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뚝심의 리더십 파울루 벤투 감독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21일(한국시각), 지구촌 대축제 2022 카타르월드컵이 개막됐다. 손흥민과 황희찬, 김민재 등 역대급 커리어를 쌓고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같은 조인 H조에 우루과이와 포르투갈, 가나 등 상대적으로 우세한 강팀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한국을 H조 최약체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선수들의 컨디션과 공격진의 실전 감각에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팬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13일 오후 10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파울루 벤투 감독이 밝힌 말이다. 16강 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만큼 최소한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선수 시절
특출난 수비

벤투 감독은 창보단 방패 스타일이다. 다이내믹하지 않은 플레이를 선호해 일부 선수와 마찰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을 정도다. 이로 인해 장기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벤투 감독이 월드컵 일정을 소화하며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의 벤투 감독은 선수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하부리그 팀인 CF 벤피카에서 성인무대에 데뷔한 벤투 감독은 이 팀에서 보인 활약을 통해 아마도라로 이적해 서서히 출전 시간을 확보했다.

이 시기에 국내 컵 대회 우승에 기여하는 등 커리어도 향상됐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뛴 비토리아 SC에서 본격적인 선수 인생의 꽃을 피웠다. 비토리아에서 보낸 세 시즌 동안 벤투는 리그 95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하는 등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고, 대표팀에도 처음으로 발탁됐다.


1996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벤투 감독은 SL 벤피카로 이적했다. 비토리아 시절만큼 부동의 주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시즌 당 30~40경기를 뛸 정도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고, 두 시즌 간 리그 49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했다.

두 시즌을 보낸 후 벤투 감독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오비에도로 이적했다. 벤투 감독은 네 시즌 동안 오비에도의 핵심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리그에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총 리그 136경기 4골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 시기에 우루과이 출신의 명장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 밑에서 뛰기도 했다.

어느덧 선수생활의 말년으로 접어든 벤투 감독은 2000년 고향팀인 리스본의 스포르팅 CP로 이적했다. 스포르팅에 합류한 이후에도 그는 기량을 한동안 유지했다. 이전까지는 국내 컵 대회에서의 두 차례 우승을 제외하면 우승과 인연이 적었던 벤투 감독이었지만, 스포르팅에서는 2001-2002시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의 더블을 이룩하는 데 핵심 선수로 활약하면서 마침내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또 이때는 아직 어린 유망주였으나 훗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뛰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노쇠화의 길은 피할 수 없었고, 2003-2004시즌 출전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자 시즌이 종료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는 1992년 1월15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A 매치에 데뷔해 총 35경기에 출전했다. 루이스 피구, 파울루 소자,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과 같은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의 일원이긴 하지만, 피구 및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선수생활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골든 제네레이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메이저대회가 1989, 1991 피파 유스 챔피언십이었는데 당시 벤투 감독은 선발되지 못했다.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이 처음 성인팀으로 등장한 유로 1996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20대 후반에야 실력이 만개한 대기만성형이었다.

창 아닌 방패 플레이 추구
강팀 공격 무력화 가능할까


하지만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정점이었던 유로 2000에 당당히 국대로 선발됐다.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은 죽음의 조인 A조(독일, 루마니아, 잉글랜드) 3번 포트로 속해 있었지만, 강호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조 1위로 올라가서 8강에서 터키까지 꺾고 4강에 올라갔다. 이 당시 유로에 거의 무관심했던 한국에서도 새벽에 중계되는 포르투갈 경기를 챙겨본 축구팬이 많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벤투 감독은 매 경기 주전으로 풀타임 출장했다. 포르투갈은 4강에서 당시 최정점의 전력을 가졌던 프랑스와 만났다. 1-1의 팽팽한 승부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지네딘 지단의 페널티킥 골든골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탈락했다.

포르투갈의 붙박이 주전이었기 때문에, 33세의 노장이었음에도 2002 한일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인천에서 열린 32강 본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전에서 후반 이영표가 골 에어리어로 넘겨주는 크로스를 막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가 박지성이 받아 골로 연결해 포르투갈이 1-0으로 패하며 조 3위로 월드컵 16강에 실패한 바 있다.(21위)

벤투 감독은 안정적인 후방 빌드업과 수비 전환에서는 조직적인 전술 플레이를 강조하되, 후방 빌드업이 끝난 후에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선수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플레이를 바라며 강조하는 매니저 육성형 감독에 가깝다.

