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21세기형 히피 신유미

“가장 나다운 음악을 만들었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보컬 선생님 ‘유미쌤’으로 잘 알려진 신유미의 정체성은 싱어송라이터다.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을 직접 한다. 독창적인 음악을 구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보컬 트레이너보다는 가수의 길을 걷고 싶은 그가 두 번째 EP앨범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Laid Back Like Hippie)’를 발매했다. “흑마술 같은 음악”이라 평가받은 그의 작품은 더 정교해졌다. 

안개가 자욱하고 서리가 군데군데 껴 있는 느낌이다. 차갑고 어둡다. 검은색이 섞인 보라색이 떠오르며, 처절하고 치열하다. 진하고 끈적끈적하다. 신유미의 첫 번째 EP앨범 ‘소 어딕티드 유(So Addicted You)’를 듣고 떠오른 이미지다.

흑마술

처절한 사랑을 주제로 했던 첫 번째 앨범에서부터 신유미가 가진 음악적 색감이 뚜렷하다.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보여준 따뜻하고 밝고 명랑한 이미지와는 대척점에 있다. 음악의 선배이자 소속사 대표였던 가수 윤상은 그의 음악을 두고 ‘흑마술’이라 칭했다. 

첫 음반을 내고 여러 활동을 하던 신유미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작업에만 몰두했다. 어떤 음악을 입혀도 자신의 색감으로 소화하는 여러 선배 가수처럼, 자신만의 음악적 색채을 만들기 위해 자신과 싸웠다. 

무려 1년간 작사와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하며 수많은 곡을 듣고 또 듣고,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0.1초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도록 갈고 닦았다. 그렇게 2년 만에 탄생한 새 앨범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Laid Back Like Hippie)’는 기존의 색감은 묻어 있는 가운데 더 리드미컬해졌다.


이번 앨범을 두고 “내 음악을 가장 잘 알려주는 앨범”이라고 칭했다. 

“한 1년 동안은 음반 작업에만 매달렸어요. 사실은 10곡 넘는 정규앨범을 내고 싶었는데, 정규앨범은 너무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5곡 정도의 EP앨범을 낸 거죠. 거의 모든 곡에 제 생각이 담겨있어요. 음반 작업 외에는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싸움이었죠.”

음반 발매는 비용이 발생한다. 아무리 작사와 작곡을 한다고 해도, 다양한 세션이 필요하고, 뮤직비디오 촬영 및 홍보 등 여러 부분에서 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비용을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혼자 감내하기엔 쉽지 않다. 

투자를 받아야 하지만, 대중성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갈구하는 뮤지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신유미는 콘텐츠 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오디션에 참여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수십명의 뮤지션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으로 경쟁했다. 명성을 얻은 신유미에겐 어려운 도전이었다. 

EP앨범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 발매
“1년 넘게 혼자만의 처절한 싸움 있었죠”

“사실 큰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곡 작업이 여름에 마무리됐는데,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뮤지션 지원사업 ‘뮤즈 온(Muse On)’에 도전했죠. 수십팀 중 열 다섯팀을 뽑는 건데, 오랜만에 힘을 주고 무대에서 노래하니 만만치 않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압박감 속에서 노래한다는 게 정신적으로 지치더라고요.”

M.net <보이스코리아2> TOP4 출신으로 오디션에서 상당한 재능을 발휘한 그에게도 평가를 받는 자리는 여전히 익숙치 않은 듯하다. 심사위원으로도 손색없는 그에게도 어려운 행보였다고. 특히 음악적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불안감이 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제가 어렸을 때는 무대에서 크게 떨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제가 많이 떤다는 걸 알았어요. 아무래도 좀 다른 분들의 기대치가 생기다 보니까, ‘더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커지더라고요. 사실 아이돌을 가르쳐본 사람이잖아요. 그런 입장이었다가 평가를 받으니,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힘겨운 싸움을 극복하고 입상에 성공했다. 지원비를 받고 그 돈을 새 앨범 비용에 투자했다. ‘레이드 백 라이크 히피’는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을 이겨내고 만들어진 앨범이다. ‘히피처럼 리듬을 천천히’라는 앨범의 본뜻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자기와의 싸움을 거치며 한 계단씩 밟아 만들었다. 

