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의 훈민정음 해례본’ 직지 미스터리 추적

눈에 보이는 27년 미제사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화재의 가치는 이어받은 자의 의지에 비례한다. 그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그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문화재의 생명력과 직결된다. 우리는 조상이 남긴 눈부신 문화와 그 집약체를 잘 지켜가고 있는가. 650여년 전 인쇄된 한 권의 고서적이 그 대답을 대신하는 듯하다. 바로 직지(直指)다. 

1377년, 1455년, 1972년, 1995년, 2001년 그리고 2022년. 정식 서명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고서적으로 ‘직지심체요절’ ‘직지’ 등의 약칭으로 불린다.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성서>보다 78년 앞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1880년대 후반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랑 드 플랑시가 수집한 문화재 중에 직지가 포함돼 프랑스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구성돼있는데 이 중 하권 1권만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시돼있다.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책 박람회에서 그 실물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2001년 9월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직지 맨 마지막장에 적힌 ‘선광칠년정사칠월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는 간행 시기와 장소, 방법을 명시한 문구다. 흥덕사 터가 위치한 충북 청주시(청주목)는 이른바 ‘직지의 도시’로 매년 9월이 되면 다양한 직지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직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단순히 오래됐을 뿐(最古) 문화사적 가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있는 국보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그 이상의 문화재라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직지 목판본이 보물 1132호로 지정된 점으로 미루어 금속활자본이 발견되면 ‘국보급’ 문화재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직지 원본은 없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제기된 일종의 ‘제보’가 1995년에 있었다.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의 시작이다. 일부 전문가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서적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금속활자 자체가 목판과 비교해 서적을 다량으로 찍어내기 위한 의도로 제작됐기 때문.

1995년 11월 최모씨는 자신의 집안에 소유하고 있던 고서적 몇 권이 한 부부를 통해 안모씨에게 넘어간 이후 엉뚱한 책이 돌아왔다며 청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최씨 일가는 안씨에게 빌려준 고서적 중에 직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씨가 실제 빌려간 책 대신 다른 책을 돌려주고 직지를 은닉했다는 주장이다. 

이듬해인 1996년 12월16일 청주MBC에서 <월요기획: 국보급 직지 국내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직지 은닉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청주시민회에서 결성한 ‘직지 찾기 운동본부’도 최씨 일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처음에는 무혐의로 처리됐던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재판으로 이어졌다. 

1995년 첫 고소 이뤄져
재수사 끝에 집유 선고


청주지법 재판부는 1998년 11월26일 안씨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안씨가 빌려간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돌려줬다고 주장한 최씨 일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서 안씨가 빌려간 책이 직지였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시도했다.

재판의 쟁점이 안씨의 행위 그 자체보다 대상에 있다는 점을 재판부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최씨 일가의 집에 이른바 직지가 소장돼있었을 가능성 자체는 배제할 수 없지만 안씨가 빌려간 이 사건 고서가 직지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며 “안씨가 고서를 횡령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만 그 고서가 직지인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재판부가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최씨 일가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직지가 국내에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발‧진정‧항고‧재항고 등 직지를 찾아달라는 호소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새로운 고발인이 등장했고 안씨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모씨가 전면에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직지를 갖고 있다’는 뉘앙스의 녹취록이 나왔고 새로운 증인과 참고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백~수천장에 이르는 고발장, 자료 등은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진행된 고발건에 대해서는 경찰 선에서 수사가 종결됐다. 

횡령 인정
판단 유보

문제는 고발인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5년 이후 직지 관련 고발건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현재 구조상 경찰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특히 녹취록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식과 무능력, 무기력함, 그리고 권력기관의 무관심이 현 상황을 만들어냈다”며 “감사원과 문화재청 등 국가기관이(직지 찾기에)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직지 관련 활동을 하는 몇몇 관계자들도 박 변호사와 비슷한 의견을 제기했다. 

