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 이랜드의 속살

전성기 끝났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이랜드그룹의 실적이 매년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패션, 유통, 외식 어느 하나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 믿었던 중국사업마저 모두 철수하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랜드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공격적인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두고 봐야 할 일. 미래는 불투명하다.
 

▲ 이랜드월드 ⓒ이랜드그룹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이랜드월드, 이랜드리테일, 이랜드파크 등 그룹 전체의 매출은 전년대비 32% 감소했다. 그룹 차원의 영업 현금 흐름은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1조 5000억원에 달했던 매출은 올해 들어 1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1100억원 수준이었던 영업이익은 -800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총차입금은 4조7000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4000억원가량 증가했다. 

하락…적자
브랜드 부재

패션부문을 담당하는 이랜드월드만 따로 놓고 보면 매출액은 2800억원서 2400억원으로, 영업이익은 170억 수준서 50억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랜드의 패션부문서 효자노릇을 하는 브랜드는 뉴발란스다. 다행인 것은 이런 뉴발란스의  계약이 5년 연장된 것이다. 많은 소문들이 있었지만 이랜드는 지난 4월 뉴발란스 본사와 2025년까지 한국 및 중국서의 독점 판매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업계는 이번 계약이 이랜드그룹이 패션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강력한 동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서의 뉴발란스 판매 사업이 유망하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뉴발란스가 이랜드와 판매권 재계약을 한 배경에 대해 외국 브랜드의 한국 시장 직진출이 쉽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푸마’ ‘폴로’ ‘망고’ ‘나인웨스트’ 등 그동안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국내에 직진출했다가 실패한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의 뉴발란스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랜드는 티니위니를 8700억원에 매각한 이후 지난해엔 케이스위스를 중국 엑스텝에 3000억원에 매각했다.

이로 인해 2016년 315%였던 부채비율은 2017년 198%로 감소했고, 지난해 170%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돈을 벌어다 줄 브랜드가 줄어들어 매출액 감소로 이어졌다.

1분기 전체 매출 전년대비 32% 감소
파워브랜드 부재 패션부문 위기 봉착

잘나가는 것 같은 뉴발란스의 성장폭 둔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랜드가 한국 뉴발란스의 독점 라이선스권을 확보한 것은 지난 2008년으로, 이랜드가 사업권을 가져오면서 ‘뉴발 열풍’이 일어났고 브랜드 매출은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연매출 3000억원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던 뉴발란스지만, 이후 몇 년 동안 매출액은 그리 늘지 않은 모습이었다. 1년간 3000억원 이상 벌었던 뉴발란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4500억원으로 초반 고속성장을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 박성수 이랜드 회장 ⓒ이랜드월드

실제로 이랜드그룹이 신용도를 유지하려면 브랜드 파워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국내 신용평가사의 주문도 나왔다. 한국기업평가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이랜드그룹의 브랜드 파워 확보 여부에 따라 영업실적 회복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10년간 40% 이상 매출 성장률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했던 중국서의 패션사업도 위기를 맞이했다. 이랜드는 2010년 중국서 18개 브랜드, 3320여개 직영 매장을 운영했는데 이는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패션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였다. 

매출만 보더라도 중국에 진출한 국내 패션기업 중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면서 전체 시장 2위에 올랐다.

1조원의 이면
중국사업 철수

한때 40여개 브랜드, 8000여개 매장으로 늘리며 목표에 근접하는 듯 했지만 2016년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중국사업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당시 그룹 전체 매출서 중국사업이 차지하던 비중은 30%에 이르렀다. 

이랜드는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찾아온 중국 경기둔화의 영향으로 패션사업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면서 유통사업으로 발을 넓히던 차였다. 중국 팍슨그룹과 손잡고 중국 상하이에 ‘팍슨-뉴코아몰’을 열며 유통사업에 뛰어든 후 6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매출 감소세에 사드 보복까지 이중고를 겪은 이랜드는 결국 효율이 나지 않는 매장을 철수하고, 사업구조를 수익성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랜드는 2017년 3월에 중국 패션부문 티니위니 사업을 매각하고 애슐리·자연별곡 등 외식 매장도 철수했다.

대신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 진출하고 자체 온라인몰을 열었다. 이마저도 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중국 우한을 비롯해 상당수 매장을 휴점하는 등 악영향을 받았다.

