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 1팀] 양동주 기자 = ‘곰표’ 브랜드로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는 대한제분이 세무조사라는 생각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세청이 우회 증여 및 내부거래에 초점을 맞췄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최근 대한제분은 이종 간 협업의 성공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곰표’ 브랜드가 팝콘, 맥주, 막걸리, 핫도그 등 식음료부터 패딩, 후드, 쿠션팩트 및 핸드크림 등 패션 뷰티 분야까지 폭넓게 쓰인 덕분이다. 대한제분은 레트로 감성에 기반을 둔 곰표 브랜드의 영향력 확대에 힘입어 또 한 번 도약을 노리고 있다.
녹록지 않은
위협 요인
하지만 대한제분이 마냥 좋은 환경에 처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국세청이라는 외부 위협 요인이 대한제분을 정조준했다는 점이 불안요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11월경 서울 중구 소재 대한제분 본사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투입해 세무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 등을 예치했다. 대한제분이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건 201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번 세무조사는 통상적인 정기 세무조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주목도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은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곳으로, 주로 기업 탈세나 비자금 조성 등에 관한 혐의가 뚜렷할 때 조사에 착수한다.
대한제분은 창업주의 차남 고 이종각 명예회장이 경영을 총괄하던 시기에 사세를 키웠고, 이 명예회장이 대한제분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2009년부터 이건영 회장 체제가 가동됐다. 고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 회장은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 과정(MBA)을 마친 뒤 대한제분에 합류해 요직을 거쳤고, 현재 회사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특수관계인은 대한제분 지분 42.43%를 보유 중이다. 이는 ▲디앤비컴퍼니 27.71% ▲이 회장 7.01% ▲이재영(고 이 명예회장 차남) 부사장 2.32% ▲이혜영씨(고 이 명예회장 장녀) 0.99% ▲이소영씨(고 이 명예회장 차녀) 0.98% 등이 나눠갖는 구조다.
그룹 지배구조는 ‘디앤비컴퍼니→대한제분→대한사료·대한싸이로·DH바이탈피드·DHF홀딩스·보나비→기타 계열 회사’로 이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같은 구도는 2015년에 밑그림이 그려졌다.
칼 끝
어디로?
당시 고 이 명예회장은 보유 중이던 대한제분 주식 32만721주(18.98%)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디앤비컴퍼니에 넘겼다. 그 결과 디앤비컴퍼니가 보유한 대한제분 지분은 기존 8.73%에서 27.71%로 올랐고, 디앤비컴퍼니는 순식간에 대한제분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었다.
물론 최대주주가 변경됐다고 해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흔들린 건 아니었다. 디앤비컴퍼니는 고 이 명예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지분 100%를 보유한 오너 가족 회사였던 덕분이다.
이런 이유로 이 명예회장이 대한제분 지분을 디앤비컴퍼니에 넘긴 것을 두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우회 승계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분을 자식들에게 직접 물려주면 최대 50%의 증여세가 부과되나 법인에 주면 최고 22%의 법인세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대한제분은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효율성 증대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디앤비컴퍼니가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올라선 일련의 과정을 국세청이 주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디앤비컴퍼니와 나머지 그룹 계열회사 간 거래 내역을 참고해 세금 탈루 여부를 판단하고자 한 것 아니냐는 견해다.
본사 들이닥친 조사4국 왜?
승계 작업 제동 걸리나
1970년 설립된 디앤비컴퍼니는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면서, 파스타 및 와인 냉장고 수입·판매, 밀가루 조제품 수출 등 개별 사업을 영위해왔다. 특히 그룹의 핵심 사업 회사인 대한제분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디앤비컴퍼니가 수입해온 파스타를 대한제분이 구매하는 형태였고, 디앤비컴퍼니가 대한제분 최대주주로 부각되기 이전부터 계속됐다.
디앤비컴퍼니는 ▲2010년 71억원 ▲2011년 74억원 ▲2012년 74억원 ▲2013년 62억원 ▲2014년 7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동안 대한제분과의 거래를 통해 거둔 매출의 비중은 ▲2010년 62.8% ▲2011년 48.4% ▲2012년 54.2% ▲2013년 34.4% ▲2014년 49.0% 등이었다.
최근 들어 내부거래 비중이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디앤비컴퍼니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대한제분과의 거래를 통해 올리고 있다. 디앤비컴퍼니는 2019년 69억원, 2020년에 71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각각 13억원, 15억원이 대한제분으로부터 거둔 매출이다. 내부거래율은 2019년 18.7%, 2020년 20.7%였다.
대한제분이 실시하는 현금배당도 디앤비컴퍼니의 주요 수익원이다. 대한제분은 ▲2018년 41억1000만원 ▲2019년 32억9000만원 ▲2020년 32억9000만원 등 매년 30억원~40억원대 현금배당을 빼먹지 않고 있다. 대한제분이 최대주주인 디앤비컴퍼니에 지급한 배당액은 ▲2019년 11억7095만원 ▲2020년 9억3676만원 ▲2021년 9억3676만원(3분기 누적) 등이다.
대한제분에서 오너 일가로 흘러가는 현금배당금은 매년 1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즉 대한제분 계열사에서 발생한 이익이 대한제분과 디앤비컴퍼니를 거쳐 이 명예회장과 그 가족에게 흘러가는 구조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대한제분 경영권 승계 작업에 걸림돌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고 이 명예회장이 보유한 디앤비컴퍼니 지분을 이 회장이 넘겨받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제분 오너 일가는 디앤비컴퍼니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관건은 지난 4일 별세한 이 명예회장이 보유한 디앤비컴퍼니 지분에 얼마만큼의 몸값을 매겨야 하느냐다. 비상장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디앤비컴퍼니 주식의 절대 가치를 매기기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당장 디앤비컴퍼니 지분 늘리기보다는 대한제분 지분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17년에만 총 12회에 걸쳐 주식을 사들였다. 많게는 하루에 1000주씩 지분을 샀고, 주식 매입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6.01%에 머물었던 이 회장의 지분은 6.67%로 올랐다.
이 회장은 2020년에도 주식 사들이기에 나섰다. 1월31일부터 2월6일까지 5차례에 걸쳐 장내매수로 대한제분 주식 4814주를 매입했고, 이 과정을 거치며 지분율을 7.01%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생각 못 한
걸림돌
이 회장이 보유한 대한제분 지분은 주가 상승 시 승계 제원으로 활용 가능하다. 디앤비컴퍼니 최대주주가 되면 대한제분 지분을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 회장은 대한제분 지분을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