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뚝심의 리더십 파울루 벤투 감독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21일(한국시각), 지구촌 대축제 2022 카타르월드컵이 개막됐다. 손흥민과 황희찬, 김민재 등 역대급 커리어를 쌓고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같은 조인 H조에 우루과이와 포르투갈, 가나 등 상대적으로 우세한 강팀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한국을 H조 최약체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선수들의 컨디션과 공격진의 실전 감각에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팬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13일 오후 10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파울루 벤투 감독이 밝힌 말이다. 16강 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만큼 최소한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선수 시절
특출난 수비

벤투 감독은 창보단 방패 스타일이다. 다이내믹하지 않은 플레이를 선호해 일부 선수와 마찰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을 정도다. 이로 인해 장기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벤투 감독이 월드컵 일정을 소화하며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의 벤투 감독은 선수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하부리그 팀인 CF 벤피카에서 성인무대에 데뷔한 벤투 감독은 이 팀에서 보인 활약을 통해 아마도라로 이적해 서서히 출전 시간을 확보했다.

이 시기에 국내 컵 대회 우승에 기여하는 등 커리어도 향상됐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뛴 비토리아 SC에서 본격적인 선수 인생의 꽃을 피웠다. 비토리아에서 보낸 세 시즌 동안 벤투는 리그 95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하는 등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고, 대표팀에도 처음으로 발탁됐다.


1996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벤투 감독은 SL 벤피카로 이적했다. 비토리아 시절만큼 부동의 주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시즌 당 30~40경기를 뛸 정도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고, 두 시즌 간 리그 49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했다.

두 시즌을 보낸 후 벤투 감독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오비에도로 이적했다. 벤투 감독은 네 시즌 동안 오비에도의 핵심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리그에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총 리그 136경기 4골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 시기에 우루과이 출신의 명장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 밑에서 뛰기도 했다.

어느덧 선수생활의 말년으로 접어든 벤투 감독은 2000년 고향팀인 리스본의 스포르팅 CP로 이적했다. 스포르팅에 합류한 이후에도 그는 기량을 한동안 유지했다. 이전까지는 국내 컵 대회에서의 두 차례 우승을 제외하면 우승과 인연이 적었던 벤투 감독이었지만, 스포르팅에서는 2001-2002시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의 더블을 이룩하는 데 핵심 선수로 활약하면서 마침내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또 이때는 아직 어린 유망주였으나 훗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뛰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노쇠화의 길은 피할 수 없었고, 2003-2004시즌 출전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자 시즌이 종료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는 1992년 1월15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A 매치에 데뷔해 총 35경기에 출전했다. 루이스 피구, 파울루 소자,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과 같은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의 일원이긴 하지만, 피구 및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선수생활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골든 제네레이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메이저대회가 1989, 1991 피파 유스 챔피언십이었는데 당시 벤투 감독은 선발되지 못했다.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이 처음 성인팀으로 등장한 유로 1996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20대 후반에야 실력이 만개한 대기만성형이었다.

창 아닌 방패 플레이 추구
강팀 공격 무력화 가능할까


하지만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정점이었던 유로 2000에 당당히 국대로 선발됐다.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은 죽음의 조인 A조(독일, 루마니아, 잉글랜드) 3번 포트로 속해 있었지만, 강호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조 1위로 올라가서 8강에서 터키까지 꺾고 4강에 올라갔다. 이 당시 유로에 거의 무관심했던 한국에서도 새벽에 중계되는 포르투갈 경기를 챙겨본 축구팬이 많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벤투 감독은 매 경기 주전으로 풀타임 출장했다. 포르투갈은 4강에서 당시 최정점의 전력을 가졌던 프랑스와 만났다. 1-1의 팽팽한 승부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지네딘 지단의 페널티킥 골든골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탈락했다.

포르투갈의 붙박이 주전이었기 때문에, 33세의 노장이었음에도 2002 한일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인천에서 열린 32강 본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전에서 후반 이영표가 골 에어리어로 넘겨주는 크로스를 막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가 박지성이 받아 골로 연결해 포르투갈이 1-0으로 패하며 조 3위로 월드컵 16강에 실패한 바 있다.(21위)

벤투 감독은 안정적인 후방 빌드업과 수비 전환에서는 조직적인 전술 플레이를 강조하되, 후방 빌드업이 끝난 후에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선수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플레이를 바라며 강조하는 매니저 육성형 감독에 가깝다.

