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래도 선장 황선홍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3.04 11:26:29
  • 호수 1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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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 가는 태극전사호 키를 잡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황선홍 현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까지 맡게 됐다. 황 감독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좌초 위기에 놓인 국가대표팀의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된 것이다. 현역 시절 한국 최초의 해외 리그 득점왕이던 그가 ‘투잡 감독’으로 새 이름을 쓰고 있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이하 강화위)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3차 회의 결과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황 감독은 이달 21일과 26일로 예정된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2연전을 이끌게 됐다. 

그 기간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황 감독을 제외한 기존 코칭스태프가 맡게 될 예정이다. 북중미월드컵 예선전 이후 황 감독은 올림픽 축구대표팀으로 돌아간다. 다음달 카타르서 열리는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겸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을 치르기 위해서다.

항저우 게임 
금메달 주역

황 감독이 최우선 후보로 정해진 이유에 대해 정 위원장은 “황 감독은 협회 소속 지도자고 아시안게임 금메달 성과도 냈다”며 “본인이 일시적으로 두 개팀을 맡을 의향이 있고, 구상이 있다면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하는 후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황 감독이 이끌 A 대표팀은 중국·태국·싱가포르와 C조에 속해 있다. 한국은 2승(승점 6)으로 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내년 6월까지 2차 예선을 벌여 조 1·2위 팀이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황 감독은 이달 태국전을 위해 별도 코치진을 꾸릴 예정이다. 무엇보다 카타르아시안컵에 주장 손흥민과 이강인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등 침울해진 대표팀 분위기를 회복시키는 것도 그의 임무다. 황 감독은 항저우아시안게임서 이른바 ‘탁구 멤버’로 알려진 이강인과 정우영, 설영우 등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황 감독이 임시 사령탑으로 임무를 마치면, 파리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한 카타르 U-23 아시안컵이 열린다. 다음달 15일 막을 올리는 이번 대회는 지난 아시안컵에 이어 카타르서 열려 중동팀의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일본과 UAE(아랍에미리트), 중국과 B조에 속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이 과정서 U-23 대표팀은 이달 A 매치 기간에 사우디아라비아서 올림픽 예선을 대비한 친선경기를 벌인다. 한국은 남자 축구서 올림픽 최다 연속 본선 출전 기록(9회)을 보유하고 있다.

무리수라는 지적을 뿌리치고 강화위가 황 감독을 선임한 건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쾌거 등 국제대회 수상 경험 등을 높이 산 결정으로 풀이된다. 현재 23세 이하인 올림픽대표팀 멤버들이 추후 북중미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A 대표팀에 진출할 가능성 또한 황 감독이 선임된 이유였다.

정해성 위원장은 “파리올림픽 본선행 도전 과정과 A 대표팀 일정이 일부 겹쳐 이 부분에 대해 고민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6월에 있을 월드컵 2차 예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5월 초까지는 정식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초 강화위는 K리그 현직 지도자 중에서 정식 사령탑을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24일 제2차 회의서 로드맵을 바꿨다. 이달 A 매치 2연전은 임시 감독으로 치르고,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쳐 오는 6월 A 매치 일정에 맞춰 새 사령탑을 선임하기로 했다.

이달 1일 개막한 K리그 사령탑을 차출할 경우 발생할 K리그 관계자들과 팬들의 반발을 고려한 결정이다.


2차 회의 당시 강화위원회는 황 감독과 더불어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을 사령탑 후보군에 올려놨다.

클린스만 경질 후 임시 감독 선임
손흥민-이강인 사건 수습 적임자?

정 위원장은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에게 필요한 주요 덕목 위주로 점수를 매긴 결과 황 감독이 1순위 후보로 낙점받았다”며 “3차 회의서 세 명의 후보에 대한 정밀 검증을 진행했고, 당초 순위대로 황 감독에게 가장 먼저 A 대표팀 감독직 겸임에 대한 의사를 타진해 승낙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초 여론의 시선은 박 감독을 향했다. 팀 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황 감독이 두 팀을 병행하는 게 무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다. 올림픽팀은 아시아 최종예선서 3위 이내에 들어야 파리행을 확정지을 수 있다. 4위에 머물면 아프리카 팀과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한다.

한국 축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황 감독은 현역 시절 붙박이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서 폴란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리는 등 A 매치 103경기서 50골을 넣어 득점 2위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A 매치 130경기 58골)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센추리클럽은 FIFA가 공인하는 A 매치에 100회 이상 출전한 선수들의 명단이다. 해당 국가서 중요한 핵심 선수로서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인정받아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 감독은 홍명보와 함께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을 가진 선수이자 한국 축구 선수 최초의 해외리그 득점왕이기도 하다. 공격수로서 은퇴할 나이인 34세의 나이에도 2002년 한일월드컵서 주전 공격수로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기량 저하로 대표팀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거나 미리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대의 공격수인 최용수, 김도훈, 서정원이나 2002 한일월드컵 공격수였던 이천수, 설기현 등 모두 30세를 넘어가면서 대표팀 주전서 밀렸다.

가난한 시절 
딛고 스타로

안정환도 34세로 출전한 2010 남아공월드컵서 한 경기도 못 뛰고 벤치 신세를 졌으며, ‘캡틴’ 박지성은 30세에 대표팀을 은퇴했다.

황선홍 이후 공격수인 이동국, 박주영 등 대표팀을 거쳐간 다른 선수들도 기량 기복이나 감독의 판단에 따라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황 감독이 14년간 대표팀 주전으로 뛴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30대 중반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던 필드 플레이어는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딱 3명뿐이다.

1990년대 축구를 보지 못한 세대들은 그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왜곡되거나 폄하된다. 2002년 월드컵을 직접 보지 않은 세대 중 안정환이 주전 공격수였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황 감독이 주전 공격수고 안정환은 그와 교체되는 후반 조커 공격수였다.