이전에는 처절한 사랑이 주제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자유와 편견 없는 음악을 표현했다.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곡을 완성했다. 타인의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굳혀 나아가며 힘든 일이 있다면, 잠시 훌훌 털었으면 하는 의식이 앨범 전반에 담겨있다. 

“제 색채는 유지한 채, 이전보다는 조금 더 빠른 템포의 리듬을 주고자 어반 알앤비를 레퍼런스로 뒀어요. 이전 앨범보다는 확실히 빨라졌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이번 앨범 같아요. 가장 저를 잘 알려주는 앨범이랄까요. 전반적으로 역동적이고 리듬의 힘이 많이 생겼어요. 더 신나는 느낌이에요. 어반 알앤비를 흡수하되 저만의 느낌은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1년 동안
음반 작업만

이번 앨범 역시 독창적이다. 여전히 몽환적인 느낌이 유지된다. 리듬감이 빨라지면서 처절한 색채는 덜해졌다. 가사도 현실적이다.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삶 전반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다. 공감과 위로가 바탕에 있고, 누구나 행복하게 멋있게 살길 바라는 신유미의 존중이 묻어 있다.

“좀 웃긴 말이긴 한데, 제가 자유롭고 제한이 없고 편견이 없는 음악을 강조해요. 트랙을 쓰기 시작한 것도 보컬로만 있으면 제가 할 수 있는 걸 100% 할 수가 없어서예요. 부족하더라도 내 노래를 내가 써보자고 해서 앨범이 만들어진 거예요. 음악 안에서 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그중 통일성이 있는 곡이 모여 앨범이 됐죠.”

단순히 자유를 말한다고 해서 자유로움이 곡 안에 배는 것이 아니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로 살아야 음악에 신유미라는 존재가 묻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완전한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도 나왔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김현철 선배는 시티팝을 주로 하시는데, 발라드를 불러도 선배만의 라인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제가 가진 무드와 분위기가 묻어나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쉬운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고생하나 봐요.”

2020년 신유미 눈에 비친 세상은 ‘코로나 블루’였다. 저녁에 누구와 만나는 시간은 10시로 제한됐고, 4인 이상 모이기도 어렵게 됐다. 일주일에 몇 개씩 되는 저녁 약속을 잡았었는데, 약속 하나를 만드는 것도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된다.

예전처럼 술 한 잔 하며 북적북적 웃고 떠드는 광경은 생경해졌다. 놀고 싶은 본능을 억제해야만 하는 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본능이 제한된다는 건 활력소가 사라진다는 걸 말한다. 

사람들은 예민해진다. ‘마스크 좀 쓰세요’라는 말에 화가 치밀고 갑작스럽게 다투기도 한다. 층간소음으로 살인이 나는 기현상도 생겨났다. 일상에서 규제가 강해졌고, 여행을 가도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기 어렵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애를 담고 싶었어요. 근데 너무 거창하잖아요. 그런 건 아니고 흔히 말하는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는 해방감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모두 속박돼 살고 있잖아요. 특히 3번 트랙인 ‘둥글게’는 이 시국에 꼭 내고 싶은 노래였어요. 다들 예민해지고 알게 모르게 지쳐가고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마음으로요. 음악으로라도 자유로운 기운을 느껴봤으면 해요.”

진취적
능동적

지금이야 싱글앨범을 내는 추세다 보니, 앨범 내 스토리라인을 고민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가수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곡의 순서였다. 노래마다 담고 있는 의미를 여러 방면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라인을 만드는 것. 신유미의 이번 앨범에는 정통 앨범에 통용되는 스토리라인이 있다. 

“작은 자유부터 넓은 자유로 확장되는 의미가 있어요. 1번 ‘유 기브 미 버터 블라이즈(You give me butterflies)’는 규제에서의 자유, 2번 트랙 ‘히치하이커(Hitchhiker)’는 인생에서의 자유, 3번 트랙 ‘둥글게’는 관계에서의 자유, 4번 트랙 ‘두 유 러브 유어셀프(Do you love yourself? (Feat. iHwak))’는 불안에서의 자유, 5번 트랙 ‘페일 블루 도트(Pale blue dot)’는 존재에서의 자유랄까요. 1번부터 5번까지는 자유와 해방, 편견에 대한 저항 같은 키워드로 연결돼요.”