선수들에게 전술적 움직임을 세세히 요구하기보다 선수들의 개인적인 실력과 움직이는 플레이에 직접 디테일하게 코칭하려고 하는 유형이며 전술이나 용병술은 보수적이다 보니 경기 흐름을 바꾸는 빈도가 적은 편이다.

확고한 점유율 획득을 기본으로 하되 점유율 자체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빠른 템포의 전진패스를 통한 속도감 있는 공격 전개를 주 전술로 사용하고 있다. 즉, 빌드업을 중심으로 시원한 공격을 하는 토털 풋볼을 추구한다.

공격 시에는 4-2-3-1이나 4-4-2, 혹은 4-1-3-2가 그의 주요 트레이드 마크며, 양쪽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라인이 공격 진영으로 높게 올라오면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동시에 상대 수비수를 유인해 상대의 수비진을 허물어 버리고, 이 틈을 1선의 스트라이커와 2선의 윙어들이 파고들어 기회를 갖는 전술을 기본으로 한다.

안정·조직적
전술 보인다

그래서 1선 스트라이커도 2선의 선수들과 자유로운 스위칭 플레이가 가능해야 하고 2선이 강한 대표팀 사정상 이 같은 플레이가 가능한 원톱이 각광받는다. 2선이 전 포지션에서 가장 강한 대표팀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플레이이며 공격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라 볼 수 있다.

수비 시에는 4-4-2 전술로 공격수 2명부터 차례로 전방 압박을 시작해 공을 직접 뺏어내거나 롱볼을 유도해 따내는 전략을 사용한다.

전술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후방 빌드업이다. 이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거의 낙점돼있던 조현우를 김승규로 바꾼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후방 빌드업은 보통 김영권-김민재 사이에 황인범이나 정우영이 들어와 쓰리백을 만든 후 보다 넓은 시야 및 킥력과 정확도가 좋은 기성용의 시원한 롱패스를 통해서 공격을 시작한다.


홍철, 김진수, 이용, 김문환 등 공격적인 풀백들과 중앙의 이재성, 남태희 등 활동성 있는 미드필더들이 상대 수비를 휘저으면 황의조, 손흥민, 권창훈, 나상호, 황희찬 등 공격수들이 침투해 경기를 주도해 나간다.

체계적인 압박 시스템을 갖춘 강팀을 상대할 경우 전반적으로 라인을 내리거나 후방에 숫자를 많이 두며 손흥민을 필두로 빠르게 뒷공간을 노리는 등 실리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전술의 틀은 유지된다.

이 같은 전술은 굉장히 빠른 축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경기가 잘 풀려 나간다면 굉장히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볼 수 있지만 안 풀린다면 그야말로 답답한 경기가 될 수밖에 없다.

장점은 역습으로 상대방의 허를 찔러 경기를 쉽게 풀어갈 때가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벤투 감독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능한 매니저 유형에 가까운 감독이지, 지략과 전술에 능한 감독은 아니라서 계획적으로 팀을 이끌 경우, 변수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거나 지략가 유형의 상대 감독이 재빠르게 대응해버리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첫 경기
매우 중요


지난달 가진 최종 예선 이란전 원정에서 손흥민의 골로 1-0 리드를 가져왔으나 이후 상대팀의 전술 변화와 선수단의 체력 고갈로 말리기 시작했고 결국 실점으로 이어져 1-1로 비겼다. 특히 실점의 기점이 된 이재성은 이미 체력 문제로 인해 수차례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 상황에서 감독이 미리 교체를 해줬어야 했는데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플랜B 준비 미흡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비판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예선에서는 그동안 플랜A를 고집한 벤투 감독의 노력이 빛을 보였다. 선수들의 호흡이 완성에 가까워지면서 아랍에미리트와 이라크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벤투 감독은 국가대표팀을 클럽처럼 운영하는 것인데, 아무리 실험해봤자 결국 월드컵에서 통하려면 완성된 전술과 뛰어난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플랜B는 버리고 선수들을 최정예 선수들만 뽑아서 조직력을 키우는 쪽으로 간 것이다.

