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회 VS 광흥창팀 간 청와대 신 권력지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18 10:20:27
  • 호수 12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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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 멜 군기반장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3기 청와대 개편의 막이 올랐다. 그 정점은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다. 통상 권력 크기는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에 반비례한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정치권의 통설은 현재도 유효하다. <일요시사>는 청와대의 ‘신 권력지도’를 예상했다.
 

▲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문병희 기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2기 청와대의 중심이었다. 노 실장이 지난해 1월 취임하자 여권 안팎에서는 ‘군기반장의 귀환’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청와대 기강 잡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떨어지는
카리스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당시 “무엇보다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공직기강을 잡는 것이 급선무인데, 노 실장이 군기반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10년 넘게 그와 함께 국회의원 생활을 했으니 그에 대해 알만큼 안다. 한 마디로 평가하면 카리스마를 갖춘 제갈공명 같은 인물이다. 또 시인으로서 부드러움도 겸비했으니 외롭고 힘든 국민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국민들에게는 힘껏 응원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기 초에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노 실장은 취임 일성서 ‘춘풍추상’을 거론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청와대 공직자들에게 날린 경고장이었다. 추가로 노 실장은 비서진·비서들에게 업무 내용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입단속도 시켰다. SNS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1기 청와대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실장이 취임한 지 3주차에 접어들었을 지난해 1월29일 ‘50·60세대 무시 발언 논란’을 야기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논란이 있고 하루 만에 단행된 문책성 인사였다. 이 같은 ‘속전속결’의 배경에는 노 실장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노 실장의 청와대 장악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만 갔다. 결국 다주택을 소유한 청와대 참모들에게 매각을 권고하는 과정서 약해진 장악력의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첫 번째 권고가 있고난 후 지난 7월 두 번째 권고가 이어졌지만, 청와대 고위 참모 중 8명이 여전히 다주택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노 실장의 경고는 다주택 참모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은 그의 장악력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솔선수범
실책 귀결

노 실장 교체론은 야권은 물론 여권서도 불거졌다. 청와대 참모들부터 다주택을 처분하겠다는 ‘솔선수범’ 방침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청와대 비서진을 총괄하는 노 실장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노 실장을 비롯해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차관급) 인사들은 지난 7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유임을 결정했지만, 재신임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언제든 비서실장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1명의 실장과 5명의 수석, 1명의 차장을 교체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 최재성 정무수석, 김종호 민정수석, 정만호 국민소통수석, 김제남 시민사회수석, 윤창렬 사회수석 등이다.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이를 두고 공식적으로 3기 청와대가 출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3기 청와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기 비서실장에 대한 하마평도 쏟아지고 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유은혜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중 양 전 원장의 이름이 여권 안팎은 물론 청와대서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는 실세형 비서실장이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위 강한 그립감(정국 장악력)을 가진 사람이 비서실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 3철(양정철·전해철·이호철) 중 양 전 원장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통한다. 

‘벼랑 끝’ 노영민 BH 장악력↓
양정철 설득? 여 핵심 나섰나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전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전 원장이 기획했다.

양 전 원장의 장악력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은 여권 내에서 많지 않다. 21대 총선 과정서 그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당의 21대 총선 승리를 이끈 한 축이다. 

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1기 청와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는 21대 총선서 호남을 넘어 전국 각지를 다니며 지원 유세를 펼쳤다. 
 

▲ 발언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서 정치권 일각에선 21대 총선이 끝난 후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문 대통령 임기 후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른바 ‘순장조’(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할 참모)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 전 원장이 순장조의 적임자로 거론되는 일은 상식선이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쪽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 후 정치권에선 다시 한 번 양 전 원장의 비서실장행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권력 이동
어디로?

만약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면, 이는 광흥창 팀→재수회→광흥창 팀으로의 권력 재편을 의미한다. 


‘광흥창 팀’은 지난 2016년 두 번째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문 대통령이 꾸린 대선 준비 실무 팀이다.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 ‘광흥창 팀’으로 불린다. 1기 청와대 비서실장인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양 전 원장, 민주당 윤건영·한병도 의원,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오종식 기획비서관 등이 핵심이다. 

광흥창 팀은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중심이다. 문 대통령 당선 후 당시 사무실서 근무했던 광흥창 팀 13명 중 12명(비서관급 이상 8명)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끝내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은 유일한 1명은 양 전 원장 뿐이다. 

‘재수회’는 정권 실세들의 모임으로 문 대통령의 최측근들로 구성됐다. ‘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회)’이라는 속뜻대로 지금의 문 대통령을 있게 만든 공신들이다. 지난 2012년 대선서 낙선한 문 대통령이 정치권으로 복귀하기 전 그의 야인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지원한 그룹으로 꼽힌다.

노 전 실장을 비롯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민주당 박광온 의원 등이 재수회의 중심이다.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과 탁현민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도 수시로 모임에 참여하는 멤버로 분류된다.

대선 직후 정치권에는 문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직을 두고 광흥창 팀과 재수회가 힘겨루기를 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노 실장을 미는 원조 친문과 임 전 실장을 미는 광흥창 팀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 

‘관리형’ 비서실장으로 가나
스코어 1대1, 최종 결과는?


임 전 실장이 초대 비서실장에 오르면서 광흥창 팀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2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노 실장이 임명되면서 두 세력 간 대결은 1대1의 상황이다. 3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최종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두 세력의 대결을 원조 ‘친문’ 대 ‘신친문’의 대결로 봤다. 노 실장은 대표적인 ‘김근태(GT)계’ 출신의 원조 친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서 “정치적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의하나. 한 사람만 꼽아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노영민 의원(현 비서실장)과 의논한다. 친노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노 실장은 지난 두 번의 대선 모두 문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비서실장을 수행했으며, 지난 2017년 대선 당시에는 조직본부장을 맡아 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병희 기자

전임인 임 전 실장은 신친문으로 통한다. 앞서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등 임 전 실장은 친문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서 문재인 캠프에 영입돼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바통을 이어받을 차기 비서실장이 누가 될지는 문 대통령의 청사진에 달렸다. 임기 후반부 국정운영을 ‘관리형’으로 할 것인지, ‘전환형’으로 할 것인지 등에 따라 비서실장 적임자가 달라진다. 

관리형 비서실장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양 전 원장은 관리형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강력한 장악력으로 청와대와 정부기관을 장악,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일 적임자다.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 등은 21대 총선 이후 양 전 원장에게 노 실장 후임으로 차기 비서실장직을 맡아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정책 등으로 인해 조기 레임덕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과정으로 읽힌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조사하고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전주 대비 0.6%포인트 내린 43.3%로 집계됐다. 2주 연속 하락이다. 

레임덕 신호
바짝 긴장해

정당 지지도로 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1.7% 포인트 내린 33.4%, 미래통합당은 1.9% 포인트 오른 36.5%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보수 계열 정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최초로 앞질렀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시간이 지날수록 양 전 원장이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9월 개각 청사진

청와대 개편이 일정 부분 이루어지면서, 개각 시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월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개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9월 개각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개각 대상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야권서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교체가 유력하다.

또 ‘탈북민 월북’ 등 군 경계 실패의 책임이 있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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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