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민주당?’ 대표 후보들에게 물었다

희미해진 파란색, 각자 도색법은?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몇몇 의원의 정치적 자산은 군부독재 시절부터 이어온 ‘민주화 운동’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이들은 인생을 걸고 군부독재와 맞서 싸웠다. 민주화 투사들은 길고 긴 투쟁 끝에 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냈고 이후 크고 작은 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며 수많은 공을 세워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수십년이 흐른 지금, 이들이 세운 공이 민주당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불어민주당 존립의 이유였다. 바닥으로 떨어진 인권과 핍박받았던 표현의 자유, 가진 자들의 횡포를 겪은 서민들은 이런 민주당의 기치를 인정했고, 선거 때마다 표를 찍어줬다. 

이도 저도…

그런 그들의 기치가 최근 빛을 잃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일반 대중들이 민주주의가 이미 실현됐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은 ‘정치적 의사표현’이 자유롭고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법적 평등’을 보장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당 안팎에서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모호해진 민주당의 준거집단을 재설정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준거집단이란 정당의 정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규범을 갖춘 집단으로, 정당의 이념과 핵심 지지층을 형성해온 정당의 뿌리를 의미한다.

과거 민주당의 준거집단은 착취 노동자들, 군부에 탄압받는 시민들, 경제적 불평등을 겪는 서민들이었다. 이는 현재 민주당 정신을 창시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집단의 범위가 넓어져갔다.


DJ 때는 노동자들에서 서민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서민에서 중산층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 때는 ‘모든 국민’으로까지 준거집단이 확대됐다. 이는 현재 당내 지지자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주된 원흉으로 꼽힌다.

이 같은 문제를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 대표 후보들이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최초로 이에 대해 의문부호를 내놓은 후보는 지난 15일 사퇴를 선언한 강훈식 의원이었다. 그는 당 쇄신의 첫 번째 과제로 ‘준거집단의 재설정’을 주장한 바 있다.

강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지를 정확하게 해야 된다”며 “우리가 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모든 국민들에게 사랑받으려 노력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 정당의 정체성이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고 표방했는데, 현대에 들어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졌다. 우리는 소득 격차 시대를 넘어서 자산 격차 시대에 들어선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의원은 이날 <일요시사>에게 준거집단을 중산층과 서민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분리 근거는 연봉이 아닌 자산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중산층과 서민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거엔 월급 400만원 이상 받는 사람을 중산층으로 인식했지만, 현재는 집이 있는 상태에서 400만원을 버느냐, 없는 상태에서 400만원을 버느냐가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강 의원이 서민과 중산층 간의 명확한 기준을 과제로 제시했다면, 박용진 의원은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박 의원은 지금의 노동법 법규상 보호받지 못하는 직군이 더러 존재하며 정치권이 시대에 맞춰 이들에 대한 보호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실현은 이미 이뤄
새로운 준거집단 필요 의견

그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우리나라는 플랫폼 노동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의 노동법이나 사회보장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약자가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준거집단 형성보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부터 해결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비롯한 대형 트럭 운전사들, 기타 보호받지 못하는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가 박 의원의 새로운 준거집단이 될 것”이라며 “준거집단에 대한 새로운 개념보다는 지금의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만들자는 것이 박 의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민주당이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서민을 보호해온 정신을 이어받아 포용과 연대의 정신을 더욱 구체화하겠다는 것이 박 의원의 생각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여기에 더해 사회계층 사다리의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직군에 대한 법적인 보호뿐 아니라 계층간 이동도 활발히 해야 한다”며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할 때 경제는 활성화된다. 즉, 무너진 사회계층 간의 사다리 재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한편, 이재명 의원은 두 의원의 의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인식했던 ‘모든 국민’의 정당으로 나아가는 데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본인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민주당이 심지어 부자까지 준거집단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는 요새 ‘우리가 서민과 중산층이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전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분이 우리 사회에 일정 비율로 있는데 ‘서민과 중산층?’ ‘부자는 적인가?’ 이런 고민을 한다. 고학력·고소득자,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이 우리 지지자가 더 많다”고 발언했다.

해당 발언은 아직까지 이 의원을 괴롭히는 꼬리표가 됐다. 민주당의 정신이라 일컬어지는 DJ의 유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DJ는 대통령 시절 민주당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이 의원은 이때의 민주당 정신은 현재에 부합하지 않으며 새로운 민주당 대표가 준거집단의 범위를 확대해야 시민 전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세부 방안에 대해서는 미흡한 대답만을 쏟아내고 있다. 그간 있었던 여러 번의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진보적 대중 정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세금을 많이 낸 사람들을 대우해주자는 의미’라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각양각색


계속 변화하려는 민주당에 새로운 준거집단은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제 공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넘어갔다. 각양각색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전당대회에 뛰어든 세 후보 중 지지자들이 어떤 후보의 손을 들어줄지 오는 28일 결정된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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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