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의혹만 커진 손준호

어설픈 해명 의문만 키웠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중국축구협회로부터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아 선수 생명에 위기가 닥친 손준호가 눈물로 결백을 주장했으나, 금품거래에 관한 명확한 증거나 해명을 내놓지 못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적지 않다. 손준호는 “승부조작 대가는 아니었다”면서도 돈을 받은 이유와 사용처는 밝히지 못했다.

축구선수 손준호는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 내 체육회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부조작 혐의와 중국축구협회의 영구 제명 징계에 대해 결백을 호소했다. 손준호는 20만위안(약 3700만원)을 산둥 타이산 동료였던 진징다오로부터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금액을 받은 이유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승부조작 등 불법적인 금전거래는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뇌물 혐의
결백 호소

이날 손준호의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중국 법원으로부터 20만위안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사와 형량을 협상해 이미 구금돼 있던 10개월만큼의 형량을 받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이체 내용에 중국 법원이 금품수수 혐의를 갖다 붙였다는 취지로 승부조작에 대한 무혐의를 주장했다. 중국서 금품수수 혐의 유죄 판결로 약 10개월 만에 석방된 손준호는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손준호는 “10개월 넘게 좁은 방에서 20명도 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며 “고된 환경서 홀로 한국인으로서 하루에 말 한마디도 못하고 철조망 같은 창문을 바라봤다”면서 “하루하루 정말 힘들게 살았고, 심신이 모두 지쳤다”고 말했다.


손준호의 에이전트는 “한국 귀국 자체가 중요한 상황이었다”며 “판결문을 통해 손준호에게 적용된 자세한 혐의 사실을 확인해 볼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전했다.

‘판결문을 취재진에 공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준호 측은 “판결문은 우리도 받아보지 못했다”며 “중국 변호사와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대한축구협회와 수원FC 등이 손준호 측에 세부 혐의와 내용을 알 수 있는 판결문을 요청했지만, 국제이적동의서(ITC)가 빠르게 발급된 덕에 판결문에 상관없이 국내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손준호는 중국 공안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을 앞두고 중국 법원 판사와 당국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 자리서 ‘20만위안에 대한 금품수수 혐의를 인정하면 이른 시일 내에 석방해 주겠다’ ‘한국서 선수 생활도 이어갈 수 있게 해 주겠다’며 회유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 공안이 아내와 아이들을 언급하며 혐의를 인정하라고 협박했고 “지금이라도 인정하면 이르면 7∼15일 뒤에 나갈 수 있다고 회유했다”며 “겁도 났고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혐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금품수수 자체만 인정했지, 승부조작 등 대가성을 인정한 적은 없다. 승리 보너스로 16만위안을 받는데, 사람들이 20만위안을 받기 위해 승부조작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혐의를 인정하고 석방됐다”며 “관련 내용을 발설할 경우 축구를 더 못할 것이라는 협박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
20만 위안 수수 미스터리


다만 그는 팀 동료였던 진징다오에게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며, 대가성 송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손준호는 “진징다오는 산둥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했고 적응에 도움도 줬다”며 “가족이 왔을 때 잘 챙겨줘 서로 선물도 하고 돈독해졌다”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 돈을 빌리기도 했고 조사받을 때도 불법적인 돈이 아니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손준호는 질의응답 시간 내내 20만위안을 받은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이 선물을 주고받고 급할 때 돈을 빌려주는 등 거액의 금액이 오간 경우가 많아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진징다오와 문제가 된 20만위안을 주고받을 시기의 휴대전화 기록도 모두 지워졌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중국 공안으로부터 휴대전화를 받아 손준호의 아내가 포렌식을 했지만 딱 해당 기간 기록만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손준호 핸드폰에 당시 둘의 대화나 문자가 남았을 텐데, 진징다오에게 돈을 받았다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에 관한 내용만 사라졌다.

또 진징다오로부터 승부조작과는 관련이 없는 인간적인 감사함의 뜻이라는 입장이 나온 것도 아니다.

손준호는 “구금된 뒤 진징다오와 연락한 적이 없다” “그가 먼저 승부조작 혐의로 잡혀갔고, 이후에는 중국서 삶을 모두 잊고 정리하고 싶었다”며 따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진징다오는 중국 국가대표 주전까지 뛰었던 스타플레이어다. 지난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조별리그 한국전에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포렌식 시도
복구 불가능

하지만 지난해 중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승부조작 파문의 핵심 당사자 중 하나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손준호는 어떤 이유로 20만위안을 주고받았는지 입증할 자료는 없었다. 그는 “공안 측에 조사 당시 음성 파일 열람을 요청했는데 ‘모두 삭제됐다’고 들었다”며 “이 부분만 제대로 밝혀진다면(협박으로 거짓 자백한 걸)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중국 법원이 20만위안에 대한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인지, 손준호가 20만위안을 어떤 이유로 받았는지 등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손준호 측은 “정확히 법원이 어떻게 판결했다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절대 불법이나 승부조작을 해주는 대가로 받은 돈은 아니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손준호가 받은 혐의는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다. 이는 정부기관이 아닌 기업 또는 기타 단위에 소속된 사람이 자신의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타인의 재물을 불법 수수한 경우 적용된다.

