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 직지 미스터리 추적

눈에 보이는 27년 미제사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재의 가치는 이어받은 자의 의지에 비례한다. 그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문화재의 생명력과 직결된다. 우리는 조상이 남긴 눈부신 문화와 그 집약체를 잘 지켜가고 있는가. 650여년 전 인쇄된 한 권의 고서적이 그 대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바로 직지(直指)다. 

1377년, 1455년, 1972년, 1995년, 2001년 그리고 2022년. 정식 서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고서적으로 ‘직지심체요절’ ‘직지’ 등의 약칭으로 불린다.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성서>보다 78년 앞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880년대 후반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랑 드 플랑시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 직지가 포함돼 프랑스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구성돼있는데 이 중 하권 1권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시돼있다.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책 박람회에서 그 실물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2001년 9월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직지 맨 마지막장에 적힌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는 간행 시기와 장소, 방법을 명시한 문구다. 흥덕사 터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청주목)는 이른바 ‘직지의 도시’로 매년 9월이 되면 다양한 직지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직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단순히 오래됐을 뿐(最古) 문화사적 가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는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그 이상의 문화재라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직지 목판본이 보물 1132호로 지정된 점으로 미루어 금속활자본이 발견되면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직지 원본은 없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제기된 일종의 ‘제보’가 1995년에 있었다.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전문가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서적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금속활자 자체가 목판과 비교해 서적을 다량으로 찍어내기 위한 의도로 제작됐기 때문.

1995년 11월 최모씨는 자신의 집안에 소유하고 있던 고서적 몇 권이 한 부부를 통해 안모씨에게 넘어간 이후 엉뚱한 책이 돌아왔다며 청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최씨 일가는 안씨에게 빌려준 고서적 중에 직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씨가 실제 빌려간 책 대신 다른 책을 돌려주고 직지를 은닉했다는 주장이다. 

이듬해인 1996년 12월16일 청주MBC에서 <월요기획: 국보급 직지 국내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청주시민회에서 결성한 ‘직지 찾기 운동본부’도 최씨 일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처음에는 무혐의로 처리됐던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재판으로 이어졌다. 

1995년 첫 고소 이뤄져
재수사 끝에 집유 선고


청주지법 재판부는 1998년 11월26일 안씨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안씨가 빌려간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돌려줬다고 주장한 최씨 일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서 안씨가 빌려간 책이 직지였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시도했다.

재판의 쟁점이 안씨의 행위 그 자체보다 대상에 있다는 점을 재판부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최씨 일가의 집에 이른바 직지가 소장돼있었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할 수 없지만 안씨가 빌려간 이 사건 고서가 직지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며 “안씨가 고서를 횡령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만 그 고서가 직지인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재판부가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최씨 일가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직지가 국내에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발‧진정‧항고‧재항고 등 직지를 찾아달라는 호소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새로운 고발인이 등장했고 안씨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모씨가 전면에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직지를 갖고 있다’는 뉘앙스의 녹취록이 나왔고 새로운 증인과 참고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백~수천장에 이르는 고발장, 자료 등은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진행된 고발건에 대해서는 경찰 선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횡령 인정
판단 유보

문제는 고발인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5년 이후 직지 관련 고발건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현재 구조상 경찰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히 녹취록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식과 무능력, 무기력함, 그리고 권력기관의 무관심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감사원과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이(직지 찾기에)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직지 관련 활동을 하는 몇몇 관계자들도 박 변호사와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특히 1995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진정서를 내는 과정에서 진정인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진정인 목록에는 ▲청주시장 ▲청주시의회의장 ▲청주시 변호사회 ▲청주시의회 의원 ▲대학교수 등 청주시 오피니언 리더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지 관련 고발을 진행한 이들은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과거에 비해 직지 관련 단체가 크게 늘었지만 고발과 관련해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청주고인쇄박물관, 사단법인 세계직지문화협회 등은 직지 관련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직지 찾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고발인은 “과거와 비교해 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청주시에서 직지 관련 단체에 예산을 지원할 정도인데도 유독 직지 찾기에는 관심이 없다”며 “프랑스에 있는 직지를 국내로 반환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있을 수도 있는 직지를 찾는 데 힘을 쏟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는 “직지 실물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일단 실체가 확인돼야 그것이 직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보가 간간히 들어오지만 확인된 적은 없다고도 했다. 박물관의 역할은 직지를 찾은 이후에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종결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사무총장은 1998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문에도 이름이 등장할 만큼 오랜 기간 직지 관련 일을 해온 전문가다.

또 다른 고발인은 결국 수사기관, 특히 경찰 수사로 모든 이야기가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경찰 수사가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수사 종결을 ‘방패’로 고발 등의 문제제기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행사는 진행
도움은 없어

그러면서 직지 관련 고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이어 피고발인으로 지목된 이씨에 대한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일요시사>가 만난 고발인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직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2명(이씨와 안씨)이나 존재한다”며 “그 근거를 수사기관에 충분히 제공했는데도 압수수색 한 번 이뤄지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씨는 충남역사문화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고 충남대에서 한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고서적에 식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대전 지역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직지 등의 옛날 책을 알아볼 수 있는 나름의 ‘눈’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발인은 이씨가 수차례에 걸쳐 ‘직지를 갖고 있다’ ‘(직지를)일본인에게 팔려고 시도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녹취록 또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고발인은 이씨의 집에 상당량의 문화재가 있고 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 중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1995년 최씨 일가가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안씨 집 가택수색 시 사전 양해를 구하고 형식적인 수색이 이뤄지면서 빌려간 책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을 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씨의 관계다. 현재 피고발인으로 이씨만 지목돼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고발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가 이뤄진 적도 있다.  

새로운 증거로 고발해도   
경찰 문턱 못 넘고 스톱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의 진정서 내용에 ‘안씨는 <○○일보> 이○○ 기자(이씨)로부터 고서의 중요성을 알게 돼 구입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판결문에는 ‘안씨는 실크로드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풍습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해 책을 만들려고 하니 옛날 물건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후’라는 배경이 기재돼있다. 

공교로운 점은 실크로드 관련 책을 쓴 사람은 안씨가 아니라 이씨라는 사실이다. 이씨는 1994년 <신 실크로드> 1, 2편을 내놨다. 안씨가 책을 쓰기 위해 고서적을 빌렸다가 이씨에게 줬든, 안씨의 집에 있던 고서적을 이씨가 가져갔든 간에 최소 1993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는 셈이다.  

고발인은 “안씨와 이씨는 최초 직지의 횡령 과정에서부터 서로 긴밀히 연결돼 묵시적으로 공모관계를 형성했거나 적어도 이씨가 직지를 어딘가에 숨겨 보관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현재에도 사후 공모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서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전 청주MBC 남윤성 PD는 “직지는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다”라며 “인쇄술의 발달은 서적을 배포한다는 점에서 문화발전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고려가 얼마나 문화선진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직지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1996년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당시 국내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PD는 직지, 금속활자 등과 관련해 1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특히 금속활자와 관련한 보도는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그 영향력이 컸다.

납득 못할
수사 결과

직지 찾기에 오랜 시간 매진해온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수사기관에서 계속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그게 어떤 결론이든지 간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계속 직지 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직지 소유 의심’  이모씨 입장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씨는 최소 2명의 고발인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한 바 있다.

경찰은 모두 무혐의, 불송치 처리했다. 

이씨는 고발인 가운데 1명과 금전적으로 채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의 관계를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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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