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아픈 '부동산 집도의'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

메스 들고 대장동부터 도려낼까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지난 대선 정국을 기점으로 연일 주가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4위를 기록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이후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을 거쳐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됐다. 그동안 여권 부동산 정책 비판에 앞장섰던 원 후보자. 그가 부동산 시장에 내릴 ‘약방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1964년 2월 제주도 서귀포시(당시 남제주군)에서 태어났다. 원 후보자 집안은 14대째 제주도에서 살고 있던 ‘토박이’였다. 원 후보자 역시 중문국민학교, 중문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제주 토박이로 자랐다.

운동권 투사
보수 소장파

유년 시절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다. 같은 동네에서만 10번 넘게 이사를 다녔고, 온 가족이 빚쟁이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원 후보자는 가난의 어려움을 몸소 실감하면서 공부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의 학창 시절은 수석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치러진 시험에서도 12번 모두 수석을 차지했다. 원 후보자는 1982년 제1회 대입학력고사에서도 수석을 꿰차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고 공부 비결을 밝혔다. 원 후보자의 인터뷰는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수재들의 유행어가 됐다. 원 후보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진학했다. 그는 “장차 대한민국을 위해 막스 베버와 같은 법사회학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 생활 초반에는 학업에 충실했던 일명 ‘도서관파’였다. 하지만 이후 신군부의 폭압적 정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이내 운동권에 발을 들이게 됐다.

원 후보자는 서울대 교정 안에서 발생한 ‘전경 여학생 추행 사건’ 항의 시위에 참가했다. 이때 소지품 중 시위 관련 유인물이 발견돼 경찰서로 연행됐다. 며칠 구금된 뒤 훈방 조치됐지만 학교에서는 유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운동권 활동에 오히려 더 몰입하게 됐다.

1984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데모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구속 위기를 맞고, 당국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야학과 노동운동에도 열심이었다. 원 후보자는 구로공단의 교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열고 인천 금속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현장을 몸소 느꼈다.

생활비는 과외와 번역으로 근근이 벌었다.

20대의 대부분을 사회운동에 바친 그였지만, 결국 전향하며 운동권에 작별을 고한다.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한 것이 사상 전환의 주된 계기가 됐다.

제적과 휴학을 반복했던 원 후보자는 입학한 지 8년 만인 1989년 2월이 돼서야 가까스로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군 복무 면제로 ‘군백기’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군 면제 사유는 후천적 발가락 기형이다. 원 후보자 설명에 따르면 그는 5살 무렵 리어카에 올라 타다가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들어가면서 오른발 2번째 발가락이 골절·일부 절단됐다. 사고 직후 봉합 치료를 받았지만, 발가락을 수직으로 붙인 탓에 끝내 환부가 후천적 기형으로 남고 말았다.


훗날 정치에 입문한 후, 군 면제 이력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때 원 후보자는 자신의 발가락을 직접 공개하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 전국 수석
운동권서 개혁보수 정치인으로

1990년 말부터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2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제34회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사법연수원(24기)은 5등으로 수료했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었음에도 1995년 검사 임관에 성공했다. 초임지는 서울지방검찰청이었다. 그는 검사 재직 시절 재개발조합 사기사건, 딱지어음사건, 다단계 피라미드 범죄 등 주로 경제사범 소탕에 열중했다.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부에 있을 때는 지역 내 조직폭력 및 마약사범과 사투를 벌였다.

1998년 8월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 고문변호사, 전국 PC방 연합회 고문변호사, KBS 방송자문 변호사 등 당시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던 지식재산권·IT 분야 전문 변호사로 족적을 남겼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정치에 입문한다. 당시 ‘젊은 피’ 수혈 경쟁을 벌이던 한나라당과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양쪽에서 모두 영입 제의를 받았다.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 측은 원 후보자에게 고향인 제주도 지역구 공천을 약속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서울 지역구 공천을 약속했다.

이때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부겸 총리가 원 후보자를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리는 “힘들겠지만 맡아서 5년 내지 10년을 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며 원 후보자에게 한나라당 입장을 적극 권유했다.

