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야당 선거 막판 변수 셋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패색이 짙은 여권이 연일 악재를 맞고 있다. 그렇다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민의힘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선거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안다.

 

▲ 유세 중인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박성원 기자

문재인정부 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네거티브 공세, 고소·고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 내에서도 “이렇게까지 지저분한 선거는 처음 본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다만 과도한 막말은 선거에서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야권 지도부는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며 내부에 입단속을 강조한 상태다. 이길 공산이 높은 선거에서 괜한 무리수로 표를 잃지 말자는 심산으로 읽힌다.

정권 심판
여권 악재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힘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큰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앞서고 있다.

지난 1일 <뉴시스>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따돌렸다. 특히 중도층에선 오 후보(66.5%)가 박 후보(28.1%)보다 두 배 넘게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이는 ‘LH 사태’와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정부 심판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의 ‘내로남불’ 행태에 실망했다는 여론이 심상치 않다.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전셋값을 인상한 김상조 전 청와대 전 정책실장에 대해서는 수사가 착수됐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 역시 비슷한 시기에 임대료를 인상한 것으로 드러나 선거 캠프 홍보디지털본부장직에서 사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권 내부에서는 “여당의 네거티브에 괜히 대응하지 말고, 이대로만 가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대에 대한 수위 높은 비난은 쉽다.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노려볼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이번 선거에서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도층이 정부에게 돌아서 야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 당은 이미 21대 총선에서 극우 세력과 손잡은 지도부들의 막말로 참패한 역사가 있다. 막말은 중도층 이탈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교훈을 준 일례다.

따 놓은 당상? 역풍 미리 차단
힘받는 심판론…중도층 돌아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선거 초반부터 말조심을 당부한 바 있다. 오 후보 역시 이를 실천 중이다. 선거 정국에서 막말 논란이 일 때마다 빠르게 사과하고 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중증 치매환자’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인식을 가진 대통령을 보며 분노한 마음에 나온 비유적 표현이고, 이 시간 이후로 그런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야권에 기울어졌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선거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안다. 특히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아 당의 조직력 싸움으로 비화되기 십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고 해도 실제 투표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실상 ‘신기루’에 불과하다.
 

▲ 유세 중인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고성준 기자

국민의힘은 보수정권 역사상 이례적으로 사전투표 독려에 공을 들였다. 힘을 실어주는 중도층이 투표장에 가지 않을 불상사를 차단한 것이다. 특히 야권이 2030 세대를 향한 투표 독려에 힘쓰고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2030세대는 보통 진보층으로 꼽혀왔다. 이는 청년층의 정권 심판론이 크게 부상했음을 방증한다.

이대로면 투표율이 높을 경우 진보 진영에 유리하고, 반대로 낮은 투표율은 보수 진영에 유리하다는 오래된 공식이 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도 정권 심판론이 선거 판세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의 실정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보수층이 결집하면 국민의힘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정권에 분노한 마음을 속으로 삭여서는 안 된다. 투표장에 직접 나와 정권 응징 투표를 하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을 자극해 투표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속내로 보인다.

신기루
투표 독려

오 후보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YTN에서 “저는 15%, 20% 가까이 차이난다는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보궐선거고, 지지율이 높으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투표장으로 가주셔야 하는 것”이라며 “투표하는 날이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투표율이 60%가 안 될 거라고 예측되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고, 어느 정당의 조직력이 강한가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오 후보는 여론조사가 무의미하단 점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과거 오 후보는 여론조사와 다른 선거를 세 차례나 경험했고, 두 차례는 패배했다. 가장 가까이는 지난 21대 총선에서다.

오 후보는 서울 광진을에서 당시 민주당 고민정 후보와 붙었다. 여론 조사에서 오 후보는 고 후보를 가뿐히 앞섰지만 선거에선 달랐다. 오 후보는 2.6%포인트 차이(2746표) 차이로 패배했다.

지난 2016년 총선 종로에서 당시 민주당 정세균 후보와 붙었을 때도 비슷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오 후보가 압도적으로 앞섰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 후보는 정 후보에게  약 12%포인트 차이(1만852표)로 패배했다.
 

▲ 서울시청 ⓒ박성원 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오 후보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20%포인트 앞섰다. 오차범위를 넘어선 압도적 우세였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오 후보는 한 후보에게 불과 0.6%포인트(2만6412표)로 겨우 이겼다.