손준호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당초 손준호에게 ‘60∼65만위안(약 1억3000만원) 규모의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뇌물수수 혐의는 금품 수수에 대한 대가성 입증 여부가 관건인데, 손준호는 “중국 공안이 지난해 1월 산둥-상하이전 승부조작에 내가 가담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준호는 ‘불법 구금·강압수사’를 못 이겨 거짓으로 자백했으나, 이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60∼65만위안 뇌물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자백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구금 기간 내내 무혐의를 호소했다는 손준호는, 재판에서는 중국 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20만위안 금품 수수 혐의를 인정했지만, 승부조작 혐의엔 단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손준호는 “서로 얘기하지 않기로 했는데 중국축구협회서 먼저 발표했기에 나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도 이젠 잃을 게 없고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면 내가 범죄자로 생각되는 것 같아서 자리를 만들었다”고 기자회견을 연 이유를 설명했다.

1시간30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손준호의 혐의를 뒷받침하거나, 그의 결백에 힘을 싣는 공식 문서·자료 등 뚜렷한 증거가 단 하나도 제시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중국축구협회는 “사법기관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전 산둥 타이산 선수 손준호는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도모하려고 정당하지 않은 거래에 참여했고, 축구 경기를 조작하고 불법 이익을 얻었다”며 “이에 따라 협회는 축구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평생 금지한다”고 밝혔다. 

유죄 판결문
실마리 단서

이날 중국 국가체육총국과 공안부는 공동으로 다롄서 축구 프로리그 불법 도박과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중국 공안부와 협회는 1년에 걸친 공조 수사를 바탕으로 반부패 및 승부조작 혐의로 선수 및 축구계 종사자 61명을 무더기 징계했다.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로 10개월 구금됐다가 풀려난 손준호는 영구 제명 징계를 받은 43명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렸다. 협회는 손준호를 포함해 산둥 타이산과 선양 훙윈, 장쑤 쑤닝, 상하이 선화 등에서 뛰었던 선수 44명에게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17명에겐 5년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그러다 지난 12일, 협회가 손준호에 대한 영구 제명 징계 내용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통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협회는 지난 11일 대한축구협회에 보낸 공문을 통해 “손준호에 대한 영구 제명 징계를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보고했다” “향후 조치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손준호는 당장은 K리그1 일정은 소화가 가능하나, FIFA가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국축구협회의 징계 내용을 검토한 뒤 각 회원국에 손준호의 징계 내용을 전달하면 어느 국가서도 축구선수로 뛸 수 없게 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통한 항소가 유일하다.

지난 6월 손준호를 영입한 수원FC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최순호 수원FC 단장은 “최종적으로 ‘손준호가 (K리그)경기에 뛸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경기장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준호는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정식 선수 등록을 허용받은 후 지난 6월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FC에 입단해 국내 무대에 복귀했다. 

손준호 측은 “중국축구협회가 (FIFA에)사실을 밝히려면 손준호가 승부조작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제 생각에는 증거가 없어서 FIFA가 중국축구협회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만약에 FIFA가 중국 손을 들어주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추후 대응하겠다”며 최악의 상황 발생 가능성도 열어뒀다.

공안 협박에 거짓 자백?
FIFA에 영구 제명 통지

한국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손준호는 지난 2014년 K리그1 포항 스틸러스서 데뷔한 뒤, 2018년부터 전북 현대서 활약했다. 2020년 전북의 K리그1 우승을 이끌었고, MVP를 받기 힘든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당당히 MVP를 차지했다. 

이후 MVP와 동시에 중국 산둥 이적을 선택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손준호는 산둥서 수비형/중앙 미드필더로 2021 중국 슈퍼리그 21경기 4득점 4도움 및 90분당 공격포인트 0.40으로 맹활약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연말 시상식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MVP가 유력한 분위기였다. 

곧바로 중국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났지만 지난해 5월 중국 상하이 홍차오 공항을 통해 귀국하려다 공안에 연행됐고, 이후 형사 구류돼 랴오닝성 차오양 공안국으로부터 뇌물 혐의로 조사받았다. ‘형사 구류’는 현행범이나 피의자에 대해 수사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구금 상태서 실시하는 강제수사다.

손준호 측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체포된 그는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조차 없는 간단한 사안’이라는 중국 공안의 말을 믿었다. 이에 변호사 없이 공안 조사를 받았고, 한국어를 어눌하게 구사하는 통역자의 도움만 받았다. 

수사 주체가 랴오닝성 공안 당국인 까닭에 손준호는 체류 지역인 산둥성서 이송돼 조사를 받았다. 이는 한국 팬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고, 이후 손준호에 대한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앞서 한국 정부는 줄기차게 불구속 수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그를 면담했으나 사건에 대한 얘기는 나누지 못했다. 영사 접견인 만큼, 영사나 손준호 모두 혐의에 대해 말을 나누지 못했다. 대신 건강상태는 괜찮다는 정도만 파악했다. 

사태를 주시하던 대한축구협회도 현장 상황 파악과 지원을 위해 전한진 경영본부장과 변호사를 중국에 급파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귀국한 바 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아무런 조처를 할 수 없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손준호의 소식이 새는 것을 차단했다. 국내 축구 팬들은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손준호의 석방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10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지난 3월 풀려나 귀국했다.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식 축구 활동이 없었던 손준호는 석방과 동시에 빠르게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K5리그에 속한 건융FC에 들어가 실전감각을 키우려 했다. 동시에 손준호는 친정팀 전북과 계약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이 과정서 전북의 모기업이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그의 이적은 무산됐다. 대신 수원FC가 손준호에게 손을 내민 뒤, 현재까지 정상적으로 수원FC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중징계 위기
은퇴 갈림길

손준호는 복귀 후 이번 시즌 K리그1 12경기에 출전했다. 지난달 18일엔 울산HD를 상대로 자신의 복귀 골이자, 수원FC 데뷔골을 넣었다. 이에 손준호는 감격의 눈물과 함께 “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끝까지 응원한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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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