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 난리통에…’ 자리 비운 배구협회장 막전막후

뒤집어진 배구판…수장은 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가 막을 내렸다. 이제 배구팬들의 관심은 국제대회로 향하고 있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도쿄올림픽 등 국가대항전이 코앞이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지원을 맡고 있는 대한배구협회 회장이 3월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배구계는 이번 ‘2020-2021 V리그’ 기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리그 시작 전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 11년 만에 국내 복귀를 결정하면서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국민 스포츠로 불리는 프로야구만큼 프로배구도 외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높아진 인기
충격의 학폭

이번 시즌 여자배구는 겨울스포츠 왕좌를 노릴 만큼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에 무관중(포스트시즌은 10% 관중 입장)으로 열린 V리그는 올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여자부는 닐슨코리아 기준 평균 시청률이 경기당 1.23%로 지난 시즌 대비 0.18% 올랐다.

남녀부 통틀어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이다.

하지만 리그 중반 이재영·이다영(흥국생명)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의혹이 불거졌다. 이다영의 SNS로 이미 배구계 내부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터진 학폭 의혹은 엄청난 폭발력을 보였다. V리그 간판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재영·이다영 자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비난이 쇄도했다. 


다른 선수들의 학폭 의혹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고 과거 사건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추측이 난무했고, SNS를 통한 폭로전이 이어졌다. V리그의 인기는 학폭 의혹으로 찬물을 맞았다.

한동안 경기 내용보다 외적인 요소로 언급되던 V리그는 순위 결정전이 치열해지면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리그 시작 전에는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리그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 말이 무색할 만큼 포스트시즌 진출과 정규리그 우승을 두고 물고 물리는 경기가 이어졌다. 

또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시즌 아웃, 센터 김세영(현재 은퇴)의 부상 등 주전 선수 3명이 빠진 흥국생명의 경기가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V리그를 떠난 이후 전패가 예상됐던 흥국생명이 김연경의 고군분투로 예상 밖의 선전을 보이면서 응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 

이후 V리그는 배구팬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서 막을 내렸다. GS칼텍스는 V리그 여자부 사상 최초로 트래블(KOVO컵·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고, 흥국생명도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다.

남자부는 대한항공이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석권하면서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국내리그가 마무리되면서 최근에는 국제대회를 위한 국가대표 선수 선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월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5월 ‘2021 FIVB 여자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손발을 맞춘 뒤 7월 도쿄올림픽에 출전한다.

양적 성장 이뤘지만 
내부 문제도 터졌다


남자배구는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김연경(레프트), 김희진(라이트), 양효진(센터), 안혜진(세터), 오지영(리베로) 등 선수 18명과 코칭스태프 1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다음달 21일 VNL 개최지인 이탈리아 리미니로 향할 예정이다.

이 대회에서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12명이 정해진다. 

문제는 국가대표팀을 지원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이하 배협) 회장이 현재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오한남 배협 회장은 지난 3월부터 한국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연임에 성공하고 불과 한 달 반 만에 자리를 비운 셈이다. 

VNL, 올림픽을 앞두고 배협 수장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 대해 배구계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재영·이다영 사건으로 오 회장이 고발을 당하는 등 학폭 의혹의 불씨도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이달 초 자필 사과문을 삭제하고 학폭 폭로자를 고소하겠다는 뜻을 비치면서 학폭 의혹은 또 다시 재점화 된 상황이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오 회장이 이재영·이다영 자매 학폭 의혹의 진실 여부에 대한 국민들과 배구팬들의 의혹을 신속히 해소시키려 노력하기보다 일부 언론보도만을 근거로 자체 진상조사도 없이 국가대표 박탈 조치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 회장과 배협이)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보다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오 회장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명예훼손, 권리행사 방해 등을 이유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국가대항전
코앞인데…

배구계에는 배협, 한국배구연맹, 한국실업배구연맹 등의 단체가 있다. 배협은 아마추어 선수들과 국가대표팀을 지원한다. 한국배구연맹은 한국프로배구를 총괄하며 V리그와 KOVO컵 프로배구대회를 주관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총재를 맡고 있다. 김금규 회장의 한국실업배구연맹은 실업배구팀을 관장한다.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구단(흥국생명)·한국배구연맹·배협의 징계 및 입장이 각각 따로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한국배구연맹은 학폭 연루자를 프로무대에 들이지 않겠다는 규정을 신설했지만 이재영·이다영 자매에게는 적용하지 않기로 해 배구팬들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배협은 ‘국가대표 선발 무기한 제외’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배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오한남 회장은 이재영·이다영 자매에 대한 배협의 입장을 결정하고 난 후 출국했다. 행선지는 바레인. 오 회장은 바레인 국가대표팀 감독, 바레인 한인회 회장 등을 지냈을 정도로 바레인과 인연이 깊다.