특히 1995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진정서를 내는 과정에서 진정인의 서명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진정인 목록에는 ▲청주시장 ▲청주시의회의장 ▲청주시 변호사회 ▲청주시의회 의원 ▲대학교수 등 청주시 오피니언 리더의 이름이 올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직지 관련 고발을 진행한 이들은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과거에 비해 직지 관련 단체가 크게 늘었지만 고발과 관련해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청주고인쇄박물관, 사단법인 세계직지문화협회 등은 직지 관련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직지 찾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고발인은 “과거와 비교해 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청주시에서 직지 관련 단체에 예산을 지원할 정도인데도 유독 직지 찾기에는 관심이 없다”며 “프랑스에 있는 직지를 국내로 반환할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있을 수도 있는 직지를 찾는 데 힘을 쏟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는 “직지 실물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일단 실체가 확인돼야 그것이 직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보가 간간히 들어오지만 확인된 적은 없다고도 했다. 박물관의 역할은 직지를 찾은 이후에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정하 세계직지문화협회 사무총장은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수사기관에서 종결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사무총장은 1998년 최씨 일가가 안씨를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문에도 이름이 등장할 만큼 오랜 기간 직지 관련 일을 해온 전문가다.

또 다른 고발인은 결국 수사기관, 특히 경찰 수사로 모든 이야기가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경찰 수사가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의 수사 종결을 ‘방패’로 고발 등의 문제제기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행사는 진행
도움은 없어

그러면서 직지 관련 고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이어 피고발인으로 지목된 이씨에 대한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일요시사>가 만난 고발인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직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2명(이씨와 안씨)이나 존재한다”며 “그 근거를 수사기관에 충분히 제공했는데도 압수수색 한 번 이뤄지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씨는 충남역사문화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고 충남대에서 한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 고서적에 식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대전 지역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직지 등의 옛날 책을 알아볼 수 있는 나름의 ‘눈’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발인은 이씨가 수차례에 걸쳐 ‘직지를 갖고 있다’ ‘(직지를)일본인에게 팔려고 시도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녹취록 또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고발인은 이씨의 집에 상당량의 문화재가 있고 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 중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1995년 최씨 일가가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당시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는 ‘안씨 집 가택수색 시 사전 양해를 구하고 형식적인 수색이 이뤄지면서 빌려간 책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을 준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이씨의 관계다. 현재 피고발인으로 이씨만 지목돼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고발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가 이뤄진 적도 있다.  

새로운 증거로 고발해도   
경찰 문턱 못 넘고 스톱

청주시민회 직지 찾기 운동본부의 진정서 내용에 ‘안씨는 <○○일보> 이○○ 기자(이씨)로부터 고서의 중요성을 알게 돼 구입한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판결문에는 ‘안씨는 실크로드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풍습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해 책을 만들려고 하니 옛날 물건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후’라는 배경이 기재돼있다. 

공교로운 점은 실크로드 관련 책을 쓴 사람은 안씨가 아니라 이씨라는 사실이다. 이씨는 1994년 <신 실크로드> 1, 2편을 내놨다. 안씨가 책을 쓰기 위해 고서적을 빌렸다가 이씨에게 줬든, 안씨의 집에 있던 고서적을 이씨가 가져갔든 간에 최소 1993년부터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었다는 게 확인되는 셈이다.  

고발인은 “안씨와 이씨는 최초 직지의 횡령 과정에서부터 서로 긴밀히 연결돼 묵시적으로 공모관계를 형성했거나 적어도 이씨가 직지를 어딘가에 숨겨 보관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현재에도 사후 공모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에서 두 사람 모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직지가 국내에 있을 가능성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최초로 제기한 전 청주MBC 남윤성 PD는 “직지는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다”라며 “인쇄술의 발달은 서적을 배포한다는 점에서 문화발전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고려가 얼마나 문화선진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직지인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1996년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당시 국내에 직지가 있을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송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PD는 직지, 금속활자 등과 관련해 10여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특히 금속활자와 관련한 보도는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등 그 영향력이 컸다.

