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가고 싶어요” 대륙에 갇힌 반도체 노예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A사 자회사 직원들은 중국 우시에서 근무한지 2년째다. 이들은 타향살이하며 반도체 공장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공로에 비해 미래는 불확실하다. 사측에선 “정해진 게 없다”고만 말한다. 직원들은 “우리는 회사의 소모품일 뿐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의 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A사는 2019년 4월 신파 그룹과 약 3700억원을 공동출자해 중국 장쑤성 우시 지역에 ‘우시 한중 집적회로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우시 시정부는 설계·제조·장비 등 모든 반도체 산업 체인을 포함한 집적회로 중심지를 목표로 약 5조6100억원을 투입했다.

세계 2위
현장의 그늘

A사는 2006년부터 우시에서 메모리 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운영해 상생·협력 강화 및 공급망 확충 차원에서 현지 기업과 지역사회 협력 사업에 동참했다. 이에 A사의 자회사인 B사가 운영하는 파운드리 공장이 국내 청주에서 우시로 생산거점을 옮겼다.

B사는 2017년 7월 A사의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분사한 자회사다. 8인치 아날로그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A사의 중국 공장 개량 계획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A사의 계획은 중국 동부 장쑤성 우시에 있는 D램 공장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들여오려고 했다. 극자외선은 반도체 초미세공정의 핵심장비로 우시 공장의 양산체계를 갖출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A사가 미국과 중국 분쟁의 다음 희생양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EUV 노광장비 등 첨단장비가 중국에 들어가면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중국 공장 이전으로 위기가 있었지만 곧 이겨냈다. B사의 주력사업인 8인치 아날로그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제품 가격이 수배 오르면서 수익성이 극대화됐다.

중국 봉쇄정책 끝나도 집에 못 가는 현실

지난 3월24일 A사에 따르면 B사는 지난해 매출액과 당기순손익이 각각 6999억원, 1976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매출이 7030억원이고, 당기순손익이 933억원이다. 대비 매출은 소폭 감소했으나 당기순손익은 2배 이상 증대했다.

작년 매출이 줄어든 것은 사업장 이전 때문이다. B사는 2020년 1분기 중국 우시 공장을 준공했다. 당시 청주 M8 공장의 200㎜ 웨이퍼로 제작되는 ▲전력관리 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 칩(DDI) ▲마이크로컨트롤러 유닛(MCU) 등은 수요 공급 불균형으로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 특정 제품은 8배까지 비싸졌다.

A사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이와 반대로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근무 중인 B사 직원들의 앞날은 불안한 실정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B사 직원들은 사측에 지속적으로 한국 복귀에 대해 물어보고 있지만, 사측은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에서 근무 중인 B사 직원에 따르면 우시에는 한국인 50%, 중국인 50%로 직원이 구성됐다. 중국인은 중국 법인 소속이며, 한국인은 한국 법인 소속으로 파견자 직책이다.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한국 직원들이다. 파견된 직원은 대부분 20~30대로 어림잡아 500명 정도다.


직원들은 우시로 파견되기 전부터 사측에 한국 복귀 일정을 물었다. 

하지만 사측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구두로 중국 공장이 안정화되면 계획해보겠다는 정도의 설명이 전부였다. 문서나 서류로 고지한 적도 없었다. 일부 B사 직원은 중국 파견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몇몇은 입사 당시 중국 파견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500명 정도
파견직 근무

불확실한 상황에도 직원들은 점차 우시로 파견됐다. 여전히 사측은 한국 복귀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직원이 한국 복귀에 대해 물어보려고 사측에 면담을 신청하면 “아직 모르겠다. 다음 달에 공지가 내려올 것”이라는 대답을 받기도 했지만, 이미 이 대답을 들은 지도 6개월이나 지났다. 

중국 공장이 설립돼 직원들이 우시에 정착한지 벌써 2년 지났다. 직원들 사이에선 평생 중국에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직원들은 “중국에 파견되기 전에 기본적으로 한국으로 복귀한다면 어떻게 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결정해야 하지 않냐” “B사 직원의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직원을 부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조가 없다고 이렇게 대하는 것 아니냐. 우리가 본사 직원이었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있다.

