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45·46) 낙지젓, 멸치젓

조상들이 즐겨먹던 젓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pixabay

낙지젓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됐을 때 지은 작품 ‘탐진어가(耽津漁歌)’ 중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漁家都喫絡蹄羹(어가도끽낙제갱) 
어촌에선 모두 낙지 국을 즐겨 먹고

탐진은 강진의 옛 지명으로 위 작품에 등장하는 낙제(絡蹄)는 곧 낙지를 의미한다.

絡(낙)은 ‘얽혀있다’, 蹄(제)는 ‘굽’ 혹은 ‘발’을 의미하니 여러 개의 발로 얽혀 있는 동물로 해석가능하다.


그래서 그 낙제가 우리말 낙지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蹄(제)보다는 가지를 의미하는 枝(지)가 더욱 합당한 어휘여서 낙지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아울러 낙지는 문어를 의미하는 八梢魚(팔초어,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진 물고기)와 대비해 小八梢魚(소팔초어)라고도 부른다.

이 낙지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첨부해 본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실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과거를 볼 때 낙제(落蹄)를 먹지 않는다. 그 음이 과거에 낙방한다는 의미의 낙제(落第)와 같기 때문이다.」

필자와 낙지의 인연은 군에 입대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중부지방 내륙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생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었다.


당시 기껏해야 말린 굴비 정도만 먹을 수 있었고 회는 그야말로 생소했던 단어였다.

그런데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 두 명과 함께 무전여행을 하던 중 목포의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여러 아주머니들이 바다에 이어진 제방에서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과 허기로 인해 발이 절로 향했고 그 아주머니들이 커다란 함지박을 가득 채운, 말로만 들었던 세발 낙지를 파는 모습을 확인했다.

순간 친구들과 눈빛을 마주쳤다.

이어 아주머니들의 면면을 살피고 한 아주머니 앞에 가서 사이를 두고 쭈그리고 앉아 세심하게 낙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세게 입맛 다시는 일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아주머니 입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 흘러나왔다.

“학생들 같은데 돈이 없는 모양이지?”

기다리던 반응이지만 뒤통수를 긁적이며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군에 입대하려 휴학하고 여행을 떠났는데… 여러 날 길에서 고생하다….”

아주머니께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혀를 차며 가까이 와 앉으란다.


그리고는 당신의 아들도 지금 휴학하고 군에 복무하고 있다면서, 마치 자신의 아들 대하듯 선심을 베푸셨다.

물론 술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 밴댕이젓

우리가 그 아주머니 앞에 앉아 애처롭게 굴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 정도 연령대라면 우리 나이 또래의 자식이 있고 또한 군에 있을 것이란 예측으로 그 아주머니에게 애처로운 시선을 주었고 그게 먹혀들었던 것이다.

물론 의도적이었지만 그 날 처음으로 세발낙지를 배터지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갯벌의 산삼으로도 불리는 낙지는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에 ‘맛이 달콤하고 회·국·포를 만들기 좋다.


한여름에 논 갈다 지치고 마른 소에게 낙지 네댓 마리를 먹이면 기운을 차린다’라고 기록돼있다. 

앞서 이덕무는 과거를 앞둔 시점에는 낙지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는 수험생들의 건강 유지에 가장 좋은 음식 중 하나로 낙지를 권장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갯벌의 산삼… 건강 유지에 으뜸 
성질 급해 잡히자마자 죽어 ‘멸치’

멸치젓

조선시대 후기에는 멸치가 대량으로 어획되고 있었음을 문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나 그 이전에도 많이 잡히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성현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그의 문집인 <허백당시집>에 실려 있다. 

彌魚(미어)
멸치

茫茫滄海窮無涯(망망창해궁무애) 
아스라이 끝없이 푸른 바다는
百萬魚龍之所家(백만어룡지소가) 
수많은 물고기들이 머무는 곳인데
弱肉强食互呑噬(약육강식호탄서) 
약육강식에 따라 서로 먹고 먹히면서
次第驅迫相牽拏(차제구박상견나) 
차례로 구박하고 서로 끌어 당기는데
其中彌魚尤細鎖(기중미어우세쇄) 
그 중 미어는 더욱 세쇄하여
蔽擁水面紛如麻(폐옹수면분여마) 
삼처럼 어지럽게 수면 뒤덮고
紛紛蔽水水爲黑(분분폐수수위흑)  
어지럽게 수면 가려 물 시커멓게하니 
白鷗蹴浪搖銀花(백구축랑요은화) 
갈매기는 물결 차며 은 꽃 흔들어대네
有時風捲湧出岸(유시풍권용출안) 
때로 바람에 밀려 언덕으로 솟구쳐 나와
亂如山積塡泥沙(난여산적전이사)  
산처럼 어지럽게 쌓여 갯벌 메우네 
漁人乘舟齊擊楫(어인승주제격즙) 
어부들은 배 타고 일제히 뱃전 두드리면서  
爭持網罟來相遮(쟁지망고래상차) 
서로 다투어 그물 쳐서 잡아 올리는데
年年取此作枯腊(년년취차작고석) 
해마다 이것을 마른 포로 만들어
充牣甔石排千家(충인담석배천가)  
항아리에 가득 채워 여러 집에 배포하니
海濱人人飽腥味(해빈인인포성미)  
해변 사람들은 저마다 비린 맛에 배불러 
縱値飢歲無咨嗟(종치기세무자차) 
설령 흉년 만나도 탄식하지 않는다네
我行到海親自覩(아행도해친자도) 
내가 바닷가에 이르러 친히 보았으니
此事堪向山人誇(차사감향산인과)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하네 

위 작품은 1493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했던 성현이 바닷가에 이르러 목격한 장면을 풀어낸 시로 제목에 등장하는 ‘彌魚(미어)’가 멸치를 지칭하는 말이다.

彌(미)는 ‘미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두루’ ‘널리’의 의미로도 활용되는데, 이 나라 해안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물고기라 미어라 칭한 듯 보인다. 

또 이어지는 내용을 살피면 단번에 멸치에 관한 이야기라는 감이 들어온다.

즉 멸치는 그 명칭에 혼선이 있었을 뿐이지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대량 어획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멸치가 조선 후반부에 이르면 또 다른 이름인 ‘旀魚(며어)’로 등장한다.

일설에 의하면 멸치는 성질이 급하여 잡히자마자 죽는다 하여 ‘멸어(滅魚)’ 또는 ‘멸치(蔑致)’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물고기의 이름과 관련된 기본 상식에 접근해보자.

대개의 물고기 이름이 ‘치’ 혹은 ‘어’로 끝을 맺는데(물론 예외적으로 ‘미’ 혹은 ‘기’등으로 끝맺는 경우도 있음), 그 이유에 대한 상식이다.

통설에 의하면 물고기에게 비늘이 있고 없고에 따라 그렇게 정해진다고 한다.

‘치’로 끝나는 물고기는 비늘이 없고 ‘어’로 끝나는 물고기에는 비늘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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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