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먼저 한시 한 수 감상해보자.
고려 말기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문하성의 종2품)을 역임했던 백문보(白文寶,1303∼1374)의 ‘현릉이 김 사예 도 에게 ‘나복산인 김도 장원’이라는 여덟 자를 크게 써서 내리다‘(陵賜司藝金 濤 大書蘿蔔山人金濤長源八字) 중 도입부다.
무를 지칭하는 나복
金君早志學(김군조지학)
김 군은 일찍이 배움에 뜻을 두어
讀書蘿蔔山(독서나복산)
나복산에서 독서하였네
蘿蔔尙淡薄(나복상담박)
나복은 맛은 싱겁지만
菜根誠可餐(채근성가찬)
뿌리는 참으로 먹을 만하여라
제목에 등장하는 현릉은 공민왕을 나복은 무를 지칭한다.
아울러 동 작품은 김도(金濤, ?~1379)가 1371년(공민왕20) 명나라의 제과(制科)에 응시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나 부모님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귀국하자, 1372년 공민왕이 손수 ‘나복산인 김도 장원’이라는 여덟 자를 크게 써서 내린 대목을 글로 풀어낸 작품으로 뛰어난 신하를 아낄 줄 아는 임금의 덕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왜 공민왕은 김도에게 나복산인이라는 글자를 써서 내렸을까.
바로 김도의 식성에서 기인한다.
김도는 ‘기욕을 잘 참아 내고 음식도 박하게 먹었는데, 나복을 먹을 때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래서 김도를 나복이라 했다 한다. 이는 김도의 스승인 이색의 부연 설명이다.
우리 역사에서 김도 만큼이나 무를 좋아했던 인물이 있다.
조선조 22대 임금이었던 정조다. 국조보감에 실려 있는 그의 이야기 들어보자.
어릴 때는 밥을 매우 적게 먹었고 조석 때마다 무(蘿蔔)만을 먹었다.
김도야 그렇다고 해도 일찌감치 왕세손에 책봉되었던 그가 왜 그리도 무를 좋아했을까.
그 이유가 <의림찰요>에 나온다.
편두통에는 생나복즙(生蘿蔔汁)에 현각(蜆殼, 가막조개 껍질) 1개의 가루를 준비해 환자를 위로 보고 눕게 한 후 콧속에 넣어주는데,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에 주입하고, 오른쪽이 아프면 왼쪽에 주입한다.
간혹 양쪽 코에 모두 넣어줘도 좋다.
연탄 가스 중독엔? ‘동치미’ 국물이 약
서늘하면서 매운 성질… 폐 기능 강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는 마음 편할 턱이 없었고, 항상 노심초사의 상태를 유지했다.
무는 편두통을 치료하는 금중(禁中, 궁중)의 비방(秘方)이었다.
아울러 이 대목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밝히고 가자.
정약용의 작품 중 한 구절이다.
蘿蔔蒸成社餠香(나복증성사병향)
무를 쪄서 만든 사일의 떡이 향기롭네
社日(사일)은 입춘이나 입추가 지난 뒤 각각 다섯째 무일(戊日)을 지칭한다.
입춘이 지난 뒤를 춘사(春社), 입추 뒤를 추사(秋社)라 하는데 춘사에는 곡식이 잘 자라기를 빌고 추사에는 곡식의 수확에 감사한다.
그 사일에 무를 쪄서 떡을 만들어먹는다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무떡을 소개하기 위해 간략하게 실어봤다.
이제 이규보의 작품 감상해보자.
菁(정)
순무
得醬尤宜三夏食(득장우의삼하식)
장아찌로 먹으면 한여름에 더욱 좋고
漬鹽堪備九冬支(지염감비구동지)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 감당할 수 있네
根蟠地底差肥大(근반지저차비대)
땅 속 서린 뿌리 비대해지면
最好霜刀截似梨(최호상도절사리)
예리한 칼로 배처럼 자르기 가장 좋네
*무와 관련해 2018년 4월 16일 ‘일요시사’의 ‘황천우의 시사펀치’에 게재했던 글을 소개한다.
미세먼지에 대한 단기 대책을 밝힌다!
최근 미세먼지가 심각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세먼지는 대기 중에 머물다 호흡기를 거쳐 폐에 침투하여 만성 폐 질환뿐만 아니라 뇌졸중 같은 심폐혈관질환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여러 요인들과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기주의에 함몰돼있는 인간들의 정신 구조에서 단기적으로 대처 방법을 실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여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필자로서 조그마한 대책이라도 내놔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과거 문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해가 되지 않는다는 차원서 이 글을 쓰게 됨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먼저 우리 세대에게 상당히 친숙했던 연탄가스 중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연탄가스에 중독된 경우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에는 십중팔구 동치미 국물에 의존했었다.
필자 또한 상기의 경험을 지니고 있다.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한 초창기의 일이다.
한겨울에 점심을 먹고 연탄난로가 설치돼있던 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던 일이 화근이 돼 동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어머니께서는 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내게 동치미 국물을 먹이고 있었다.
잠시 후 연탄가스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일이 우연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동치미와 나박김치,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무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다.
조선 제 11대 임금인 중종이 보위에 앉아있을 당시의 일이다.
당시 평안도 일대에 전염병이 발병해 무수한 사람이 사망하자 중종은 순무로 담근 나박김치 국물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사발씩 마시라고 지시한다.
아쉽게도 나박김치 국물을 마신 결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당시 중종이 왜 그런 조처를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나타난다.
조선조 명의인 허준의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글이다.
어느 사람이 동굴 속에서 피란을 하는데 도적이 동굴에 불을 때어 연기에 질식됐다.
답답해서 죽으려 하는 것을 나복(蘿葍)을 씹어서 그 즙을 먹여주니 소생했다.
이어 연기의 독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다음을 권장하고 있다.
탄(炭)의 연기를 사람이 쐬면 머리가 아프며 구토가 나는데, 이따금 죽기도 한다.
생나복(生蘿葍)을 짓찧어 즙을 내 먹이면 즉시 풀린다.
나복은 물론 무를 언급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현대 한의학서 주장하는 무의 효능에 대해 살펴본다.
무는 서늘하면서 매운 성질이 있기 때문에 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효능이 있으며 무즙을 많이 먹게 되면 폐의 기능이 원활해지면서 면역기능이 향상된다.
면역기능 향상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에 대한 단기적 대처방식으로 감히 무를 재료로 만든 식품인 동치미와 나박김치를 권장하는 바다.
참고로 나박김치는 애초에 蘿葍葅(나복저)로, 무만으로 만든 김치였음을 밝히며 필자의 추측이 맞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