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 직지 미스터리 추적

눈에 보이는 27년 미제사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재의 가치는 이어받은 자의 의지에 비례한다. 그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문화재의 생명력과 직결된다. 우리는 조상이 남긴 눈부신 문화와 그 집약체를 잘 지켜가고 있는가. 650여년 전 인쇄된 한 권의 고서적이 그 대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바로 직지(直指)다. 

1377년, 1455년, 1972년, 1995년, 2001년 그리고 2022년. 정식 서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고서적으로 ‘직지심체요절’ ‘직지’ 등의 약칭으로 불린다.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성서>보다 78년 앞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880년대 후반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랑 드 플랑시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 직지가 포함돼 프랑스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구성돼있는데 이 중 하권 1권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시돼있다.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책 박람회에서 그 실물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2001년 9월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직지 맨 마지막장에 적힌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는 간행 시기와 장소, 방법을 명시한 문구다. 흥덕사 터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청주목)는 이른바 ‘직지의 도시’로 매년 9월이 되면 다양한 직지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직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단순히 오래됐을 뿐(最古) 문화사적 가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는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그 이상의 문화재라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직지 목판본이 보물 1132호로 지정된 점으로 미루어 금속활자본이 발견되면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직지 원본은 없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제기된 일종의 ‘제보’가 1995년에 있었다.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전문가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서적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금속활자 자체가 목판과 비교해 서적을 다량으로 찍어내기 위한 의도로 제작됐기 때문.

1995년 11월 최모씨는 자신의 집안에 소유하고 있던 고서적 몇 권이 한 부부를 통해 안모씨에게 넘어간 이후 엉뚱한 책이 돌아왔다며 청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최씨 일가는 안씨에게 빌려준 고서적 중에 직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씨가 실제 빌려간 책 대신 다른 책을 돌려주고 직지를 은닉했다는 주장이다. 

이듬해인 1996년 12월16일 청주MBC에서 <월요기획: 국보급 직지 국내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청주시민회에서 결성한 ‘직지 찾기 운동본부’도 최씨 일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처음에는 무혐의로 처리됐던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재판으로 이어졌다. 

1995년 첫 고소 이뤄져
재수사 끝에 집유 선고


청주지법 재판부는 1998년 11월26일 안씨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안씨가 빌려간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돌려줬다고 주장한 최씨 일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서 안씨가 빌려간 책이 직지였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시도했다.

재판의 쟁점이 안씨의 행위 그 자체보다 대상에 있다는 점을 재판부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최씨 일가의 집에 이른바 직지가 소장돼있었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할 수 없지만 안씨가 빌려간 이 사건 고서가 직지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며 “안씨가 고서를 횡령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만 그 고서가 직지인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재판부가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최씨 일가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직지가 국내에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발‧진정‧항고‧재항고 등 직지를 찾아달라는 호소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새로운 고발인이 등장했고 안씨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모씨가 전면에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직지를 갖고 있다’는 뉘앙스의 녹취록이 나왔고 새로운 증인과 참고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백~수천장에 이르는 고발장, 자료 등은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진행된 고발건에 대해서는 경찰 선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횡령 인정
판단 유보

문제는 고발인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5년 이후 직지 관련 고발건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현재 구조상 경찰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히 녹취록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식과 무능력, 무기력함, 그리고 권력기관의 무관심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감사원과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이(직지 찾기에)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직지 관련 활동을 하는 몇몇 관계자들도 박 변호사와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특히 1995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진정서를 내는 과정에서 진정인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진정인 목록에는 ▲청주시장 ▲청주시의회의장 ▲청주시 변호사회 ▲청주시의회 의원 ▲대학교수 등 청주시 오피니언 리더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지 관련 고발을 진행한 이들은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과거에 비해 직지 관련 단체가 크게 늘었지만 고발과 관련해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청주고인쇄박물관, 사단법인 세계직지문화협회 등은 직지 관련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직지 찾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고발인은 “과거와 비교해 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청주시에서 직지 관련 단체에 예산을 지원할 정도인데도 유독 직지 찾기에는 관심이 없다”며 “프랑스에 있는 직지를 국내로 반환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있을 수도 있는 직지를 찾는 데 힘을 쏟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는 “직지 실물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일단 실체가 확인돼야 그것이 직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보가 간간히 들어오지만 확인된 적은 없다고도 했다. 박물관의 역할은 직지를 찾은 이후에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종결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사무총장은 1998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문에도 이름이 등장할 만큼 오랜 기간 직지 관련 일을 해온 전문가다.

또 다른 고발인은 결국 수사기관, 특히 경찰 수사로 모든 이야기가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경찰 수사가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수사 종결을 ‘방패’로 고발 등의 문제제기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행사는 진행
도움은 없어

그러면서 직지 관련 고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이어 피고발인으로 지목된 이씨에 대한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일요시사>가 만난 고발인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직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2명(이씨와 안씨)이나 존재한다”며 “그 근거를 수사기관에 충분히 제공했는데도 압수수색 한 번 이뤄지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씨는 충남역사문화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고 충남대에서 한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고서적에 식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대전 지역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직지 등의 옛날 책을 알아볼 수 있는 나름의 ‘눈’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발인은 이씨가 수차례에 걸쳐 ‘직지를 갖고 있다’ ‘(직지를)일본인에게 팔려고 시도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녹취록 또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고발인은 이씨의 집에 상당량의 문화재가 있고 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 중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1995년 최씨 일가가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안씨 집 가택수색 시 사전 양해를 구하고 형식적인 수색이 이뤄지면서 빌려간 책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을 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씨의 관계다. 현재 피고발인으로 이씨만 지목돼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고발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가 이뤄진 적도 있다.  

새로운 증거로 고발해도   
경찰 문턱 못 넘고 스톱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의 진정서 내용에 ‘안씨는 <○○일보> 이○○ 기자(이씨)로부터 고서의 중요성을 알게 돼 구입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판결문에는 ‘안씨는 실크로드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풍습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해 책을 만들려고 하니 옛날 물건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후’라는 배경이 기재돼있다. 

공교로운 점은 실크로드 관련 책을 쓴 사람은 안씨가 아니라 이씨라는 사실이다. 이씨는 1994년 <신 실크로드> 1, 2편을 내놨다. 안씨가 책을 쓰기 위해 고서적을 빌렸다가 이씨에게 줬든, 안씨의 집에 있던 고서적을 이씨가 가져갔든 간에 최소 1993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는 셈이다.  

고발인은 “안씨와 이씨는 최초 직지의 횡령 과정에서부터 서로 긴밀히 연결돼 묵시적으로 공모관계를 형성했거나 적어도 이씨가 직지를 어딘가에 숨겨 보관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현재에도 사후 공모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서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전 청주MBC 남윤성 PD는 “직지는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다”라며 “인쇄술의 발달은 서적을 배포한다는 점에서 문화발전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고려가 얼마나 문화선진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직지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1996년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당시 국내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PD는 직지, 금속활자 등과 관련해 1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특히 금속활자와 관련한 보도는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그 영향력이 컸다.

납득 못할
수사 결과

직지 찾기에 오랜 시간 매진해온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수사기관에서 계속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그게 어떤 결론이든지 간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계속 직지 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직지 소유 의심’  이모씨 입장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씨는 최소 2명의 고발인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한 바 있다.

경찰은 모두 무혐의, 불송치 처리했다. 

이씨는 고발인 가운데 1명과 금전적으로 채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의 관계를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