한 직원은 “이제 한국에 있는 장비가 중국으로 다 왔다. 그러니 B사 직원은 한국의 복귀처가 어디일지 불분명하다. 그룹 내 타 계열사로 전적을 해준다거나 하는 고용보장도 없다. 간담회나 면담할 때 ‘정해진 게 없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며 “우리는 파견 기간이 만기되고 연장 의사가 없으면 중간관리자의 주도하에 퇴사 절차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한국 복귀 일정과 복귀할 곳이 불분명한 것도 불안하지만,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소는 다른 데 있다. 

현재 B사에는 파견 날짜부터 1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직원에게 ▲중국 내 타지역 이동이나 격리 지원 및 개인 연차 소진 시 한국 방문 ▲300만원 상당의 금전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경영진이 만들었고, 회사 인사팀은 직원들에게 일정을 조율해서 다녀오라고 했다.

방문도
불가능

하지만 직원들이 한국 방문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직원이 팀장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말하면, 팀장은 가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직원들을 계속 설득했다. 한국 병원, 건강상 이유, 결혼식 등의 이유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직원은 상견례를 해야 된다는 이유로 한국 방문을 희망했다. 그러자 중간관리자는 “정말 결혼을 할 것 같냐” “다음에 가면 안되냐” “나도 아직 못 갔다” “조금만 참고 내년에 한국 방문하면 안될까” 등의 회유성 발언을 했다.


물론 팀장이 말리더라도 한국에 방문하는 사람은 있다. 그렇지만 사내 이미지가 안 좋아지거나, 추후 있을 인사고과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직원들 중에는 2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직원도 있다.

문제가 이 정도면 좋으련만, 직원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 부분은 또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의한 중국 정부의 봉쇄정책이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봉쇄정책이라고 해도 회사 정책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지난 3일 중국 정부는 우시에 봉쇄정책을 실시했다. B사 역시 봉쇄됐는데, 당시 근무자가 아닌 사람까지 회사로 불러서 봉쇄시켰다. 왜 회사로 부르는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중국 정부의 회사 봉쇄는 지난 15일 풀렸으나 회사는 직원들을 복귀시키지 않았다. 아직 중국 정부가 집 봉쇄를 풀지 않았기 때문인데, 사측은 집에 들어가면 ‘개인 연차’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직원들이 연차를 쓰더라도 집에 가겠다고 하면 팀장이 안 된다고 소리치고 화를 냈다. 아픈 직원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직원 중 한 명은 “비상 대응 시나리오는 예전부터 공유했으면서, 준비는 하나도 안 했다. 직원들을 가둬놓고 밥만 주면서 일을 시키는 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냐”고 지적했다.

아파도 결혼해도 “가지 마”
복귀 일정도 모르는 직원들


이 일에 대해 A씨는 “중국 정부의 봉쇄정책으로 회사에 감금됐든, 아파트에 감금됐든 구성원들을 위해 숙식과 편의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팀장들은 돌아다니면서 침낭 자리에 대한 지적질이나 하고 배고파서 시킨 배달음식 등을 절대 사내로 반입하지 못하게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아파트에 봉쇄된 사람은 관심도 없다. 회사는 매출에만 신경 쓰고, 우리는 소모품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일요시사>는 중국 우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A사 측에 물었다.

B사 직원들의 향후 한국 내 자리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2020년 초부터 코로나가 퍼졌고, 중국은 제로 코로나로 봉쇄정책을 시행했다. 그래서 거기 근무하시는 분들의 고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B사 생산 현장을 우시로 옮기는 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장이 완전히 이전된 뒤에나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도 중국에 가게 될 때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거시경제가 불확실해서 언제 돌아오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한국 방문을 막는다는 주장에 대해선 “중국 정부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봉쇄 중일 때는 누구도 못 움직인다. 시점이 아닐 때는 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외국에 다녀왔다가 들어올 때는 격리를 오래 해야 하고, 입국할 때는 핵산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렇다고 가지 마라고 하진 않는다. 이동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개인이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서 좋지 않게 받아들일 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의
소모품이다”