여기서 볼 때 벤투 감독이 최정예에 올인하는 방식은 모 아니면 도의 결과를 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H조 상대국들의 선택은 한국과 정반대다. 가나는 카타르 도하와 환경이 유사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지난 17일 스위스를 상대로 평가전을 치렀다. 포르투갈은 홈이긴 하지만 가나와 전력·스타일이 유사한 나이지리아와 격돌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일 일찌감치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짰고, 두바이에 훈련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이번 대회 다크호스로 꼽히는 캐나다와 두바이에서 평가전을 치르고 카타르로 입성할 계획이다. 대한축구협회도 카타르에 들어가 유럽파들이 모두 합류하면 비공개 평가전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는 있지만, 아이슬란드전은 출정식을 빌미로 상업적 성격에 너무 치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선수단 구성을 결정하고, 월드컵 본선에 맞춘 전술을 가다듬어야 하는 벤투 감독으로서는 여러 제한된 조건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일단 아이슬란드전에서 몇 가지 테스트는 필수적이다.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조규성의 활용법이 제일 큰 숙제다. 최근 유럽파 황의조의 경기 감각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부진이 장기화돼 임대 중인 올림피아코스와의 계약을 조기 해지하고 원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로 간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리스본 출신 월드 클래스 수비형 미드필더
주요 선수 부상·체력 저하·부진 잇단 악재

다음은 수비다. 월드컵 본선에서 벤투호는 아시아 예선과는 다른 방향의 경기 운영이 불가피하다. 주도권을 잡고 공격 중심의 능동적 전개를 하기란 어렵다.

벤투 감독도 지난 6월 브라질과의 경기를 통해 그 부분을 인정했다. 유럽파가 주축인 공격·미드필드와 달리 김민재를 제외하면 나머지 수비라인이 모두 소집되는 만큼 이번 아이슬란드전 준비 과정에서는 수비 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벤투호의 성공 여부도 크게 엇갈린다. 그만큼 한국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는 뜻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10회 연속 월드컵에 나서는 태극전사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위라는 최고 성적을 낸 바 있다. 러시아월드컵을 조 3위로 마친 후 벤투 감독을 선임해 4년간 준비해왔다”고 소개한 <인디펜던트>는 손흥민과 김민재의 활약도를 주목했다. 해외서도 현재 대표팀의 확실한 기둥으로 두 선수를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디펜던트>는 한국의 카타르월드컵 최종 성적을 8강으로 예측했다. “첫 경기가 한국에 승부처다. 우루과이전에서 패배하지 않으면 조 1위도 노려볼 수 있다. 손흥민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칠 것이다. 8강전에선 스페인에 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반대 평가도 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 <디애슬레틱>은 한국을 가장 기대되지 않는 팀의 그룹에 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팀들을 네 등급으로 분류한 <디애슬레틱>은 한국을 성공이 기대되지 않는 팀으로 봤다. 폴란드·일본·이란·사우디아라바아·카타르·에콰도르·가나·튀니지 등이 한국과 함께 4등급으로 분류됐다. H조 기준으로는 한국과 가나의 예선 탈락을 전망했다.

물론 변수도 존재한다. 일단 가나의 귀화 프로젝트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가나축구협회는 본선 진출 확정 후 가나 혈통의 이중국적자 이냐키 윌리암스(아틀레틱 빌바오), 티라크 램프티(브라이튼), 모하메드 살리수(사우샘프턴)를 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바이어 레버쿠젠의 미드필더인 캘럼 허드슨-오도이, 수비수인 제레미 프림퐁의 귀화를 마지막까지 노크하는 모습이다. 지난 9월 귀화 선수들이 새롭게 가세했지만 조직력에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조직력이 정비된다면 가나는 월드컵 예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 돼 H조의 복병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벤투호는 주요 선수들의 부상도 신경써야 한다. 지난 2일 새벽(한국시각) 열린 챔피언스리그 마르세유 원정에 나선 손흥민이 상대 수비수 샹셀 음베바의 어깨에 안면을 강타당해 전반 29분 만에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교체됐다.

16강 넘어
8강도 가능

부상 직후 손흥민은 안와 골절, 뇌진탕 증상이 의심됐다. 경기 후 역전승을 거두며 동료들과 라커룸에서 환호하는 사진이 나와 큰 부상은 아닐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속팀 토트넘은 지난 3일(한국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이 안면 골절로 수술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17일 앞둔 시점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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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