중국 이랜드 패션 법인 3곳의 매출액은 2015년 2조3373억원서 2018년 1조3651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면서 중국사업 차입금 의존도는 2015년 42.6%서 2017년 21.4%로 낮아졌다. 지난해에는 아예 중국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랜드그룹의 외식사업 계열사인 이랜드이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랜드이츠는 과거 이랜드파크의 외식사업 부문으로 지난해 7월1일자로 물적 분할해 설립한 곳이다. 뷔페와 캐주얼 다이닝, 카페·디저트 등 총 17개 외식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출범 후 ‘애슐리 퀸즈’ 확대 등 외식사업 구조 재편을 통해 지난해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출범 후 6개월간 영업이익은 63억원으로 이랜드파크 외식사업부 시절인 2018년 연간 영업이익(80억원)의 79.3%에 달했다.
 

▲ ⓒ자연별곡 제공

저수익 점포 매장을 정리하면서 매출이 소폭 감소했지만 신메뉴 출시 등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 결과 수익성은 크게 향상된 것이다. 이 때문에 올 1월까지만 해도 이랜드이츠 내부에선 올해 사상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외식사업 위기
코로나 직격탄


하지만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된 지난달 중순부터 고위험 시설군에 해당하는 뷔페 영업이 전면 중단되면서 애슐리, 자연별곡 등 메인 브랜드들이 한 달째 문을 닫은 상태다. 

매출 감소는 기본이고 2023년 상장을 조건으로 유치한 외부 투자금을 조기상환하는 등 재무 개선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지난 15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이랜드이츠는 지난해 7월 분사하면서 SG프라이빗에쿼티(SG PE) 컨소시엄으로부터 유치한 1000억원의 투자금을 최근 조기상환했다.

당초 2023년 상장(IPO)를 조건으로 전환우선주 400억원, 전환사채 600억원을 각각 발행했지만 올 상반기 영업실적이 악화되면서 조기콜옵션 행사 조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220억원이 충족됐고, 투자자 측에서 조기상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 조기상환을 위해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이 이랜드이츠의 대주주인 이랜드파크에 유상증자와 대여금 형식으로 자금을 집행했고 이랜드파크가 전환사채, 전환우선주를 매입하는 형식으로 투자금을 상환한다.

유통 부문을 담당하는 이랜드리테일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적급감 여파로 전 직원의 3분의 1가량이 무급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개별 기준 이랜드리테일의 올 1분기 매출은 3907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3.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321억원으로 전년 동기(영업흑자 310억원)대비 큰 폭으로 적자전환했다.


최대 실적 기대했던 외식사업부 고전
이랜드리테일 사상 첫 무급휴직 시행

이랜드리테일 측은 “불가피하게 무급휴가 제도를 시행하게 됐지만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을 벌일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지만 강도 높은 비상경영 체제에 위기감은 더해지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그동안 ‘의(衣)·식(食)·주(住)·휴(休)·미(美)·락(樂)’을 키워드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각각 의류, 외식, 건설·가구·생활용품, 호텔·리조트, 백화점, 테마파크·여행을 뜻한다.

패션사업을 근간으로 하면서 한국까르푸를 비롯해 데코와·네티션닷컴·뉴코아·해태유통·태창(내의사업부) 등 20여 개의 브랜드를 인수·합병(M&A)하며 몸집을 키웠다. 덕분에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지만 재무건전성 악화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 스파오 매장 ⓒ이랜드월드

이 때문에 이랜드는 몇 해 전부터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한창이다. 비수익 브랜드와 매장 철수를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이랜드리테일, 이랜드월드 등 이랜드그룹 내 계열사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차입금 만기구조를 장기로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이랜드리테일의 점포 주차장 자산 유동화로 1200억원을 조달했다. 이랜드리테일의 21개 유통 점포의 주차장 운영권을 맥쿼리자산운용이 운용 중인 컨세션펀드에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선급 임대료를 받는 방식이다. 국내 유통사 중 주차장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는 처음이다.

유동성 확보?
“두고 봐야”

특히 이랜드리테일이 주차장 사용료 지급으로 인해 부담하는 올인코스트(All-in-Cost)는 4% 대이며, 만기 10년의 장기차입을 통해 코로나19에 의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서 차입 구조를 단기서 장기로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랜드가 공격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현 상황에 어느 하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랜드의 노력이 빛을 볼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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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