납득 못할
수사 결과

직지 찾기에 오랜 시간 매진해온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수사기관에서 계속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그게 어떤 결론이든지 간에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계속 직지 찾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직지 소유 의심’  이모씨 입장은?

현재 직지를 갖고 있다고 의심받는 이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장난으로 한 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씨는 최소 2명의 고발인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한 바 있다.

경찰은 모두 무혐의, 불송치 처리했다. 

이씨는 고발인 가운데 1명과 금전적으로 채무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서적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안씨와의 관계를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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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개편안이 시행되는 것은 아직 1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수사관, 지휘부와 일선 검사들은 물론 퇴직 검사들까지 나서서 검찰청 폐지에 반대 중이다. 특히 공소청장을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개혁안에 대해 위헌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대선 기간부터 말이 나왔던 검찰개혁안이 발표됐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고 검찰개혁안에 대해 쉬쉬하던 검찰 내부에서는 이제야 조직을 지키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수사관, 검사, 퇴직 검사, 지휘부 등 모든 관계자들이 검찰 해체가 ‘위헌’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등 늦게나마 조직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위헌” 목소리 지난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의견을 모았다. 다만 시행 시기는 세부 방안 확정 등을 위해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당정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건의한 조직 개편안을 중심으로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듣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마련한 정부 조직 개편방안을 추진했다”며 “개편 방안 중 검찰개혁을 가장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완성은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며 “그간 검찰의 견제받지 않은 권한의 남용과 공정성 훼손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정은 검찰 수사·기소를 분리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각각 신설하며,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두기로 확정했다. 한 위원장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의 제기와 유지, 영장 청구 등을 수행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공소청을 신설하는 한편, 부패·경제 범죄 등 중대 범죄에 대한 수사를 수행하기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중수청을 신설하겠다”고 설명했다. 헌법의 검찰총장 임명 조항과 관련해 ‘공소청장이 검찰총장이 되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정은 구체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개혁추진단을 구성해 당정대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은 “오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의원 입법을 통해 조속히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추석 이전에 개편안을 시행하기 위해 이달 말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며 “정부 조직 개편에 특별히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잘못 인정하지만 폐지는 절대…”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지난 9일 야권에 ‘3대 개혁(검찰·사법·언론)’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검찰, 사법,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곳”이라면서 “3대 개혁은 비정상적인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시대에 맞게 고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며 “절대 독점을 해소함으로써 권력기관은 스스로 절대 부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개혁은 타이밍”이라며 “추석 귀향길 뉴스에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해체되는 검찰개혁안이 발표되자, 검찰 구성원은 이제야 뭉쳐 반발하는 분위기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검찰청 폐지’를 토대로 한 정부 조직법 개편안을 두고 “검찰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지난 8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전날 정부여당이 내놓은 정부 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헌법에 명시돼있는 검찰이 법률에 의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에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서 세부적인 방향이 진행될 것인데, 그 세부적인 방향은 국민들 입장에서 설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반성’을 앞세우면서도 ‘강제 개명’ ‘국민 입장’ 등 뼈 있는 표현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희 검찰도 입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검찰 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검찰 수사관들은 전국 검찰 수사관회의를 열어 달라고 대검찰청에 요청하고 있다. 