A사 관계자의 대답에 대해 한 직원은 “직원들이 복귀 일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1차적으로 우시 공장에 장비 이설 및 설치가 모두 완료됐기 때문”이라며 “현장 기준으로 중국인 직원 중에서도 소수 반장으로 근무하는 인원도 있고, 이들끼리 자체적인 교육도 가능한 상황이다. 지금 회사가 한국 복귀에 대해 약속을 하지 않으니, 이런 상황을 이용해 퇴사시키려는 게 아닌지 의심도 든다”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생전 걸음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송사를 치르느라 법정을 오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떤 실수는 손쓸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실수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계약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더욱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김모씨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놀라서 해줬다가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김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 거주할 목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보증금은 2억200만원으로 했다. 해당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새로운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전세 계약 기간 만료 후인 2019년 9월 해당 빌라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임차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주택에 거주할 때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도 대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퇴거하게 되면 이사하는 곳으로 주소를 옮겨야 하니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대항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차권등기명령은 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만큼, 강한 대항력을 가진다”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있다는 것은 세입자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지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에 가입해 뒀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은 전세 계약이 종료됐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을 HUG가 대신 돌려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가 임차인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청구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2019년 10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전액인 2억200만원을 받았다. 전세 살다 보증금 못 받아 전세보증금 보험으로 구제 이후 김씨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고 해당 빌라와 관련한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이후 5년여 동안 해당 빌라와 관련해 김씨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해당 빌라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유권 변동이 일어났지만 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다 지난해 11월 김씨에게 임차권등기명령 취소 신청서가 날아들었다. 김씨는 “법원에서 문서가 송달돼 크게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문서에 기재된 번호로 연락했더니 7년 전 전세로 살았던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집주인이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갑자기 법원에서 종이가 날아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임차권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를 직접 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20일 김씨가 해당 빌라에 걸어놨던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 해당 빌라에 김씨가 행사할 수 있던 권한이 소멸한 것이다. 동시에 집주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줄줄이 꼬였다 이때 김씨가 간과한 사실은 HUG의 존재였다. 김씨가 해당 빌라의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임차권등기를 말소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가 돈을 받은 뒤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주는 게 실제 일반적인 절차다. 이 과정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HUG에서 받았다. HUG 입장에서는 해당 빌라의 집주인에게 2억200만원 즉,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으로 말소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김씨가 배당 순위에서 밀리게 되면서 HUG는 대위변제한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여기에 은행, 지자체 등 후순위 채권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김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HUG 경기관리센터(이하 HUG 경기센터)는 “모든 임차인은 HUG에 대위변제를 받으면서 대위변제증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을 당시 작성한 대위변제증서에는 ‘본인(김씨)은 HUG가 대위변제금 및 제반 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HUG의 동의 없이 주택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겠으며 본인의 주택임차권등기 말소로 인해 HUG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HUG 경기센터는 “HUG는 대위변제 물건을 경매에 넘겨서 배당을 회수하는데 임차권등기명령을 무단 말소하면 경매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UG에 연락했으면 대신 응소해 임차권등기를 지켰을 텐데 당시 김씨가 연로해 이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낙장불입 그러나…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집주인이) 내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본인(집주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며 “내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주인 말에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김씨가 집주인과 해당 빌라의 채권자들에게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피고(집주인)가 원고(김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기망행위를 했다거나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청 취하 행위 자체에 착오에 빠져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속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김씨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HUG 경기센터는 대위변제한 보증금 회수를 위해 일단 김씨의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상황을 참작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차권등기 무단 말소 무효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HUG 측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번도 진행한 적 없는 소송이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원 인정 안 해 HUG, 구제 위해 소송 제기 HUG 경기센터는 “그동안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는 것(낙장불입)으로 보고 임차인 손해배상 청구로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임차권등기 말소 무효 소송을 통해 원상복구 가능성이 있다’는 법률 자문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이 HUG의 승소로 종결돼 임차권등기가 부활하면 김씨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다. 이때 김씨는 소송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HUG 경기센터가 제기한 소송은 김씨에게 해당 빌라에 걸려 있던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만큼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도 HUG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김씨의 임차권등기 말소 행위는 무효라는 게 골자다. HUG 경기센터는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 말소하면서 채권 선순위로 올라온 은행, 세무서, 지자체 등이 김씨의 억울함을 헤아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소하지 않길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씨가 별도로 제기했던 소송에 모두 대응한 전력이 있어 HUG가 제기한 소송에도 응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HUG가 김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구제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이들 후순위 채권자들도 집주인의 허위 소송에 안타깝게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한 김씨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실제 김씨가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은행 한 곳은 대응하지 않았다. 순간 실수 인정될까? 김씨는 집주인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HUG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일이 벌어지고 HUG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재산은 (가압류로) 묶였고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