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펀드 환매 사기’로 수천억원대 피해를 초래한 옵티머스 펀드에 굵직한 기업 다수가 투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명도가 높지 않고 투자 대상도 생소한 투자운용사에 대규모 투자 참여가 이뤄진 것을 두고 의혹이 커지고 있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건은 사모펀드(PEF)가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우량 채권이 아니라 부실 채권에 투자한 뒤 돈을 빼돌린 전형적인 금융사기였다. 사건은 지난 6월18일 옵티머스자산운용이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에 400억원 규모의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이하 옵티머스 펀드)’ 만기 상환이 어렵다고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알고 보니
부실 투자
해당 펀드는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의 공사를 수주한 건설회사 등의 매출채권을 싸게 사들여 연 3% 안팎의 수익을 추구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운용사가 투자한 상품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닌 부실 사모사채였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은 대부업체인 대부디케이에이엠씨와 부동산 중개업체인 씨피엔에스, 아트리파라다이스, 엔드류종합건설, 라피크 등 5개 비상장업체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5개 업체가 받은 펀드 자금은 부동산 개발 사업 또는 코스닥시장 상장사 M&A 등에 쓰였다. 특히 대부디케이에이엠씨는 부동산 관련 업체에 자금을 내보내는 역할을 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신용대출 규모는 760억원이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이 2년간 펀드 명세서까지 조작한 정황마저 드러났다. 실제 펀드에는 공공기관 매출채권 대신 실체가 불분명한 장외기업의 부실 사모채권들로 채워졌다.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의 이 같은 특징은 지난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라임 사태와 유사했다. 부실 사모사채로 고객 자금을 빼돌린 뒤 나중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돈으로 돌려막기 하던 정황이 라임 사태와 판박이었던 탓이다.
안전성 믿고 입금했는데…
돈 물린 기업 60곳 육박
펀드 사무수탁회사의 허술한 관리 체제를 노렸다는 점에서 라임 펀드 사기 사건과 비슷하다. 라임 펀드가 일부 증권사 프라임브로커(PBS)와 공모해 사기를 벌였다면, 옵티머스 펀드의 경우 증권사를 속이기 위해 사모펀드 관리 체제의 구멍을 노렸다.
눈여겨볼 부분은 펀드 가입자 명단에 굵직한 다수 대기업의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정치권 등을 통해 유출된 옵티머스자산운용 가입자 리스트에는 매출채권 펀드를 처음 판매한 2017년 6월부터 환매 중단을 선언한 올 6월까지 3년간 전체 펀드계약(3359건) 내용이 담겼다.
총 판매액은 1조5797억원에 이른다. 이 중 펀드 판매 이후 환매 등이 진행되면서 현재 환매가 중단된 금액은 5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상장사는 유가증권시장 12곳, 코스닥시장 47곳 등 총 59곳에 달한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식품기업인 오뚜기가 150억원, 편의점 CU를 운용하는 BGF리테일 100억원, LS일렉트릭 50억원, 넥센은 30억원 등을 투자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안랩 70억원, JYP엔터테인먼트 50억원 등이다.
심각했던
운영 행태
상당수는 환매 중단으로 투자금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는 상반기 실적에 투자 손실을 반영한 상태다. JYP엔터테인먼트는 NH투자증권을 통해 40억원을 투자했다가 30%(12억원)를 잃은 것으로 공시했다.
LS일렉트릭(옛 LS산전) 자회사인 LS메탈은 옵티머스에 50억원을 투자했다가 15억원의 손실을 봤다. 넥센타이어의 모기업인 넥센은 투자금 31억원 중 10억원을 평가손실로 반영했다.
업종별로 보면 제약바이오 기업의 투자가 두드러졌다. 무려 18곳에 달한다.
▲강스템바이오텍 ▲필로시스헬스케어 ▲녹십자셀 ▲삼아제약 ▲녹십자웰빙 ▲옵티팜 ▲에이치엘비생명과학 ▲에이치엘비 ▲오스템임플란트 ▲엔씨엘바이오 ▲크리스탈지노믹스 ▲중앙백신연구소 ▲유틸렉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헬릭스미스는 R&D를 추진하겠다며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펀드 가입 사실을 밝혔다. 지난 10월16일, 장 마감 후 공시를 통해 팝펀딩 관련 사모펀드와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채권(DLS) 등에 총 489억원을 투자했지만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자 꿈꾸다
본전 털렸다
에이치엘비생명과학과 모회사인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엘비는 지난 4월과 6월에 각각 100억원, 300억원을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했다가 전액 손실을 봤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진양곤 회장이 직접 옵티머스펀드 가입 사실을 밝히며 사과한 상태다.
GC녹십자웰빙은 지난해 10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509억원의 자금을 모은 직후 옵티머스펀드에 20억원을 위탁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GC녹십자웰빙은 당시 조달한 자금 중 400억원을 충북 음성의 신규 공장 설립에 투자하고, 나머지 100억원은 임상시험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상장사들이 대거 투자한 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대한 투자를 매력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안정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상품으로 여겨졌다는 뜻이다.
공공기관과 대학도 옵티머스 펀드에 가입했다가 환매 중단 사태로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성균관대(46억원), 한남대(44억원), 건국대(40억원), 대구가톨릭대(5억원) 등은 사내 근로복지기금 등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마사회(10억원), 농어촌공사(30억원), 한국전력(10억원) 등의 공공기관도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했다.
제약업계 때 아닌 된서리
보상? 깡통 차게 생겼다
다수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옵티머스 펀드 투자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해지자, 일각에서는 별다른 의심 없이 투자가 이뤄진 배경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투자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단 특정 사모펀드에 다양한 법인 및 기관이 투자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은 없는 상황이다. 저금리 기조가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계속되던 터라 기업들이 여유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옵티머스 펀드를 선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투자의 대상이 ‘옵티머스 펀드’란 점에 대해 업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옵티머스가 이전에 특별히 돋보이는 운용 실적을 낸 회사가 아닌데도 다수의 기업 및 기관이 단기간에 투자했다는 점은 섣불리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더욱이 옵티머스는 환매중단 대상이 된 펀드를 팔기 직전인 2017년 무렵 자본총계가 6억원에 불과했고, 자본금 미달로 인해 ‘적기 시장조치’ 대상이 될 위기에 놓여 있던 상황이었다.
혹시나 모를
보이지 않는 손
이렇게 되자 금융투자업계에선 특정 사모펀드에 유력 기업들이 대거 투자한 것을 두고 영향력 있는 인사의 개입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옵티머스가 이헌재 전 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거물급 인사를 고문단으로 위촉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