이대로 사라지나 수사관 A씨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현재 검찰 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내 친구들에게, 내 친척들에게, 내 이웃사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정말 우려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 자신을 8년 차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그는 “저희는 노조(노동조합)도 없고 직장협의회도 없다”며 “검찰이 해체되면 도대체 1년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저는 수사가 하고 싶어 수사관이 됐는데, 앞으로 수사할 수도 없이 제가 8년간 소중히 여겨온 검찰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빼앗겨야 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대검 운영지원과에 조속히 전국수사관회의를 열어줄 것을 요구한다”며 “저희 검찰 수사관들을 위한 논의를, 검찰 조직의 방향을 위한 논의를, 형사법체계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검찰 구성원들끼리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하자 서울고검·대구지검 등 소속 검찰 수사관 수백명이 2022년 4월 검찰수사관회의를 열고 우려 입장을 밝혔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일부 검사들은 ‘원대 복귀’ 희망 의사를 특검 지휘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건진법사 게이트와 통일교 수사팀장을 맡은 부장검사 2명이 팀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특검보에게 “전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다만 특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에 대해 “정식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며 “내심의 의사는 모르지만 아직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퇴직 검사들도 검찰청 폐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퇴직 검사 및 검찰공무원 모임인 검찰동우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여당은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시 살릴 방법은? 이들은 “검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해체 위기까지 맞이하게 된 데 대해 국민 앞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는 것을 넘어 개혁 대상이 된 현실은 검찰 구성원의 과오에서 비롯됐음을 통감하며 국민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권한을 조정하고 조직을 개편하려는 입법부의 결단을 존중하며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에 동참할 것”이라면서도 “개혁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성급한 개혁은 위헌 논란을 야기해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게 할 위험이 크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1948년 제헌 헌법은 수많은 직위 중 유독 검찰총장을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명시했고 이 원칙은 70년 넘는 헌정사 동안 굳건히 지켜져 왔다. 검찰청과 그 책임자인 검찰총장이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닌 헌법적 차원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는 헌법적 기관임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헌법이 인정한 기관의 명칭을 법률로 변경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며 법체계의 위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법률로 헌법상의 법원을 재판소로 바꾸거나 국무총리를 부통령으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은 위헌적 논란을 감수하며 명칭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개혁의 핵심은 명칭이 아닌, 검찰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며 “개혁의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주길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청 폐지 위헌 주장은 헌법 89조16호에서 비롯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공소청장’을 헌법 제89조 제16호의 ‘검찰총장’으로 본다”는 공소청 법안 규정을 두고, “헌법상의 기관을 헌법 하위의 법률로써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89조 16항 발목 잡나 “규정 넣으면 실질 갖출 수도” 그는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라고 하는 조직의 수장이고 검찰청은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는 조직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조직의 명칭만 바꾸는 것도 위헌이고 명칭을 그대로 두고 내용을 바꾸는 것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법 제89조 제16호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로 ‘검찰총장·합동참모의장·각군 참모총장·국립대학교총장·대사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관리자의 임명’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노태우정부에서도 합동참모본부를 국방참모본부로, 합동참모의장을 국방참모의장으로 각각 변경하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같은 헌법 89조에 따른 위헌 지적이 나오자 명칭 변경을 포기한 선례도 있다. 2010년에도 군 지휘구조 개편을 통해 합동참모본부를 합동군사령부로, 합동참모의장을 합동군사령관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위헌 가능성이 있어 개정안을 발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찰청 폐지 역시 검찰총장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헌법상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란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인데 이를 없애거나 두지 않는 건 ‘위헌적 입법 부작위’라는 취지다. 공소청 설치법에서 공소청장을 ‘헌법상 검찰총장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은 하위 법률로 헌법에서 정한 사항을 무력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검찰청 폐지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검찰동인회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나오자 당정은 ‘검찰청이 헌법기관이 아니라 폐지하면 위헌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검찰총장을 헌법상 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검사는 개개인 독립된 행정관청이고, 검찰총장은 그 집합체의 장일 뿐 조직법상 직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총장 명시 헌법 위반? 헌법상 검찰총장이 명시돼있더라도 공석으로 임명하지 않은 채 충분히 신설 공소청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공소청장을 임명하면 검찰총장은 헌법 조문상에서만 존재하게 두고 법적 지위는 없어진 게 되는 것”이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헌법 92조), 국가원로자문회의(헌법 90조) 등 헌법상 사문화된 기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공소청 법안이 준비되면 공소청장 임명에 관한 규정에 ‘헌법 89조 16조의 검찰총장 임명 방식을 준용한다’는 규정을 넣으면 실질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법 역시 법적 미비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 등으로 명시해 근거를 마련했다는 게 근거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