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동원그룹이 지주사와 중간지주사를 합치기로 결정했다. 경영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방편임을 내세운 회사 측과 달리, 소액주주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인상이 짙다. 그룹의 후계자가 유리하게끔 합병안을 만들었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지난 7일 동원산업은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합병 후 존속회사는 동원산업이고,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은 1:3.838553이다. 기존 동원엔터프라이즈 주주들에게 배정될 합병 신주는 보통주 4487만주, 합병 법인 동원산업의 주식 수는 6326만주다. 합병비율 기준이 되는 주당 평가액은 동원산업 24만8961원, 동원엔터프라이즈 19만1130원이다.
모호한 기준
이번 합병은 그룹 지주사와 중간 지주사가 통합되는 모양새다. 합병 작업이 완료되면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한 동원산업이 그룹의 사업형 지주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명우 동원산업 사장이 사업 부문을 맡고, 박문서 동원엔터프라이즈 사장이 지주 부문을 맡는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그룹 산하 법인 간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산업 ▲동원F&B ▲동원시스템즈 ▲동원건설산업 등을 자회사, 동원산업 휘하 동원로엑스·스타키스트 등을 손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합병 작업이 마무리되면 동원엔터프라이즈(기존 지주사)의 자회사·손자회사들은 동원산업의 자회사로 남는다.
흡수합병을 계기로 동원그룹의 21년에 걸친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작업은 사실상 완료됐다. 동원그룹은 2001년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알렸지만, 지주사 두 곳이 존재하는 등 지배구조가 다소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만 동원산업의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 소액주주의 기대치와 동떨어진 주당평가액을 두고 불만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동원산업의 주당 합병가액(24만8961원)은 최근 주가를 가중 평균해 산정했다.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규정된 비상장 법인의 평가 방법에 따라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를 4:6 비율로 산출해 합병가액(19만1130원)이 결정됐다.
상이한 산정 방식은 동원산업 가치의 상대적인 열세로 이어졌다. 동원엔터프라이즈 기업가치가 2조2346억원으로 결정된 데 비해 동원산업은 9000억원에 그쳤다. 더욱이 매수예정 가격은(23만8186원)이 합병 결정 당시 주가보다 낮은 수준이다. 사실상 동원산업 소액주주에게 매우 불리한 구조가 된 셈이다.
잡음 나오는 몸값 산정 방식
이참에 승계 마침표까지?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은 스타키스트의 기업가치를 과소평가한 상태에서 합병 비율이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미국 참치캔 분야 선두 업체인 스타키스는 2008년 동원산업 자회사가 됐고, 지난해 매출 9018억원, 순이익 1057억원을 올렸다. 동원산업의 지난해 연결 순이익(1715억원)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합병 비율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곧바로 동원산업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동원산업 주가는 매매 재개된 지난 11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전날 대비 14.2% 떨어진 22만7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일각에서는 그룹의 후계자이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 비율이 정해진 것에 주목하고 있다.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동원엔터프라이즈를 높게 평가하고, 이를 통해 오너 일가가 합병 법인인 동원산업 지배력을 높였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합병 전 동원산업의 지분 62.7%는 동원엔터프라이즈가 쥐고 있었고, 김 부회장은 동원엔터프라이즈 지분 68.3%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합병이 마무리되면 김 부회장의 동원산업 지분율은 48.4%로 추산된다. 여기에 김 명예회장(17.4%)의 지분을 합치면 오너 일가 지분율이 60%를 넘긴다.
합병이 완료되면 김 부회장을 축으로 하는 그룹 승계 작업도 사실상 끝맺음하게 된다. 김 명예회장은 2004년 그룹을 동원금융과 동원산업으로 계열분리하는 과정에서 동원금융은 장남인 김남구 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동원산업은 김 부회장에게 맡겼다.
수혜자
이후 김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를 거치며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04년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2005년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2006년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2011년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2014년 동원그룹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 김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자 확실한 그룹 후계자로 부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