결국 원 후보자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입당 소감을 밝혔다. 운동권 출신이 개혁 보수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입당을 권유했던 김 총리와 함께 국회에 입성했다. 다만 김 총리가 임기 중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이후로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논란 일면
정면돌파

당선 이후로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정병국 전 의원과 함께 일명 ‘남원정’으로 불리며 당내 개혁을 주도하는 소장파로 자리매김했다. 때로는 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개혁 의견을 내비쳤다.


이러한 행보 덕택인지, 탄핵 역풍에 휩쓸렸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생존했다. 당 안팎의 거센 비판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고, 지역구인 양천구 목동 곳곳을 돌며 민심을 살핀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총선 직후 치러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때 당 최연소 최고위원 기록을 새로 썼다. 

원 후보자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에 나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비록 대통령 경선에서는 탈락했지만 40대 대권주자로 나서 완주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는 차기 대권 유력 주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과반 득표로 여유롭게 3선 고지에 올랐다. 2009년에는 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돼 당내 쇄신을 주도했다.

2010년 서울시장 자리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의 대항마를 정하기 위한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석패했다.

이후 2010년 7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한나라당 사무총장,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두루 역임해 당내 입지를 다졌다.


이를 바탕으로 2011년 당권에 도전했다. 당시 원 후보자는 ‘한국 정당정치의 비정상적 공천시스템 개혁’과 ‘선진 정치를 위한 선거구 개편’을 핵심 의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차기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까지 쳤음에도 최종 4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이 여파로 2012년부터 1년여간 잠시 정치권을 떠나기도 했다.

당초 행안부·법무부 장관 하마평
대장동 1타·주택찬스 공약 영향?

원 후보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독일 아데나워 재단‧중국 베이징대 등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하고 2013년 말 귀국했다.

2014년 2월, 금융 3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개인정보유출 국민변호인단’을 꾸리며 이목을 끌었다. 당시 원 후보자는 국내 피해자 5만여명을 대리해 무료 공익소송을 주도했다.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로 복귀전을 치를 것’이라는 세간의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원 후보자가 새누리당 지도부로부터 ‘당내 중진 차출론’이라는 명목으로 제주지사 출마를 압박받으며 무산됐다.

결국 제6회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에 출마했다. 정치에 입문한 지 1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60%의 득표율로 무난히 당선됐다. 취임 이후에는 제주도 내 부동산 투기 규제 강화 정책과 중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 투자 유치 견제에 집중했다.

이외에도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6위로 최하위권이던 제주 지역 청렴도를 임기 중 4위까지 끌어올리고, 4000억원가량의 지방부채를 모두 상환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썼다.

임기 중 두 차례나 탈당을 감행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2017년 1월 초 탈당해 바른정당 창당 일원으로 합류했다. 이어 같은 달 말에는 “지역사회에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아 도정에 전념하겠다”며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8년 4월에는 바른미래당 합당에 반발해 탈당했다. 이후 2년여간 무소속 상태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정치적 공감대를 구축해왔던 남 전 지사(자유한국당 복당)나 정 전 의원(바른미래당 합류)과는 각기 다른 행보를 보였다.

원 후보자는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했다.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현직 지사라는 프리미엄을 살린 ‘인물론’ 전략으로 낙승을 거뒀다. 

재선 후 임기 초반 협치를 중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당시 제주도의회 의석을 ‘싹쓸이’한 민주당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원 후보자는 지사가 추천하는 제주·서귀포시 행정시장 내정자로 각각 고희범 전 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과 양윤경 제주 4·3희생자유족회장을 선택했다. 친민주당 성향의 내정자들은 청문회에서 무난하게 ‘적격’ 판정을 받았다.

당선 3달 뒤인 9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원 후보자는 사전선거운동 위반·허위사실공표 등 총 5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 검찰에 기소됐고, 2019년 2월 1심에서 벌금형 80만원을 선고받아 지사직은 지켜냈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이 모두 인정되지만, 기존에 발표된 공약을 발표하거나 다른 후보자를 비방한 게 아니고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이후 검찰과 원 후보자 양측 모두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2020년 2월, 박형준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대권 도전을 시사했고, 지난해 8월 들어 제주도지사를 퇴임하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똑바로
똑똑하게

경선 초반에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컷오프 직전 ‘대장동 1타 강사’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덕에 컷오프를 통과할 수 있었다.