민주당의 조직력 역시 국민의힘이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민주당의 조직력은 상당하다.

조직력
총동원

서울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 4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41명이다. 25개구 기초단체장도 조은희 서초구청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민주당 소속이다. 서울시의원은 109명 중 101명이, 구의원은 369명 중 219명이 민주당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노리는 이들이 성과를 내놓기 위해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전국 지역위원회를 동원해 서울·부산에 거주하는 ‘지인 찾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태다. 또 전국 시·도당위원회에 재보선 협조공문을 보내 당 조직을 활용하는 ‘총동원령’을 내렸다. 경기·인천·호남은 서울 선거, 충청도당 등은 부산 선거를 적극 돕도록 분담했다.

민주당은 오 후보가 맞닥뜨릴 난관을 부각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박영선 후보 캠프 집행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서울시장이 혼자서 서울의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며 구청장과 시의회가 원팀으로 일하는 것과 매번 싸우고 다투고 갈등이 있는 것 중 어느 것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시장은 시의회, 구의회 등 각종 관련 단체과 협력 상생하는 위치다. 1년짜리 시장직에 국민의힘 후보가 선출되면 시정활동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반성 전략’ 역시 선거의 변수다. 현재 당 내에서는 시장직을 모두 내줄 것이라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오는 보궐선거는 문재인정부의 레임덕이 걸려있는 문제다. 당헌까지 고쳐 후보를 낸 상황에 성난 민심이 확인되면 내년 대선판까지 좌지우지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면 여권의 대권 주들의 추락 역시 피해갈 수 없다.

민주당은 연일 사과하며 읍소를 이어가고 있다. 이탈한 중도층과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다.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은 “집값 폭등과 부동산 불패 신화 앞에서 개혁은 무기력했다”며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허리를 굽혔다.

지지율 믿어도 되나?
여야 결집 어디까지?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 특혜 논란’도 아직 남았다. 현재 투기 의혹은 당의 후보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선거의 악재다. 오 후보 역시 본인이 “이와 관련된 의혹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오면 사퇴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상태다.

사건의 핵심은 오 후보가 과거 서울시장 시절 처가 땅이 있는 서초 내곡동 일대의 그린벨트 해제와 보금자리주택 지구 지정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다. 오 후보는 “내곡동 땅 위치도 몰랐다”며 이를 증명한 증인이 나오면 사퇴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 유세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캠프 관계자들 ⓒ고성준 기자

하지만 2005년 토지 측량 현장에서 오 후보를 만나 식사를 했다는 사람의 내곡동 경작인들의 증언이 나오자, 이 논란은 각종 고소·고발전으로 변질됐다. 이후 오 후보가 가게를 방문했다는 안골 식당 주인의 증언이 번복되자, 정치권은 치열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용산 참사’에 대한 오 후보의 발언이 선거 막판의 변수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20일 새벽, 경찰이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건물에서 점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과잉 진압하는 과정에서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를 두고 오 후보는 “재개발 과정에서 전국철거민연합회라는 시민단체가 가세해 매우 폭력적 형태의 저항이 있었다”며 “거기에 경찰이 진입하다 생겼던 참사”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박 후보는 “밀어붙이기식 재개발을 추진했던 당시 시장이자 현재 시장 후보로서 반성적 인식이 심각하게 결여된 언어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오 후보는 이와 관련해 연일 사과하며 선거 막판 돌발변수를 차단하고 있다.

몸 사리는
이유는?

일각에선 오 후보의 부족한 인권 감수성이 인해 표를 깎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앞서 오 후보는 전국 최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이용하는 문화·복지시설인 ‘어울림프라자’에 대한 재건축 전면재검토 공약 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그는 지난 1월 “귀화한 중국 동포들의 90% 이상이 친민주당”이라고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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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띄운 이재명<br> ‘장기 집권’ 노림수?

