 위해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대선을 두고는 "대선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과 MB의 한나라당은 정말 다른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박 후보가 협력하지 않았으면, MB는 4대강도 부자감세도 재벌 편들기도 할 수 없었다. 박 후보의 새누리당은 전혀 새롭지 않은 MB와 한나라당의 복사판으로 본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해진다"고 말해 박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정권 이양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정치의 과정은
차이를 좁히는 것

박 전 의원은 정치 판세를 읽는 눈이 탁월하고, 선거 전략을 내놓는 데 있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대변인을 맡아본 이력 때문인지 언론관계도 매끄럽게 처리한다는 호평을 듣는 편이다. 또 박 전 의원은 예의를 중시하면서도 재치가 넘쳐 생전의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보궐선거를 통해 인연을 맺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임도 남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 80여 일을 앞두고 박 전 의원은 안 전 원장의 든든한 오른팔로 활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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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