유튜브의 한 채널에 출연해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을 요약·설명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자타공인 ‘이재명 저격수’가 된 셈이다. 원 후보자는 최종 경선에서도 이러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후보를 상대할 적임자라고 자부했다. 

경선에서는 최종 4위에 그쳤지만, ‘대장동 1타 강사’ 직함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이 기회로 작용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에 임명됐다. 차기 정권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은 만큼, 윤석열정부가 탄생하면 중용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 1월 초 선대위가 해체되면서 잠시 거취가 불투명해지기도 했지만, 선거대책본부의 정책본부장으로 재신임받으며 가능성을 이어나갔다. 

이후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하마평에 오르는 등 향후 행보에 대한 예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원 후보자의 행선지는 대선 승리 이후에나 결정됐다. 윤 당선인이 그에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윤석열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낙점됐다. 

“의외의 인선”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인수위 합류 이후 원 후보자의 입각 가능성은 높게 점쳐졌지만 직함이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원 후보자는 당초 행정안전부·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내린 바 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이 해당 장관직에 정치인 기용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변수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원 후보자가 경선 중 ‘대장동 1타 강사’ ‘주택 찬스 공약’ 등으로 이목을 끈 점이 이 같은 인선으로 이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원 후보자는)3선 국회의원, 제주지사 재선을 지내며 혁신적 도시 행정을 펼친 분”이라며 “공정과 상식이 회복되어야 할 민생 핵심 분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이라고 발탁 배경을 전했다. 이어 “수요가 있는 곳에 충분히 주택을 공급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균형 발전 핵심 지역인 공정한 접근성과 광역 교통체계를 설계할 적임자라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원 후보자는 발탁 직후 “정부 역량을 집중해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꿈을 잃은 젊은 세대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전문 경력이 없다’는 지적에는 “국민들의 눈높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접목시켜 정무적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이제 관건은 여소야대 청문회 문턱을 넘는 일이다. 민주당은 발표 직후부터 강력하게 반발하며 험난한 청문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를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공개 저격했다.

이재명 저격
청문회 어쩌나

그는 “원 후보자의 제주도지사 시절 제주 신공항 등 제주 도정에 대한 성과를 보면 전문성, 추진력, 협상력 등을 겸비해야 할 국토부 장관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 후보자의 발탁 배경을 두고선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와 과장된 정치공세에 앞장섰던 것에 대한 논공행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국정 운영 파트너로서의 민주당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일방적인 처사”라고 날을 세웠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5전 5승’ 민주당 숙적 원희룡, 왜?

원희룡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적어도 선거에서만큼은 더불어민주당의 ‘숙적’으로 불릴만하다. 1999년 정치에 입문한 뒤 민주당을 상대로 무패행진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민주당 후보를 국회의원 선거에서 3번, 지방선거에서 2번 만나 모두 과반의 득표로 승리했다.

2004년 탄핵 역풍이 거셀 때도, 2018년 보수 궤멸 선거 때도 ‘개인기’를 바탕으로 승리를 거두며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2018년 7회 지방선거 당시, 원 후보자는 대구‧경북 외의 지역에서 당선된 유일한 보수 진영 광역단체장이었다.