개헌 띄운 이재명
‘장기 집권’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이재명정부가 개헌 추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정 운영 동력이 강한 임기 초에 드라이브를 걸어 개헌을 성공시키겠단 구상이다.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안을 걸고 넘어졌다. “이재명의 장기 집권”이라며 공포탄을 쏘아 올리고 있어 개헌 로드맵마저 흐릿해지는 형국이다. 개헌은 매 선거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대통령 후보들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겠다”며 앞다퉈 개헌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막상 당선된 이후에는 흐지부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미루기 일쑤였다. 취임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이재명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이 대통령 역시 임기 초반부터 개헌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개헌 논의 걸림돌은?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시절부터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의 헌법은 87년 체제에 멈춰있는 만큼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대선 국면이던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을 수면 위로 띄웠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서 윤석열 전 정권처럼 친위 군사 쿠데타를 하거나, 국가권력을 남용해 국민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불가능하도록 통제 장치를 좀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저나 민주당은 87년 체제가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많고 역사적 당위성도 있었는데 객관적 상황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쉽게 조정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인데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자신의 SNS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개헌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비롯한 ▲대통령 결선투표제 ▲대통령 거부권 제한 ▲비상명령·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사후 승인제 등 대통령 권한 축소안과 더불어 ▲감사원 국회 이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공수처장·국가인권위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 및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국회 임명 동의제 등을 제안했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단연 대통령 4년 연임제였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행 단임제에선 현직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돼있다. 이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 운영 방식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기존에 있던 사업은 물론 장기 프로젝트까지 엎어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문재인도 실패...“제왕적 대통령” 비판 헌법 128조 설명에도 먼 산 보는 국힘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시되는 게 중임제와 연임제다. 두 제도 모두 대통령 권력 분산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중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 또는 차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연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그 다음 치러지는 차기 대선에만 출마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지난 6일 이 대통령은 ‘국민주도상생개헌행동’과 1시간40분 동안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공약이었던 개헌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정권 초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국정기획위원회(이하 국정위)도 이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개헌 논의 착수에 나섰다. 국정위 조승래 대변인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개헌안은 이미 공약한 것이라 정리가 돼있고 문제는 시기”라며 “(개헌안을) 대통령이 발의하든 국회에서 발의하든 간에 국회 개헌특위 등 국회 논의에 따라 추진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위는 국회와 국민 공감대 양쪽 모두를 예의주시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개헌 논의는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하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점에서다. 조 대변인은 “여당과의 협의만으로 될 문제는 아니”라며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 일이라 야당과의 논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정위는 개헌안을 성안하는 곳은 아니다. 대통령이 공약한 사항을 정리해 국정 과제 목록에 첨부할 것”이라며 “국정위는 개헌 추진 절차와 방법,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르면 내년 지방선거, 늦어도 2028년 총선이라며 시기도 못 박았다. 그러나 4년 연임제와 같은 대통령 임기 단축 문제가 남아 있어 국정위 역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하는 개헌안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3월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4년 연임제가 담긴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이고 이를 위해서는 개헌안 발의 시점을 더 늦출 수 없다”며 개헌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개헌은 헌법 파괴와 국정 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외쳤던 촛불 광장의 민심을 헌법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패한 개헌 8년 전 데자뷔 문 전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만약 채택이 된다면 지금 대통령하고 지방정부와 임기가 거의 비슷해진다”며 “이번에 선출되는 지방정부의 임기를 약간만 조정해서 맞춘다면 차기 대선부터는 대통령과 지방정부의 임기를 함께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당시 개헌안에는 대통령의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삭제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과 헌법기관 구성 등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 담겼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에서는 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그간 전직 대통령들이 불행을 겪어왔는데 4년 연임제는 4년은 선거운동하고 4년은 레임덕에 빠지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 개헌안은 완전히 방향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를 반박했다. 