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아이돌급' 사주팔자 팬덤 문화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6.21 14:06:23
  • 호수 1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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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 선 무당…복채 대신 후원금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연예인들만 팬이 있는 게 아니다. 명리학에서도 팬이 존재한다. 사주풀이 상담을 받은 내담자들은 상담해준 사람을 오히려 걱정한다. 심지어 이들은 선물을 보내주는가 하면 현금 후원도 한다. 

사주풀이와 관상을 보는 명리학은 이전부터 꾸준히 인기가 있다. 명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매년 신년운세를 보기 위해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는다. 용한 곳은 최소 6개월 전에 연락해야 예약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입소문이 난 점집은 국회의원, 연예인 등이 자주 찾는다.

용한 점집
문전성시

사주팔자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 또는 이에 근거해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다. 학문이라고 해서 어렵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신통방통한 것을 신기해하면서 흥미를 갖는다. 매해 연초 TV 예능프로에서 연예인 사주팔자나 관상을 본다. 특히 패널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사주풀이를 통해 서로를 놀리거나 칭찬하며 재밌는 장면을 만든다. 

토크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은 서슴없이 사주를 본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주로 히트한 드라마나 영화를 만나기 전, 용한 점집 도사가 예언했다는 이야기다. 

사주팔자를 가벼운 호기심에 보러 온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생의 갈림길을 두고 혼란이 올 때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는다. 인생사는 변화가 심하고 예측이 불가하지만 사주를 통해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사주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졌지만 최근 들어 젊은층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대학입시, 취업 불안, 결혼 고민 등 인생에 다양한 고민을 사주풀이로부터 해결책을 받으려 한다. 이전처럼 용한 점집을 찾기보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사주풀이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비대면 운세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예다. 운세 앱 중 하나인 ‘점O’의 경우 지난해 1월 초 하루 평균 50여만명이 이용했었지만, 올해 초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 1월1일의 경우 1일 평균 120만명가량이 운세를 확인하며 연말 연초 효과를 톡톡히 누린 바 있다.

50~60대 이용자 비중도 높아졌다. 앱 ‘점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8일~올해 1월3일 7일간 50~60대 이용자는 31%로 전월 같은 기간(23%) 대비 7% 이상 상승했다. 단순 앱 이용만 늘어난 수치가 아닌 앱 내 결제 비율도 상승하고 있다.

재밌고 간단한 풀이
짧은 시간 흥미 유도

점O에서 제공 중인 유료 운세 상담의 50~60대 이용 비율은 연말 같은 기간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월 같은 기간(19%) 대비 14%가량 상승한 수치로, 연초가 다가오면서 운세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비대면 혹은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셈이다.

젊은 층은 앱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유튜브를 통해 사주풀이와 관상 등 명리학에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 용하다는 한 사주 전문 채널에서 상담받거나 사주풀이 방법에 대해 검색하기도 했다. 서바이벌 웹예능 <머니게임> 방영 당시, 사주 전문 채널에서는 출연진 사주를 통해 탈락 여부를 점치기도 했다. 

수많은 사주 채널 가운데 판X도사 X이드(이하 X이드), 도O도르, 더O학당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인기 많은 사주 콘텐츠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신통방통 점을 잘 보는 것이다.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미래를 잘 예측하거나 상담받는 사람의 속사정을 꿰뚫어보면 용한 채널로 바로 입소문이 난다.


한때 과거 연예인 전문 사주풀이 블로그들이 재조명됐다. 한 연예인에게 악재가 일어나면 그 블로그에서 사주풀이했던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공유되곤 했다. 마치 미래를 본 것마냥 연예인의 앞날을 예측하면서 상담 전화도 늘었다. 이처럼 최근 유튜브에서도 미래를 맞추는 채널이 주목받고 있다.  

둘째, 어려운 사주 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 용어를 쉽게 설명하면 젊은 층은 흥미를 가진다. 유튜브 특성상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단 요점만 간단히 설명하는 게 시청자 관심을 유발하는 방법이다. 

명리학은 공부를 하면 공부할수록 전문성을 요하는 깊은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주 유튜버는 스스로도 공부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스스로 사주를 보는 방법도 알려주는 전략으로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최소 6개월
예약 힘들어

세 번째는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말발이다. 과거 나이 든 사람이 외진 곳에서 점집을 차려 사주를 봐줬던 데 반해 근래엔 온라인이 대세다. 

게다가 명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고 부정적인 인식도 바뀌면서 젊은 층들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훤칠한 외모를 가진 젊은 사주풀이 전문가도 많이 나타났다. 예쁘장하고 잘생긴 외모에다가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갖춘 사주 유튜버들이 인기를 얻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X이드는 유튜브 뿐 아니라 다양한 SNS채널에서 팬들과 소통한다. 유튜브 외에도 인스타그램, 트위치, 오디오형 SNS 클럽하우스, 카카오 음 등을 통해 동시 송출하고 있다. 또 일반 회원이 아닌 특별 회원끼리 소통할 수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특별 회원이란 클럽하우스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방을 자유롭게 만들고 사람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이들은 서로 모여 같이 게임을 하거나 방송을 자유롭게 하는 등 특별 권한이 주어진다.

X이드는 올해 설날 우연한 계기로 방송을 시작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사주, 타로를 봐주는 방을 살펴보다가 이론적 근거가 없는 방을 보고 아쉬움을 느꼈다. 결국 본인이 사주 상담방을 열게 됐다. 

첫날부터 100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오면서 시간이 부족해 상담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다. 상담을 계속 해줘도 대기자가 늘어나면서 방 규모도 점점 커졌다. 내담자 요구에 발맞춰 클럽하우스는 유지한 채 유튜브와 트위치를 통해 송출을 시작했다.  