선수들에게 전술적 움직임을 세세히 요구하기보다 선수들의 개인적인 실력과 움직이는 플레이에 직접 디테일하게 코칭하려고 하는 유형이며 전술이나 용병술은 보수적이다 보니 경기 흐름을 바꾸는 빈도가 적은 편이다.

확고한 점유율 획득을 기본으로 하되 점유율 자체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빠른 템포의 전진패스를 통한 속도감 있는 공격 전개를 주 전술로 사용하고 있다. 즉, 빌드업을 중심으로 시원한 공격을 하는 토털 풋볼을 추구한다.

공격 시에는 4-2-3-1이나 4-4-2, 혹은 4-1-3-2가 그의 주요 트레이드 마크며, 양쪽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라인이 공격 진영으로 높게 올라오면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동시에 상대 수비수를 유인해 상대의 수비진을 허물어 버리고, 이 틈을 1선의 스트라이커와 2선의 윙어들이 파고들어 기회를 갖는 전술을 기본으로 한다.

안정·조직적
전술 보인다

그래서 1선 스트라이커도 2선의 선수들과 자유로운 스위칭 플레이가 가능해야 하고 2선이 강한 대표팀 사정상 이 같은 플레이가 가능한 원톱이 각광받는다. 2선이 전 포지션에서 가장 강한 대표팀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플레이이며 공격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전술이라 볼 수 있다.

수비 시에는 4-4-2 전술로 공격수 2명부터 차례로 전방 압박을 시작해 공을 직접 뺏어내거나 롱볼을 유도해 따내는 전략을 사용한다.

전술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후방 빌드업이다. 이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거의 낙점돼있던 조현우를 김승규로 바꾼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후방 빌드업은 보통 김영권-김민재 사이에 황인범이나 정우영이 들어와 쓰리백을 만든 후 보다 넓은 시야 및 킥력과 정확도가 좋은 기성용의 시원한 롱패스를 통해서 공격을 시작한다.


홍철, 김진수, 이용, 김문환 등 공격적인 풀백들과 중앙의 이재성, 남태희 등 활동성 있는 미드필더들이 상대 수비를 휘저으면 황의조, 손흥민, 권창훈, 나상호, 황희찬 등 공격수들이 침투해 경기를 주도해 나간다.

체계적인 압박 시스템을 갖춘 강팀을 상대할 경우 전반적으로 라인을 내리거나 후방에 숫자를 많이 두며 손흥민을 필두로 빠르게 뒷공간을 노리는 등 실리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전술의 틀은 유지된다.

이 같은 전술은 굉장히 빠른 축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경기가 잘 풀려 나간다면 굉장히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볼 수 있지만 안 풀린다면 그야말로 답답한 경기가 될 수밖에 없다.

장점은 역습으로 상대방의 허를 찔러 경기를 쉽게 풀어갈 때가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벤투 감독이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능한 매니저 유형에 가까운 감독이지, 지략과 전술에 능한 감독은 아니라서 계획적으로 팀을 이끌 경우, 변수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거나 지략가 유형의 상대 감독이 재빠르게 대응해버리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첫 경기
매우 중요


지난달 가진 최종 예선 이란전 원정에서 손흥민의 골로 1-0 리드를 가져왔으나 이후 상대팀의 전술 변화와 선수단의 체력 고갈로 말리기 시작했고 결국 실점으로 이어져 1-1로 비겼다. 특히 실점의 기점이 된 이재성은 이미 체력 문제로 인해 수차례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 상황에서 감독이 미리 교체를 해줬어야 했는데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플랜B 준비 미흡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비판이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예선에서는 그동안 플랜A를 고집한 벤투 감독의 노력이 빛을 보였다. 선수들의 호흡이 완성에 가까워지면서 아랍에미리트와 이라크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벤투 감독은 국가대표팀을 클럽처럼 운영하는 것인데, 아무리 실험해봤자 결국 월드컵에서 통하려면 완성된 전술과 뛰어난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플랜B는 버리고 선수들을 최정예 선수들만 뽑아서 조직력을 키우는 쪽으로 간 것이다.