바레인에서 한식당과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이번 출국도 개인 사업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협 사무처 관계자는 “회장님이 한국에 없는 것은 맞다. 사업 때문에 바레인에 가셨다”면서도 “실무는 직원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공백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메신저나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매일 업무 보고를 드리고 있다”며 “지금도 회장님께 드릴 보고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백신 2차 접종 문제로 5월 중순쯤 (한국에)들어오실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배협 회장은 ‘명예직’일 뿐이라는 항변도 나왔다. 배협 정관 24조 ‘임원의 직무’ 조항에 따르면 ‘회장은 협회를 대표하고 그 업무를 총괄하며 무보수 비상근 명예직으로 한다’고 돼있다.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오 회장의 부재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업 때문?
백신 때문?


또 다른 배구계 관계자는 “여느 때였다면 오 회장의 부재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VNL, 올림픽 같은 굵직한 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의 부재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대표팀 코로나19 백신접종, 불투명한 올림픽 개최 여부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자리를 지켰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자배구는 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발판으로 현재 인기에 다다랐다. 2012년 런던올림픽 4위, 2016년 리우올림픽 8강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모든 선수들이 똘똘 뭉쳐 얻은 결과였다.

김연경은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음에도 MVP로 선정돼 세계적인 선수임을 증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배협의 역할은 없었다. 배협은 국가대표팀을 지원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방해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리우올림픽에서 배협의 지원 부족으로 국가대표팀이 열악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른 사실이 드러났다.

세계 8강이라는 빛나는 성적 뒤에 이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에 배구팬들은 물론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감독, 코치, 전력분석관 그리고 선수 12명까지 16명으로 구성됐다. 한국 선수단에 배정된 AD카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통역조차 없어 중계방송을 위해 현장답사를 왔던 모 아나운서가 기자회견에서 통역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명의 트레이너가 12명의 선수를 모두 책임져야 했고, 전력분석관은 AD카드가 없어 동행하지 못했다.

리우올림픽 8강 뒤에
배협은 흑역사 쌓아

리우올림픽 일정을 마친 이후 귀국길에서도 사달이 났다. 국가대표팀은 한국 선수단이 귀국하는 전세기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8강에서 탈락하면서 일찍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표가 없다는 이유로 16명이 4차례로 나눠 귀국하게 된 것. 

또 당시 배협은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2016년 8월9일 국가대표팀이 러시아에 3대 1로 패하던 날, 배협은 회장 선거를 실시해 서병문 전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하필 그 시기에 회장 선거를 치러야 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회식이 김치찌개 집에서 이뤄진 사실까지 드러났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20년 만에 중국을 꺾고 우승을 일궈냈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홀대 논란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배협은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분노한 누리꾼에 의해 배협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배협은 입장문을 내고 “AD카드 전체 규모가 줄었기 때문에 추가 확보가 어려운 여건이었다” “통역은 조직위로부터 지원받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전세기 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없던 대표팀이 조기 귀국을 원했다” “정부의 경기단체 통합방침과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일정에 따라 협회 회장 선거를 마쳐야 했다” 등의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올림픽 지원 문제와 함께 배협 내부의 잡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서병문 회장은 결국 2016년 12월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되면서 배협 역사상 최초로 탄핵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리고 2017년 4월 서 회장이 제기한 대표자 해임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사실상 해임이 확정됐다. 

탄핵 회장
후임이면서…

이후 2017년 6월30일 열린 배협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 바로 오 회장이었다. 그는 지난 1월18일 연임에 성공해 2024년 1월까지 배협을 이끌게 됐다. 당시 그는 “코로나19로 배구를 비롯한 스포츠 전체가 위중한 상황이다.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한국배구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자대표팀이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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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