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추
이응희 작품으로 이야기 시작하자.
韮(구)
부추
嘉蔬隨地種(가소수지종)
싱싱한 채소 곳곳에 자라니
敷我屋西東(부아옥서동)
내 집 서동 쪽에 펼쳐졌네
秀直針身似(수직침신사)
빼어나고 곧음은 침과 같고
尖纖柏葉同(첨섬백엽동)
뾰족하고 가늘기는 잣나무 잎이네
雨剪佳賓至(우전가빈지)
반가운 손님 오면 비 맞으며 베어
朝供遠客逢(조공원객봉)
아침에 멀리 온 손님 대접하네
工部千年後(공부천년후)
공부가 간지 천년 후에
馨香屬老翁(형향속노옹)
진한 향기 늙은이 소유 되었네
工部(공부)는 당(唐)나라 숙종 때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을 역임한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그가 20년 만에 친구를 만나 반갑게 접대 받고는 다음과 같이 회포를 풀어냈다.
夜雨剪春韭(야우전춘구)
밤 비 맞으며 봄 부추 베어
新炊間黃粱(신취간황량)
노란 좁쌀 섞어 새 밥 지었네
위 작품 하반부가 바로 이 대목을 인용한 것으로 이응희는 자신의 집 주위에 자라나는 부추를 보며 두보를 연상하고 또 부추와 함께 하겠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런데 왜 이응희는 부추가 자신의 소유라고 했을까.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살피면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韭最益人。宜常食之。而韭殊辛臭。養性所忌
부추는 사람에게 가장 유익하므로 마땅히 늘 먹어야 하나, 특별한 매운 냄새 때문에 성정을 함양하는 면에 있어서는 기피하게 된다.
위 내용을 상세하게 살피면 아이러니하다.
먹으라는 말인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혼돈스럽다. 하여 내용을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먼저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니 매일 먹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다.
이는 <경향신문>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대체한다.
「부추는 비타민A와 C가 풍부하며 황화아릴성분에 의한 독특한 향미가 있다. 황화아릴성분은 소화를 촉진시키고 식욕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또 비타민B1이 많다. 비타민 B1은 몸속의 피로물질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해 피로회복에 탁월하다.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직장인, 주부, 학생 등이 피곤할 때 먹으면 좋은 음식이다.」
다음은 특별하게 매운 냄새가 성정을 함양함으로 기피하게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다.
이른바 성정 즉 정력과의 문제다.
홍만선에 의하면 부추가 정력 강화에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어 이를 금기시해야 한다는 말인데, 현대 의학서도 부추는 혈액순환뿐 아니라 신진대사도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며 정력을 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비타민A·C 풍부… 황화아릴성분 독특한 향미
뿌리는 미나리를 닮았고 머리는 인삼과 비슷
그런 이유로 부추를 부부간의 정을 오래 유지시켜준다는 의미서 정구지(精久持), 남자의 양기를 세우는 풀이라는 의미의 기양초(起陽草), 오랫동안 먹게 되면 오줌 줄기가 벽을 뚫는다는 의미의 파벽초(破壁草)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선조들은 술자리에 항상 부추를 함께 했는데 매월당 김시습의 시 중 일부를 인용해본다.
翦韭復釃酒(전구부시주)
부추 뜯어오고 또 술 걸러
相與期酩酊(상여기명정)
권커니 자커니 곤드레만드레 취하네
김시습이 자신의 거처에 불쑥 찾아온 낯선 이에게 부추를 뜯어 안주 삼아 술 대접하고 난 이후 지은 작품 중 일부다.
동 작품 전체를 살피면 김시습은 요즈음 말로 필름이 끓어질 정도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부추가 애주가들에게는 술 안주로도 그만이지 않은가 생각하며 이만 줄인다.
삼채
2011년 10월26일 <한국경제>에 실린 기사를 인용한다.
「서울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에 최근 낯선 채소가 등장했다. 뿌리는 미나리를 닮았고, 머리 부분은 인삼과 비슷한 이 채소는 '삼채'다. 이 채소를 미얀마서 한국으로 처음 들여온 배대열 퍼시픽에너지 대표는 원래 '별난 매운탕'으로 대박을 터뜨린 외식업체 경영자다. 배 대표는 "생긴 모양과 맛이 어린 인삼을 닮았다고 해 삼채(蔘菜)라고도 하고 쓴맛,단맛,매운맛 등 3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삼채(三菜)로도 불린다"고 설명했다. 이 채소의 정체는 히말라야산맥의 언저리인 미얀마 샨주 해발 1400~4200m 고산지서 자라는 식물이다. 산지인 미얀마에서는 주밋(뿌리부추)이라고 부른다. 배 대표가 한 식품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삼채에는 유황 성분이 마늘보다 6배나 많이 들어있다. 100g당 유황성분이 마늘은 0.5㎎인 데 비해 삼채는 3.28㎎이라는 것. 유황은 피부 노화를 방지하며 항암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위 기사에 적시된 것처럼 삼채가 이 땅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시점은 최근이다.
그런데 그 이름인 삼채는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필자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신라 시대에 청색·녹색·황색의 세 가지 색깔을 띠는 토기의 이름이 삼채기 때문이다.
물론 한자는 다르다.
토기 이름의 한자 표기는 三彩로 나물을 의미하는 菜가 아니라 색깔을 의미하는 彩를 사용한다.
이 대목서 나물 삼채에 대한 작명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세 가지 맛을 지니고 있다면 오히려 삼미채(三味菜)라 표기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여하튼 현재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삼채는 원산지가 히말라야 산맥이다.
그곳에서는 길가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로, 그곳 주민들은 식용으로 활용하기 이전에 감기에 걸리거나 아플 때 뜯어 먹는 약초 정도로 생각한다.
아울러 고대 중국인과 로마인들도 화상 등에 약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고급 음식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하는데 이 대목서 힌트를 얻어 식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 삼채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지 <문화일보> 기사로 대체한다.
「삼채의 효능과 관련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식이유황성분. MSM(Methyl Sulfonyl Methane)으로도 불리는 이 성분은 소화를 촉진하고, 생리활성을 도와 원기를 북돋워준다. 불가에서 파, 마늘, 달래 등의 오신채를 금기시한 것도 이 식이유황 때문이다. 식이유황은 자체가 강력한 항산화물질로 DNA 손상을 예방하고, 항염·항균작용으로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삼채의 식이유황성분이 황함유 식품의 대명사로 꼽히는 양파나 마늘보다도 많다. 전북대 헬스케어기술개발사업단의 양재헌 교수 연구팀은 삼채를 48시간 건조 후 ‘비휘발성 식이유황’ 함량을 분석한 결과 삼채의 함량(0.5%)이 같은 조건에서의 양파(0.4%), 마늘(0.3%), 부추(0.2%)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위에 언급한 내용만으로도 삼채는 음식이라기보다도 차라리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함이 이치에 맞을 듯하다.
그러니 비록 삼채의 원이름이 ‘주밋’이지만 주밋거리지 말고 먹을 일이다.
‘주밋거리다’는 어줍거나 부끄러워서 자꾸 머뭇거리거나 주저 주저하다는 의미의 우리말 ‘주뼛거리다’의 북한식 표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