당장 4년 연임제를 포함한 개헌이 통과되더라도 이는 현 정권이 아닌 다음 정권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현행 헌법 제128조의 제2항을 예시로 든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혹시라도 이 개헌이 저에게 무슨 정치적인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해들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분명히 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문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 도중 개헌안의 국회 송부와 공고를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단상에 선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4년 연임제로 개헌하더라도 문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드린다”며 “마치 문 대통령이 4년 연임제 적용을 받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 주장”이라고 거듭 말했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의 개헌안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야당의 반발로 총 114명의 의원만 표결에 참석해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3분의 2(192명)를 채우지 못해 표결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 것이다. 1980년 ‘간선제 5공화국’ 헌법 개정안 이후 38년 만에 발의된 개헌안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시작도 전에 브레이크 문재인정부의 개헌이 실패한 이유는 현직 대통령의 권력과 연관돼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졌다. 헌법 제128조를 예시로 들었지만, 오랜 기간 유지해 온 단임제 체제를 바꾸는 것에 국민이 부담감을 느낀 것 또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개헌 방식에 대한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전자결재로 대통령 헌법개정안 발의를 관철해 야당의 거센 비판을 산 것이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조 수석을 언급한 뒤 “언젠가 이런 사고를 칠 줄 알았다. 처음이 아니다. 권력기관 개편안을 들고 나와 혼자 (발표)하더니 국민을 상대로 개헌안을 교육시켰다”며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비서다. 법무부 장관이,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을 일개 비서가 나서서 설쳐대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회는 대통령의 비서가 보낸 개헌안을 검토할 수 없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한 헌법 전문가 역시 와의 통화에서 “문재인정부는 헌법 개정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했다. 당시 발표자로 조국 민정수석이 나왔는데 이런 것들이 파격적”이라며 “하나의 이유로 개헌이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임기 말에 개헌을 시도했다면 차기 대선주자 등이 반발해 마찬가지로 추진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부의 개헌 역시 4년 연임제가 발목을 잡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4년 연임제를 띄우자,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장기 집권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권력을 나누겠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축을 다시 짜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이재명의 푸틴식 장기 집권 개헌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며 “지난번에는 중임제를 얘기하더니 (이 후보가) 슬쩍 끼워 넣은 연임 두 글자에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임은 단 한 번의 재선 기회만 허용하며 8년을 못 넘기지만 연임은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하는 혹세무민의 단어”라며 “푸틴이 바로 이 연임 규정으로 사실상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개헌을 위한 개헌? “음모론에 가까워” ‘4년 연임제’ 국정과제서 제외 가능성도 대선이 끝난 후에는 “이재명 50년 장기 집권”이라는 공세도 쏟아졌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지난달 4일 대선 결과에 대해 “우리 당이 뼛속까지 바뀌어야 한다는 준엄한 명령”이라면서도 “이 대통령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악법을 밀어붙이고 보수 궤멸을 통한 50년 장기 집권을 획책할 것인데, 야당으로서 하루 빨리 전열을 정비해 독재를 막아내기 위한 싸움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진영이 ‘장기 집권 노림수’라는 군불을 땔 때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없다는 게 현 헌법 부칙에 명시돼있다”며 임기 연장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며 겪었던 고난을 되풀이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정부가 헌법 제128조 제2항까지 뜯어고칠 것이란 의혹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일부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국민의 뜻’ ‘국민주권정부의 희망 사항’ 등을 핑계로 4년 중임제를 현 정부부터 적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장기 집권 의혹에 부채질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는 “단순 음모론”이라고 선을 그었으며 헌법학자 역시 “일각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다지만 (이 대통령이)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것을 뭐 하려고 시도하겠는가”라고 일축했다. 개헌 시기에도 눈길이 쏠린다. 앞서 이 대통령은 빠르면 2026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임기 내에 개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대표적인 조건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70%를 넘기고, 개헌 정족수인 200석을 여당이 확보해야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가 힘을 받는다. 현재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0%대를 웃돌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개헌을 띄웠을 때 지지율도 마찬가지로 60%대였던 만큼 적어도 국민 7할을 편으로 두어야 개헌 논의가 매끄럽게 진행될 것이란 설명이다. 야당과의 협조도 넘어야 할 산이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180석에 그치는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개헌 저지선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4년 연임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어 첫발을 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4년 연임제 논의가 개헌안서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4년 연임제는 국정과제가 대통령실과 총리실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 권한과 직결돼 논쟁의 여지가 큰 데다가 여야는 물론 국민과의 합의도 충분히 이뤄어지지 않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사안에 대해 국정위는 “아직 어떤 사안도 결정된 바 없다”고 알렸다. 연임 논란 이대로 패스? 신평 변호사는 와의 통화에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관해서는 전 국민 합의가 거의 이뤄진 상태”라면서도 “이번 개헌은 추진되고 유종의 성과를 거두리라 본다. 여야 합의가 중요한 부분인데 정부 내에서 개헌 추진 위원회를 만들고 헌법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현실적인 개헌 작업을 실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 역량을 가진 곳은 국회가 아니라 정부다. 정부가 단단히 뒷받침해줘야 개헌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