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회 VS 광흥창팀 간 청와대 신 권력지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18 10:20:27
  • 호수 1284호
  • 댓글 0개

총대 멜 군기반장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3기 청와대 개편의 막이 올랐다. 그 정점은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다. 통상 권력 크기는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에 반비례한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정치권의 통설은 현재도 유효하다. <일요시사>는 청와대의 ‘신 권력지도’를 예상했다.
 

▲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문병희 기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2기 청와대의 중심이었다. 노 실장이 지난해 1월 취임하자 여권 안팎에서는 ‘군기반장의 귀환’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청와대 기강 잡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떨어지는
카리스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당시 “무엇보다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공직기강을 잡는 것이 급선무인데, 노 실장이 군기반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10년 넘게 그와 함께 국회의원 생활을 했으니 그에 대해 알만큼 안다. 한 마디로 평가하면 카리스마를 갖춘 제갈공명 같은 인물이다. 또 시인으로서 부드러움도 겸비했으니 외롭고 힘든 국민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국민들에게는 힘껏 응원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기 초에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노 실장은 취임 일성서 ‘춘풍추상’을 거론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청와대 공직자들에게 날린 경고장이었다. 추가로 노 실장은 비서진·비서들에게 업무 내용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입단속도 시켰다. SNS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1기 청와대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실장이 취임한 지 3주차에 접어들었을 지난해 1월29일 ‘50·60세대 무시 발언 논란’을 야기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논란이 있고 하루 만에 단행된 문책성 인사였다. 이 같은 ‘속전속결’의 배경에는 노 실장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노 실장의 청와대 장악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만 갔다. 결국 다주택을 소유한 청와대 참모들에게 매각을 권고하는 과정서 약해진 장악력의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첫 번째 권고가 있고난 후 지난 7월 두 번째 권고가 이어졌지만, 청와대 고위 참모 중 8명이 여전히 다주택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노 실장의 경고는 다주택 참모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은 그의 장악력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솔선수범
실책 귀결

노 실장 교체론은 야권은 물론 여권서도 불거졌다. 청와대 참모들부터 다주택을 처분하겠다는 ‘솔선수범’ 방침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청와대 비서진을 총괄하는 노 실장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노 실장을 비롯해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차관급) 인사들은 지난 7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유임을 결정했지만, 재신임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언제든 비서실장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1명의 실장과 5명의 수석, 1명의 차장을 교체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 최재성 정무수석, 김종호 민정수석, 정만호 국민소통수석, 김제남 시민사회수석, 윤창렬 사회수석 등이다.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이를 두고 공식적으로 3기 청와대가 출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3기 청와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기 비서실장에 대한 하마평도 쏟아지고 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유은혜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중 양 전 원장의 이름이 여권 안팎은 물론 청와대서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는 실세형 비서실장이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위 강한 그립감(정국 장악력)을 가진 사람이 비서실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 3철(양정철·전해철·이호철) 중 양 전 원장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통한다. 

‘벼랑 끝’ 노영민 BH 장악력↓
양정철 설득? 여 핵심 나섰나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전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전 원장이 기획했다.

양 전 원장의 장악력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은 여권 내에서 많지 않다. 21대 총선 과정서 그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당의 21대 총선 승리를 이끈 한 축이다. 

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1기 청와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는 21대 총선서 호남을 넘어 전국 각지를 다니며 지원 유세를 펼쳤다. 
 

▲ 발언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서 정치권 일각에선 21대 총선이 끝난 후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문 대통령 임기 후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른바 ‘순장조’(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할 참모)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 전 원장이 순장조의 적임자로 거론되는 일은 상식선이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쪽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 후 정치권에선 다시 한 번 양 전 원장의 비서실장행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권력 이동
어디로?

만약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면, 이는 광흥창 팀→재수회→광흥창 팀으로의 권력 재편을 의미한다. 


‘광흥창 팀’은 지난 2016년 두 번째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문 대통령이 꾸린 대선 준비 실무 팀이다.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 ‘광흥창 팀’으로 불린다. 1기 청와대 비서실장인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양 전 원장, 민주당 윤건영·한병도 의원,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오종식 기획비서관 등이 핵심이다. 

광흥창 팀은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중심이다. 문 대통령 당선 후 당시 사무실서 근무했던 광흥창 팀 13명 중 12명(비서관급 이상 8명)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끝내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은 유일한 1명은 양 전 원장 뿐이다. 

‘재수회’는 정권 실세들의 모임으로 문 대통령의 최측근들로 구성됐다. ‘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회)’이라는 속뜻대로 지금의 문 대통령을 있게 만든 공신들이다. 지난 2012년 대선서 낙선한 문 대통령이 정치권으로 복귀하기 전 그의 야인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지원한 그룹으로 꼽힌다.

노 전 실장을 비롯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민주당 박광온 의원 등이 재수회의 중심이다.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과 탁현민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도 수시로 모임에 참여하는 멤버로 분류된다.

대선 직후 정치권에는 문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직을 두고 광흥창 팀과 재수회가 힘겨루기를 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노 실장을 미는 원조 친문과 임 전 실장을 미는 광흥창 팀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 

‘관리형’ 비서실장으로 가나
스코어 1대1, 최종 결과는?


임 전 실장이 초대 비서실장에 오르면서 광흥창 팀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2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노 실장이 임명되면서 두 세력 간 대결은 1대1의 상황이다. 3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최종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두 세력의 대결을 원조 ‘친문’ 대 ‘신친문’의 대결로 봤다. 노 실장은 대표적인 ‘김근태(GT)계’ 출신의 원조 친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서 “정치적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의하나. 한 사람만 꼽아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노영민 의원(현 비서실장)과 의논한다. 친노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노 실장은 지난 두 번의 대선 모두 문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비서실장을 수행했으며, 지난 2017년 대선 당시에는 조직본부장을 맡아 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병희 기자

전임인 임 전 실장은 신친문으로 통한다. 앞서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등 임 전 실장은 친문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서 문재인 캠프에 영입돼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바통을 이어받을 차기 비서실장이 누가 될지는 문 대통령의 청사진에 달렸다. 임기 후반부 국정운영을 ‘관리형’으로 할 것인지, ‘전환형’으로 할 것인지 등에 따라 비서실장 적임자가 달라진다. 

관리형 비서실장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양 전 원장은 관리형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강력한 장악력으로 청와대와 정부기관을 장악,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일 적임자다.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 등은 21대 총선 이후 양 전 원장에게 노 실장 후임으로 차기 비서실장직을 맡아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정책 등으로 인해 조기 레임덕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과정으로 읽힌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조사하고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전주 대비 0.6%포인트 내린 43.3%로 집계됐다. 2주 연속 하락이다. 

레임덕 신호
바짝 긴장해

정당 지지도로 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1.7% 포인트 내린 33.4%, 미래통합당은 1.9% 포인트 오른 36.5%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보수 계열 정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최초로 앞질렀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시간이 지날수록 양 전 원장이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9월 개각 청사진

청와대 개편이 일정 부분 이루어지면서, 개각 시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월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개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9월 개각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개각 대상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야권서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교체가 유력하다.

또 ‘탈북민 월북’ 등 군 경계 실패의 책임이 있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