원 후보자는 지난해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 이 같은 이력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열린  국민의힘 경선 예비후보 1차 TV토론회에서 ‘나는 귤재앙이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민주당과 선거에서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이겼다. 민주당이 볼 때는 내가 재앙”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민주당 후보로 예상되는 (민주당)이재명 후보에게 귤재앙의 신맛을 실컷 맛 보여드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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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의 집합체다.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그리고 짓는 사람까지 집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조합은 사방팔방 뻗어있는 이권을 조율하고 사업을 끝까지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문제는 이 과정서 발생하는 유착과 비리 의혹이다. 주택 재개발사업은 권력의 이동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53만㎡ 면적의 땅을 4개 지구로 나눠 재개발을 진행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사업이 지체됐다. 그러다 오 시장의 취임으로 다시 궤도에 오르는 모양새다. 3조 사업 14년째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압구정 아파트 지구 특별계획구역을 마주 보면서 한강 조망이 가능해 재개발 수혜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는 성동구 성수동2가 572-7번지 일대로 기존 계획안에 따르면, 부지 11만4193㎡에 1852가구 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제3지구 조합)이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합장이 지위를 상실한 데 이어 각종 의혹이 불거져 복마전이 따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합장과 정비사업관리전문업자(이하 정비업체) 간의 유착 의혹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비업체는 정비사업 과정서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업자를 말한다. 대통령령이 정한 자본‧기술인력 등의 기준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한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도입했다.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비업체는 ▲조합 설립 및 정비사업의 동의 ▲조합 설립 인가 신청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 ▲사업 시행 인가 신청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대행한다. 정비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에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지구 조합은 2009년 10월 추진위원회의 승인, 2010년 5월 주민총회를 거쳐 N사를 정비업체로 선정했다. 이후 2018년 2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3지구 조합 내부서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14년에 걸쳐 조합 업무를 대행해 온 N사와 역시 10년 넘게 조합서 일한 전 조합장 김모씨의 유착 의혹이다. 뉴타운 후보지 정비구역으로 오세훈 시장 취임에 재시동 김 전 조합장은 2010년 추진위 총무로 선출된 후 2016년 주민총회를 통해 추진위원장으로 뽑혔다. 2018년 창립총회서 조합장으로 선출됐지만 지난해 11월 도정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돼 자격을 상실했다. 그사이 재신임 투표, 주민총회 등의 과정이 있었고 수차례에 걸쳐 법정 공방에도 휘말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조합장은 2016년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불사조’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며 자리를 지켰다. 김 전 조합장은 창립총회(2018년)와 동시에 진행된 조합장 선거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인정돼 2021년 조합장 지위를 상실했다. 제3지구 조합 선거관리 규정은 ‘후보자 등록 시 제출 서류의 허위·변조·위조 등이 발견된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명시했다. 김 전 조합장은 후보자 등록 신청서에 지방 소재 ‘Y대학 졸업’이라고 기재해 제출했다. 또 Y대학 총장 명의로 된 졸업증명서를 3부 만들어 추진위원장과 조합장 후보 등록 등에 사용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업무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김 전 조합장에 각각 벌금 100만원과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2021년 1심 법원은 해당 약식명령 등을 근거로 ‘조합장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서 김 전 조합장이 조합장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조합 실태점검 결과도 조합장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성동구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열흘간 진행한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운영실태 시·구 합동 기동점검’서 총 22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자금 차입 결국 사임 특히 성동구는 김 전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도정법 제45조(총회의 의결) 2항에 따르면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자율과 상환방법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성동구의 실태점검 결과에도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10월 주민총회서 또다시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빌린 부분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조합장 자격을 잃었다.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점 ▲자료 공개 거부 등 도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서 자료 공개 거부 혐의가 무죄로 바뀌면서 벌금 100만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돈을 빌려준 주체가 정비업체인 N사였다는 사실이다. N사는 2019년 6월과 8월, 그리고 10월 각각 2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 등 총 5000만원을 제3지구 조합에 무이자로 빌려 줬다. 앞서 김 전 조합장은 2019년 2월에 5000만원, 4월에 3000만원 등 8000만원을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차입한 사실이 확인돼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제3지구 조합이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빌린 돈의 액수는 총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김 전 조합장의 가족 일가가 제3지구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과정서도 N사의 흔적이 등장한다. 재산 증식 내부 정보? 