대부분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국 드라마의 대사나 신유미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의 표현, 주위 사람들의 모습, 평소에 관심 있던 과학 분야 유튜브 영상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특히 5번 트랙인 ‘페일 블루 도트’는 매우 철학적이다.


“과학자 칼 세이건이 우주에서 지구를 봤을 때 한 말이 ‘페일 블루 도트’예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뜻이에요. 지구가 엄청나게 크지만, 우주에서 보면 단 하나의 점이라는 거죠. 수십억 인구가 오돌토돌 모여 치열하게 사는 지구가 파란 점이란 얘기도 되잖아요. 우리 하나하나가 모여 빛을 내면서 푸른색 빛깔을 내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홀로 음반을 내는 것이 익숙하지만 4번 ‘두 유 러브 유어셀프’는 글로벌 프로듀서 아이확의 도움을 받았다. 곡 중간까지 써냈는데, 그 이상이 어려워 문의를 했던 것. 실력파 뮤지션인 아이확은 단번에 신유미의 속내를 읽어낸다.

<프로듀스 101> 보컬 선생님으로 유명
“친구들이 왜 보컬 학원 안 차리냐고…”

“노래를 만드는데 어느 이상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확에게 부탁을 했죠. 너무 신기하게도 뒷부분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지 알고 정확하게 곡을 준 거예요. 제가 협업을 하면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듣자마자 제가 원하는 걸 딱 알아챈 느낌이더라고요. 여러 모로 큰 도움을 받았죠.”

두 번째 EP앨범을 내는 데 영혼을 갈아 넣은 신유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음악에 담아 전달하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그득하다.

“요즘 불현듯 떠오른 건 조롱에 대한 조롱이예요. 미국에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전형적인 인간을 두고 표현하는 건데요. 예컨대 백인 여자인데 금발의 머리 색에 분홍색 바지를 입은, 이름은 제니나 스테파니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아이가 이른바 ‘스테레오 타입’으로 불려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이미지에 걸맞게 하고 사는 사람이죠. 조롱하는 뜻이에요. 저는 그 조롱을 조롱하고 싶어요. 스테레오 타입도 어찌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정체성이잖아요. 흔하다고 해서 또 무시 받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유미 유명세를 준 건 <프로듀스 101>이다. 연습생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하고 실력이 향상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많은 사람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유미에게 보컬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직장인으로 치면 직장을 잃은 셈이다. 인지도를 넓힐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가 갈라진 것. 하지만 신유미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음악 작업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은 다르게 보더라고요. 저보고 록커래요. 그 이유가 자기라면 보컬학원을 차렸을 거래요. 그랬으면 떼돈 벌었을 거라고. 저를 존경한다면서 한 말이긴 해요. 근데 저는 ‘그걸 하면 과연 난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슨을 하더라도 제자랑 친해져야 하고, 음악에 대한 태도도 결이 맞아야 편해요. 음악이 아닌 스타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하곤 작업하기 어렵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돈을 좀 못 벌어도 행복하게 사는 걸 원해요. 전 열심히 일하고 월에 1000만원 받는 것보다, 백수로 월에 100만원 버는 걸 더 원하거든요. 시간에 가치를 더 두는 거죠.”

음반 발매 후 방송과 무대활동을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완벽을 지나치게 추구해온 그는 최근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음악에 접근하려는 마음을 다지고 있다. 

다음 구상은…
조롱을 조롱

“사람들이 저보고 너무 완벽주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라시는 분도 있어요. 최근에 유튜브 채널 ‘대부님’이라는 방송에 나갔는데, 제가 음악에 너무 진지하니까 탁재훈 선배께서 ‘그래서 음악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하시더라고요. 뭔가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너무 제가 완벽함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죠. 이제부터라도 거창하지 않고, 편안하게 먹방을 하듯 음악을 하려고 해요. 그러면 또 다른 제 음악이 탄생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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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