여기서 볼 때 벤투 감독이 최정예에 올인하는 방식은 모 아니면 도의 결과를 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H조 상대국들의 선택은 한국과 정반대다. 가나는 카타르 도하와 환경이 유사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지난 17일 스위스를 상대로 평가전을 치렀다. 포르투갈은 홈이긴 하지만 가나와 전력·스타일이 유사한 나이지리아와 격돌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일 일찌감치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짰고, 두바이에 훈련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이번 대회 다크호스로 꼽히는 캐나다와 두바이에서 평가전을 치르고 카타르로 입성할 계획이다. 대한축구협회도 카타르에 들어가 유럽파들이 모두 합류하면 비공개 평가전을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는 있지만, 아이슬란드전은 출정식을 빌미로 상업적 성격에 너무 치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선수단 구성을 결정하고, 월드컵 본선에 맞춘 전술을 가다듬어야 하는 벤투 감독으로서는 여러 제한된 조건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일단 아이슬란드전에서 몇 가지 테스트는 필수적이다.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조규성의 활용법이 제일 큰 숙제다. 최근 유럽파 황의조의 경기 감각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부진이 장기화돼 임대 중인 올림피아코스와의 계약을 조기 해지하고 원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로 간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리스본 출신 월드 클래스 수비형 미드필더
주요 선수 부상·체력 저하·부진 잇단 악재

다음은 수비다. 월드컵 본선에서 벤투호는 아시아 예선과는 다른 방향의 경기 운영이 불가피하다. 주도권을 잡고 공격 중심의 능동적 전개를 하기란 어렵다.

벤투 감독도 지난 6월 브라질과의 경기를 통해 그 부분을 인정했다. 유럽파가 주축인 공격·미드필드와 달리 김민재를 제외하면 나머지 수비라인이 모두 소집되는 만큼 이번 아이슬란드전 준비 과정에서는 수비 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벤투호의 성공 여부도 크게 엇갈린다. 그만큼 한국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는 뜻이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10회 연속 월드컵에 나서는 태극전사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위라는 최고 성적을 낸 바 있다. 러시아월드컵을 조 3위로 마친 후 벤투 감독을 선임해 4년간 준비해왔다”고 소개한 <인디펜던트>는 손흥민과 김민재의 활약도를 주목했다. 해외서도 현재 대표팀의 확실한 기둥으로 두 선수를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디펜던트>는 한국의 카타르월드컵 최종 성적을 8강으로 예측했다. “첫 경기가 한국에 승부처다. 우루과이전에서 패배하지 않으면 조 1위도 노려볼 수 있다. 손흥민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칠 것이다. 8강전에선 스페인에 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반대 평가도 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 <디애슬레틱>은 한국을 가장 기대되지 않는 팀의 그룹에 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팀들을 네 등급으로 분류한 <디애슬레틱>은 한국을 성공이 기대되지 않는 팀으로 봤다. 폴란드·일본·이란·사우디아라바아·카타르·에콰도르·가나·튀니지 등이 한국과 함께 4등급으로 분류됐다. H조 기준으로는 한국과 가나의 예선 탈락을 전망했다.

물론 변수도 존재한다. 일단 가나의 귀화 프로젝트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가나축구협회는 본선 진출 확정 후 가나 혈통의 이중국적자 이냐키 윌리암스(아틀레틱 빌바오), 티라크 램프티(브라이튼), 모하메드 살리수(사우샘프턴)를 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바이어 레버쿠젠의 미드필더인 캘럼 허드슨-오도이, 수비수인 제레미 프림퐁의 귀화를 마지막까지 노크하는 모습이다. 지난 9월 귀화 선수들이 새롭게 가세했지만 조직력에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조직력이 정비된다면 가나는 월드컵 예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 돼 H조의 복병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벤투호는 주요 선수들의 부상도 신경써야 한다. 지난 2일 새벽(한국시각) 열린 챔피언스리그 마르세유 원정에 나선 손흥민이 상대 수비수 샹셀 음베바의 어깨에 안면을 강타당해 전반 29분 만에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교체됐다.

16강 넘어
8강도 가능

부상 직후 손흥민은 안와 골절, 뇌진탕 증상이 의심됐다. 경기 후 역전승을 거두며 동료들과 라커룸에서 환호하는 사진이 나와 큰 부상은 아닐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속팀 토트넘은 지난 3일(한국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이 안면 골절로 수술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17일 앞둔 시점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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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