문제를 제기한 제3지구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아들과 딸, 사위 등이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를 사거나 도로를 증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김 전 조합장의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에 조합의 내부 정보가 사용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전후로 김 전 조합장을 비롯한 가족 일가의 부동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시기와 맞물린다. 김 전 조합장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7월 성수동의 빌라 한 채를 1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상 이씨의 주소는 김 전 조합장의 주소와 같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2019년 1월 이 빌라가 송모씨에게 2억원에 팔렸는데 해당 인물이 정비업체 N사의 관계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송씨는 한 달 뒤 해당 빌라를 2억1000만원에 팔았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5년 1월 제3지구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를 4억5750만원에 매입했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은 현재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김 전 조합장의 딸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11월 특정 인물로부터 성수동2가의 도로 일부를 증여받았다. 딸 이씨의 남편이자 김 전 조합장의 사위로 추정되는 김모씨는 2017년 1월 성수동2가의 한 상가 1층을 매입했다. 김씨도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 명단에 존재한다. 2018년 해당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한 업체는 세입자 조사업 등을 하는 W사였다. W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제3지구 조합서 업무를 하는 법무사 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했다. 송사 휘말려도 계속 부활해 가족 일가 부동산 구입 의혹 제3지구 조합의 한 조합원은 “지금 드러난 것은 등기부등본을 뒤져 찾아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총회의 결의 없이 정비업체로부터 금전을 차입해 자신의 급여를 챙기고 가족 일가의 부동산 축재에 사용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며 “김 전 조합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임하면서도 조합원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직후 김 전 조합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성수3지구를 위해 노력해 왔고 14년간 조합 운영을 투명하고 절약하였기에 조합장 자리서 내려오며 부끄럽지 않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사무실을 얻어 ‘김○○ 사랑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민과 부동산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구 조합의 또 다른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의 나이가 70대다.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뒤에서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 내부에 많다”며 “N사는 한남4구역재개발조합서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남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한남4구역 조합)은 지난해 정기총회서 N사와의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 설립 과정서 발생한 비위, 허위 견적서 제출, 금전 편취 혐의로 사기죄 확정 등이 이유였다. 한남4구역 조합은 2011년 N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조합 업무를 함께 해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남4구역 계약 해지 제3지구 조합서 불거진 의혹은 현재 성동세무서, 성동경찰서 등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은 “전 조합장과 N사는 조합을 장악하고 감시 체계가 허술한 틈을 타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들의 비리는 민생침해 범죄인만큼 철저한 수사로 조합원의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 조합장의 해명 “떳떳하다” 김모 전 조합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울분을 쏟아냈다. 14년간 조합을 위해 일했는데 근거 없는 모함으로 자신을 괴롭히려 든다는 것이다. 김 전 조합장은 자녀를 비롯해 사위 등 가족 일가가 재개발 지역에 아파트나 건물을 산 것은 인정하면서도 결혼을 할 무렵 본인들이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비업체 N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비업체는 재개발 사업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조합장이 됐지만 업무에 서툰 부분이 있어 정비업체 대표(송모씨)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도 “정비업체 직원을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부정적인 일을 한 것도 없다. 나는 떳떳하다. 떳떳하기에 아직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젊고 똑똑한 사람이 조합장 선거에 나와야 한다. 그런 분이 있다면 언제든 도울 것”이라며 “2010년 조합 총무로 시작해 14년 동안 조합 일을 보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법원 판결로 사임하게 됐지만 조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속 기사> N사 대표의 해명 “우리는 을이다” N사의 송모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비업체는 조합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내세워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부의 의견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조합이 갑, 정비업체가 을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총회의 의결 없이 제3지구 조합에 돈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김 전 조합장이) 조합 재정 상태가 너무 열악하다고 간곡히 부탁해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인데 그게 문제가 돼서 조합장님이 지위를 잃게 된 점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합에 차입한 1억3000만원은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합장이 사임하는 등 조합 내부가 뒤숭숭한 것 같다는 말에는 “직무대행이 조합 업무를 보고 있고 우리도 정비업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업은 표류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업체가 맡고있는 재개발 지역이 20여군데 정도다.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남4구역 조합과의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한남4구역 조합) 조합장이 내가 불법적인 요구를 했다. 그걸 거절했더니 계약 해지를 한 것”이라며 “현재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한 상태다. 법으로 가려질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