그러나 황 감독이 본선 첫 경기인 폴란드전부터 허벅지에 입은 부상으로 세 번째 경기인 포르투갈전부터는 안정환이 선발 출장했다. 32강 조별리그부터 4강전(독일전)까지의 6경기 중 황 감독이 3경기(폴란드, 미국, 독일), 안정환이 3경기(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서 선발 출장했다.

이후 3위, 4위전(터키전)에서는 안정환이 선발 출장했다. 이를 계기로 둘은 유럽팀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중앙 공격수였다고 평가받는다.

잦은 부상과 불운에 시달리며 1994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 한 경기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비운의 스트라이커이기도 하다.

축구 선수로서 한창인 24세(1992년) 독일서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군대 면제를 받기도 했다. 1993년에 결국 수술을 받으면서 몸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고 토로했다. 부상서 회복되자마자 1994 미국월드컵에 나가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이어 본인 스스로 기량이 절정이었다고 말한 1998년에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또 부상을 입었다. 지지리도 운이 없던 셈이다.

한국 축구 기둥
동시에 두 팀

말도 탈도 많았지만, 한국 대표팀은 황 감독 없인 설명하기 어려웠다. 황 감독만큼 장기간 국가대표팀서 고정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선수가 없었다. 특히 한일전마다 그의 맹활약도 빠질 수 없다. 총 4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차범근의 6골에 이은 역대 한일전 최다 골 2위 기록이다. 그가 뛴 한일전에선 전승을 거뒀고, 출전한 모든 한일전서 결승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다.


그는 힘들었던 가정형편 속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왔다. 성이 황씨라서 별명을 ‘황새’라고 아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는 가난하던 어린 시절 약점이었던 체격을 만회하기 위해 물배를 채워 뒤뚱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황새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학교 급식만으론 원하던 체중을 만들 수 없자 배가 터지도록 많은 양의 물을 마셨다. 물배라도 채워 몸싸움에 밀리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버틴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은퇴를 선언한 황 감독에 대해 거스 히딩크 감독은 “나는 황선홍에게 애착이 가는 게 사실”이라며 “그는 팀의 베스트로서 항상 혼자 아픔을 뒤집어 썼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황선홍의 가족사는 좋지 못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마저도 A 매치 중에 돌아가셨다”며 “그는 그리움에 차 있었다. 그래서 공을 찼다고 한다. 응원 나올 부모님이 있었으면 그에게 좀 더 힘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표팀이 프랑스와 경기서 0:5로 대패하던 날, 황 감독은 히딩크를 찾아와 밤을 새워 울었다는 후문도 있다.

은퇴 후, 해설위원을 거쳐 200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를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감독했다. 포항서 K리그 1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기록하며 감독 커리어 초반에는 좋은 경력을 보유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과 국가대표까지
붙박이 스트라이커에서 지도자로

2016년 FC 서울 감독 부임 이후 첫 시즌 K리그 우승을 제외하면 2017 시즌에는 리그 5위에 그쳐 5년 만에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2018 시즌에는 급기야 10위, 11위를 오가며 강등권 문턱서 전전했다. 그해 4월30일자로 결국 사퇴하면서 감독 명성에 금이 가고 말았다.

12월14일 뜬금없이 중국 갑급 리그의 옌볜 푸더의 감독으로 선임됐으나 구단 해체, 이후 휴식을 취했다. 2020년 하나은행에 인수된 대전 하나 시티즌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됐으나 부진한 경기력이 지속돼 2020년 9월8일부로 사퇴했다. 

이후 1년의 휴식과 방송 활동을 거쳐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에 취임했다. 여러 우려 속에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승에 성공하며 지도자로서의 재기에 성공했다.

A 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는 경우를 아시아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리야스 하지메 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두 팀 지휘봉을 함께 잡았다. 이번에 황 감독과 함께 임시 감독 후보로 거론됐던 박항서 감독도 6년간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동시에 지휘했다.

한국에선 허정무 감독이 1999~2000년, 핌 베어벡 감독이 2006~2007년 두 팀을 동시에 맡은 바 있다. 임시 사령탑 체제를 꾸린 대한축구협회는 이제 본격적으로 정식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현재 한국 축구 대표팀이 어떤 전술을 지향해야 하고, 어떤 기술 철학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에 맞는 감독을 찾을 것”이라며 “대표팀 경기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감독을 5월 초까지 선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황 감독은 아내 정지원과의 사이서 1녀2남을 낳았다. 둘째이자 장남인 황재훈은 아버지를 따라 축구 선수가 돼 선수생활을 했지만,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으면서 황 감독이 축구를 그만두게 했다. 본인이 당해봤던 부상이라 재활 과정 등을 잘 알아서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맏이이자 장녀인 황현진은 ‘이겨’라는 이름으로 걸그룹 예아(Ye-A)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황 감독과 아내가 거세게 반대했다고 한다. 황 감독이 대중들에게 안 좋게 인식된 것을 의식하면서다. 황 감독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만약 포항 프런트가 포항 홈경기에 자신의 딸이 소속된 걸그룹을 초청한다 해도 본인이 불허할 것’ 딸의 활동에 일체 비호 및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새의 추억
득점왕 출신

예아는 아이즈원 출신 권은비가 <프로듀스 48>에 참가하기 전에 소속돼있던 걸그룹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현진은 “이 일을 해 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다”고 했고 결국 허락했다고 한다. 황씨는 미국 뉴욕대에 합격해 1학기를 재학한 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활동을 완전히 접고 현재는 연예계서 은퇴한 상태다. 대학 졸업 후에는 호텔 관련 직장을 다닌다는 근황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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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