높은 적중률 시선 강탈
외모도 연예인급 인기

X이드 유튜브 구독자 수는 3600명(지난 17일 기준)에 불과하지만 인기 유튜버 척도라 할 수 있는 유튜브 멤버십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멤버십이란 매달 후원하는 구독자에 한해 특별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방송 초기부터 X이드가 현금 후원을 받은 건 아니었다. X이에 따르면 첫 현금 후원자였던 한 시청자가 “음질이 좋지 않다”고 마이크 교체를 권유하며 5000원을 후원했다. 

X이드는 유튜브 채널 초창기 라이브 방송이 많았다. 구독자와 소통하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구독자들과 친밀한 사이가 됐다. 한 팬은 그의 건강을 생각해서 도라지즙, 프로폴리스 등의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후 유튜브 운영을 집중하면서부터 슈퍼챗(현금 후원)을 통해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X이드 채널의 한 팬은 “X이드에 빠지게 된 이유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듣지 못했던 이야기도 가감없이 솔직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사주를 직접 보러 간 적도 있었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다. X이드는 구체적인 해결방안도 제시해주고, ‘사주에 좋고 나쁨은 없다’고 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X이드는 여타 인기 크리에이터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충성도 높은 팬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을 한 그는 갑작스레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혼란스러워졌다고 한다.

규칙이나 체계가 없다보니 관리자가 필요했고 스태프를 모집했다. 그러다 보니 클럽하우스 상담방 운영을 도와주는 팬이 생겼으며 현재는 6명 스태프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스태프 역할은 기획, 운영, 편집 등 세 가지다. 기획팀은 유트브 채널 방향을 결정한다. 운영팀은 유튜브 동영상 업로드 일정 관리, 유튜브 동영상 멤버십 관련 등을 관리한다.


종종 커뮤니티 게시글, 카카오톡 채팅방 등도 확인한다. 편집팀은 영상편집과 업로드 관련 임무를 맡는다. 또 콘텐츠 영상을 촬영 및 편집하고 유튜브 영상 관련 개선사항이 있다면 편집팀끼리 회의한다.

호기심 유발
혹한 시청자

스태프를 하게 된 계기도 다양하다. 좋은 마음으로 알려 주다보니 지금까지 계속하게 된 사람, 모집한 한다기에 지원한 사람, 무료 상담 보상차원으로 운영방법을 제안했다가 덜컥 스태프가 된 사람 등이다. 

신기한 건 스태프 역할을 하게 되면서 체계적으로 금전 보상이 없다는 점이다. X이드는 스태프에게 2주에 한 번씩 사주 수업을 무료로 해주는 게 보상이면 보상이다. 또 언제든지 질의사항과 관련해 X이드와 소통이 가능한데 스태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기프티콘을 보내는 게 전부다.

한 스태프는 “자신의 사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힘들 때 인생 선배인 X이드로부터 조언을 듣기 때문에 스태프 임무를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 스태프 및 회원과 소통하며 배우는 점이 많아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X이드 혼자서 운영하기 힘든 부분을 충성심 있는 팬이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팬심 하나로 스태프를 맡아 홍보 및 운영 역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태프가 늘어난 이유는 사주에 대한 관심있는 연령층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금전 부분이 아니어도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발휘해 홍보를 한다거나 영상 기획 및 편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X이드는 “채널 초창기 구독자 연령대가 50~60대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20대, 30대가 30%가 된 만큼 구독자층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사주상담 라이브 방송을 열어도 ‘20대 초반인데 올바른 진로를 알고 싶다’는 고민 등 20대 초반인 시청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연애부터 진로까지 다뤄야 할 주제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구독자가 내 방송을 보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콘텐츠 제작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인스타 활동…회원제 운영
팬클럽 만들고 도라지즙 선물까지

X이드 채널이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적중률이다. X이드 채널에서 내담자의 월간 운을 봐주는 콘텐츠가 있는데 적중률이 꽤 높다. 

X이드 채널은 유독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나이대가 많이 찾는다. 이들은 사회생활에 발을 내딛기 전이나 사회 초년생이라고 볼 수 있다. X이드는 회사를 실제로 다녔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에 임한다. 

그는 기업 인·적성평가나 이력서 및 자소서 작성에 대한 고충을 몸소 느껴봤다. 또 연애를 하는 시기에 자평명리학을 실전에서 적용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자평명리학이란 시간의 흐름 사이에 사시에 관해 시간의 질서를 의미한다. 

역학계에서도 X이드는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한다. 상담을 할 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처세하기 때문에 어필이 된다고 한다. 

한편 아이돌 시장에서도 팬심을 활용해 과금을 유도하고 있다. 휴대폰에 버O 앱을 깔고 월 4500원을 결제하면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직접 써서 보내는 메시지를 수시로 받고 답장을 보낼 수 있다.

아티스트는 팬의 답장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개별적으로 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채팅은 아티스트가 팬의 전반적인 반응을 살펴보며 ‘다대1 채팅’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버O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팬심’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설계했다. 먼저 카카오톡 개인 대화방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1대1 채팅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스타가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일괄 확인하면 채팅방에 ‘읽음’ 표시가 뜬다.

이용자는 아이돌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이름이나 ‘누나’ ‘오빠’ 등으로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답장을 보내다가 아이돌의 메시지와 내 답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양새가 되면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팬의 설명이다.

멤버십 운영
일상도 공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들은 버O을 통해 아티스트와 일상을 공유하는 기분을 느끼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팬들이 모르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며 “팬덤을 활용한 구독경제 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하고 팬들의 충성도도 함께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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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